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방어력 무한-27화 (27/196)

27화

“하하하. 너 돌았냐?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좀 맞을래?”

그때 뒤에 서서 구경하던 긴 생머리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다리를 물고 있는 개의 머리를 하이힐로 짓밟으며 앞으로 나섰다.

“오빠. 개들만 죽이기 지겨웠는데 간만에 사람 한 번 죽여볼까?”

“하하하하. 좋지. 들었냐, 이 병시….억!”

말을 하던 남자의 얼굴이 홱하고 돌아갔다.

“꺄악! 오빠!!”

“시끄러워! 내 의뢰인이 듣고 싶어 하는 건 니들 비명 소리니까 잡담은 좀 자제해 줄래?”

뺨을 맞은 남자는 맞은 곳을 잠시 만지더니 고개를 들고 날 바라봤다.

“이 새끼 봐라! 너 어디서 좀 놀았냐? 어?”

그 사이 그의 양팔은 서서히 도끼로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말을 하며 신체 변형에 필요한 시간을 벌려는 모양이다.

“내가 말했잖아. 내 의뢰인은 니들 비명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고.”

짝.

“억! 이…개새끼가!”

짝.

“이…이…. 악!”

짝. 짝. 털썩.

“자…잠깐…악! …아파….”

몇 대나 따귀를 맞던 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걸 본 뒤에 있던 여자가 급히 달려오며 그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오…오빠 잠깐만 기다려!”

순간 그녀의 몸에서 희미한 초록빛이 생겨나더니 두 손으로 모이는 게 보였다.

회복?

아니나 다를까 뺨을 맞아 부은 얼굴이 빠르게 회복됐다.

“그거 설마 치유 능력이야?”

내 말에 그녀는 매섭게 날 째려봤다.

“흥! 이제야 잘못 건드렸다 싶지? 내가 뒤에서 서포트 할 테니까 저 새끼 죽여버리자.”

“걱정 마. 안 그래도 사지를 찢어버릴 생각이니까!”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만큼 맞았는데도 실력차를 못 느끼는 건가?

“힐러라. 직접 힐을 하는 걸 보니 D급? 아니, E급 힐러 정도 되겠네.”

“뭐?”

“너도 딱 보니 E급 딜러네. 맞지?”

“저 새끼가 뭐라는 거야?”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몰랐지만 E급이라고 하니 괜히 기분이 안 좋았다.

“아아. 미안미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나간다면 말이지.”

지금은 각성자들의 능력에 대해 등급이 매겨져 있지 않지만 조만간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생겨나게 된다.

그 기준은 전 세계 공통으로 각성자들 간의 무분별한 전투를 막고, 던전이나 게이트 등급에 따라 편히 각성자들을 고용하기 위해 만든 기준이다.

하지만 이 등급이 오히려 새로운 계급이 되어 차별을 만들게 된다.

물론 등급 상승이 불가능 한 건 아니다. E급이라도 훈련을 통해 힘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기연이나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자력으로 C급 이상 올라가기는 매우 힘들다.

“뭐래는 거야? 그냥 죽어. 이 새끼야!”

훙. 후웅.

그가 휘두른 도끼가 매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왔지만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퍽.

“끄어억!”

배에 주먹을 맞은 그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해? 힐 안해?”

“어? 힐? 아!”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등에 또다시 손을 대고 치유 스킬을 시전했다.

퍼억. 퍽.

그가 치유되자마자 난 발로 두 사람을 걷어찼다. 그리곤 안 아픈 곳이 없도록 꼼꼼하게 밟았다.

“꺄악…억!”

“끄억…꺽…. 그…만!! …헉!”

적당히 밟고 나자 공격을 멈추고 웃으며 여자를 바라봤다.

“뭐해? 힐 안해?”

“엉…엉…. 죄송해요….”

“힐 하라니까. 어서!”

그녀는 마지못해 남자와 자신에게 힐을 넣었다.

그리곤 다시 내 구타가 시작됐다.

구타와 힐, 그리고 다시 구타.

결국 그녀는 탈진해 더 이상 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난 바닥에 누워 꿈틀거리는 그들을 보다가 조한희를 돌아봤다.

