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상급 던전 기드온.
나 혼자 세 달 반이나 걸려서 공략한 던전이다.
세 달 반을 명상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들이댔다.
그 말은 곧 내가 이 던전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는 뜻이다.
“사제. 그 자리에 서서 조금만 기다려.”
난 사방에서 투창이 날아오는 함정을 앞에 두고 알고 있는 공략대로 이철진을 한 곳에 세웠다.
그리곤 조한희도 정해진 위치에 서게 했다.
여기 공략은 아주 단순하다.
두 사람을 특정한 위치에 세우고 다른 한 사람이 건너편으로 넘어가 함정 해체 스위치를 누르면 끝이다.
난 두 사람이 서 있는 걸 확인하고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내가 특정 위치를 지나가자 벽에 있는 무수히 많은 구멍에서 날카로운 투창이 장전이 되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저들이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가만히 서 있다면 말이다.
“어? 사형 조심해!”
이철진은 벽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장전된 투창을 보고 놀라서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문제는 소리만 친게 아니라 그도 모르게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기관 장치가 작동됐단 거다.
슝. 슈웅.
장전 된 투창들이 무시무시한 소릴 내며 내게 날아들었다.
“꺄악! 태준 씨. 조심해!”
조한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난 태연하게 날아오는 투창을 무시하고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툭. 투툭.
수많은 투창이 내 몸에 닿았지만 어느 것 하나 날 상처입히지 못했다.
난 태연히 건너편으로 건너가 기관장치를 멈추는 버튼을 눌렀다.
“이제 넘어와도 돼.”
내 말에 조한희와 이철진이 급히 달려와선 걱정스럽게 물었다.
“태준 씨.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이젠 익숙해 질 때도 되지 않았어?”
“사제. 미안해. 이번에도 내가 실수했네.”
아닌게 아니라 5시간 정도 던전을 진행하면서 꽤 많은 함정과 몬스터들을 만났다.
몬스터들이야 혼자서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쉬웠지만 함정은 달랐다.
함정의 경우 지금처럼 세 명 이상이 있어야지만 해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철진 때문에 몇 번이나 위험한 경우를 겪었다.
문제는 나는 괜찮지만 저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좀 더 조심해줘. 나야 괜찮지만 사제나 한희는 죽을 수도 있으니까.”
“미안해, 사형.”
이철진이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힘없이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란 걸 안다.
내가 너무 걱정되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한 거니까.
난 주머니에서 아까 몬스터를 잡고 얻은 ‘철벽의 반지’를 꺼내 씹으며 그를 위로했다.
까드득.
“괜찮아. 이제 함정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주의하자.”
- ‘철벽의 반지’를 섭취했습니다. 힘이 11만큼 오릅니다.
이번엔 힘이구나. 좋아좋아.
지난번 여기를 돌 때는 완전 소화가 되기 전이라 바로 먹지를 못해서 고급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다 버리고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템이 나오는 족족 바로 먹어치웠다.
그랬더니 제법 많은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상태창이나 한 번 볼까. 상태창.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정상
*능력치
힘: 472
민첩: 513
마력: 287
내공: 1912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66.1%/얼음 50%/전기 50%/독 30%
흠. 내공 빼곤 아직 멀었네.
기본적으로 각성자가 되면 모든 능력치가 300이상은 나온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경우.
이것도 뽑기 운이 좋으면 모든 능력치가 500이상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이야 내공과 츤츤이에게 배운 무공으로 부족한 부분을 매우고는 있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거기다 벌써 대격변이 일어나고 반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히든 보스가 얼마나 세력을 키웠을지 알 수가 없다.
서둘러 그가 키운 세력을 알아내 야금야금 무너뜨려야지만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힘이 필요했다.
혼자 상태창을 보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조한희가 다가왔다.
“근데 태준 씨가 아이템 먹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진짜 괜찮은 거야?”
처음에 내가 아이템을 직접 씹어 먹는 걸 봤을 때 그들은 안 된다고 뜯어 말렸었다.
그만큼 아이템을 먹는다는 건 그들에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돈을 먹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아이템이라니.
이런 광경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 이거 생각보다 맛있어. 능력치 오르는 것도 쏠쏠하구 말이야.”
“호호호. 근데 들어온 지 벌써 다섯 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 멀었어?”
“이제 거의 다 왔어.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될 거야.”
“한 시간? 아직도 그렇게나 많이 남았어.”
“한희야. 지금 이 속도는 엄청 빠른 거야. 난 혼자 여기까지 오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렸다구.”
내가 공략과 몬스터들을 다 알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던 거지 보통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만큼 상급 던전은 다양한 함정들과 미로, 몬스터들이 뒤섞여 있어 제대로 된 길잡이가 있지 않다면 공략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땐 길잡이 없이 와서 그런 거잖아. 만약 길잡이가 있었다면 일주일이면 됐을 거야.”
“하하하. 그렇긴 하지. 그래서 내가 너랑 꼭 같이 일하고 싶었던 거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이 조금 풀리자 다시 앞으로 나갔다.
상급 던전은 크기에 따라 몬스터들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크기가 작을수록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나고, 크기가 커질수록 몬스터의 난이도는 내려간다.
그런 의미에서 상급 던전 기드온은 크기가 큰 만큼 몬스터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보스 역시 마찬가지다.
투창이 있던 함정으로부터 40분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보스 방 앞에 도착했다.
쿠워어어어.
“윽! 저 보스는 왜 맨날 소릴 지르는 거야?”
조한희가 귀를 틀어막으며 투덜거렸다.
“그게 지옥의 검투사라 주기적으로 온몸에 지옥불이 소환되거든. 그래서 소리 지르는 거야. 뜨거워서!”
