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지난 번 전투에선 아이템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
저 놈이 노다지인 줄 말이다.
방패뿐 아니라 다른 무기들도 먹었더니 곧장 다시 무기를 소환했다.
다시 한 번 조한희와 이철진을 힐끔 돌아봤다.
아직은 버틸 만 해 보였다.
생각보다 잘 버티네. 그렇다면 이런 기횔 놓칠 순 없지.
저게 무한대로 소환되는 건지 아닌진 모르지만 일단 나오는 족족 먹어치우기로 했다.
카이저의 경우 무기술이 능한 거지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는 몬스터는 아니다.
그렇게 미친놈마냥 달라붙어 카이저의 무기들을 먹어댔다.
떼어내면 다시 달라붙고, 떼어내면 다시 달라붙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계속 소환되는 무기들을 미친 듯이 먹어치웠다.
[이놈!! 대체 뭐하는 짓이냐! 검투사인 날 깔보는 것이냐!]
카이저의 굵은 저음이 온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먹고 있던 검을 마저 씹으며 말했다.
“쩝쩝. 그런 건 아니니까 상처 받지 마. 그보다 얼른 검 또 꺼내야지. 얼른!”
[이…이놈!!!]
화를 내봤자 카이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무기를 소환하는 수 밖에는.
그때 뒤에서 조한희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급히 뒤를 돌아보자 이철진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검은 개가 조한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다급함을 느낀 난 최대한의 속도로 조한희를 향해 달려갔다.
콱.
다행히 검은 개의 이빨은 조한희의 목이 아닌 내 팔을 물었다.
흠. 이제 한곈가 보네.
이철진은 검은 개와 싸우며 잘 버텼지만 스피드가 점점 느려지며 틈이 많이 생겼다.
그 때문에 조한희가 위험에 처할 확률이 올라갔다.
슬슬 끝내야겠네. 일단은 저 개새끼부터.
이철진이 약해서 검은 개를 못 잡은 게 아니다.
사실 이철진 정도 실력이면 혼자 저 정도 몬스터는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6시간 동안의 던전 공략과 조한희를 보호해야 된다는 점 때문에 피로가 이미 극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
거기다 검은 개의 스피드는 이철진보다 빨랐다.
당연히 검은 개의 공격을 막는 데만 집중하다보니 지칠 수 밖에.
하지만 난 다르다.
깨갱.
환영보를 사용한 내 주먹에 검은 개는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움직임이나 공격력을 보니 검은 개는 A급에 가까운 B급 몬스터다.
그 말은 결국 B급이란 말이다.
그 정도 몬스터는 이제 한두 방이면 보낼 수 있다.
첫 번째 공격에 바닥을 뒹굴던 검은 개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날 향해 다시 달려드는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카이저도 함께 우릴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아이템 더 먹고 싶었는데. 아쉽네.
“사제. 한희 보호해!”
이철진이 할 일을 짧게 지시한 후 환영보를 시전해 달려오는 개를 가볍게 한 대 때렸다.
그리곤 곧장 카이저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환영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환영보는 너무 빨라 검은 개가 내 움직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어그로가 이철진에게로 튈 수가 있다.
“개새끼야. 이리로 와야지.”
난 놀리듯 검은 개를 유인하며 카이저에게 달려갔다.
그는 어느새 모든 장비를 소환해서 손에 들고 있었다.
후웅. 훙
그가 휘두르는 공격을 가볍게 한 대씩 맞으면서 방패를 든 손에 달라붙었다.
그때 뒤따라온 검은 개가 내 목을 물어뜯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신속하게 방패를 먹어치웠다.
- ‘지옥불에 벼린 방패’를 섭취했습니다. 마력이 9만큼 오릅니다.
그리곤 방패가 없어진 틈을 노려 바로 천의 이권을 사용했다.
부딪힌 주먹을 중심으로 엄청난 강기의 소용돌이가 생겨나며 매달려 있던 검은 개와 카이저를 휩쓸었다.
깨갱.
검은 개는 그 공격에 그대로 소멸했고, 카이저는 방패를 소환할 시간이 없자 급히 들고 있던 무기들로 막았다.
어딜.
난 그 틈에 그에게 달려들어 연속으로 천의 일권을 사용했다.
퍼펑. 펑.
[크아아악!]
결국 카이저는 버티지 못하고 중후한 저음으로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던전 안에서 죽은 몬스터들은 게이트와 달리 시체가 사라졌다.
게이트 안에서나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은 죽어도 시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그 시체를 거래하는 사람들까지 생기게 된다.
특히 희귀한 몬스터의 경우는 굉장히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던전의 몬스터들은 죽으면 사라졌다.
대신 그들은 사라진 자리에 아이템을 남겼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난 카이저가 사라진 자리에 놓여있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이번엔 갑주를 떨궜구나.
카이저가 입었던 칠흑의 갑주를 들어올렸다.
- ‘지옥불로 만든 갑주’를 획득했습니다. 착용하면 귀속됩니다.
명색이 보스몬스터에서 드랍한 아이템인데, 옵션을 확인했는데 별거 없다.
이건 먹어야겠네. 또 없나?
맛있게 갑주 가장자리부터 씹어 먹으며 바닥을 살폈다.
응?
그때 내 눈에 바닥에 놓인 검은 빛의 열쇠가 보였다.
바닥 색과 똑같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조한희와 이철진이 다가왔다.
“휴! 태준 씨. 드디어 잡았네. 그나저나 뭐 좀 나왔어?”
