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최상급 던전은 상급 던전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상급 던전은 보스 몬스터가 S등급이고 최상급 던전은 보스 몬스터가 SS등급이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단순한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 아니다.
최상급 던전은 모든 몬스터들이 기본 A급부터 시작한다.
근데 중요한 건 그 안에 네임드 몬스터가 다수 섞여 있다는 점이다.
중간 보스급 존재도 엄청나게 많고 강하다.
단순히 던전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요새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소설 속에 있을 때 실제로 최상급 던전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동료들 십여 명과 함께 도전했었는데 중간도 가지 못하고 포기했었다.
다들 상당한 실력자였는데도 말이다.
소설 속에 있을 당시 최상급 던전은 전세계에 여섯 곳이 있었는데 단 하나의 길드만이 최상급 던전 한 곳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었다.
당시 세계 1위 길드인 코이노니아.
그 길드도 육개월이나 걸려서야 겨우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다.
최상급 던전은 그만큼 대단한 곳이다.
하지만 그걸 정확히 알기 때문에 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상급 던전은 깨기 어려운만큼 엄청난 수준의 아이템이 나온다.
거기다 최종 보스를 깨지 않는 한 일정 주기를 두고 부하들은 되살아났다.
즉, 끊임없이 아이템을 착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거기 혹시 울산이야?”
[어. 맞아.]
울산의 최상급 던전이면 ‘익시온의 무덤’인가!
“좋아. 그럼 길드연합에서 알아채기 전에 우리가 먼저 손을 쓰자.”
난 즉시 츤츤이를 불렀다.
그리곤 최상급 던전에 대한 이야길 했다.
[그런 곳이라면 저놈 수련시키긴 딱인 곳이겠네.]
“그럼 너도 같이 가는 거지?”
하지만 그 말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어렵겠어. 내가 지금 자릴 비우면 이제 막 자릴 잡는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어. 짧은 시간은 모르지만 니 말대로라면 한 달 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그 정도나 내가 자릴 비우긴 어렵지.]
“그럼 어쩔 수 없지.”
난 아쉽지만 츤츤이는 포기하고 곧바로 조한희와 연락해 만나기로 했다.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나는 곧바로 최상급 던전 공략에 대한 얘길 꺼냈다.
내 얘길 모두 들은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근데 최상급 던전이 태준 씨가 말한 대로의 수준이라면 사람이 꽤 필요하지 않을까? 힐을 해줄 사람도 있어야 하고, 태준 씨 말고 앞에서 막아줄 사람도 더 필요할 거고 말이야.”
“그렇지. 안 그래도 그게 가장 고민이야. 힐러, 탱커, 거기에 버프나 디버프를 걸어 줄 수 있는 술사도 필요하고. 딜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혹시 생각해둔 사람은 있어?”
“술사는 한 명 생각해 둔 사람이 있긴 있어. 탱커도 한 명 생각해 뒀고. 근데 문제는 힐러야. 난 아무 문제 없겠지만 장기간 던전 안에서 버티려면 솜씨 좋은 힐러는 필수거든! 혹시 아는 힐러 없어?”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힐러 없이 가기는 부담이 너무 커. 그렇다고 나 혼자 들이댈 만한 곳도 아니고. 일단 다른 사람들부터 영입하면서 괜찮은 힐러를 찾아보는 수밖에.
“그럼 한희 너는 먼저 사제랑 울산에 내려가서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게 필요한 물품들 좀 준비해줄래? 다른 사람들이 접근 못 하게도 해주고.”
그녀는 내 말에 고갤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태준 씨는?”
“난 여기서 필요한 사람들을 더 영입해서 내려갈게. 오래는 안 걸릴 거야. 나중에 나한테 정확한 위치 문자로 보내주고.”
난 그녀와 헤어진 후 바로 화룡길드로 향했다.
내가 생각한 술사가 바로 얼마 전 화룡길드에서 만난 최우혁이다.