“죽일까?”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만 만들어줘. 그들을 죽일지 말지는 내가 아니라 저 아이들이 결정해야지.”

그녀는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개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 그게 좋겠네.”

난 바닥에 누워있는 그들을 잠시 보다가 다리를 세게 걷어찼다.

딱 부러질 정도의 강도로 말이다.

“끄어어억!”

“꺄아악!”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서 떨어지자 그제야 근처에 있던 개들이 이를 드러내며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갔다.

“오…오지마! 으악!”

“아…안 돼! 꺄아악!”

이제 한 명 남았네.

난 고개를 돌려 마지막 남은 인물을 바라봤다.

큰 키에 장발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은 독특하게 원숭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체형을 봤을 때 남자로 보였지만 그마저도 망토를 두르고 있어 확실하지 않았다.

한 번은 도와주러 들어올 줄 알았는데 왜 전혀 움직이지 않는 거지? 동료가 아닌가?

“넌 동료들이 죽어가는 데 가만히 있을 거야?”

“동료? 저딴 쓰레기들이?”

응? 음성변조?

들리는 목소리는 기계에 의해 변조된 목소리였다.

“동료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그냥 재밌어 보여서 같이 와봤지. 근데 너 움직임이 좋은걸 보니 괜찮은 스승을 뒀나봐?”

이 놈 뭐지?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캬하하하하.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붉은 달이 아름답길래 잠깐 산책 나온 것뿐이니까!”

“그래? 근데 어쩌냐? 내 의뢰인이 니 놈 비명소리도 듣고 싶어 하는데.”

그 말에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또다시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캬하하하! 내 비명소리라고? 재밌네. 정말 재밌어! 근데 이를 어쩌지? 난 지금 가봐야 되거든.”

“누가 보내준대?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순간 내 몸이 사라지며 정체불명의 인물 코앞에 나타났다.

환영보를 시전한 것이다.

후웅. 펄럭.

하지만 내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 사람이 피한 게 아니다.

주먹이 몸에 맞았는데 그냥 지나가버렸다.

마치 망토 안이 텅 비어있는 것처럼.

“어? 이거 뭐야?”

난 급히 다시 자세를 취했지만 그는 공격할 의사가 없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캬하하하! 더 놀아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 조만간 또 보자구!”

“어딜 가려구!”

그를 잡으려 했지만 그는 순식간에 원숭이 가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엔 그가 쓰고 있던 원숭이 가면만이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난 떨어져 있는 가면을 요리조리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가면이다.

헐. 어디로 간 거지? 그리고 분명 때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어. 마치 몸 자체가 없는 것처럼….

그때 조한희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한희야. 한 명 놓쳤네. 그래도 나머지는 처리했으니까 약속대로 두당 일억 주는 거지?”

내가 능청스럽게 묻자 그녀는 알겠다는 듯 머릴 끄덕였다.

“갑작스런 부탁이었는데 들어줘서 고마워.”

“그보다 갑자기 왜 그런 거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얘기해줄게. 그보다 지금 많은 각성자들이 곳곳에서 모여들고 있어. 이제 어쩌지?”

“그래?”

그러면서 츤츤이를 바라봤다.

[흠. 이제 내 차롄가! 안 그래도 이놈의 개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는데.]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는데?”

[계속 자기들의 왕이 오늘 탄생할 거라고. 그 말만 하는데 시끄러워 죽겠어.]

“왕이면 저 놈을 얘기하는 거 같은데 니가 가서 왕하면 되겠네.”

난 저 멀리서 직립보행을 하고 있는 닥스훈트를 가리켰다.

[흥!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그리곤 닥스훈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우린 좀 더 잘 보이는 곳에 올라가서 구경할까?”

“저대로 보내도 괜찮은 거야?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다쳐? 여기 있는 개 전부가 달려들어도 저 놈한테 상처 하나 못 낼 거야. 그러니 전혀 걱정할 거 없어. 일단 좋은 자리나 찾아보자.”

우린 건물 위로 올라가서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이동하다 보니 조한희 말대로 곳곳에 각성자들이 자릴 잡는 게 보였다.

