47화
남양주 화도읍 외곽 허름한 창고 안.
“여기구나. 던전 입구가!”
은은한 푸른빛의 포탈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중학생인가?
내가 흥미로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다가가자 그들은 날 바로 제지했다.
“저기요, 아저씨. 여긴 못 들어오니까 다른 데로 가세요.”
“근데 너희 몇 학년이냐? 지금 평일인데 학교 안가고 여기 와있어도 돼?”
“하. 이 꼰대가 지금 뭐라는 거야? 꺼지라는 말 못 들었…악!”
내 불꽃 싸다구가 남학생의 얼굴에 작렬했다.
그는 싸다구 한 방에 바닥에 엎어져 일어나질 못했다.
“싸가지 없으면 맞아야지.”
그리곤 다른 학생을 바라보고 물었다.
“니들 이 앞에서 뭐하냐?”
하지만 그는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소릴 질렀다.
“이 개새끼야, 알거 없잖아!”
그리곤 손에 단검을 소환하곤 내게 달려들었다.
툭.
“흐흐흐. 그러게 왜 깝치고 지랄….응?”
그는 뭔가 이상했던지 찔렀던 단검을 뺐다.
단검엔 당연히 묻어있어야 할 피가 없었다.
“…너…이 새끼 대체 뭐야?!”
남학생이 당황하며 소리치자 난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아저씨. 그보다 너희 여기 앞에서 뭐하냐니까?”
“알 거 없다고 개새끼야!”
퍽.
난 다시 달려드는 그를 발로 걷어찼다.
그도 역시 발길질 한 번에 바닥에 쓰러진 후 일어나질 않았다.
그리곤 바닥에 쓰러진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포탈을 바라봤다.
이거 혹시 청소년 포탈 범죄 그런 건가?
청소년 포탈 범죄.
지금은 아니지만 소설 속에선 꽤 심각하게 일어났던 사회적 문제다.
청소년 각성자들 중 일부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포탈 안에서 각종 폭력을 저지르는 행위를 말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용병으로 들어갔다던 힐러가 걱정 됐다.
보통 범죄는 던전 공략에 용병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유인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저놈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단 건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었다는 증거. 지금 들어가면 저놈들의 동료들과 만날 수 있겠어.
포탈 범죄는 선두 그룹이 들어간 후 30분간 몇 사람이 입구를 막고 있다가 30분이 되기 직전 포탈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건 포탈이 첫 사람 입장 후 30분간만 같은 공간으로 입장이 가능하단 점을 노린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난 지체 없이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던전 안에는 그들의 동료들로 보이는 학생들 십여 명이 보였다.
근데 안의 상황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바닥에 엎어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지금 서 있는 사람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숏커트의 여자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둘 뿐이었다.
남학생은 검을 들고 있었고, 여자는 수술용 메스를 양손에 쥐고 있었다.
싸움은 남학생이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걸로 봐서 여자가 유리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남학생은 팔다리의 힘줄이 모두 끊겨서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팔목과 손목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은 한껏 개운해 보였다.
“너도 얘들이랑 한 패야?”
“아니. 난 당신 만나러 왔어.”
“날? 난 너 모르는데.”
“해진우가 알려줬어. 솜씨 좋은 힐러라고 하던데.”
내 말에 그녀는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난 많이 비싸. 그리고 많이 바쁘고 말이야! 그래서 거절이야.”
“그래? 까득. 어떻게 안 될까?”
난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집어들고 씹어 먹으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갑자기 내게로 달려와서는 내 입을 억지로 벌리려고 했다.
“뭐하는 짓이야?”
난 그녀를 밀쳤지만 악착같이 달라붙으며 말했다.
“제발 입 속 좀 한 번만 보여줘. 지금 그 단검을 씹어 먹은 거 맞지?”
이 여자 뭐지? 미친 건가?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 보여서 살짝 입을 벌리고 보여줬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손가락을 내 입속에 집어넣더니 부서진 단검 조각 하나를 꺼내 살폈다.
“진짜 단검 맞는데…. 이걸 어떻게 씹는 거지?”
그녀는 내 입에서 나온 단검을 직접 씹어 보기도 하면서 요리조리 살폈다.
그래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자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아까 날 고용하고 싶다고 했지? 좋아. 같이 가줄게.”
“진짜? 근데 왜 갑자기?”
“너 같은 특성을 지닌 각성자는 처음 봐. 같이 다니면서 연구해보고 싶어. 대신 내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게 있다면 들어줘야 돼. 그게 뭐든 말이야. 그게 내 조건이야!”
“좋아. 무리한 것만 아니면 들어줄게. 난 박태준. 잘 부탁해!”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내 손을 잡는 대신 바닥에 있던 다른 아이템을 집어서 내밀며 말했다.
“이것도 먹어봐. 아이템이면 다 먹을 수 있는 거야?”
그녀의 관심은 온통 특이한 내 몸에 있었다.
결국 그녀가 내미는 아이템을 모조리 먹고 나서야 그녀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난 이예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출발은 언제야?”
난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은 다 모았으니까 내일 바로 출발하려고! 시간 괜찮지?”
“그럼. 없어도 만들어야지. 내일 출발 장소랑 시간은 문자로 보내줘. 난 어서 가서 장비들 챙겨야겠다.”
“장비?”
“응. 널 실험할 장비들 말이야. 너무 기대돼서 오늘은 잠을 못 잘 거 같애!”
그리곤 나와 그녀는 던전 밖으로 나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학생들은 그 사이 정신을 차리고 도망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근데 안에 있는 쟤들은 어떻게 할 거야?”
