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힘의 제약이 있어 이 정도 크기 밖에 못 키우지만, 내 얼굴을 본 버러지 같은 놈들을 살려둘 순 없지. 다들 죽어라!]
화아악!
드래곤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움직일 수 없는 길드원들은 그 순간 죽음을 예감했다.
“아아! 죽기 싫어!!”
“안 돼!!”
길드원들의 비명 속에 노랗다 못해 흰색에 가까운 불꽃이 우릴 덮쳐왔다.
이런 썅! 피해야 되는데….
지금이라도 환영보를 펼치면 브레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뒤에 있는 조한희까지 위험해 진다.
에라 모르겠다! 회귀 반지도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마음을 굳힌 난 날아오는 브레스를 두 팔을 활짝 벌려 막았다.
화아악.
엄청난 열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순식간에 화염이 나를 덮쳤다.
“끄아아악!!”
아무리 화염 내성이 60퍼센트라고 해도 브레스 정도의 공격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 처음 보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 천의심법이 시전자 보호를 위해 내공을 소모하여 저항합니다.
- 내공이 10만큼 사라집니다.
- 내공이 10만큼 사라집니다.
.
.
.
뭐? 그런 법이 어딨어? 안 돼! 어떻게 모은 내공인데! 차라리 날 죽여!!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공은 계속 사라졌다. 얼마나 버텼을까? 드디어 브레스가 끝났다.
“헉…헉…. 드디어 끝인가?”
천신만고 끝에 겨우 브레스를 막아낸 난 숨을 고르다 이상함을 느끼고 주위 둘러봤다.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키라의 기술이 풀렸는지 모든 길드원들이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키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브레스를 견뎠다고? 한낱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생각나는 한 가지. 잃어버린 내공!
대체 얼마나 날아간 거야?
앞에서 키라가 뭐라고 떠들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정상
*능력치
힘: 387
민첩: 423
마력: 201
내공: 1557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65.3%/얼음 50%/전기 50%/독 30%
상태창을 확인한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내공이 1557? 260이나 까였단 말이야?
260이면 26년치 내공이다. 거기다 저렇게 되면 천의권을 사용할 수 없다.
“크윽!”
눈물이 날 것 같다. 난 분노가 가득 담긴 눈으로 키라를 무섭게 노려봤다.
“야 이 개새끼야! 왜 브레스는 쏘고 지랄이야. 내 내공 물어내!!”
하지만 적에게 왜 공격했냐고 투정 부려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난 씩씩거리며 키라를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판타지 소설에서 보면 드래곤의 뼈나 발톱 또는 비늘로 뭔가 대단한 아이템들을 만들잖아!? 그렇다면 저것도 다 먹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이제 드래곤의 몸을 바라보는 내 눈은 분노가 아닌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걸 본 키라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뭐…뭐냐? 그 눈빛은.]
난 대답대신 벌거벗은 몸으로 키라를 향해 환영보를 전개했다. 그리곤 순식간에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의 발톱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너무 단단해 씹어지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발톱은 아이템이 아니란 거다. 그러나 난 포기하지 않았다. 발톱이 안 씹히자 바로 비늘을 씹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아니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그 더러운 입을 어디다 대는 것이야?!]
“내 내공 물어내 이년아! 내 내공 물어내라고!!”
키라는 날 떼어내기 위해 계속 공격을 했지만 환영보를 사용하는 날 맞추진 못했다. 급기야 키라는 블링크를 사용해 가까스로 날 떼어낸 다음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인간. 비록 내 힘이 많이 제한된 상태였다곤 하지만 날 이렇게 까지 몰아붙이다니, 대단하구나.]
“그딴 소리 할 거면 니 몸이나 나한테 바치라구.”
난 누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소리를 벌거벗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마법에 대한 제약만 없었어도 내 오늘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 인간. 다음엔 온전한 힘으로 네 놈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그녀는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다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내 내공 물어내고 가라고!!”
소리쳤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후다.
- 게이트 안의 모든 적을 물리쳤습니다. 30분 후 게이트가 소멸됩니다. 게이트 소멸 시까지 빠져 나오지 않는다면 공간의 틈에 갇히게 됩니다.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
“살았다. 살았어!”
“우와아! 여보, 집에 갈 수 있어! 우와아!”
뒤를 돌아보니 길드원들이 모두 날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난 그들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니들 구해주려던 게 아니었어….흑…. 내 내공….
생각할수록 열 받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피하는 거였는데.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어쩔 수 없지.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리곤 날 향해 뛰어오는 조한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신 제대로 뽑아 먹어야겠어. 열배, 백배로 뽑아내 줄게.
마음속으로 굳은 다짐을 하는 사이 조한희가 내 앞으로 왔다. 그러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뒤로 몸을 돌렸다.
“꺄아악!”
“? 갑자기 왜 그래요?”
“옷이요. 지금 아무 것도 안 입고 있잖아요!!”
“아!”
그제야 난 내가 알몸이란 사실을 인지했다. 아마 브레스를 막다가 옷이 타버린 모양이다.
“근데 눈도 안 보이는데 괜찮지 않아요?”
“오히려 더 잘 보인단 말이에욧! 이거라도 일단 걸치세요!”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내게 건넸다. 난 그녀가 건낸 외투를 대충 걸치고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죠. 좀 있으면 게이트도 닫힐 텐데.”
“네. 그래요.”
나와 조한희는 게이트를 나가기 위해 포탈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길드원들이 모두 고개 숙여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길드원들의 인사를 받자 쓰렸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때 최민혁이 다가왔다.