곰인간이면서 모든 능력치를 30퍼센트나 올려주는 최고의 버프능력을 가진 그.
거기다 곰인간이라 방어력도 상당하고 스피드도 엄청나다.
그야말로 최고의 인재다.
하지만 도착한 화룡길드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응? 왜 아무도 없지?”
난 건물 앞에서 기감을 확장했다.
그러자 건물 안에 많은 사람들의 기가 감지됐다.
“사람도 있는데 문은 왜 잠가놓은 거야?”
난 즉시 굳게 닫힌 문을 세게 두드렸다.
쿵. 쿵. 쿵.
반응이 없자 난 더욱 세게 문을 두드렸다.
쾅. 쾅. 쾅.
그제서야 거칠게 문이 열리며 길드원 중 한 명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나왔다.
“누구야?!”
그러다 날 보고는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황급히 문 안으로 몸을 숨겼다.
난 그대로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쾅.
“뭐 숨길 게 있다고 숨고 그래? 그나저나 너희 길드장 안에 있어?”
그는 날 보고 겁에 질린 듯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기…길드장님은 지금 아…안 계십니다.”
“없다고? 그럼 어딨는데?”
내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묻자 그는 더욱 겁에 질려 울먹이며 답했다.
“흑….본가에 가셨어요…. 흑… 제발… 살려주세요….”
“본가? 본가가 어딘데?”
“여…영등포요.”
“영등포가 다 본가야? 제대로 말 안해?”
잡아먹을 듯 눈을 부라리며 묻자 그의 입에서 상세주소가 튀어나왔다.
“서…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4가 442번지입니다.”
난 그제야 표정을 풀면서 물었다.
“길드장 형도 같이 간 거야?”
“네. 며칠 전 두 분 모두 들어가셨습니다.”
“만약 거짓말이면 돌아와서 찢어 죽여버리겠어!”
난 다시 한 번 길드원을 협박한 다음 알려준 주소지로 향했다.
근데 왜 갑자기 그 둘을 부른 거지? 후계자 문제 때문인가?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완 상관없는 일.
난 그저 최우혁만 스카웃하면 된다.
길드원이 말한 주소로 가자 예전 쇼핑몰을 개조한 거대한 집이 보였다.
쇼핑몰 전체를 집으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규모가 엄청났다.
곰인간들이 살아서 그런지 대문 크기도 엄청나구만!
내 눈앞에는 유럽의 큰 성당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거대한 크기의 문이 있었다.
그때 문을 지키던 경비원들이 다가오는 날 제지하며 물었다.
“여긴 사유지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아! 누굴 좀 만나러 왔는데요. 최우혁이라고.”
“최우혁이요?”
최우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경비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난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안에 있긴 있나보네. 당황하는 걸 보니.
하지만 경비원은 그런 사람은 없다며 잡아뗐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지 않으시면 들어가실 수 없구요.”
“그런가요? 없다니 어쩔 수 없죠. 그럼 수고하세요.”
난 그대로 돌아나왔다.
괜히 입구에서 소란피워봤자 좋을 거 없지. 난 최우혁만 찾으면 되니까!
최우혁의 본가를 전체적으로 한바퀴 돌다보니 몇 군데 허술한 곳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워낙 크기가 커서 전체를 완벽하게 관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내 예상이 맞았다.
저기로 넘어가면 되겠어. 안에도 각성자들이 많은 테니 들키지 않으려면 환영보를 극성으로 시전하고 최대한 조심해야 돼!
난 스스로 주의하자고 다짐을 하곤 환영보를 사용해 움직였다.
훅.
내 몸이 순간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슉. 슉.
어찌나 빠른지 귓가에 바람 소리가 세차게 들려왔다.
하지만 난 온 신경을 최우혁을 찾는데만 집중했다.
