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끄아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몸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나왔다.
눈과 코, 입, 귀에서 파란빛의 불꽃이 뿜어져 나왔는데, 급기야 그 불꽃은 내 온 몸을 감싸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썅! 이제 어쩌지? 초열의 불꽃은 다룰 수가 없는데….”
카린은 파란색 불꽃에 휩싸인 날 보며 다가오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점점 의식은 희미해져 갔다.
이제는 완전히 의식의 끈을 놓기 직전 내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하나로 시작하되 시작이 아니고, 하나를 쪼개니 삼극이 되네. 천하의 근본은 다함이 없고, 하늘은 언제나 하나로 양이 되네.… 사람이 하늘과 땅에 맞춰 하나 되니, 하나로 끝내되 끝이 아니네. …….”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이 무의식 중에 계속 흘러나왔다.
왜 이 상황에서 그 구절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구절을 암송하면 할수록 몸을 감싸던 파란색 불꽃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나왔던 구멍을 통해 몸 안으로 사라졌다.
난 어느새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으로는 계속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되뇌었다.
‘하나. 그래.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 결국 하나에서 나와 하나로 돌아가는 것….’
그 사이 내 몸 안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들어온 파란색 불꽃이 배꼽 아래 단전이 있는 곳으로 모이더니 단전을 휘감기 시작했다.
내공과 푸른 불꽃은 서로를 견제하듯 힘싸움을 하며 뒤섞여 휘몰아쳤다.
그때 파란 불꽃이 사그라드는 것을 본 카린이 달려와서는 앉아있는 내 얼굴을 발로 냅다 후려쳤다.
“억!”
그 덕분에 단전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파란 불꽃과 내공은 단전에서 균형을 이루며 자리를 잡았다.
카린의 발차기에 맞고 바닥에 쓰러진 난 눈을 뜨곤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거였는데….
아쉽지만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린은 쳐다보지도 않고 몸부터 살폈다.
단전에 자리 잡은 거대한 파란 불꽃이 느껴졌다.
화르륵!
파란 불꽃을 내공처럼 움직여 오른손에 모으자 파란 불꽃이 솟아올랐다.
훅.
하지만 오래 지속하진 못하고 금새 꺼져버렸다.
아직 몸이 파란 불꽃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파란 불꽃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큰깨달음이 있었다.
모든 걸 깨닫진 못했지만 내 무공에서 몇 가지가 크게 잘못됐음은 알 수 있었다.
환영보는 그렇게 움직이는 게 아니었어. 이렇게 움직여야 되는 거지.
그리고 환영보를 시전했다.
난 순식간에 카린 뒤로 이동했는데 중요한 건 여전히 카린이 정면을 보고 있단 사실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엔 여전히 내가 서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건 내가 환영보를 시전한 뒤 생긴 잔상이었다.
“그래. 이게 환영보지.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해.”
카린은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날 발견하곤 말까지 더듬거리며 놀랐다.
“어…어떻게…. 거, 거기에…?”
하지만 난 그녀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한 번 환영보를 사용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 아직 부족해. 움직일 때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단 말이야.”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츤츤이가 말한 진짜 환영보가 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이제야 겨우 산 정상이 어렴풋이 보이는 정도랄까.
그 정도로 완벽한 환영보는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에 츤츤이로부터 내 환영보가 흉내내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공만 올리면 완벽한 환영보를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건 내공의 문제가 아니다.
깨달음의 문제다.
그렇게 혼자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카린이 내 눈치를 살살 보다가 빽하고 소리 질렀다.
“야!!”
갑작스런 소리에 난 화들짝 놀라며 카린을 쳐다봤다.
“아이씨. 깜짝이야! 갑자기 뭔데?”
그러다 그제야 내가 한 일이 떠올랐다.
“아! 미안미안. 꽃이 흘러내리길래 나도 모르게 먹어버렸네. 이를 어쩌지?”
그냥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가볍지 않았다.
“책임져.”
“응? 뭐라고?”
“책임지라고!”
“뭘?”
내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묻자 그녀가 한걸음 가까이 다가오며 큰소리로 말했다.
“너 때문에 죽게 생겼잖아. 그러니 날 책임지라고! 이 개새끼야!”
“하아! 어떻게 하면 책임지는 건데?”
“날 데리고 가.”
“널 데리고 가라고? 어디로?”
“그야 니가 살던 곳이지.”
난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야! 너 제정신이야?”
“그거 말곤 방법이 없어. 여기 있단 플뤼톤 님께 백 퍼센트 소멸될 거야. 그 꽃은 플뤼톤 님이 아끼시는 거라고! 내가 살 방법은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는 수 밖에 없어.”
“근데 난 여기서 나가는 방법도 모른다고! 거기다 혹시 안다고 해도 나 혼자만 자동으로 돌아가게 될 텐데 널 어떻게 데리고 가?”
하지만 그녀는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여기서 초열의 꽃송이를 관리했던 이유가 뭐겠어. 그건 나한테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특별한 능력?”
“그래. 바로 불꽃과 동화되는 능력!”