다들 궁금하긴 한가 보네. 저렇게들 모이는 걸 보면. 그나저나 오늘 잘하면 츤츤이 완전 스타 되겠는걸! 크크크크.

그때 드디어 츤츤이가 개들이 모여 있는 중앙.

즉, 직립보행을 하는 닥스훈트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닥스훈트는 자신에게 도전한 셰퍼드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야! 이제 그만했으면 놔주지 그래?]

닥스훈트는 갑자기 난입한 츤츤이를 노려보며 물고 있던 셰퍼드를 휙하고 옆으로 던졌다.

그리곤 피가 묻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감히 누가 왕에게 도전하는 것이냐! 당장 무릎을 꿇고….]

[시끄러워! 개새끼들은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거야! 너 각성한 능력이 뭐야?]

츤츤이는 닥스훈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게 기분이 상했는지 닥스훈트의 전신에서 숨 막힐 듯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감히 내 말을 끊다니. 건방지…깽!]

츤츤이의 앞발이 닥스훈트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 공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닥스훈트는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나 자세를 잡으며 다시 이를 드러냈다.

[넌 사지를 찢어주마. 널 마지막으로 죽이고 내가 왕이 됨을 선포하…깨깽!]

다시 츤츤이의 앞발이 닥스훈트의 얼굴에 작렬했다.

[닥쳐! 개새끼들은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야? 묻는 말에나 대답하라니까.]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일단 좀 맞자.]

하지만 닥스훈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츤츤이 바로 옆으로 이동해서는 목덜미를 물어왔다.

하지만!

퍽.

[깽!]

달려들던 닥스훈트는 오히려 츤츤이에게 강렬한 일격을 맞고 도로 튕겨 나갔다.

그때부터 닥스훈트는 일어날 때마다 한 대씩 맞았다.

얼마나 맞았는지 죽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된 것 같네. 각성한 능력이 뭐야?]

이제는 바닥에 누운 채 일어나지도 못하는 닥스훈트를 향해 츤츤이가 물었다.

[…….]

[기절한 척하지 마라. 죽는다.]

[…예. 그리고 능력은 이미 보여 드렸는데….]

[이미 보여줬다고? 언제?]

[그게… 계속 사용했었는데요.]

그 말에 츤츤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 거렸다.

[제대로 말 안해?]

[…제 능력은 절대복종입니다.]

[절대복종?]

[개라면 무조건 제 말에 복종하게 됩니다. 그게 제 능력입니다.]

[그딴 게 능력이라고? 근데 나한텐 왜 안통하는데? 거짓말 하는 거 아니야?]

[그니까 왜 안통하냐구요! 저도 미치겠어요!]

진짠가 보네. 근데 절대복종이라. 이거 잘 활용하면 제법 쓸만하겠어.

츤츤이는 양재역을 꽉 매운 개떼를 슥 한 번 둘러보곤 닥스훈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니들 왕이다. 불만 없지?]

[그럼요. 불만이라니요. 여기 있는 개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는 위대한 분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저희의 왕이 되셔야지요.]

개들은 기본적으로 충성심이 매우 강하다.

그 말은 한 번만 제대로 길들여 놓으면 배신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말이다.

[어디 능력 한 번 볼까. 여기 있는 개들에게 내가 왕임을 선포하고 내 말에 복종하라고 해봐.]

[예.]

닥스훈트는 낑낑거리며 일어나서는 큰 소리로 개들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닥스훈트가 개 짖는 소리를 멈추고 츤츤이를 돌아보며 고갤 숙였다.

[명령대로 새로운 왕의 탄생을 선포했습니다. 이제부터 왕의 말에 절대 복종할 겁니다.]

[그래?]

츤츤이는 주위를 둘러보다 근처에 있는 빌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개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앉아!]

그 순간 놀랍게도 거기 있던 모든 개들이 자리에 앉았다.

[엎드려! 굴러! 손!]

츤츤이의 말에 개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츤츤이가 큰 소리로 짖었다.

[내가 이제부터 너희의 왕이자 구원자다. 모두 내 말에 절대 복종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구원을 줄 것이다!]

개들의 왕이자 사이비 교주 탄생의 순간이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