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이종족.
세상엔 다양한 종족들이 인간들 몰래 사회에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격변 후 세상이 변하면서 이종족들은 서서히 자신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본래 자신과 다르거나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말살하거나 배척한 다음, 그들의 존재를 미신이나 전설 속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다양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가 나오자 그 양상이 변했다.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이종족의 수는 상당히 많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이종족이 늑대인간과 마녀, 뱀파이어 등이다.
곰인간의 경우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종족 중 하나다. 그래서 정보가 많지는 않지만 곰이라는 특성상 엄청난 괴력을 지니고 맷집도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최민혁!!!”
곰으로 변한 남자는 미친 듯이 최민혁의 이름을 부르다 갑자기 뚝 그치더니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날 바라봤다.
“이제 그만 내려오지. 보기에 안 좋은데.”
? 미친 거 아니었어?
변하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말투. 난 그의 말대로 손을 놓고 그와 살짝 거리를 두고 섰다.
“멀쩡하네! 그보다 넌 뭐야? 최민혁이랑 쌍둥이야?”
최민혁이란 말에 곰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그 이름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새끼 이름은 입 밖에도 내지마!”
그리곤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다.
“난 최우혁이다. 그 새끼 형이지. 여기서 그 새끼는 니가 아까 말한 그 새끼야.”
그는 최민혁의 이름을 입에 담기도 싫은지 그 새끼란 호칭으로 불렀다.
“아! 나도 그 새끼 이름 부르는 거 싫어. 그것만큼은 통하네. 근데 넌 왜 여기 갇혀 있는 거야? 갇혀 있는 거 맞지?”
이번에도 내 질문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갑자기 제자리에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몸이 커진 만큼 무게도 엄청난지 그가 뛸 때마다 바닥을 통해 몸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전해졌다. 한참을 뛰던 그는 겨우 진정이 됐는지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 새끼랑 내가 쌍둥이로 태어났을 때 나만 곰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나왔지. 그 새끼는 아무런 능력도 없었어. 당연히 아버지의 후계자는 나로 지목 됐고, 그 새끼는 그런 날 심하게 질투했지.”
잠시 말을 멈춘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그날이 온 거야. 대격변. 그날 우리 둘 모두 각성자가 될 수 있었어. 헌데 이상하게 난 내 안에 들어온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어. 그로 인해 반쯤 정신 나간 난 미쳐 날뛰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 몇이 희생됐지. 그것 때문에 난 모든 걸 잃고 여기 갇혀 있는 거야. 근데 그게 다 그 새끼 때문이란 걸 얼마 전에 알게 됐어.”
“니가 미쳐 날뛴 게 그 새끼 때문이라고?”
“그래. 그 새끼는 그 전부터 날 밟으려고 김인호란 새끼랑 작전을 진행 중이었어. 마녀에게서 몰래 제작한 이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약을 조금씩 조금씩 내게 먹였던 거지. 근데 갑자기 각성자가 되면서 그 약기운도 폭발적으로 증가한 거야. 그래서 미쳤던 거고.”
헐. 그런 경우도 있어?
“그럼 지금은 왜 멀쩡한 건데?”
“그건 나도 여기 있다 보니 안 사실인데 곰으로 변하면 이 힘이 제어가 되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더라구. 대신 인간의 모습일 땐 아직도 제어가 안돼. 몸 안에 그 약 기운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거든.”
“그래? 뭐… 너희 가족사는 잘 들었는데 난 여기서 나가야 되거든. 나가는 길이 있을까?”
“나가는 길? 그딴 게 있었으면 내가 먼저 나갔지. 그나저나 넌 여기 왜 들어 온 거야?”
그의 질문에 난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히 얘기해줬다. 말을 다 들은 최우혁은 노발대발 화를 냈다.
“뭐 그딴 미친 새끼가 다 있어? 그딴 새끼를 가만히 놔뒀단 말이야?”
“가만히 두긴! 그 새끼 족치러 왔다가 여기 있는 거 안 보여?”
내가 버럭 화를 내자 그는 거대한 앞발로 뒤통수를 긁적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랬었지. 미안! 근데 어떻게 하냐. 여기서는 나갈 길이 전혀 없는데.”
“근데 넌 벌로 갇혀 있다면서 나갈 생각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이미 벌은 받을 만큼 받았다고! 그리고 그 새끼가 뺏어간 내 모든 걸 되찾을 거야! 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흠! 나가긴 해야 되는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아무리 머릴 굴려도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때 날 멀뚱멀뚱 바라보는 최우혁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넌 각성하고 받은 능력이 뭐야?”
“나? 난 두 가지 능력을 각성했어. 첫 번째는 아까 본 것처럼 스피드.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이거야.”
말을 마치며 그는 자신의 오른발을 내 가슴에 가져다 댔다.
화악.
그의 발이 가슴에 닿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더니 엄청난 힘이 몸 안에서 샘솟았다.
“이… 이거 혹시 버프 능력이야?”
“그래. 모든 능력을 30퍼센트만큼 올려줘. 대신 하루 30분 제한이야. 정말 쓰레기 같은 스킬이지.”
“쓰레기? 이게?”
“후우. 우리 곰인간은 전투종족이야. 요즘은 좀 다르지만 보통 하루의 대부분을 전투를 하며 보냈지. 그런 내게 30분 버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이게 쓰레기가 아니고 뭐겠어.”
