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츤츤이의 한바탕 설교가 끝나자 개들은 세상이 떠나갈 듯 짖어대며 그를 환호했다.
그때 닥스훈트가 슬며시 다가왔다.
[왕이시여. 당신을 따르는 저희에게 앞으로 어떤 구원을 내릴 생각이십니까?]
[잘 따르기만 하면 개들만이 살 수 있는 영토를 마련해 주지.]
[그 말은 저희가 인간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인간으로부터의 완벽한 해방을 의미한다.]
그 말에 닥스훈트는 무한 감동을 받은 얼굴로 깊이 머리 숙여 인사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인사다.
진심으로 츤츤이를 왕으로 인정한 모양이다.
[그럼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내 지시를 듣고 따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구원이 찾아올 것이다.]
츤츤이는 마무리 인사를 하고 닥스훈트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그리곤 근처에 있는 상점 안으로 들어가며 내게 전음을 보내왔다.
[야. 나 있는 대로 와. 거긴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안 되겠다.]
“츤츤이가 자기 있는대로 오라고 하는데 같이 갈래? 아! 츤츤이는 아까 그 개 이름이야.”
“풉! 이름이 츤츤이가 뭐야. 근데 태준 씨 말대로 보통 개는 아닌가 보네. 움직임이 웬만한 각성자보다 좋던데.”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특별하다고! 일단 최대한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안으로 들어가자.”
난 곧바로 조한희와 함께 츤츤이가 들어간 건물 안으로 은밀히 들어갔다.
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갔지?”
그때 조한희가 비상구 쪽을 가리켰다.
“저 안에 있어.”
“그래?”
역시 길잡이. 같이 다니면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겠어.
비상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조한희 말대로 츤츤이와 닥스훈트가 보였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쯧쯧! 지금 밖에서 이 건물을 엿보고 있는 사람만 몇 명인지 알아?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어야지.]
“그런가? 어디?”
기감을 확장시키자 츤츤이 말대로 일곱 명의 사람이 건물 곳곳에 붙어 있는 게 느껴졌다.
“진짜네. 일곱 명이나 붙어 있어.”
“여덟 명이야.”
조한희가 내 말을 정정했다.
“여덟 명? 일곱 명이 아니고?”
[호오. 저 여자가 너보다 낫네. 저 여자 말대로 기를 숨기는 데 능숙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어.]
“그래? 그보다 굳이 우릴 부른 이유가 뭐야?”
[얠 소개하려구.]
츤츤이가 눈치를 주자 뒤에 서 있던 닥스훈트가 앞으로 나서며 인사했다.
“주군의 친구분들이시군요. 전 럭키라고 합니다. 주군의 충실한 종이죠.”
“어? 너 인간 말도 할 줄 알아?”
“네. 각성을 하니 가능해졌습니다.”
“그래? 근데 너 꼭 직립보행을 해야겠냐?”
닥스훈트는 기본적으로 허리가 길고 팔다리가 짧은 개다.
근데 이 개가 직립보행을 하고 있으니 그 모습이 기괴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문제라기보다 보기에 안 좋아서.”
“그렇다면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곤 바로 엎어져서 다른 개들처럼 네 발로 걸었다.
인사가 끝나자 나는 츤츤이를 따로 불러 물었다.
“근데 진짜로 개들의 왕이 될 셈이야? 인간으로 돌아가는 건 어떻게 하고?”
[거대한 적과 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갑작스런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힘 아닐까?”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정보야.]
“정보? 그게 개랑 무슨 상관이야? 설마 너 개들을 이용해서 정보를 모을 생각이야?”
[그렇지. 두고 봐. 나중에 엄청난 힘이 될 테니까.]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개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럼 이제 볼일도 다 끝났으니 돌아갈까?”
[난 럭키 저놈에게 조직 구성에 관해 대략적으로 알려주고 올 테니까 먼저 들어가.]
“알았어. 나중에 보자.”
난 조한희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안에서 나오자 각성자들의 시선이 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츤츤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곧 시선을 돌렸다.
“근데 태준 씨. 진짜 츤츤이가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니까. 정확히는 말이라기보다 직접적으로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면 돼.”
“그래? 그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거지?”
“그래야지.”
그때 멀리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형~!!”
이철진이다.
그는 방어력에 비해 스피드는 느려서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헉…헉…. 근데 사부님은? 개들은 또 어딨고?”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츤츤이와 개들을 찾았다.
“다 돌아갔어. 사부님도 해야 될 일이 있어서 다른 데 가셨고. 아마 내일이나 돼야 돌아오실 거야.”
“그래?”
이철진은 자신만 보지 못한 게 억울한지 시무룩해져 고개를 숙였다.
그때 조한희가 이철진을 아는 체 했다.
“혹시 철진 오빠 아니세요?”
오빠라는 소리가 들리자 이철진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한희를 발견하곤 매우 반가워했다.
“어? 한희잖아! 잘 지냈어?”
그를 유일하게 오빠라고 불러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조한희다.
“근데 오빠가 여기 왜 있어요? 그리고 사형은 또 뭐예요?”
난 궁금해하는 그녀에게 간단히 사정을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아까 그 개가 철진 오빠 스승이라고?”
“그렇다니까. 근데 너랑 사제가 아는 사이인건 알았지만 오빠 동생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어?”
“뭐, 어쩌다보니. 그나저나 우리 이럴게 아니라 태준 씨 집에 가는 거 어때?”
