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뭐? 참교육?”
최민혁은 내 말에 잔뜩 인상을 쓰며 다가왔다.
“어디서 듣보잡 새끼가 나대고 있어?!”
다가오는 그의 몸은 서서히 노란 빛을 내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상황부터 파악했다.
침대 위에 조한희가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옷이 그대로인 걸 보니 아직 손을 대진 않은 모양이다.
휴! 다행이 별 일 없었나 보네.
그때 최민혁의 짜증과 화가 뒤섞인 외침이 들렸다.
“어딜 보고 있어? 니가 여기 왜 있냐고?!”
외침과 함께 그는 아까 게이트에서처럼 불타는 몸으로 용수철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난 키라의 브레스도 견뎠던 몸. 저 정도 불덩이는 우습다.
난 그대로 천의 일권과 이권을 연달아 사용했다.
퍼퍽. 퍽.
“어억! 으악!”
달려들던 그는 내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난 그대로 그에게 달려가서는 반 정도만 죽을 정도로 팼다.
이야. 내공이 높은 게 좋긴 좋구나. 게이트에서 봤을 때도 이길 순 있었겠지만 이 정도로 쉽게 잡을 순 없었을 텐데.
“억! 그…그만…. 제…발…. 으억!”
난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그를 보고서 그제야 공격을 멈췄다. 그리곤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죽여 버리고 싶지만 그 즐거움은 너희 형한테 넘길게. 오랜만에 형이랑 즐거운 시간 되라구.”
그 말에 고통에 꿈틀대던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혀…형?”
“낄낄낄낄. 거기 너 잠깐만 비켜줄래? 동생과 숨바꼭질을 해야 되거든. 낄낄낄.”
언제 왔는지 등 뒤엔 최우혁이 인간의 모습으로 서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난 누워있는 조한희를 들쳐 매고는 방을 나서며 최민혁에게 말했다.
“그럼 즐거운 시간되라구. 문은 닫고 갈게.”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오자 소란을 눈치 챈 길드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웬 놈이냐?”
“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꼭 나쁜 놈 같잖아.”
“뭐?”
난 매고 있던 조한희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목을 좌우로 풀었다.
“뭐해? 안 들어와?”
그때 누군가 날 알아보고는 다급히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자…잠깐만! 저 사람 오늘 게이트에 같이 들어갔던 그 사람 아니야?”
“어? 맞네 맞아.”
날 알아봤나보네. 그럼 좀 편하겠는 걸.
“그런데도 계속 할 거야?”
“저 사람이 내가 아까 말한 그 사람이야.”
“그 S등급 몬스터를 한 방에 산산조각 내버렸다던?”
“그래. 그렇다니까!”
길드원들이 숙덕대는 걸 듣더니 간부로 보이는 이가 버럭 화를 냈다.
“뭘 그렇게 수군거리고 있어! 어서 저 새끼 잡아!”
하지만 다들 머뭇거릴 뿐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모습에 그는 화를 내며 앞으로 나섰다.
“이 새끼들이…! 정 그러면 내가 처리할 테니 보고 있어. 대신 끝나고 다들 각오해!”
큰 소리 치며 나서긴 했지만 솔직히 간부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 그는 왼손에 얼마 전 중급 던전에서 얻은 한손 도끼를 소환했다. 생애 최초의 고급 등급 아이템. 그걸 손에 들자 서서히 자신감이 돌아왔다.
‘상대는 무기도 안 든 상태. 고급 아이템까지 든 내가 질 리 없어!’
그는 빠르고 힘차게 내 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도끼 소리가 제법 매서웠다. 하지만.
턱.
그가 휘두른 도끼는 내 목에 닿기는 했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상대가 절망을 느낄 때는 어떤 짓을 해도 안 된다는 걸 알게 될 때지.
“이익! 죽어랏! 죽어!”
턱. 턱.
하지만 그가 휘두르는 도끼는 내 몸에 어떤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여기에 결정적 한 방이면 공포까지 더해지지.
