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던전과 게이트는 비슷한 면이 많지만 완전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던전 안 몬스터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지만,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는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던전의 경우 한 번 생겨나면 사라지지 않지만 게이트는 몬스터가 완전히 사라지면 자연스레 소멸한다.
다행인 건 게이트의 경우 에너지 파동을 감지해 어디에 생겨날 지를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된 게이트는 생겨나는 즉시 그 지역을 관리하는 길드가 소멸시키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명동 근처에서 게이트가 생겨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최민혁은 기분이 좋았다. 게이트를 처리하면 국가로부터 포상금을 지급 받는데다 길드의 명성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거기다 지금껏 몇 차례 게이트를 소멸시키면서 한 번도 위기를 겪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감은 흘러넘치고 있었다.
얼마 전 소문에 의하면 게이트에서 SS등급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헛소문으로 치부했었다.
근데 비슷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키야아아악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드라고니아가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진했다.
“야! 어서 막아! 뭐하고 있어?!”
최민혁이 길드원들을 다그쳤지만 무시무시한 드라고니아의 돌진에 길드원들은 속수무책으로 나가 떨어졌다.
원래라면 이 정도로 쉽게 당할 길드원들이 아니었다. 너무 갑작스런 몬스터의 공격에 제대로 방어 태세를 못 갖춘 게 컸다.
“젠장! 다 비켜!”
최민혁은 크게 소리치며 튕기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달려 나가는 그의 온몸은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있었다.
원소변형 능력자?!
원소변형 능력자는 원소감응 능력자완 다르다. 원소감응 능력자는 기본 원소인 불, 물, 번개 등을 만들어내 사용하지만, 원소변형 능력자는 그 자체가 원소의 형태로 변하게 된다. 대신 원소감응 능력자는 여러 원소들을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원소변형 능력자는 하나의 원소로만 변화할 수 있다.
난 생각지도 못한 최민혁의 능력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길드장이라고 하더니 제법이잖아! 말만 많은 애송인 아니었네.
언뜻 보기에도 얼마 전에 싸운 이철진과 비슷하거나 조금 앞선 실력으로 보였다.
대단한 능력이긴 하지만 드라고니아를 혼자서 감당하긴 버거울 텐데….
드라고니아의 최대 장점은 무지막지한 방어력이다. 웬만한 공격으론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대로 최민혁의 돌진을 드라고니아는 양팔을 교차하는 것만으로 막아냈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긴 했지만 큰 타격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쯤은 예상했는지 최민혁은 바로 뒤로 물러났다가 튕기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번에도 그의 몸은 불타고 있었는데 불꽃의 색이 붉은 색에서 노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콰쾅. 쾅.
드래고니아는 별다른 반격은 못하고 막기에 바빴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최민혁의 의도를 눈치 챘다.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거구나!
결국 최민혁은 드라고니아를 게이트 안으로 밀어 넣으며 자신도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뒤에서 기회를 보고 있던 길드원들도 함성을 지르며 게이트 안으로 뛰어 들었다.
“우리도 슬슬 가볼까요?”
난 옆에 있는 조한희를 향해 말했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난 고개를 돌려 조한희를 바라보곤 깜짝 놀랐다. 그녀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멍하니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희 씨! 왜 그래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조한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저… 저 안에 엄청난 게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네? 드라고니아 말고 또 뭐가 있어요?”
“드라고니아가 아까 그 도마뱀 같은 몬스터를 말하는 거라면 맞아요. 그 몬스터 말고 저 안에 몬스터가 두 마리나 더 있어요. 한 마리는 아까와 같은 몬스터지만 다른 한 마리는….”
그녀는 뭐가 그리 무서운지 끝까지 말을 잊지 못했다.
“잠깐! 지금 저 안에 뭐가 있는지가 보인단 말이에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헐! 이곳과 게이트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인데 그걸 느꼈다고? 이 여자 뭐지?
그녀는 내가 놀란 듯 하자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몬스터나 사람이 게이트를 통과할 때 미세하게 틈이 생겨요. 그 틈을 통해 건너편을 어렴풋이 엿보는 거죠. 보통 길잡이라면 이 정돈 다 알 수 있을 거에요. 그보다 정말 저 안에 들어갈 거에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길잡이라고 해도 게이트 너머까지 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 말은 그녀가 굉장히 특별하단 것이다.
이 여자는 무조건 잡아야 돼.
