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갑자기 툭하고 던진 내 말에 이철진과 조한희 둘 다 벙찐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혹시 어디 아파? 지옥에서 너무 맞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래, 사제. 어서 들어가서 푹 좀 쉬어. 스승님 돌아오시면 잘 말해놓을게.”
“그런거아니니까 진지하게 들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믿기 힘들겠지만 전부 진실이니까. 한희 너라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가 진실이란 걸 바로 알거야.”
그리곤 바로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모든 걸 얘기하진 않았다.
소설 속에 들어가서 겪은 일들은 모두 빼고 마지막에 작가와 나눈 대화부터 이야길 해줬다.
히든 보스가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작가가 날 보고 그걸 막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내가 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지금 얘기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신으로 보이는 소설의 작가가 태준 씨한테 히든 보스를 막으라며 방어력 무한 스킬을 줬고, 그 히든 보스는 지금 엄청난 힘을 가진 상태로 자신의 세력을 키워 세상을 멸망시키려 한다는 거네.”
“대충 그런 거지.”
“갑자기 각성자며 몬스터가 나온 것도 머리 아픈데 이젠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무리가 있다는 걸 믿어야 되는 거야?”
이철진은 약간 이해력이 부족하다 보니 내가 한 말을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저 세상이 위험하고 그걸 막아야 된다는 정도로 이해했다.
하지만 조한희는 머리가 좋은 만큼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근데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작가는 왜 태준 씨를 택한 거지? 굳이 태준 씨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나도 그걸 물어봤는데 그냥 반 장난으로 선택한 거래.”
“헐. 말도 안 돼.”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조금 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이것들을 우리한테 얘기해주는 이유가 뭐야? 지금까진 비밀로 하다가 굳이 지금 털어놓는 이유가 있겠지?”
역시 예리하다니까.
“맞아. 처음엔 혼자 열심히 힘을 키운 다음 히든 보스의 세력을 야금야금 무너뜨리고 마지막에 히든 보스를 칠 생각이었어. 하지만.”
“하지만?”
“이번에 지옥의 콜로세움을 다녀온 뒤로 그 생각이 바뀌었어.”
“어떻게?”
조한희는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이럴 때 보면 꼭 눈이 보이는 것 같단 말이야.
“이이제이(以夷制夷)”
“이이제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물리친다고?”
“그래. 내가 대격변 이후 만난 절대자만 해도 얼마 전 만난 드래곤 키라, 그리고 지옥의 콜로세움을 만든 대마신 플뤼톤, 거기다 대격변 때 처리한 데스나이트가 말한 주군까지 벌써 세 명이야. 앞으로 이런 절대자들이 얼마나 더 나올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그래서?”
“그래서 난 그들 모두를 우리 세상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야.”
“뭐?”
그녀는 내 계획을 듣고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간 그들에 의해 인류가 먼저 멸망할 수도 있어.”
“그런 위험부담도 있지. 하지만 적절히 균형만 맞춘다면 그들이 알아서 히든 보스를 견제하고 세력을 줄여 줄 거야.”
“좋아. 그건 이해했어. 그렇담 이 작전의 관건은 절대자들의 세력들을 균형 맞추는 일이네.”
“정확해!”
난 그녀의 통찰력에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세력을 좀 키워볼까해.”
“절대자들이 우리 세상으로 넘어왔을 때, 그들의 세력을 균형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맞아. 하지만 굳이 그들 정도의 세력을 키울 필요는 없어. 우린 소수 정예로 최강의 세력을 만드는 거야. 그래서 여러 절대자들이 우리 세상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세력이 비슷해지도록 균형을 맞출 생각이야.”
내 말에 조한희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난 그사이 옆에 쌓여있는 아이템을 씹어 먹었다.
으드득. 으득.
조용한 공터에 내가 아이템 씹어 먹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사이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조한희가 말을 꺼냈다.
“알겠어. 태준 씨가 그런 얘길 우리한테 했다는 건 그만큼 우릴 믿으니까 하는 소리겠지. 그리고 태준 씨 말대로 소수 정예의 강력한 세력을 키우는 건 아주 좋은 생각 같아. 하지만 그런 세력을 키우기 위해선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거야. 게다가 우린 노출이 되면 안 돼. 노출이 되는 순간 다른 세력들로부터 견제를 받게 될 테니까!”
“맞아.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난 최대한 비밀스럽게 세력을 키울 생각이야. 하지만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우리 정보가 새어나갈 수도 있어. 그래서 한희 니가 대한 그룹을 꼭 장악했으면 좋겠어. 대한 그룹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룹이니까. 그럼 새어나가는 정보들도 어느 정도는 차단이 되겠지.”
그 말에 조한희는 빙그레 웃었다.
“결국 그래서 나한테 모두 털어놓은 거구나? 내 도움을 얻으려고. 맞지?”
“역시 너는 못 속이겠네. 맞아. 하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나한테 넌 무엇보다 필요한 존재라서야.”
“호호호. 장난이야. 태준 씨 말이 진실이란 거 다 알아. 그냥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 장난 한 번 쳐 본 거야. 그럼 이제 뭐부터 할 생각이야?”