“호호호. 그게 뭐야!”
“그보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네. 저 문 너머에 보스가 있어. 지옥 검투사 카이저란 놈인데 별로 강하진 않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지난번엔 어떻게 잡았는데?”
조한희의 물음에 잠시 그때를 회상했다.
그땐 보스가 지칠 때까지 맞았었다.
그러면서 빈틈이 보이면 한 대씩 때리면서 데미지를 쌓았다.
결국 때리다 지친 카이저를 죽을 때까지 때려서 잡았다.
그러다 보니 카이저와의 전투만 10시간이 넘게 걸렸었다.
“뭐 그냥 죽을 때까지 때렸지.”
“에이, 그게 뭐야. 제대로 된 공략 없어?”
“진짜 그게 다야. 죽을 때까지 때리는 거. 너흰 들어가면 멀찍이 피해있어. 다칠 수도 있으니까. 사제는 한희한테 무슨 일 안 생기게 옆에서 잘 지켜주고.”
내 말에 투창 함정 이후 풀이 죽은 채 대화에 끼어들지 않던 이철진이 힘차게 말했다.
“사형. 그거라면 걱정 마. 혹시 무슨 일 생기면 한희는 내가 목숨 걸고 지킬 테니까!”
“그래. 사제, 부탁할게. 그럼 들어가 볼까!”
거대한 아치형 철문을 힘주어 밀자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뜨거운 기운이 훅하고 불어왔다.
짙은 유황 냄새.
바로 지옥의 냄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조한희가 문틈 사이로 나는 유황 냄새에 얼굴을 찌푸렸다.
“유황 냄새야. 지옥에서 나는 냄새지.”
난 남은 문까지 마저 활짝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야! 환기 좀 해라. 역겨운 냄새 나잖아!”
문 안은 실내 체육관 정도 되는 크기의 방이었는데 그 가운데 누군가 서 있었다.
2미터의 장신에 전신을 가린 검은 갑옷.
거기다 팔이 네 개나 됐는데 각 팔마다 다른 무기가 들려 있었다.
검, 도끼, 창, 목줄.
응? 목줄?
목줄을 따라가니 그곳엔 입에서 불꽃을 뿜어내는 사람만한 검은 개 한 마리가 묶여 있다.
개새끼가 저기 왜 있는 거야? 지난번엔 없었는데…. 혹시 여러 사람이 들어와서 난이도가 올라간 건가?
실제로 던전은 입장 인원수에 따라 난이도가 변하기도 했다.
지금이 그런 경우인 모양이다.
“태준 씨. 저 개도 원래 있었던 거야?”
조한희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래도 던전 입장 인원이 늘면서 난이도가 변했나봐. 이렇게 되면 계획 변경이다.”
난 이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제랑 한희가 저 검은 개를 맡아줘. 그 사이 내가 보스를 조질 테니까!”
내 말에 다들 동의하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동굴에서 말하는 듯한 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난 지옥의 검투사 카이저. 내 방에 무단으로 침입한 너흴 처단하겠다.]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카이저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곤 한 손에 든 목줄을 놓으며 소리쳤다.
[가라. 가서 저놈들의 머리통을 물어뜯어라!]
화르륵.
그러자 검은 개의 머리가 불꽃에 휩싸이더니 미친 듯이 우릴 향해 달려왔다.
“사제, 그럼 부탁해.”
그 말과 함께 난 환영보를 전개해 달려드는 검은 개를 피한 다음 카이저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어느새 목줄이 있던 손에 방패를 소환해 들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간만에 한 번 놀아보자!”
그리곤 전투가 시작됐다.
하지만 생각보다 카이저는 강했다.
내공도 많이 늘고 천의권도 사용할 수 있어서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하는 공격은 번번이 방패에 의해 막혔다.
하지만 그의 공격 역시 내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역시 상급 던전 보스. 쉽게 죽어주진 않는구나!
전투 중 뒤를 힐끔 돌아보니 이철진이 검은 개와 싸우는 게 보였다.
그도 나름의 강자 중 한 명이라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티고만 있을 순 없을 것이다.
젠장. 이래서 공략이 중요하구나.
나 혼자라면 예전처럼 맞으면서 지치길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조한희와 이철진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런 상태로 가다간 그들이 먼저 지칠 게 분명했다.
난 날아드는 도끼를 피한 다음, 다시 한 번 천의 이권을 사용했다.
휘이이잉
엄청난 강기의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카이저를 덮쳤지만 그는 또다시 방패로 막아냈다.
몇 발짝 뒤로 물러나긴 했지만 방패도 그도 별다른 타격은 없어 보였다.
일단 저 방패부터 어떻게 해야 되는데…. 아! 나 병신인가? 그냥 먹으면 되는 거잖아!
보스가 가진 아이템이면 분명 고급 등급 이상 아이템일 거다.
그렇다면 먹으면 된다.
난 즉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카이저는 내가 달려드는 걸 보고 즉시 방패를 들어 올리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난 그대로 달려들며 방패 가장자리를 씹었다.
카득. 쩝쩝. 카드득. 쩝.
순식간에 방패의 절반을 씹어 먹었다.
그 사이 카이저가 다른 팔로 끊임없이 날 공격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팔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남은 방패마저 먹어 치웠다.
- ‘지옥불로 만든 방패’를 섭취했습니다. 민첩이 17만큼 오릅니다.
나이스. 역시 아이템이구나. 이제 방패도 없으니 죽이기만 하면 되겠어.
헌데 그때 카이저가 손잡이만 남은 방패를 집어 던지고는 새로운 방패를 소환했다.
그걸 본 난 기쁨을 참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 노다지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