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천부경.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초열의 불꽃을 먹었을 때 중얼거린 것도 저 천부경의 구결인 듯 했다.
시간이 나면 천부경이 뭔지 알아봐야겠어.
일단 책을 다 살펴보고 나자 바로 카린을 불렀다.
“야. 카린!”
<왜 불러?>
“이제 알려줘야지. 초열의 불꽃 흡수하는 법 말이야.”
<니가 할 건 없어. 내가 천천히 흡수시키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넌 빨리 내가 들어갈 불꽃이나 찾아!>
“그게 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야? 얼마나 걸리는데?”
<대충 1년 정도?!>
“1년? 더 빨린 안 돼?”
<니가 내 보금자리를 빨리 찾으면 더 빨리 될 수도 있고….>
“뭐?”
이게 지금 나한테 딜을 하고 있네…!
“너 이대로 뒤지고 싶어?”
내가 으름장을 놓자 그녀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더 빨리 해줄 테니까 너도 내 보금자리부터 찾아줘! 이 상태로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단 말이야!>
“알겠어. 알겠으니까 최대한 빨리하면 얼마나 걸리겠어?”
<두 달 정도….>
“좋아. 그럼 나도 두 달 안에는 니가 들어갈 곳을 마련할 테니까 너도 최선을 다해줘. 오케이?”
오케이란 말에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카린이 말했다.
<…오케이? 그건 또 뭐냐?>
“알겠냐는 뜻이다. 이 멍청아!”
<멍청이? 그럼 넌 DESAX TOA가 무슨 뜻인지 알아?>
“뭔데?”
<‘꺼져 병신아’란 뜻이다.>
“뭐?”
한참을 그렇게 말싸움을 하던 우리는 결국 서로의 일을 빨리 처리하기로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 이제 해야 될 일을 정리해볼까!”
들어오기 전에 준비해 둔 수첩에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적어봤다.
수련, 불도끼파 조지기, 대한 그룹 흡수, 카린이 지낼 곳 찾아주기, 말살자에 대한 조사, 던전들 공략하기, 몰래 세력 키우기, 히든 보스의 조직 찾아내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할 일이 정말 많구나. 일단 급하게 처리해야 될 일부터 하자. 일단 카린이 지낼 곳을 알아보면서 불도끼파를 조지면 되겠네. 대한 그룹에 대한 일은 한희와 좀 더 얘길 나눈 다음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겠다. 일단은 이것부터!
해야 될 일을 정리하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럼 이제 천의심법이나 수련하면서 좀 쉬어야겠다.
난 그대로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는 명상에 들어갔다.
명상 중에 천의권을 하나하나씩 짚어봤다.
하지만 아직 막히는 부분이 많았다.
3식까지는 이젠 제법 매끄러워졌지만 나머진 아니었다.
어서 천의권부터 사용할 수 있게 몸을 만들어야겠어!
그런 다짐을 하며 한동안 명상을 이어갔다.
* * * * *
지옥에서 카린이 관리하던 화단 앞에 누군가 서 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금발의 남자.
그의 이름은 플뤼톤.
지옥 화염의 지배자이자 콜로세움을 만든 대마신이었다.
“어…어떤 새끼야!!!”
그는 분노에 찬 눈으로 반밖에 남지 않은 화염초들이 있는 곳 중앙을 바라봤다.
그곳은 초열의 꽃송이가 있던 자리다.
“카린. 니가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으아아아아!!!”
그의 분노는 거대한 불꽃이 되어 순식간에 주변 모두를 태워버렸다.
“으아아! 카린!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찢어죽여주마!”
* * * * *
이틀 후 오전 11시 명동의 어느 커피숍.
간만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난 조한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봄이 다가와서인지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가벼운 자켓을 걸친 모습이 잘 어울렸다.
“한희야. 여기!”
그녀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내 앞자리로 와 앉았다.
“태준 씨. 잘 쉬었어?”
“그럼. 근데 오늘 옷도 잘 어울리네. 센스 있는데.”
“그래? 좋게 봐주니 기분 좋네!”
그녀는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환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은 좀 해봤어?”
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가 바로 본론부터 얘기하자 약간 무거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했을 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돈이야. 지금 태준 씨를 보면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절대자들을 상대할 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렇지. 요즘 세상엔 뭐니뭐니해도 머니지.”
내 되도 않는 드립에 그녀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대체 어디서 배운 드립이야? 어쨌든 지금 가장 중요한 돈을 어떻게 모을지가 고민이야. 태준 씨 말대로 화폐가 통합되면 금값이 오를 테니 그걸로 최소 몇 배는 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는 반짝이는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걸론 턱없이 부족해.”
“그럼?”
“먼저 던전 공략 사이트를 만들 거야.”
“던전 공략 사이트?”
이건 무슨 소리지?
“응. 던전들의 위치와 공략 방법 등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 거야.”
“그게 돈이 될까?”
내 질문에 그녀는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 전국에 있는 각성자들만 수만이야. 지난번 선택의 밤이 또 일어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거고. 그들의 반만 회원이 된다 해도 상당한 수익이 될 거야.”
“어떤 식으로 수익을 만들 건데?”
“월정액제로 할 생각이야. 매월 정해진 금액을 결제하면 정회원이 유지되는 거지. 그러면 모든 던전의 위치를 열람할 수 있어. 여기서 중요한 건 던전의 공략법이야.”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 다시 이어서 말했다.
“던전의 공략법은 따로 결제를 해야지만 열람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야.”
“좋은 생각이긴 한데 가능할까? 내가 아무리 미래의 일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해도 던전의 수는 엄청날 텐데 말이야.”