“별거 없어. 보스가 입었던 갑주랑 저기 바닥에 열쇠 하나 나왔네.”
“갑주랑 열쇠?”
그녀는 내가 먹고 있는 갑주를 보다가 내 손이 가리키는 바닥을 살폈다.
그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열쇠? 안 보이는데?”
“아! 그게 색이 바닥 색이랑 똑같아서 잘 살펴봐야 돼. 저기 있으니까 봐봐!”
이번엔 정확히 열쇠가 있는 바닥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열쇠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태준 씨. 지금 장난치는 거지? 여기 열쇠가 어딨어?”
그런 반응은 이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형. 아무리 찾아도 열쇠는 없는데?”
난 먹던 갑주를 왼손에 들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은 열쇠를 오른손으로 집어들었다.
“다들 눈이 어떻게 된 거야? 여깄잖아!”
- 지옥의 콜로세움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지옥의 검투사 카이저가 처음 서 있던 바닥 중앙에 열쇠를 꽂아 돌리면 지옥의 콜로세움으로의 입장이 가능합니다. 단, 지옥의 콜로세움으로 입장은 한 명만 가능하며,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응? 지옥의 콜로세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다.
그때 조한희가 내 손에 들린 열쇠를 보더니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어? 진짜네. 난 왜 안 보였지?”
그런 반응은 이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나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는데….”
“흠! 이게 지옥의 콜로세움으로 가는 열쇠라는데!”
“지옥의 콜로세움? 그건 또 뭐야?”
조한희가 궁금한지 물었지만 나도 자세한 건 몰랐다.
“나도 잘 모르겠어. 처음 듣는 거라.”
“내가 한 번 봐도 돼?”
“그럼! 여기.”
조한희는 내가 내민 열쇠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잡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열쇠를 잡으려하자 손에서 열쇠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신기한지 이철진도 와서 잡으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열쇠가 사라졌다.
이거 나만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건가? 왜? 잠깐! 콜로세움? 아! 내가 검투사를 잡았으니 나만 콜로세움 입장 자격이 주어지는 거구나!
“아무래도 나만 잡을 수 있는 걸 보니 입장 자격이 나한테만 있나봐!”
그 말에 둘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고, 그때 던전 공략 완료 메시지가 나타났다.
- 상급 던전 기드온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던전 기드온의 소유주를 선택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메시지 밑에 박태준/이철진/조한희 세 명의 이름이 나타났다.
아마도 소유주를 선택하라는 말 같았다.
“어? 소유주를 선택하라고 나오는데?”
“그러게. 나도 그런데.”
이철진과 조한희한테도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나보다.
아무래도 지난번과 달리 세 명이서 공략을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소유주는 누구로 할까?”
내 말에 조한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이미 정해져 있는 거 아니야? 애초에 이 던전은 태준 씨 소유였으니까!”
“그렇지. 사형이 소유주가 되어야지.”
“다들 고생했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소유주는 나로 선택할게.”
난 주저 없이 내 이름을 터치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선택을 했는지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 만장일치로 당신은 이제부터 던전 기드온의 소유주가 됩니다. 던전의 소유주는 던전 입장 형태를 오픈과 잠금으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오픈을 선택할 경우 모든 이가 입장 가능하지만 잠금으로 설정시 입장 자격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이 더 나타났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 갑주의 남은 부분을 먹으며 대충 읽고 넘겼다.
- 이 모든 사항은 다음 던전 입장시부터 적용됩니다. 던전 공략 완료로 모두 던전 밖으로 이동합니다.
드디어 진짜 끝이구나!
그때 눈앞에 붉은색 메시지가 나타났다.
- 지옥의 콜로세움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밖으로 이동할 시 열쇠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동하시겠습니까?
지금 사용하라고?
갑작스레 나타난 메시지에 어떻게 할지 망설이는 사이 조한희와 이철진은 환한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다들 소환됐구나! 그나저나 난 어쩌지?”
지금 여기서 나가자니 지옥의 콜로세움이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 나가지 않으면 조한희와 이철진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지금 나가면 우리보다 먼저 던전에 진입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 텐데 내가 없이 잘 버틸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난 콜로세움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사제도 마냥 약한 건 아니니 버틸 수 있겠지!
난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카이저가 처음에 서 있던 자리로 갔다.
메시지대로 그 아래에 조그만 열쇠구멍이 보였다.
흠! 그냥 저기다 열쇠를 꽂고 돌리면 되는 건가?
난 품에서 열쇠를 꺼내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렸다.
스르륵.
뻑뻑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너무 부드럽게 돌아갔다.
철컹.
쇠붙이가 맞아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눈앞에 붉은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화악!
“아이씨, 깜짝이야!”
불기둥은 천천히 날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돌았다.
불기둥이 지나간 자리는 여지없이 거대한 불기둥이 만들어지며 날 에워쌌다.
급기야 난 불기둥에 둘러싸여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거 뭐야? 진짜 콜로세움으로 가는 거 맞아?”
그때 날 둘러싸고 있던 불기둥이 갑자기 날 향해 다가왔다.
“어? 저게 원래 다가오는 건가?”
그러다 순식간에 불기둥은 내 몸을 집어삼켰다.
지옥의 불꽃이라 그런지 순식간에 내성을 넘어서는 데미지가 들어왔다.
눈을 질끈 감고 버티려 했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끄으아악!”
잠시 후 고통이 사라진 걸 느낀 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곤 깜짝 놀랐다.
“설마…여기가 지옥의 콜로세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