그제야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스킬은 정말 좋은 스킬이다. 사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귀족 스킬. 그리고 스킬은 수련할수록 다른 버프도 오픈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에게 그런 사실까지 말해주진 않았다. 언제 어디서 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없으니까.
“잠깐만. 상태창 확인 좀 하고.”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버프 적용 중(모든 능력치 30% 증가)
*능력치
힘: 387(+116)
민첩: 423(+127)
마력: 201(+60)
내공: 1847(+554)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65.3%/얼음 50%/전기 50%/독 30%
진짜네. 모든 능력치가 30퍼센트씩 올랐어! 잠깐. 원래 내공이 1847이고 거기에 554를 더하면…. 2401! 4갑자가 넘었잖아?!
4갑자가 넘어가면 천의 삼권을 사용할 수 있다는 츤츤이의 말이 생각났다.
[천의권은 총 팔권으로 이뤄져 있어. 그 중 일권과 이권은 다음 천의권들을 펼치기 위한 준비 동작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초식에 이름조차 붙어 있지 않지. 하지만 삼권부턴 달라. 거기부터가 진정한 천의권이라 생각하면 돼. 삼권의 이름은 파천(破天). 하늘을 깨뜨려 연다는 뜻이지.]
파천. 이거라면 아까 내가 내려왔던 천장을 깰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생각만 하기보다 행동을 할 때. 난 즉시 최우혁에게 말했다.
“니가 버프를 걸어준 덕분에 내가 내려왔던 천장을 부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나도 몇 번 해봤는데 안 되던데?”
“알아. 나도 아까 쳐봤는데 특수한 스킬이 걸려 있는 거 같더라구. 하지만 그것도 감당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치면 부술 수 있어. 세상에 완벽한 스킬은 없거든.”
최우혁은 곰의 얼굴임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무시하고 처음 내려왔던 장소로 이동했다.
“근데 우릴 가둘 의도면 여기 이 철문들을 닫을 만도 한데 이상하게 그러질 않네!”
“아마 내가 계속 부숴서 그럴 거야.”
“부숴?”
“응. 가끔 답답하면 철문에다 화풀이를 했거든.”
그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보이는 철문의 두께만도 30센티미터는 넘어보였다.
저걸 화풀이 한다고 부쉈다고? 각성 안한 곰인간도 힘으로만 보면 일반 각성자보다 강하다고 하더니 진짠가 보네. 거기다 각성까지 했으니 그 힘은 몇 배로 커졌을 테고. 그야말로 괴물이네 괴물.
그때 내 상념을 깨는 최우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다 왔어.”
그제야 난 정신을 차리고 앞을 봤다. 처음 들어왔던 연무장의 중앙 부분이 보였다.
“일단 저 돌들부터 치우고 시작하자.”
간단히 돌들을 정리하고 중앙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곤 짧게 심호흡을 한 후 두 팔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린 상태로 천의 삼권인 파천을 시전했다.
순간 내 몸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강기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서서히 내 몸 주변으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넓게 퍼져있던 소용돌이가 압축되는 만큼 그 압력과 강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흡. 파천!”
난 짧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곧바로 천장을 향해 뛰어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몸은 강하고 날카로운 강기의 창이 되어 천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쩌저적.
순식간에 나는 천장을 뚫고 아까 연무장이 있던 2층까지 올라왔다.
“헉! 마…말도 안돼!”
혹시나 싶어 연무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인호는 바닥을 뚫고 내가 나타나자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다음에 나타난 인물을 보고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어….”
그는 얼마나 놀랐으면 말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렸다. 내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온 최우혁은 놀라고 있는 김인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김인호! 너 이 개새끼 잘 만났다.”
그때 내가 급히 그를 말렸다.
“잠깐잠깐! 그 전에 뭐 하나만 물어보고. 야. 한희 어딨어?”
“네?”
김인호는 곰으로 변한 최우혁을 보곤 얼이 빠졌는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조한희 어딨냐고?”
“5… 5층에….”
“5층 어디?”
“기, 길드장님 방에….”
“뭐? 그 새끼 방엔 왜?”
물어보긴 했지만 답은 뻔하다. 아까 게이트에서 봤던 최민혁의 눈빛. 거기에 답이 있었다.
난 이를 바드득 갈며 환영보를 전개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최우혁은 내가 사라진 곳을 잠시 보다가 고갤 돌려 김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가네. 쓰레기 짓은 여전하구나. 뭐, 그건 저 친구 일이니 우린 우리 일을 마무리 해 볼까? 인간 대 인간으로 말이야!”
그리고는 서서히 몸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김인호는 비명을 지르며 앉은 상태로 뒷걸음질 쳤다.
“으아악! 안 돼. 오지마아아아!”
“낄낄낄낄! 이게 얼마만이야. 반가워 죽겠네. 오랜만이니까 오늘은 많이 놀아줘야 돼. 알겠지? 낄낄낄!”
“으아아악!”
최우혁이 김인호와 놀고 있는 사이 나는 5층에 도착했다.
“이 새끼 방이 어디지?”
그러다 유난히 화려한 문이 눈에 띄었다.
과시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으니 저기겠구나.
난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방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콰쾅.
“누…누구야?!”
그때 상의를 벗고 침대로 가고 있는 최민혁과 눈이 마주쳤다.
“어? 넌 게이트에서 본…?”
“그래 이 개새끼야! 이제부터 참교육 시작이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