“너, 뭐야?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혼자 설쳐댄 거냐고! 어?”
하지만 여기 있는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최민혁도 바보는 아니라 그런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걸 인정해버리면 지는 것 같아 오히려 버럭버럭 화를 냈다.
역시 인간은 다 똑같구나.
대격변 때 구해준 날 향해 화를 내던 사람들의 모습과 최민혁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응. 그랬구나. 그러니까 이제 좀 꺼져줄래?”
“뭐? 꺼져?”
그는 더 날뛰려고 했지만 싸늘한 길드원들의 눈빛을 보곤 이를 악물곤 어딘가로 가버렸다.
“이제 진짜 갈까요?”
“네.”
게이트를 나온 우린 곧장 근처 옷가게부터 갔다.
“근데 저, 지금 지갑도 다 타서 돈이 하나도 없는데요.”
내 말에 그녀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절 구해주시다가 그런 건데 그 정돈 제가 낼게요.”
“어? 알고 있었어요?”
“전 눈이 아닌 감각으로 사람을 봐요. 그래서 상황 판단이 눈이 보이는 사람보다 훨씬 빠르죠.”
“그래요?”
“네. 사람들은 눈이 보이는 곳의 상황만 알 수 있지만 전 모든 공간의 상황을 한순간에 볼 수 있어요. 그리고 태준 씨가 그 전까지 보인 움직임을 생각한다면 아까 브레스를 못 피한 게 오히려 이상하죠. 그렇다면 일부러 맞았다는 건데….”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날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본 태준 씨 성격에 알지도 못하는 화룡 길드를 대신해 브레스를 맞았을 리는 없죠.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저 때문에 맞았다고 생각했어요. 어때요? 맞나요?”
헐! 이 여자 뭐지? 계속 느끼는 거지만 대단하네. 아니, 좀 무서운데.
“네, 정확해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 수 있죠?”
“눈이 안 보이니 다른 것들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그 사람이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말이죠.”
“그래요?”
“그럼요. 태준 씨가 절 열심히 굴려서 손해를 메꾸려 한다는 것도 아는 걸요.”
흠칫.
난 그녀의 통찰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깜짝 놀란 척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겠어요!”
“그렇게 놀란 척 할 필요 없어요. 당연한 거니까. 저도 태준 씨를 그렇게 이용할 거에요. 저도 돈 많이 필요하거든요.”
“하하하. 그런가요? 정말 통찰력이 엄청 나시네요. 그보다 전 그럼 합격인 건가요?”
내 말에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날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합격이냐구요? 태준 씨는 지금껏 제가 본 가장 강한 각성자 중 한 명이에요. 그런 사람을 제가 놓칠리 없죠. 근데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죠?”
“뭐 어찌저찌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좋은 스승을 만나기도 했구요. 근데 아까 절 가장 강한 각성자 중 한 명이라고 했는데, 저만큼 강한 각성자를 또 만나보셨어요?”
내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개월 전 강원도 정선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서둘러 갔었죠. 근데 도착했을 땐 이미 누군가 게이트를 정리하고 나오는 길이었어요.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 강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마 태준 씨보다 강할 거에요.”
그녀는 내가 자존심 상할 까봐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나보다 강한 사람이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츤츤이만 해도 나보다 훨씬 강하니 말이다. 거기다 완전소화 되기 전에는 이철진 보다 약했었다.
“하하하.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전 앞으로 누구보다 강해질 테니까. 그보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혹시 알아요?”
“아뇨. 처음 보는 각성자였어요. 그때 이후로 만나지도 못했구요.”
“흠. 알겠어요. 일단 옷부터 사죠. 이거 너무 작아서 좀 불편하네요.”
우린 근처 옷가게들에 들러 속옷과 옷을 산 다음 가까운 식당에 들러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한희는 28살로 나보다 두 살이 어렸다. 우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제법 친해져서 자연스레 말을 놓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오빠라고 하긴 아직 어색하다고 여전히 태준 씨라고 불렀다.
“그럼 태준 씨 계획은 어떤 거야?”
“일단 던전을 더 확보할 생각이야. 그리고 앞으로 버는 돈으론 모두 금을 매입할 거야.”
“금? 갑자기 금은 왜?”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물었다.
“흐흐흐. 이건 극비 정보긴 한데 앞으로 화폐가 통합될 거야. 그래서 기존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금값이 엄청나게 오르는 거지. 대략 2달 후부터 논의가 진행될 테니 그 전에 최대한 금을 많이 사놔야 돼.”
소설대로라면 대격변 1년 후 세계 화폐가 통합된다. 그 이유는 로드(road) 포탈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포탈은 던전이나 게이트로 통하는 문과 같은 곳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특이한 포탈이 몇 개 발견 됐다.
한국에서 던전이라 생각하고 포탈로 들어갔는데 영국 런던의 골목길로 나온 것이다. 이렇게 공간을 이어주는 포탈을 로드 포탈이라 부르는데 앞으로 이런 포탈이 훨씬 많이 발견될 예정이다.
그로 인해 나라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며 화폐통합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다. 그리고 화폐는 코인(coin)이라는 걸로 통일 되는데, 이 코인에 실제 금이 섞여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금값이 한 동안 폭등을 하게 된다. 난 이때를 노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야? 태준 씨 말이 사실이면 나도 투자해야겠는데.”
“하하하. 투자 좋지. 얼마나 있는데?”
난 아무 생각 없이 장난스럽게 던진 질문인데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다.
“140억쯤.”
“뭐?!!”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