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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방어력 무한-26화 (26/196)

26화

선택의 밤

그건 소설 속에서도 나오는 얘기다. 비정기적으로 각성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날이 바로 선택의 밤인데, 읽어보기만 했을 뿐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다.

근데 원래 인간 각성자만 뽑는 거 아니었나? 각성하는 게 인간이 아니라는 건 대체 뭔 말이지?

[선택의 밤? 저게 무슨 말이야?]

“어? 너도 메시지가 보여?”

[당연하지. 내가 장님이냐?]

“그럼 지금까지 메시지가 다 보였던 거야?”

[지금까지? 아니. 저런 메시지는 이 세상으로 넘어오기 전에 작가 뭐시기라던 걔가 쓴 거 밖에 못 봤는데.]

“그래?”

지금까지 메시지가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고? 저게 뭘 의미하는 걸까? 설마 모든 동물들에게 이 메시지가 보이는 건 아니겠지?

헌데 얘길 나누다보니 나와 츤츤이가 본 메시지의 내용이 좀 달랐다.

[내가 본 내용은 ‘곧 선택의 밤이 시작됩니다. 선택의 밤이 되면 소수의 존재가 각성을 하게 됩니다. 그들을 찾아가세요.’ 이렇게 나오던데!]

나랑 내용이 다르잖아! 츤츤이는 개니까 저건 개나 동물 전체에게 보낸 메시지 같은데? 근데 그들을 찾아가라고? 왜?

얘기를 들을수록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냥 단순히 힘을 키워서 히든 보스만 잡으면 끝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상황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어? 한희네? 이 시간에 웬일이지?

“여보세요.”

- 태준 씨. 메시지 봤어?

“어. 봤어.”

- 여긴 지금 난리가 났어.

“난리? 왜? 메시지 때문에?”

- 온 서울의 개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어!

“개들이?”

순간 머릿속에 츤츤이가 봤다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확히 어디로 모이는데?”

- 알아본 바로는 양재역 근처로 모이고 있나봐.

“알았어. 정보 고마워! 나도 자세히 한 번 알아볼게.”

전화를 끊으려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조한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잠깐만! 태준 씨. 혹시 양재역으로 갈 거야?

“어. 그럴까 하는데. 왜?”

- 그럼 나도 같이 가.

“너도? 괜찮겠어?”

- 응. 바로 출발할 테니까 양재역 3번 출구에서 만나.

“그래.”

난 전화를 끊고 츤츤이에게 통화 내용을 이야기해줬다.

“이거 아무래도 각성한 개가 나온 모양이야. 개들이 한 곳으로 모이고 있다는 걸 보면 말이지.”

[각성한 개라. 재밌겠는데! 같이 가보자.]

“너도 가게?”

[개가 각성을 했을 수도 있다며? 그럼 가서 서열 정리 한 번 해줘야지.]

“서열 정리? 너 그런 것도 했냐?”

[사실은 스트레스 좀 풀려고. 제자 놈 가르치다가 열불나 뒤지겠다.]

그제야 나는 그가 왜 따라나서려는지 이해가 됐다.

“나야 같이 가주면 좋지. 개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지도 알 수 있고 말이야.”

그렇게 길을 떠나려는데 이철진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기 사부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너? 넌 집 지켜야지. 그 사이에 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저도 좀 가보고 싶은데….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츤츤이가 안 된다고 말하려는데 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 같이 가자.”

그는 내 말에 아이처럼 기뻐하며 되물었다.

“진짜? 진짜 같이 가도 돼?”

“그럼. 사제가 같이 가면 좋지. 가자.”

[에휴. 덜 떨어진 놈!]

츤츤이는 아이처럼 방방 뛰며 기뻐하는 이철진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 볼까?”

“좋지. 가자!”

이철진은 마치 소풍가는 아이마냥 기뻐하며 앞장서 뛰어갔다. 그때 츤츤이가 내게 말했다.

[야! 너 수련 게을리 하고 있는 거 아니지? 완전 소화가 됐다곤 하지만 이동할 땐 언제나 환영보를 사용하도록 해. 그래야 제대로 된 환영보를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날 테니까!]