“불꽃과 동화 된다고? 근데 그거랑 초열의 꽃송이를 관리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녀는 내 질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휴, 멍청한 놈. 난 꽃들이 머금은 불꽃에 동화해서 꽃들이 골고루 불꽃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 그건 초열의 꽃송이도 마찬가지지. 내가 직접 그 꽃을 다룰 순 없지만 주변 꽃들이 가진 불꽃을 집중시킬 순 있거든.”
“잠깐잠깐! 초열의 꽃송이가 저 꽃 전부를 말하는 거 아니야?”
그녀의 말을 듣다 이상함을 느끼고 질문했다.
난 지금껏 꽃밭에 있는 모든 꽃이 초열의 꽃송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초열의 꽃송이는 니가 좀 전에 먹은 그 파란 꽃만 말하는 거야. 저 꽃들은 그냥 화염초라고 불리는 꽃들이고.”
“그래? 일단 계속 해봐.”
“어쨌든 난 불꽃과 동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래서 난 니가 돌아가는 순간 니 몸속에 있는 불꽃에 동화될 생각이야.”
그녀의 말에 난 의아해하며 물었다.
“잠깐만! 방금 전에는 초열의 불꽃에는 동화될 수 없다며? 근데 이제는 내 안에 있는 불꽃에 동화된다고? 내 안에 있는 불꽃이 초열의 불꽃인데? 뭔가 앞뒤가 안맞지 않아?”
하지만 그녀는 내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안 되면 죽는 거지 뭐.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똑같으니까!”
얜 대체 뭐지?
아까는 그렇게 죽기 싫어서 데려가달라고 부탁하더니 이젠 안 되면 죽으면 된다니!
도대체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잘못도 있고 하니 난 잠시 고민하다 알겠다고 말했다.
일단은 여길 벗어나는 게 중요했으니까.
“좋아. 데리고 가줄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이제 콜로세움으로 가야 되는데 어디로 가면 돼? 저기 개구멍 같은 데로 나가야 되는 거야?”
그녀는 내가 데리고 간다고 하자 그제야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꽃밭에 있는 노란색 화염초를 꺾어 내게 건내주며 말했다.
“먹어.”
“먹으라고?”
“그래. 나만 갈 수 있는 길이 있긴한데 그럴려면 용암 안으로 들어가야 되거든. 그러니까 먹어!”
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내민 화염초를 입에 넣었다.
스르륵.
화염초는 입속에서 아이스크림 녹듯이 녹아내렸다.
- 화염에 대한 내성이 1.3퍼센트 증가합니다.
화염 내성이 증가했단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왜 초열의 꽃송이를 먹었을 때는 내성이 증가했단 메시지가 나오지 않은거지?
초열의 꽃송이를 먹었을 때는 어떤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화염 내성이 오르지도 않았고, 다른 능력치가 증가하지도 않았다.
분명 지금 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게 느껴지는 데도 아무런 메시지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단순히 깨달음을 느꼈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하기엔 이상했다.
깨달음만 느꼈다고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상승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때 옆에서 기다리던 카린이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야! 지속 시간이 30분 밖에 안 된다고! 빨리 가야 돼.”
“미안미안.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일단 가자!”
조금 있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상태창도 살펴보고 말이야.
마음을 정리한 난 카린을 따라 용암이 흐르는 곳까지 걸어갔다.
어느새 카린은 용암 안으로 뛰어들어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빨리 들어와! 시간 없으니까.”
“어어. 그래. 알겠어. 근데 이거 진짜 괜찮은 거지?”
“남자 새끼가 겁은 왜 저리 많아! 쫄지 말고 들어와. 안 죽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번에 용암 안으로 뛰어들긴 약간 겁이 났다.
그래서 목욕탕에 있는 열탕에 들어 가듯 발끝부터 살짝 용암 안에 담궈봤다.
용암이 발끝을 감쌌지만 약간 뜨거운 정도지 고통스럽진 않았다.
담궜던 발도 꺼내 살펴봤는데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제야 난 의심을 거두고 용암 안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화륵.
순식간에 입고 있던 옷이 불에 타 사라졌다.
“이제 날 따라와.”
그리곤 그녀는 물고기처럼 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이동했다.
10분 정도를 헤엄쳐 가자 눈 앞에 거대한 용암의 폭포가 나타났다.
콰콰콰콰.
하지만 일반 폭포와 다른 점은 용암이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니라 엄청난 압력에 의해 위로 솟구치고 있다는 점이다.
난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우와! 말 그대로 입이 딱 벌어지는 광경이네. 살면서 이런걸 직접 눈으로 볼 줄이야!
그때 카린이 말했다.
“조금 있으면 저 분출하는 용암이 멈추는 순간이 올거야. 그때 우린 밑으로 뛰어내리면 돼!”
“저게 멈춘다고? 언제 멈추는데?”
“대충 30분에 한 번씩 분출을 멈추니까 아마 곧 멈추게 될 거야.”
“그래?”
지금 저 모습으론 멈춘다는 게 상상이 안 갔지만 일단 기다리며 상태창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머릿속으로 상태창을 외치자 눈앞에 상세 정보가 주르륵 하고 나타났다.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정상
성장 단계: 각성
*능력치(각성)
힘: 527
민첩: 598
마력: 381
내공: 2017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87.21%/얼음 50%/전기 50%/독 30%
상태창을 살피던 난 처음 보는 항목을 발견했다.
성장 단계가 뭐지? 처음 보는 건데?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