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눈앞에 나타난 포인트 상점의 구매 목록에 생각지도 못한 천의문이란 항목이 보였다.
저게 왜 여기 구매목록에 있는 거지? 그것도 더럽게 비싸잖아!
지금 내가 가진 포인트는 27500.
하지만 천의문은 30000포인트가 있어야 구매가 가능했다.
대신 귀환스크롤은 25000포인트로 지금도 바로 구매가 가능했다.
바로 귀환스크롤을 사서 돌아갈까?
하지만 저 천의문이란 게 너무 마음에 걸렸다.
지옥에서 저걸 본다는 게 너무 뜬금없었으니까.
혹시 내가 생각하는 천의문과 다른 건가 싶어 천의문 항목을 터치하자 상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나타났다.
- 천의문: 지옥의 콜로세움 초대 챔피언인 신기노인이 남긴 책이다. 인간이었지만 반신의 경지에 오른 그가 창시한 천의문이란 문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뭐? 천의문 창시자가 여기 초대 챔피언이었어? 그보다 그가 반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이건 츤츤이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때 내 상념을 깨고 콩콩이가 물었다.
“주인님. 포인트 상점이 오픈되는 시간은 15분입니다. 그 안에 선택을 해주셔야 합니다.”
“15분? 뭐 이렇게 짧아? 휴식의 시간 동안 열리는 거 아니었어?”
“맞습니다. 휴식의 시간이 15분입니다.”
“잠깐. 하루에 한 번 휴식의 시간이 주어진다면서? 근데 그 시간이 15분 밖에 안 된다고?”
“네, 맞습니다.”
“이런 미친 새끼들!”
그 말은 23시간 45분을 싸우다 15분만 휴식을 취한다는 말이다.
“그럼 잠도 안 자는 거야?”
“콜로세움의 전사들은 잠을 자지 않습니다. 잠은 전사들에게 사치입니다. 그런 사치가 허락된 이들은 랭킹 10위의 강자들 뿐입니다.”
“그 말은 랭킹 10위 안에 들면 잠 잘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거야?”
“네. 랭킹 10위 안에 든 강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걸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삶과 죽음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삶과 죽음?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콩콩이의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한 난 다시 질문했다.
“삶과 죽음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랭킹 10위 안의 강자들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살고자 하면 영원히 살 것이고, 죽고자 하면 바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싸워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것도 스스로 살기를 원한다면 죽지 않고 다시 부활합니다.”
다시 부활한다고? 그게 가능한거야?
“단, 랭킹 10위 안에 머물 때에만 가능한 권리입니다. 자신보다 낮은 랭커와 싸워서 지면 랭킹이 낮아지며 그 상대가 랭킹 10위 밖의 전사라면 그 즉시 죽게 됩니다.”
“그럼 자신보다 높은 랭킹의 전사들이랑 싸우면 영원히 죽지 않고 싸움만 할 수도 있겠네?”
“맞습니다. 그래서 랭킹 10위의 강자들은 11위 밑의 전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입니다. 특히, 랭킹 3위 이상의 강자들은 이미 반신에 가까운 존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콜로세움의 전사들은 말 그대로 싸움에 미친 존재들.
그런 존재들 중 최상위 10인이 죽지도 않고 지들끼리 싸움만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도 수백 수천 년을 말이다.
강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랭킹 10위 안으로 들어가면 넘사벽이란 말이네. 잠깐! 아까 본 드락이란 자가 랭킹 3위라고 했으니까 그럼 그도 반신에 가까운 실력을 가졌단 말이야?
난 아까 콜로세움 입구에서 만난 드락을 떠올렸다.
하지만 반신에 가깝다고 할 정도의 기세가 느껴지진 않았었다.
그럼 그 때는 기운을 숨긴 거였나? 그 정도로 강해보이진 않았는데.
그때 다시 콩콩이가 다그쳤다.