계속 가만히 공격에 맞고만 있던 난 최대한 무심한 듯. 하지만 빈틈을 향해 정확히 권강을 찔러 넣었다.
퍼펑.
굉음과 함께 그는 한참을 날아가더니 바닥에 축 늘어졌다. 기절한 모양이다. 난 그가 떨어뜨린 도끼를 집어 들고는 맛있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와그작.
“음. 괜찮네!”
와작. 와그작.
길드원들은 마치 괴물을 본 듯한 눈으로 도끼를 씹어 먹는 날 쳐다보고 있었다.
- ‘날카로운 도끼’를 섭취하셨습니다. 내공이 12만큼 오릅니다.
난 그제야 다른 사람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계속 할 거야?”
“아…아니요. 그냥 가셔도 됩니다.”
“어서 가세요.”
“고마워. 수고들 하고. 다음에 좋은 자리에서 또 보자구.”
난 조한희를 다시 들쳐 엎고 태연히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내려가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있는 김인호가 보였다.
“죽었나?”
자세히 살펴보니 죽진 않았는지 미약하게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휴. 다행이다. 안 죽었구나.”
난 다시 조한희를 한켠에 내려놓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냅다 뺨을 후려 갈겼다.
짝.
“야! 일어나 봐!”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어쭈. 안 일어나?”
짝. 짝.
“이래도 안 일어나?”
여전히 반응이 없다.
“진짜 기절했나보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일어날 때까지 때리는 수밖에.”
그리곤 또 때리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움찔.
“바…방금 정신 차렸어요.”
“그렇네. 그래도 일단 들어 올린 것까진 맞자!”
짝.
“아흑! 잘…못 했어요. 흑…흑….”
“잘못했지? 그치?”
“네. 돈은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다른 건?”
“네? 다른 거라니. 무슨?”
그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내 정신적 육체적 피해보상도 해줘야지! 설마 그냥 돈만 내놓고 끝낼 생각은 아니지?”
“어! 그….그게….”
“이 양심도 없는 새끼 봐라! 뭐, 길게 말하기도 귀찮으니 아이템 있는 곳이나 말해.”
“네? 아이템이요?”
그는 울상이 돼서는 머뭇거렸다.
“왜? 못 알려주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더 맞을래?”
“아…아닙니다. 근데 아이템은 진짜 없습니다. 던전을 공략하고서 나오는 아이템 대부분은 길드장님 본가에 보내거든요.”
“본가?”
본가라면 곰인간인 아버지 집을 말하는 건가?
“예.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아이템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는 내가 한 발 물러난 듯 보이자 다행이라는 듯 안도했다.
“그럼 돈으로 내.”
“네?”
“못 들었어? 돈으로 내라고!”
“어…얼마나?”
“너희 게이트 처리 보상금으로 얼마나 받았어?
“10억입니다.”
“그래? 그럼 10억만 더 내!”
“네? 10억이요? 그건 좀….”
그는 10억이란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10억을 드리고 나면 건물 유지비와 길드원들 월세도 못줄지 모릅니다.”
“일단 있다는 말이네. 그럼 내놔! 니네 사정은 내 알바 아니고.”
“그래도….”
“으으음!”
그때 뒤쪽에서 조한희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어? 한희야, 정신이 들어?”
“으음. 여기가 어디지?”
일어나 잠시 정신을 못 차리던 그녀는 날 보고 화들짝 놀랐다.
“태준 씨!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이미 일처리는 끝냈어. 이제 돈만 받고 가면 돼.”
난 대충 그녀에게 현재 상황을 이야기 해줬다.
말을 다 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김인호에게 다가가 세차게 뺨을 날렸다.
짝.
“아악!”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나 불꽃 싸다구를 날린 다음에야 손을 멈췄다.
“이제 돈 내놔. 지금 바로.”
하지만 그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대가리 그만 굴리고 바로 송금해. 계좌는 여기 있으니까.”
난 아까 미리 계좌번호를 써둔 종이를 김인호에게 전해줬다. 그는 피투성이인 손으로 스마트 폰을 꺼내 이체를 시작했다.