“그 부분은 염려 안해도 돼. 우리에겐 럭키가 있잖아!”
“럭키?”
럭키가 뭐였지?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그 닥스훈트?”
“그래. 츤츤이가 정보 조직을 만든다고 했으니 사방에 널려있는 개들을 이용하면 전국에 있는 던전 위치는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난 그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던전 공략은? 아무리 열심히 공략해도 한계가 있을 텐데?”
“그건 다른 팀이 공략한 정보를 살 거야.”
“공략 정보를 산다고?”
“그래. 그 다음 더 비싼 값에 그 정보를 되파는 거지.”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가능할까? 그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정보를 팔 수도 있잖아.”
“물론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은 하나의 공략만을 팔지만 우린 수많은 공략들을 파는 거지. 그리고 한 던전에 공략이 여러 개일 수도 있으니까 사람들은 우리 공략을 더 신뢰하게 될 거야.”
“근데 월정액과 던전 공략 정보 파는 걸로는 부족할텐데?”
“물론 그걸론 부족하지. 하지만 그걸 전 세계로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거기다 부족한 각성자들을 매칭시켜주기도 하고 말이야. 그 모든 것들이 갖춰지게 되면 수익이 어마어마해질 거야. 광고주들도 많이 붙을 테고.”
거기까지 들은 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연히 그걸로 끝이 아니겠지?”
“호호호호. 당연히 아니지. 그건 시작일 뿐이야. 그걸 토대로 초월슈트 사업에 투자할 거야.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한 그룹을 우리 걸로 만드는 거지.”
그제야 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내가 알기로 그 일은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야. 하지만 조만간 누군가 시작할 가능성이 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러니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돼.”
“근데 문제가 있어.”
“문제?”
“응. 이 모든 걸 시스템으로 만들 실력 좋은 프로그래머가 없어. 아무나 끌어들이기엔 보안이 걸려서 말이야.”
그 말에 난 미소 지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 최적인 사람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한희 넌 프로그래머는 신경 쓰지 말고 럭키를 찾아가봐. 일단 현재 있는 던전의 정보들부터 모으는 게 순서일 테니까. 아마 지금 양재동에 츤츤이랑 같이 있을 거야. 위치는 내가 알려줄게.”
“그럼 태준 씨는?”
“난 프로그래머를 섭외하러 가야지!”
“지금 당장?”
“쇳불도 단김에 빼랬다고 시간 끌어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그럼 오후에 다시 연락할게.”
난 간단히 럭키가 있는 조한희에게 알려준 다음 커피숍을 나왔다.
“그 사람이 용인 수지에 산다고 했으니까 일단 집부터 가보자!”
난 곧바로 용인 수지를 향해 뛰었다.
적절히 환영보를 섞으며 달리자 택시보다 빨리 수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에 산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디지?”
내가 지금 만나러 온 사람은 천재 프로그래머다.
이름은 김찬성.
소설 속에 있을 당시 그가 구축한 시스템은 던전 정보, 공략, 실시간 게이트 위치까지 알려줬다.
거기다 각성자간 매칭 시스템도 개발해서 누구나 쉽게 용병이나 동료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한희도 천재란 말이야. 똑같은 걸 생각해낸 걸 보면.
하지만 김찬성은 이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리티는 후발주자들의 유료 프로그램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래서 모든 각성자는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그는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그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별로 없다.
당시에 현재 사는 곳은 철저한 보안으로 알 수 없었지만 예전에 살던 곳은 공개가 됐었다.
그곳이 바로 이곳. 용인 수지 풍덕천동의 낡은 빌라다.
“정확한 호수는 모르니까 일단 우편함이라도 뒤져봐야 겠다.”
우편함을 뒤진 지 얼마 안 돼서 김찬성이 어디에 사는지 알아냈다.
내 손에 들린 단전 예고 안내장에는 B002 김찬성이란 이름이 쓰여 있었다.
“B002호면 지한가?”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자 센서등이 깜박이며 켜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안하게 깜빡였다.
“여기구나.”
난 B002라고 쓰인 문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삐이이이.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다.
“응? 아무도 없나?”
난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삐이이이이.
잠시 기다렸지만 역시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난 즉시 기감을 확장해 방 안을 살펴봤다.
“안에 누군가 있는데….”
근데 한 명이 아니고 세 명이다.
거기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두 사람은 서 있고 한 사람은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위협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난 그 모습에 바로 문을 부쉈다.
쾅.
내 발길질 한 번에 문은 그대로 부서지며 쓰러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대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두 남자에게 위협받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난입한 날 보며 잔뜩 인상을 썼다.
“넌 뭐야?”
하지만 난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웃으며 남루한 남자를 바라봤다.
“혹시 김찬성 씨?”
“네. 제가 김찬성입니다만. 누구시죠?”
그는 이런 상황임에도 놀랍도록 침착한 태도를 유지한 채 여유있게 물었다.
그 모습이 내게 더욱 확신을 줬다.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이 상황에 저런 모습이라니.
난 그를 향해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곤란한 상황으로 보이는데 제가 해결해 드릴까요?”
“뭐? 이 새끼가 우리가 누군줄 알고!”
“그럼 부탁드리죠. 그쪽도 내게 무언갈 원해서 왔겠지만 두 명보단 한 명이 상대하기 수월할 테니까요.”
트레이닝복의 남자들은 ‘뭐 이딴 새끼들이 다 있지?’란 표정으로 김찬성과 날 번갈아 쳐다봤다.
난 그들을 향해 한 번 씨익 웃어준 뒤 말했다.
“야! 다들 들었지? 이제 좀 꺼져줘야겠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