“제대로 된 환영보? 그럼 지금 내가 펼치는 건 뭔데?”

[그것도 환영보라면 환영보지. 제대로 된 오의를 깨닫지 못하고 펼치는 흉내내기에 불과하지만 말야.]

지금껏 내가 펼친 환영보가 흉내내기일 뿐이라고?

“그런 거면 진작 알려줘야지.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건데?”

[지금이 알려줄 때라 알려주는 것뿐이야. 그리고 미리 말해줬다면 오히려 지금만큼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을 거고.]

“그럼 그 오의는 어떻게 깨닫는 건데?”

[말 그대로 깨닫는 거야. 누가 알려줘도 스스로가 깨닫지 못한다면 진정한 환영보는 펼칠 수 없어.]

그 말에 난 수학 학원에서 학생들 가르칠 때를 떠올렸다.

하긴. 그때도 내가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결국 스스로 문제를 풀면서 깨닫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었으니까.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되겠네.

“그럼 내가 진정한 환영보를 펼치는지 안 펼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어?”

내 말에 츤츤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자연스레 알 수 있을 거야. 니가 진정한 환영보를 펼친다면 세상에 널 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게 나라도 말이지.]

“그래?”

그 정도로 확신한다고?

생각해 보면 오늘 만난 최우혁만 해도 스피드에서 따라잡질 못했었다. 그래서 환영보에 약간 실망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근데 저 말이 사실이라면 다시 한 번 불태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어. 그럼 나 먼저 환영보 사용해서 갈 테니까 넌 사제랑 같이 와. 장소는 사제가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환영보를 전개해 순식간에 앞서 가던 이철진을 추월했다. 그때 츤츤이가 옆으로 따라 붙으며 말했다.

[아니. 나도 같이 가자. 저 새낀 너무 느려서 같이 가다간 화병 날 것 같아.]

난 뒤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철진을 힐끔 보곤 고갤 끄덕였다.

“그럼 전력으로 간다. 따라올 수 있지?”

내 말에 츤츤이는 코웃음을 쳤다.

[흥! 따라올 수 있냐고? 웃기지 말고 달리기나 해!]

어쭈. 날 무시해? 오전까지의 내가 아니라구. 어디 좆빠지게 뛰어봐라!

그때부터 난 전력으로 양재역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 지 30분 만에 우린 양재역 3번 출구에 도착했다.

“헉…헉…. 다 왔다.”

양재역에 도착한 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째는 내가 전력으로 달렸음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따라온 츤츤이의 모습이다.

난 그런 츤츤이를 새삼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쟤가 저 정도였나?

[여기야? 근데 뭔 개새끼들이 이렇게 많아!?]

두 번째로 놀란 게 바로 그거다. 엄청난 수의 개들. 한희한테 들어서 어느 정도 많겠구나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그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양재역은 넘쳐나는 개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난 근처에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양재역 전체를 내려다봤다.

미친! 이게 다 개라고?

개들은 양재역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아직도 사방에서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근데 이것들이 어디로 모여들고 있는 거야?

그때 조한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태준 씨. 일찍 왔네.”

“어? 어떻게 찾았어?”

“호호호. 내가 길잡이라는 거 잊었어?”

조한희는 낮과 다르게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워낙 외모가 뛰어나다보니 그것마저 너무 잘 어울렸다.

“이야! 근데 옷발 잘 받는데!”

“그래? 고마워.”

그녀는 약간 쑥스러워하며 고마워했다.

“근데 그 옆에 개는 뭐야? 반려견이야?”

“반려견이라. 뭐 그렇다고 봐야지! 하하하하!”

그때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츤츤이가 내게 물었다.

[야. 저 여자는 누구냐? 너 아는 사람 없잖아?]

“아. 오늘 이철진이 소개해 준 길잡이가 쟤야.”

[그래? 얼굴도 이쁘장한 게 내 스타일인데!]

“뭐?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태…태준 씨? 갑자기 왜 그래?”

그녀는 내가 갑자기 개한테 욕을 하자 당황했는지 한 걸음 물러났다.