내 물음에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재수 좋으면 살겠지. 정말 재수가 좋다면 말이야.”
그리곤 준비할 게 많다며 급히 집으로 떠났다.
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 * * * *
다음 날 오전 10시에 우린 준비된 차를 타고 서울에서 울산 북구 매곡동에 있는 무룡산으로 이동했다.
처음 만났을 때 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최우혁을 보곤 이예진이 눈을 빛내며 조직 샘플을 채취하겠다는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겨우 뜯어말리고 무사히 울산까지 올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조한희와 이철진이 마중 나와 있었다.
난 그들에게 내가 데려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여기 곰인간은 버퍼이자 탱커인 최우혁, 이쪽은 딜러이자 탱커인 해진우, 마지막으로 힐러 이예진.”
그리곤 그들에게 조한희와 이철진도 소개를 했다.
“이쪽은 길잡이인 조한희. 그리고 여긴 내 사제인 이철진이야. 서로 인사해.”
간단히 서로에 대한 인사가 끝나자 우린 던전 입구로 이동했다.
던전의 입구는 무룡산에 중턱에 있는 작은 동굴에 있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그 호화로움에 깜짝 놀랐다.
동굴은 폭은 넓지 않지만 깊이는 꽤 깊어서 포탈 뒤로 개인용 텐트와 매트리스, 거기다 이동식 화장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씻을 물과 마시는 물, 음식도 완벽이 구비가 되어 있어 여섯 명이서 한 달은 문제없이 버틸 수 있을 양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준비한 조한희한테 고맙다고 말한 뒤 던전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여긴 ‘익시온의 부덤’이라는 최상급 던전이야.”
“익시온이면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그 익시온을 말하는 거야?”
이예진이 던전 이름을 듣자마자 물었다.
“맞아. 그 익시온이야. 인류 최초의 친족 살해자라고 불리는 자지. 결혼 선물을 안 주려고 장인을 죽였거든.”
“나쁜 새끼네!”
최우혁이 욕을 했다.
아무래도 가족을 살해했다는 말에 최민혁이 생각난 모양이다.
“그렇지 개새끼지! 그래서 나중에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여 영원히 고통 받는 형벌을 받게 돼!”
“그래? 장인을 죽여서 그런 거야?”
“아니. 이 새끼가 병신처럼 헤라를 겁탈하려 했거든.”
“헤라? 제우스의 아내인 그 헤라?”
이번엔 해진우가 놀라며 물었다.
“그래. 그 헤라. 완전히 미친 새낀 거지. 근데 제우스가 그 사실을 미리 알아채고 구름의 정령을 헤라로 위장시켜 대신 내보내.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바로 켄타우로스야.”
“켄타우로스면 반인반마를 얘기하는 거지?”
최우혁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얘길 한다는 건 그 이야기와 관련된 인물이 저 던전 안에 몬스터로 있다는 거야?”
이예진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린아이처럼 물었다.
“내가 지금 얘기한 모두가 저 안에 보스로 있어. 최종 보스는 제우스고, 중간 보스로는 헤라와 구름의 정령, 페이리토오스라는 익시온의 아들이야.”
“그럼 지금 신화 속 존재들과 싸우러 간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말을 꺼낸 건 최우혁이지만 이예진을 제외하곤 다들 비슷한 생각 같았다.
“그래서 최상급 던전은 공략이 굉장히 어려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말이야.”
“근데 우리가 거길 간다는 거야? 이 인원으로?”
내가 던전 공략하러 간다고만 하고 자세한 얘길 안 해줬기 때문에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난 웃으며 말했다.
“걱정마. 이 인원으로 충분하니까. 물론 이 인원으로 던전의 마지막에 있는 제우스까지 이기는 건 어려워. 그 밑에 있는 헤라도 이기기 힘들 거야. 하지만 익시온의 아들인 페이리토오스나 구름의 정령은 상대가 가능할 거야!”
“그럼 우린 저 던전을 완벽히 공략하는 건 아니란 거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는 말인 거지?”
“그렇지. 이제 좀 안심이 돼?”
그제야 다들 표정에 여유가 생겼다.
“근데 여길 다 깨지 않을 바에는 그냥 상급 던전을 공략하는 게 낫지 않아?”
해진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왜냐하면 최상급 던전은 리젠이 되거든.”
“리젠? 그 말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이야?”
“그래. 던전의 마지막 보스가 죽지 않는 한 그 안의 몬스터들은 일정 주기를 두고 계속 살아나. 그래서 난 여길 아이템 공장으로 만들 생각이야!”
“헐! 그게 가능해?”
최우혁의 질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가능하지. 우리 여기서 말만 할게 아니라 일단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 계획이 그렇단 거지 언제나 변수는 존재하니까 말이야!”
난 일단 다들 던전 안으로 들어가게 한 후 혼자 남아 동굴 앞에 진법을 설치했다.
츤츤이에게 배운 진법 중 가장 파훼가 힘든 진법을 설치해서 다른 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후 나도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포탈을 통과하자 눈앞이 환해지며 거대한 기둥이 서있는 신전이 보였다.
예전에 그리스를 여행할 때 봤던 신전 기둥과 똑같이 거대하고 웅장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지금 신전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거다.
먼저 들어와 있던 이들도 웅장한 신전의 모습에 감탄한 건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투투투투투투.
정체불명의 소리에 우린 한데 뭉쳐 긴장된 표정으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봤다.
잠시 모습을 드러낸 소리의 정체는 불타는 거대한 수레바퀴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한 사람이 팔다리를 엑스자로 벌린 채 결박되어 있었다.
“저거 익시온 아니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