“주인님. 이제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난 화들짝 놀라며 포인트 상점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귀환스크롤이랑 랜덤 음식상자를 하나씩 사야겠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확인했다.
- 귀환스크롤: 어느 차원으로든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귀환이 가능하다. 귀환스크롤을 찢으면 바로 발동한다.
- 랜덤음식상자: 전 차원의 음식들 중 3가지가 랜덤하게 소환된다.
확인을 마친 난 귀환스크롤과 랜덤음식상자를 선택하고 맨 밑에 있는 포인트 지급을 터치했다.
총 25500포인트가 사용됩니다. 구매하신 상품은 즉시 지급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바로 눈앞이 환해지며 금빛으로 빛나는 스크롤과 택배상자 크기의 커다란 나무상자가 나타났다.
일단 스크롤은 품에 넣고 나무상자 앞에 섰다.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것만 나와라!
너무 배가 고픈 난 먹을 수 있는 것만 나오길 기도하며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열자마자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윽! 이게 뭐야?”
난 참을 수 없는 냄새에 잔뜩 인상을 쓰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며 말했다.
“어머. 너무 맛있겠다. 나 저거 먹어도 돼?”
고개를 돌려보니 카린이다.
“용케 여태 안 죽고 살아있었네.”
카린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상자 안에 있던 정체모를 썩은내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쩝쩝.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아? 쩝…쩝….”
“야! 더러우니까 다 먹고 얘기해.”
난 그녀가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는 사이 코를 막고 다시 상자 앞으로 걸어갔다.
3개가 나온다고 했으니까 아직 두 개 남았어. 제발 먹을 수 있는 것만 나와라.
조심스레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하나는 동물 내장 같은 것이 날 것 그대로 피가 고인 채 접시에 담겨 있었다.
“욱! 저것도 음식이야?”
그때 순식간에 음식을 다 먹어치운 카린이 그 내장 같은 걸 집어 들고는 날 보며 말했다.
“이거 안 먹을 거지? 그럼 내가 먹는다.”
그녀는 이번에도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털어 넣었다.
끔찍한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돌린 다음 마지막 남은 음식을 확인하기 위해 상자로 고갤 밀어 넣었다.
제발. 제발 하나만!
그리고 마지막 남은 음식을 확인한 순간 환호성을 질렀다.
“야호! 밥이다!”
마지막 음식은 흰 쌀밥이었다.
“근데 반찬은 없어? 달랑 밥만 있는 거야?”
아무리 상자 안을 뒤져봐도 밥 말고는 보이는 게 없다.
그제야 난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어쩌랴.
이거라도 먹어야지.
난 손을 숟가락 삼아 흰 쌀밥을 퍼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먹다 보니 먹을 만 했다.
계속 씹다 보니 단맛도 나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고. 너무 배고프니까 맨밥도 맛있게 느껴지네!
허겁지겁 밥을 다 먹어치웠을 때쯤 다시 지옥철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식의 시간이 이제 끝났다. 전사들이여, 다시 치열하게 싸워라! 그리고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해라! 죽는 그 순간까지!]
전투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다른 이들은 날 건드리지 않았다.
“콩콩아. 쟤들은 날 왜 안 건드리는 거야?”
“그건 주인님이 랭킹 20위 안에 진입함으로써 이곳 콜로세움 2구역에 속한 존재가 됐기 때문입니다.”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콜로세움 2구역이라니?”
그때 카린이 급히 내게 말했다.
“그보다 나 좀 어떻게 해줄 수 없어? 달라붙는 놈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어.”
난 그녀의 말에 콩콩이에게 물었다.
“콩콩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어?”
“네. 주인님께서 부관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랭킹 30위 안에 들어가는 이들은 모두 한 명의 부관을 곁에 둘 수 있습니다.”
“그래?”
카린은 내가 콩콩이와 말하는 사이에도 달려드는 놈 하나를 불태워 재로 만들었다.
[랭킹 489위 카린이 랭킹 519위 자부를 죽이고 포인트 130점을 획득했다.]