“아! 별거 아니야. 얘가 좀 특별한 개라 사람 말도 알아듣고, 말도 하거든. 야! 한희한테 인사해.”

그러나 츤츤이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인사하라니까! 니 스타일이라며?”

“컹! 컹!”

“이 놈이 갑자기 왜 이래?”

그때 조한희가 측은한 표정을 지으며 다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다.

“태준 씨. 괜찮아. 너무 외롭다 보면 그럴 수 있어. 나도 제인이란 인형이 진짜로 말을 한다고 믿었으니까. 물론 7살 때긴 하지만….”

“그런 거 아니야! 얘 진짜 말할 수 있다니까! 야! 너 빨랑 말 안해?!”

“컹! 컹!”

날 엿 먹이는 츤츤이를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는데 조한희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태준 씨. 저기 좀 봐!”

“응? 어디?”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저게 뭐야? 저거 개 맞아?”

거기에는 직립보행을 하는 개가 보였다. 생긴 걸 보니 닥스훈트 같다.

“저거 닥스훈트 아니야?”

내 말에 그녀가 동의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맞는 거 같은데. 근데 닥스훈트가 저렇게 설 수도 있는 거야?”

“아무래도 저놈인 것 같네.”

“저 놈이라니? 뭐가?”

“각성한 개 말이야. 아무래도 저 개가 각성을 한 것 같애.”

그제야 그녀도 뭔가가 생각났는지 깨달음의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각성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라는 뜻이 이런 거였구나!”

그때 갑자기 미친 듯이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저래? 어? 저거 사람 아니야?”

개들의 시선이 향하는 저 멀리에 몇몇 사람들이 개들을 잘근잘근 짓밟으며 오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세 사람이었는데 아무래도 각성자 같았다.

“저러다 개들 다 죽겠네. 한희야, 어떻게 할래?”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옥상에서 뛰어내려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 쟤가 갑자기 왜 저래?

나와 츤츤이는 서둘러 그녀를 뒤따라 갔다.

[야. 저 여자 갑자기 왜 저래?]

“…….”

[뭐야? 삐졌냐?]

“이 새끼야. 삐지긴 누가 삐졌다 그래? 니가 그딴 식으로 날 엿먹이니까 그런 거 아니야?!”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삐지기는. 그보다 쟤는 왜 저래? 원래 저런 캐릭터야?]

“아니. 오늘 처음보긴 했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는데 잘 못 본건가?”

그 사이 우린 개들을 살육하며 오고 있는 세 사람 앞에 도착했다.

“멈춰요!”

“우리? 이쁜 아가씨. 지금 우리한테 멈추라고 한 거야?”

“당신들! 무슨 권리로 개들을 이렇게 죽이는 거죠? 저 개들도 누군가에겐 가족이에요!”

그 말에 온몸을 밀리터리룩으로 치장한 남자가 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가족? 저건 그냥 개새끼일 뿐이야. 그리고 개새끼는 이렇게 죽어도 돼!”

그리곤 망치로 변한 손을 들어 그의 다릴 물어뜯고 있던 퍼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퍽.

“깨갱.”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퍼그의 머리가 터지며 그대로 바닥에 축 늘어졌다.

“하지 말라고!!”

조한희는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앙칼지게 소리치며 남자한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달려드는 그녀를 보곤 뱀 같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슬쩍 몸을 돌려 그녀의 공격을 피하곤 바로 주먹을 날리는데 그 위치가 가슴이었다.

남자의 뱀 같은 미소가 더욱 짙어지며 그의 주먹이 가슴에 닿으려는 찰나.

턱.

그의 주먹은 내 손에 의해 막혔다.

“야! 매너 손 몰라?”

그는 자신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넌 또 뭐야?”

하지만 난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조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희야, 어떻게 할까?”

“태준 씨. 한 사람당 일억이야! 저 새끼들 비명소리가 하늘에 있는 개들한테까지 들리게 해줘!”

그제야 난 남자를 돌아보며 웃었다.

“다들 들었지? 이제 좀 맞자!”

나 혼자 방어력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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