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방어력 무한-37화 (37/196)

37화

자신을 랭킹 7위라 소개한 그는 온몸의 근육을 꿈틀꿈틀 움직이며 날 향해 물었다.

“넌 랭킹 몇 위지?”

“난 17윈데.”

“그럼 잘 됐네. 조건도 충족됐으니 나랑 싸우자.”

그 소리에 주변에서 싸우던 이들이 일제히 전투를 멈추고 우릴 바라봤다.

여기서 싸우는 거야 일상이니 대단한 일도 아닐텐데 주변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오로치란 남자가 싸우자고 한 이후부터 다른 이들이 슬금슬금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자 오로치가 말했다.

“우리의 대결을 위해 공간을 만들어 주나보군. 크핫핫핫.”

“근데 꼭 싸워야 되는 거야?”

“크핫핫핫. 싸워야 되냐고? 당연한 걸 묻는군.”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공처럼 튕겨지며 날 향해 날아왔다.

급히 환영보를 사용해 피했지만 그는 허공에서 직각으로 방향을 틀고는 다시 날 향해 날아왔다.

“헙!”

난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그와의 충돌에 대비했다.

쿵.

충격이 어찌나 심했던지 그와 부딪힌 난 한참을 바닥을 뒹굴다 일어났다.

랭킹 7위라더니 위력이 장난 아니구나. 이럴 땐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지!

그 사이에도 오로치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날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난 당황하지 않고 기를 모아 천의 삼권인 파천을 시전했다.

잠시 후 드릴처럼 회전하는 강기와 오로치의 몸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쿠구구구구.

내가 시전한 파천과 오로치의 몸이 허공에서 한참을 격돌했다. 급기야 난 내공이 부족해서 파천의 시전을 멈췄고, 곧바로 오로치의 몸이 내 몸에 적중했다.

콰쾅.

역시나 한참을 날아간 난 바로 일어나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오로치는 공격하지 않고 멈춰서 재밌다는 듯 날 보며 웃고 있었다.

“크핫핫핫. 1구역도 아닌 2구역에서 이렇게 재밌는 놈을 만날 줄이야. 다른 놈들보다 먼저 널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야. 크핫핫핫!”

그리곤 갑자기 온 몸에 불끈하고 힘을 줬다.

우두둑. 우둑. 뚜두둑.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더욱 벌크업됐다.

“나도 이제 조금 힘을 쓸 테니까 너도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크핫핫핫.”

그리곤 미친 듯이 오로치의 공격이 몰아쳤다.

자신의 공격에 타격을 받지 않는 내가 재밌는지 지치지도 않고 계속 공격했다.

나도 할 수 있는 공격은 다 해봤지만 통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유일하게 내가 그보다 빠른 건 환영보를 이용한 순간적인 스피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어느 순간 오로치에게 따라잡혔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이 고작 7위라고? 그럼 반신에 가깝다는 1, 2, 3위는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내가 오로치의 괴물 같은 강함에 놀라고 있을 때 오로치 역시 내 방어력에 놀라고 있었다.

“크핫핫핫. 어떤 공격도 소용없는 몸뚱이라니. 그야말로 최고 아닌가. 크핫핫핫!”

“알았으면 이제 포기하지 그래?”

“포기? 크핫핫핫. 이렇게 재밌는 걸 왜 포기하지? 자! 계속 놀아보자꾸나!”

그리곤 또 미친 듯이 공격을 해댔다.

계속 피하기만 하던 나도 결단을 내렸다.

이대론 끝이 안나겠어. 이길 순 없겠지만 최소한 내 힘이 어디까지 통하는지나 한 번 보자.

난 최대한 오로치로부터 떨어진 다음 남아 있는 내공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오로치도 내가 뭔가를 준비하는 걸 느꼈는지 큰소리로 웃으며 달려들었다.

“크핫핫핫. 좋아좋아. 신나게 놀아보자!”

난 그가 달려오는 걸 보고 조용히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곤 천천히 손을 내리 그으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단월(斷月).”

순간이지만 내 손을 따라 눈앞의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그건 오로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공이 딸려 끝까지 자르진 못했다.

눈을 뜨자 어깨부터 배까지 몸이 반쯤 갈라져 피를 흘리는 오로치가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매우 기뻐보였다.