잠깐! 489위? 언제 저렇게 랭킹이 올랐지?
그때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콩콩아. 포인트는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는 없는 거야?”
“넘길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의 동의가 있다면 포인트 이동이 가능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카린의 포인트를 넘겨받아야겠다고 마음 먹고는 카린을 향해 말했다.
“좋아. 널 부관으로 삼으면 된다고 하니까 부관으로 삼아줄게.”
“진짜?”
카린은 내 말에 뛸 듯이 기뻐했다.
난 그런 카린을 보며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이라고? 무슨 조건?”
그 사이에도 달려드는 전사 한 명을 재로 만든 카린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별거 아니야. 니가 지금까지 모은 포인트를 나한테 다 넘겨. 그리고 앞으로 받게 되는 포인트도 모두 넘긴다고 약속해. 그럼 부관으로 삼아줄게.”
“내 포인트를 모두?”
“그래. 대신 상점이 열리면 여유가 되는 한도 내에서 니가 원하는 것도 사줄게. 어때?”
그녀는 잠시 내 말에 고민을 했지만 곧 승낙을 했다.
“좋아. 어차피 살 것도 별로 없더라구. 포인트는 어떻게 넘기는 건데?”
그녀의 질문에 이번엔 옆에 있던 콩콩이가 나서며 말했다.
“그건 상대와 손을 잡고 얼마를 넘기겠다고 말하면 됩니다.”
그 말에 카린은 곧바로 내 양손을 잡으며 포인트를 넘겨줬다.
- 카린이 16800 포인트를 당신에게 전달합니다. 받으시겠습니까?
우와! 포인트가 16800이나 있었어?
사실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렇지 카린도 엄청난 속도로 랭킹을 올렸었다.
대신 먼저 싸움을 걸지는 않고 덤벼드는 놈들만 불태워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랭킹이 낮은 사람을 상대할 일이 많아서 포인트를 제법 모았다.
난 바로 포인트를 받고선 콩콩이에게 물었다.
“콩콩아. 근데 부관은 어떻게 임명하는 거야?”
“그냥 부관으로 임명한다고 말하면 됩니다.”
“뭐야?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
난 곧바로 콩콩이의 말대로 카린을 부관으로 임명했다.
- 랭킹 489위인 카린이 랭킹 17위 박태준의 부관이 되었습니다. 부관으로 있을 땐 랭킹이 소멸되며, 부관 자격을 상실하면 랭킹이 초기화됩니다.
카린이 부관이 되자 신기하게도 그녀를 향해 계속되던 공격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제야 난 콩콩이에게 아까 하던 질문을 계속 했다.
“그나저나 아까 하던 얘기마저 해야지. 콜로세움 2구역이 뭐야?”
그 내용은 카린도 궁금했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는 콩콩이의 말에 집중했다.
“콜로세움은 크게 3가지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가장 외곽인 이곳 3구역, 그리고 랭킹 100위까지의 전사들만 머물 수 있는 2구역, 마지막으로 랭킹 10위 안의 사람들만 머물 수 있는 1구역입니다.”
콩콩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3구역에 사는 전사들은 2구역과 1구역에 사는 전사들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건 2구역에 사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1구역에 사는 전사들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럼 랭킹은 어떻게 올려?”
“3구역에 사는 전사들 중 200위 안에 드는 이들은 2구역의 전사들에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건 2구역에 사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0위 안에 들어가는 전사들은 1구역에 있는 강자들에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호오! 미친놈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놨네.
“그럼 2구역으론 어떻게 가?”
“자격을 갖춘 자라면 언제나 자신이 있는 구역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 어떻게?”
“그냥 ‘2구역으로 이동’이라고만 외치시면 됩니다.”
“2구역으로 이동!”
내 외침과 동시에 순식간에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여기가 2구역?”
약간은 좋은 곳일거라고 기대했던 2구역은 3구역보다 더한 곳이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