“이체 했습니다. 여기 보세요.”
그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에는 20억을 이체한 내역이 보였다.
“땡큐. 앞으론 착하게 살고. 밖에서 나 안 만나게 조심하고.”
일 처리가 끝나자 조한희는 여기 잠시도 더 있기 싫은지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화룡 길드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온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한희야. 오늘 20억 벌었으니까 약속대로 10억씩 나누자. 내가 너한테 빌린 돈도 있으니까 니가 13억 가지고 내가 7억 받으면 되겠네. 괜찮지?”
“근데 태준 씨 지금 스마트 폰 없지 않아? 아까 게이트에서 싸울 때 다 타지 않았어?”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가는 길에 잠깐 폰만 사고 바로 이체해줄게.”
난 근처 대리점에 들어가 새로운 스마트 폰을 산 다음 바로 조한희 계좌로 13억을 이체했다.
“잘 들어갔지?”
스마트 폰을 확인한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미리 말했던 대로 던전을 돌 생각이야. 근데 상급 던전 이상을 돌 거라 우리 둘만으론 좀 위험할 수도 있어. 그래서 괜찮은 딜러나 지원 계열 각성자를 섭외하면 어떨까 싶긴 해.”
이번에 최우혁을 상대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공격력이 아직 한참 부족하다. 실제로 천의 이권으론 최우혁에게 치명상을 주지도 못했다. 그건 키라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딜러나 버프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일 좋은 건 내가 강해지는 거지만 말이야.
“그것도 괜찮겠네. 용병을 데려가도 좋고.”
“일단 방법을 좀 생각해 보자. 오늘은 들어가서 좀 쉬고 내일 내가 다시 연락할게.”
헤어진 다음 곧바로 현재 머물고 있는 상급 던전 기드온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날 반겼다.
“끄아악! 으악!”
[에이. 머저리 같은 놈. 그것도 못 버티다니! 응? 왔어?]
츤츤이는 내게 대충 인사를 하곤 다시 이철진에게 집중했다.
[어? 요령 피우네. 자. 백대 맞기 준비.]
“스…스승님. 잠깐만 쉬면 안 될까요?”
[힘들어? 잠시 쉴까?]
“정말요?”
쉰다는 말에 이철진은 환하게 웃었다.
[그래. 맞으면서 쉬면되지. 그럼 쉬고 있어. 난 때릴 테니까!]
“으악! 끄아아악!”
그 모습에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간이침대에 몸을 뉘였다. 오늘 하루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철진이 쳐들어 왔고, 게이트에서 키라와도 싸웠다. 거기에 조한희와 화룡길드까지 쳐들어갔으니 피곤 할만도 하다.
후아. 이제 좀 자 볼까!
씻지 않아 좀 찝찝하긴 했지만 여긴 어차피 씻을 곳도 없다. 거기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철진의 비명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날 흔들어 깨웠다.
“아이 씨! 누구야?”
깨운 사람은 이철진이다. 난 잔뜩 짜증 섞인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사형! 밖에 좀 나가봐야겠어. 달이 떴는데….”
“달이 떴는데 왜?”
“달이 붉은 색이야.”
“뭐?”
“지금 하늘에 붉은 색 보름달이 떴어!”
지금 뭐라는 거야?
“츤츤이, 아니지. 스승님은 어디 갔어?”
“지금 밖에 계셔. 스승님이 사형을 깨워 오라고 하셨어.”
“그래?”
츤츤이가 날 불렀다고? 그럼 보통일이 아니란 건데.
난 이철진과 함께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던전 입구에는 츤츤이가 심각한 얼굴로 서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러다 하늘을 봤는데 진짜 붉은 색 보름달이 떠 있었다.
“어? 진짜 붉은 색이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눈앞에 메시자가 나타났다. 근데 메시지의 글자색이 달랐다. 지금까진 평범한 흰색이었는데 지금은 붉은 색이다.
- 곧 ‘선택의 밤’이 시작됩니다. ‘선택의 밤’이 되면 새로운 각성자들이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각성하는 건 인간만이 아니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