아직 기감을 확장한 채 돌아다니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보니 중간중간 몰래 숨어 기를 탐색하고 움직이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최우혁의 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최우혁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때 어디선가 느껴본 기가 감지됐다.
내가 이 안에서 느껴봤던 기라면 최우혁과 최민혁 둘 중 하나일 확률이 크다.
훅.
그 순간 난 이미 상대의 얼굴이 잘 보이는 곳까지 다가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는 최민혁이었다.
모습을 드러내고 최우혁이 어딨는지 물어볼까도 했지만 바로 마음을 접었다.
나에 대해 나쁜 기억만 있을 텐데 순순히 대답하진 않을 거란 판단에서다.
저놈을 몰래 따라다니다 보면 최우혁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까?
일단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최대한 기척을 숨겨서인지 최민혁은 내 존재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최민혁을 따라다니는 게 슬슬 지겨워질때쯤 누군가 최민혁을 찾아왔다.
“오셨어요, 아버지!”
나타난 사람은 최민혁의 아버지인 최강철이었다.
키는 최민혁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190이 넘었고, 엄청난 근육을 가지고 있어 하늘하늘한 두루마기를 입었음에도 옷 사이로 몸의 윤곽이 보일 정도였다.
“그래. 가자!”
둘은 별다른 얘기 없이 어딘가로 향했다.
직감적으로 지금 가는 곳에 최우혁이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집 외곽에 있는 작은 창고처럼 생긴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은 두 사람을 보자 깍듯이 인사를 하곤 옆으로 비켜섰다.
흠. 아무래도 저 안인 것 같은데 어떻게 들어가지?
그때 안으로 들어가려던 최강철이 걸음을 멈추고는 내가 숨어 있는 곳을 쳐다보며 호통을 쳤다.
“거기 누구냐? 썩 나와라!”
내 기가 살짝 새어나왔는데 그걸 느낀 모양이다.
난 도망갈까 하다 마음을 돌리고 최강철 앞으로 내려갔다.
옆에서 나를 본 최민혁은 몹시 당황한 듯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넌 누군데 여기 몰래 숨어 있는 것이냐?”
“전 우혁이 친굽니다. 부탁할 것이 있어왔는데 다들 있으면서 없다고 하길래 몰래 들어와서 친구를 찾는 중이었습니다.”
친구라는 말에 최강철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친구라고? 우리 우혁이한테 이런 친구가 있었나? 어쨌든 우혁이 친구라니 그냥 넘어가겠지만 무단으로 침입한 건 아주 큰 잘못이야!”
“정말 죄송합니다. 우혁이가 꼭 필요한 일이라…. 앞으론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바로 잘못을 인정하자 최강철도 무단침입에 대해선 더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근데 아무래도 오늘은 우혁일 만나기 힘들 것 같구나.”
“네? 우혁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내 질문에 최강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으며 어두워졌다.
“우혁이가 지금 몸이 좀 아파서 그러니 나중에 오려무나!”
“아파요? 어디가…?”
하지만 그는 대답을 회피했다.
“혹시 우혁이가 정신이 왔다갔다하나요?”
“니가 그걸 어떻게…?”
최강철은 무척 당황한 듯 되물었다.
“사실 얼마 전에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우혁이가 곰인간이란 것도 그때 알게 됐죠.”
“…그것까지 안다니 사실대로 말하마. 네 말대로 우혁인 지금 정신분열을 겪고 있단다. 그래서 감금상태로 치료 중인데 이상하게 증세가 계속 나빠지는구나.”
그 말에 난 최민혁을 슬쩍 쳐다봤다.
그는 움찔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역시 뭔가 있구나. 보아하니 아빠는 모르는 것 같고 말이야. 그렇다면….
머릿속에 최우혁을 빼내면서 최민혁도 엿먹일 수 있는 한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아버님. 제가 우혁일 정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최강철과 최민혁은 내 말에 깜짝 놀랐다.
물론 두 사람이 놀라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지만 말이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