“우리집?”
그녀의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하긴 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괜찮아. 사제는 어때?”
“나도 한희가 온다면 너무 좋지.”
이철진도 조한희가 온다고 하자 좋은지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었다.
“근데 우리 집엔 손님 대접할 음식이 하나도 없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그냥 둘이 같이 산다고 하니까 어떤 곳일지 궁금해서 가보려는 거니까. 음식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돼.”
“좋아. 그럼 가자!”
동탄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전력으로 달리는 거다.
하지만 조한희를 배려해 우린 택시를 타고 근처까지 이동했다.
이철진은 손님이 오니 집 치워야 한다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돼.”
“생각보다 멀리 사네. 근데 여기에도 집이 있어?”
“그럼! 와보면 알아. 깜짝 놀랄 걸!”
내 말에 조한희는 기대 가득한 얼굴로 날 따라 걸었다.
그때 앞에서 당황한 얼굴로 뛰어오는 이철진이 보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사형. 그…그게….”
“왜? 무슨 일인데?”
“집이 초기화 됐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던전이 초기화 됐다고! 일단 와봐!”
서둘러 그를 따라가는데 조한희가 다급히 물었다.
“태준 씨. 무슨 일이야? 집이 초기화 됐다니? 던전은 또 뭐고?”
“그게 말이지…. 놀라게 해 줄려고 일부러 말 안 했는데 사실 나랑 사제는 던전 안에 살아.”
“뭐? 던전 안에? 그게 가능해?”
“응. 상급 던전의 경우는 클리어하면 그 사람 소유가 되거든. 그래서 그 안에 살고 있었는데….”
“그게 초기화 됐다고? 지금 그 소린거야?”
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내 눈에 던전 입구가 보였다.
근데 포탈의 색이 다르다.
던전의 포탈은 공략이 안 된 경우 노란색, 공략이 끝난 경우는 흰색으로 빛났다.
당연히 내 던전의 포탈은 흰색이어야 하는데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진짜 초기화 된 거야? 왜?
내가 알기로 상급 던전이 초기화 되는 경우는 한 가지 뿐이다.
이미 공략한 던전의 입구인 포탈을 파괴하는 경우.
그렇게 되면 던전은 초기화 되면서 다시 포탈을 생성한다.
하지만 포탈을 파괴하는 건 던전 안으로 강제로 들어가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힘이 필요했다.
흠. 만약 내 예상대로면 지금 저 안에서 누군가 던전을 공략하고 있을 수도 있겠어.
그때 이철진이 다가와 물었다.
“사형.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다시 공략해야지.”
그리곤 조한희를 바라봤다.
“한희야.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좀 도와줄 수 있어?”
그녀는 내 말에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고갤 끄덕였다.
“에휴. 어쩌겠어. 대신 오늘 주기로 한 2억은 없던 걸로 해. 태준 씨가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은 다 가지기로 했으니까. 어때?”
“좋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들 들어가기 전에 알아 둘게 있어.”
“알아 둘 거?”
이철진과 조한희는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던전이 초기화 됐다는 건 누군가 포탈을 파괴했기 때문일 거야. 그 말은 저 안에 다른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이철진과 조한희 모두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준 씨. 그럼 우리가 저 던전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랑 마주칠 수도 있다는 거야?”
하지만 난 고갤 저었다.
“그렇진 않을 거야. 같은 던전의 입장은 30분 동안만 가능해. 만약 최초 포탈 입장으로부터 30분이 지난 다음 들어가게 되면 새롭게 생겨난 던전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만날 가능성은 매우 적어.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지.”
“근데 사형은 이런 걸 어떻게 다 아는 거야?”
“나? 어…그냥…?”
조한희도 그 부분이 궁금했었는지 비슷한 질문을 했다.
“그냥 아는 게 어딨어? 아까 낮에 알려준 일급 기밀들도 그렇고 대체 어떻게 그런 정보들을 알고 있는 거야?”
“일단 여기부터 공략하자. 그 다음 자세히 알려줄게.”
“진짜지? 약속한 거야.”
“그래. 그보다 우리 빨리 들어가야 돼.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먼저 클리어할 수도 있으니까.”
그때 궁금한 게 또 생각났는지 조한희가 물었다.
“근데 우리가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공략에 성공하면 어떻게 돼?”
“그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튕겨 나와.”
“그럼 그 안에 갇힐 일은 없겠네. 철진 오빠. 우리 빨리 가요!”
내 얘기를 다 들은 조한희가 고맙게도 빨리 가자고 이철진을 끌고는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 포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흠. 다행히 입구 모습이 그대로인 걸 보니 많이 바뀌진 않은 모양이네.
던전의 경우 초기화가 되면 등장하는 적과 보스가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때에 따라선 던전 내부 구조까지 바뀌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쿠워어어어.
그때 어딘가에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자연스레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몇 달을 지겹게 들은 저 소리.
“태준 씨. 저게 대체 무슨 소리야?”
조한희는 갑자기 들려온 울부짖음에 잔뜩 움츠러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건 여기 던전 보스인 지옥 검투사 카이저가 내는 소리야.”
그리고 카이저의 소리가 들린다는 건 던전이 초기화 됐지만 보스는 똑같다는 소리다.
그 말은 내가 공략했을 때와 같은 던전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소리기도 했다.
쿠워어어어.
다시 들려온 카이저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난 눈을 빛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가서 죽여줄 테니까!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