“크핫핫핫! 이거다.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기쁘구나 기뻐!”

난 완전히 탈진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 미친놈아. 니 몰골을 보고나 기뻐해!”

“내 몰골이 어때서? 아! 이거 말하는 거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갈라진 몸을 바라봤다.

“이런 건 몸에 힘 한 번만 주면 나아. 봐봐. 흡!”

그리고 짧게 숨을 들이마시며 몸에 힘을 주자 다시 한 번 근육들이 팽창하며 갈라진 몸을 이어 붙였다.

그 모습을 난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완전 괴물이 따로 없네. 저게 몸에 힘 준다고 해결될 상처야?

사실 단월은 완벽히 펼쳐지지 않았다.

내가 단월을 완벽히 사용했다면 오로치의 몸이 완전히 잘렸을 것이다.

이번에 사용해 보고 아직 내가 단월을 사용하긴 한참 부족하단 걸 깨달았다.

몰라. 이제 될 대로 되라지. 이제 손 끝 하나 까닥할 힘도 없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랭킹 17위 박태준이 랭킹 29위 라이코스를 죽이고 포인트 4300점을 획득했다.]

? 이건 또 뭐지? 갑자기 저 놈은 왜 죽은 거야?

사실 랭킹 29위 라이코스는 오로치 한참 뒤에서 우리 싸움을 구경하다 재수 없게 내가 사용한 단월에 몸이 반쯤 잘렸다.

하지만 오로치처럼 몸을 붙일 수가 없어서 결국 죽은 것이다.

나야 땡큐지. 그러고 보니 이제 얼추 포인트는 다 모은 것 같은데. 포인트 상점이 나올 때까지만 뻐기면 되겠구나.

그때 오로치가 다가오더니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벌써 지친 거야? 쯧쯧. 그렇게 체력이 약해서야. 일단 체력부터 회복하고 다시 붙자.”

“야! 다들 너처럼 근육 괴물이 아니거든!”

내가 발끈해서 오로치에게 한 마디 하자 누군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모두 저런 근육 괴물은 아니라구. 근데 저 놈은 자기가 스탠다드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소리가 들린 쪽은 내 뒤편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나뭇가지처럼 말라비틀어진 대머리 남자가 서서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몸만 나뭇가지 같은 게 아니라 얼굴로 나무껍질처럼 생겨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를 본 오로치는 짜증 난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긴 왜 왔어?”

“그야 재밌어 보이길래 와봤지. 근데 너만 이런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있다니. 좀 심한 거 아니야?”

“심하긴. 먼저 찜한 사람이 임자지.”

“그러지 말고 내가 저 놈 회복시켜 줄 테니까 나한테도 좀 넘겨봐. 그럼 시간도 절약되고 좋잖아.”

저 새끼들이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지?

그때 또 다른 자가 그들 사이에 나타나서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번에 나타난 자는 붉은 로브를 걸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붉은 머리칼을 지닌 그녀의 귀는 길고 뾰족했다.

설마 엘프?

하지만 엘프는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왜 난 쏙 빼놓은 거야?”

그녀의 말에 나뭇가지처럼 마른 남자가 버럭 화를 냈다.

“나도 지금 왔거든! 오로치 저 놈이 혼자 독차지한 거야!”

그러자 그녀는 오로치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약아 빠졌구나? 그동안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만데.”

이번엔 오로치가 그녀의 말에 화를 냈다.

“함께 지낸 세월? 어디서 개소릴 하고 있어? 내가 지난번에 네년 땜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당장 찢어 죽여도 모자랄 판이야.” 이번엔 여자가 오로치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고생? 내가 네 손에 찢겨져 죽은 게 얼만데 그딴 소릴 해대는 거지?”

갑자기 난입한 이들과 오로치가 싸우는 소릴 듣고 있자니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야 이 새끼들아! 지금 나 가지고 뭐하는 거야?”

하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지들끼리 싸우기 바빴다.

아. 몰라몰라. 이제 다 귀찮아. 이 기회에 좀 쉬자.

난 다시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잠깐 잠들었나보다.

눈을 뜨자 눈앞에 네 쌍의 눈이 날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 드디어 깼다.”