그녀의 장난 한 번에 분위기가 환하게 바뀌었다.
난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끼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좀 쉬어야겠어. 그 동안 각자 방법을 생각해 보자.”
“그래. 태준 씨, 좀 쉬는 게 좋겠어.”
“사형. 나도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생각해 볼게.”
난 그들의 배려에 미소 짓고는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 같으면 조한희를 데려다주거나 했을 텐데 지옥에 다녀온 뒤로는 사적인 감정보다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게 됐다.
지옥의 콜로세움에서 수없이 죽고 죽이는 걸 보고 나도 많은 이들을 죽이면서 내 안의 뭔가가 고장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이게 더 편하다고 느껴졌다.
던전 안으로 들어온 난 방해받지 않기 위해 보스방으로 이동했다.
텅빈 보스 방에 혼자 들어오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방 중앙으로 가서 바닥에 앉은 다음 품 안에 있던 천의문의 비급을 꺼냈다.
개고생을 하며 얻어낸 결과물.
잔뜩 기대를 하며 책을 펼쳤다.
책의 시작은 이러했다.
<천의문은 나 신기도인에 의해 만들어 낸 일인 계승 문파다. 만약 천의심법을 사용할 줄 모르는 자가 이 책을 연다면 책은 가루가 될 것이다.>
“뭐?”
그와 동시에 책에서 미세한 기운이 손을 통해 순식간에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맘 졸이며 기다렸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통과 된 건가?”
난 조심스럽게 다음 장을 넘겼다.
<이 페이지를 보고 있다는 건 천의문의 후예라는 뜻. 이곳에 천의문이 만들어진 유래와 지옥에서 깨달은 바를 적어놓았다. 이를 통해 그대는 부족한 천의문의 무공을 보완해서 완전한 천의문을 이루도록 하라.>
“그럼 내가 배운 천의권은 미완성이었던 거야?”
책장을 넘기자 천의문의 역사에 대해 간략이 쓰여 있었다.
<나 신기노인은 천부경(天符經)에서 깨달음을 얻어 천의문이란 문파를 만들었다.
본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난 가히 인간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의 경지를 이룬 후 대륙으로 넘어가 무림마저 평정을 했다.
더 이상 오를 경지가 없다고 느낀 난 천의문이란 문파를 세우고 제자들을 받았다.
하지만 내 눈에 차는 인재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나를 찾아왔다.
나보다 더 뛰어난 천재.
난 그 아이를 가르치며 희열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그래서 스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큰 실수를 저질렀다.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빼고 가르쳤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천하에 대적할 상대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죄책감은 없었다.
그가 바로 2대 계승자인 해무율이다.
그가 정식으로 2대 계승자가 된 후 말년에 내 잘못을 깨닫고 그를 찾아가는 길에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스스로를 지옥의 대마신 플뤼톤이라고 했다.
그리고 콜로세움을 만드는데 뛰어난 선수가 필요하다며 내게 선수 제안을 했다.
당연히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플뤼톤은 비무를 한 번 하자고 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일합 만에 내 패배로 끝났다.
난 내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십 번을 더 그와 겨뤘고, 그때서야 난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를 따라 콜로세움으로 넘어갔다.
그곳엔 무림에선 볼 수 없던 수많은 강자들이 있었다.
난 그들을 차근차근 밟고 올라서 1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지금 이 책은 그 직후 쓰는 것이다.
내가 지옥에서 끊임없이 싸우며 깨달은 것을 통해 부족한 천의문의 무공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그리곤 천의문 무공에 대해 적혀 있었다.
1) 천의 심법
신기 노인은 지옥에서 쉼 없는 전투를 통해 천의 심법을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 심법을 완벽히 익히면 아무리 전투를 해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내공이 끝없이 솟아난다고 쓰여 있었다.
2) 환영보
환영보는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다만 환영보를 극성으로 익히게 되면 공간을 접어 이동할 수 있어 신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만 쓰여 있었다.
3) 천의권
천의권은 내가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까지 나는 천의권이 권법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건 츤츤이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천의권은 권법이 아니었다.
3식 파천의 경우는 창을 이용한 기술이고, 4식 풍참은 암기술이었다.
1식 일권(一拳)-권
2식 풍천각(風天脚)-각
3식 파천(破天)-창
4식 풍참(風斬)-암기
5식 단월(斷月)-도
6식 압천(壓天)-장
7식 검무(劍舞)-검
8식 무형(無形)
1식부터 8식은 다양한 무기들을 활용한 필살의 기술들이었다.
그 밑에 자세한 구결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다.
특히 7식과 8식은 아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제대로 된 천의권을 이제라도 알아서 천만다행이야. 앞으로 절대자들과 상대하려면 필사적으로 익혀야겠어.
이 내용을 츤츤이에게 알릴까 생각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야. 그리고 츤츤이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단 말이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리곤 책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그곳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일적십거무궤화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
천이삼지이삼인이삼대삼합육생칠팔구(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
운삼사성환오칠일묘연만왕만내용변부동본(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일종무종일(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어디 보자. 하나, 둘, 셋…. 모두 81자네. 그럼 이게 천부경인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