“정말 신기한 놈이네. 내가 여기 9백 년을 있으면서 이런 상황에 진짜로 잠을 자는 놈은 또 처음인 걸!”

“그러니까 내가 재밌는 놈이라고 했잖아!”

이거 꿈인가?

난 잠시 상황 파악이 안 돼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다가 정신이 돌아왔다.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환영보를 사용해 그들로부터 떨어졌다.

어? 근데 왜 이리 컨디션이 좋지? 잠을 대체 얼마나 잔 거야?

잠을 얼마나 잔 건진 모르지만 잠을 많이 잔다고 내공이 회복되진 않는다.

근데 지금은 내공까지 완벽히 회복되어 있었다.

그때 나뭇가지처럼 깡마른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때? 컨디션 죽이지?”

“니가 날 회복시킨 거야?”

“흘흘흘. 굉장하지? 어쨌든 이제 일어났으니 시작해볼까?”

“뭘?”

난 그가 하는 말의 뜻을 몰라 되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날 향해 앙상한 팔을 들고는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

그러자 내 머리에서 파박하고 스파크가 튀더니 펑하고 터졌다.

“크윽! 이게 뭔 짓이야?”

“이번엔 내 차례거든. 난 랭킹 8위인 니아다. 제발 좀 길게 버텨줘!”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난 지금 일어난 상황을 바로 이해했다.

이 새끼들이 날 두고 번갈아가며 대결을 하려는 거구나. 보아하니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순서까지 정했나보네.

그 뒤로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공격들이 날 향해 쏟아졌다.

대부분이 물리 공격이라 큰 타격은 없었지만 종종 원소계 공격도 들어왔다.

다행히 대부분 화염을 이용한 공격이라 내성이 높아 큰 타격은 받지 않았다.

하지만 원소계 공격이 들어오자 점차 긴장감이 증가했다.

그때부터 난 공격보다는 환영보를 사용해 최대한 공격을 피하며 버텼다.

휴식의 시간까지만 버티면 돼!

그러나 상대는 랭킹 8위의 강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는 내 속도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미꾸라지처럼 제법 잘 피한다만, 그거 말고 오로치한테 썼던 걸 써보란 말이야!”

하지만 난 대꾸도 하지 않고 환영보를 사용하는 일에 집중했다.

강자와의 계속된 싸움.

극도의 긴장감.

이 모든 것들이 내 집중력을 최고로 끌어올렸다.

그 덕분에 환영보의 어색한 움직임 중 몇 개를 풀어낼 수 있었다.

단 몇 개였지만 그로 인해 내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최대한 피하면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은 몸으로 때웠다.

그러다 탈진하면 니아가 날 회복시키고 다음 상대가 나와 싸웠다.

상대한 이들 중 가장 강력하고 위험했던 이는 붉은 머리칼의 아름다운 여성인 랭킹 5위 카르멘이었다.

그녀의 주특기는 원소계 마법이었기 때문에 내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호호호. 귀찮아서 안 올까 했는데 와보길 잘했네. 이번엔 좀 뜨거울 거야. 조심해. 홀드(Hold), 파이어월(Fire Wall), 헬파이어(Hell Fire)!”

순식간에 세 개의 마법이 내게 펼쳐졌다.

홀드로 잠시 날 못 움직이게 막은 다음, 그도 부족했는지 파이어월로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불의 장벽을 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옥의 불꽃이라는 헬파이어를 날렸다.

윽! 저 미친년이 마법을 대체 몇 개나 날리는 거야?! 근데 저건 좀 위험해 보이는데!

난 직감적으로 날아오는 지옥의 불꽃에 맞으면 위험할 거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피할 곳이 없었다.

젠장! 어쩌지?

그때 멀리서 카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초열의 불꽃을 써!”

“초열의 불꽃? 아!”

그제야 내 단전에 자리 잡은 또다른 힘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정신을 집중해 단전에 있는 초열의 불꽃을 움직이자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헬파이어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난 그냥 단전에 자리 잡은 초열의 불꽃을 폭발시켰다.

화르륵.

파란색 초열의 불꽃이 내 온몸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이게 초열의 불꽃?”

나 혼자 방어력 무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