다시 한 번 마음을 굳힌 난 그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들어가야죠. 한희 씨 능력을 증명했으니 내 실력도 봐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안에는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어요. 정말 위험할지도 몰라요.”
“하하하. 위험해야 제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겠어요? 걱정 말고 게이트에 들어가면 입구에만 있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위험하단 판단이 들면 바로 밖으로 나와서 다른 길드나 각성자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알겠죠?”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난 거침없이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게이트 너머는 축구장만한 크기의 거대한 타원형 방이었는데, 먼저 들어간 화룡 길드가 드라고니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기다 조한희 말대로 드라고니아는 두 마리였다.
보통 상급 던전의 보스가 S+등급이다. 그 말은 드라고니아 두 마리 만으로도 이미 상급 던전 보스급은 된다는 말이다.
근데 저 놈들 말고도 있다고? 어딨지?
난 빠르게 전장을 스캔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 말고 다른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뭐지? 한희 씨가 잘 못 본 건가?
- 절대자 키라가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절대자 키라가 게이트 안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절대자 키라? 대격변 때 발록이 말했던 걔?
- 게이트의 에너지가 부족하여 절대자 키라의 힘이 한 단계 약화 됩니다.
- 게이트의 에너지가 부족하여 절대자 키라의 힘이 한 단계 약화 됩니다.
- 게이트의 에너지가 부족하여 절대자 키라의 힘이 한 단계 약화 됩니다.
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계속 약화 된대?
- 절대자 키라가 SS등급의 힘을 가진 채 모습을 드러냅니다.
세 단계나 약해졌는데 SS등급이라고? 그럼 원래는 얼마나 강한 거야?!
그때 방 중앙에 붉은 색 포탈이 생겨나더니 누군가 걸어 나왔다.
저게 키라?
걸어 나온 건 매우 아름다운 여자였는데, 큰 키에 볼륨감 넘치는 몸매, 긴 흑발, 거기다 아름다운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나오자 전투를 하던 드라고니아들이 즉시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길드원들이 그 사이 공격을 퍼부어도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키라는 그런 드라고니아는 쳐다도 보지 않고 자신의 몸을 잠시 살피다 우리를 한 번 훑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미천한 것들이 감히 누구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냐!]
호통과 함께 어마어마한 살기가 그녀에게서 파도처럼 퍼져 나왔다.
- ‘대격변의 영웅’ 칭호 효과로 인해 절대자 키라의 살기가 무효화 됩니다.
난 칭호 효과 덕분에 멀쩡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모두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건 최민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혼자만 서 있는 날 발견한 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어떻게 된 거지? 아! 이제 보니 넌 저 버러지들과 다르구나. 나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느껴져.]
뭔 소릴 하는 거지? 말살자 조각을 말하는 건가?
[이리 오렴. 와서 니가 숨기고 있는 걸 보여 다오.]
그녀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내게 손짓했다.
- 절대자 키라의 매혹 스킬을 천의심법이 저항합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약간 아찔하긴 했지만 견딜 만 했다.
주구장창 명상 하던 게 도움 될 때가 있다더니 진짜였네!
키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내 모습을 보곤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저 자를 내 앞에 데려와!]
키라의 말에 무릎을 꿇은 채 대기하고 있던 드라고니아들이 날 향해 달려왔다. 드라고니아들은 발에 걸리는 길드원들을 그대로 짓밟으며 달려왔지만 길드원들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못했다.
난 달려오는 드라고니아를 상대할 준비를 하다 마음을 바꿨다.
저런 잡졸이 아니라 대가리를 치는 게 낫겠어. 그래야 사람들도 제대로 움직일 테고 말이야!
“굳이 데리고 갈 필요 없이 내가 직접 갈게. 잠깐만!”
그리곤 바로 환영보를 사용했다. 난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키라 앞에 불쑥 나타났다. 하지만 키라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제법 재주가 있구나.]
“이거 말고 다른 것도 있으니까 어디 잘 막아봐!”
난 권강을 만든 다음 천의 일권을 전개했다. 내공을 정해진 길을 따라 순환시킨 다음 주먹을 내질렀다. 말로는 길어 보이지만 이 모든 과정이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후욱.
단순한 주먹 한 방. 하지만 내 주먹에선 수많은 권강이 칼날처럼 키라의 전신을 덮쳤다.
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키라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녀를 감싸고 있는 얇은 반투명의 막 때문인지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난 바로 키라 앞으로 따라 붙으며 천의 이권을 펼쳤다. 양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벌렸다가 힘차게 키라의 눈앞에서 두 주먹을 부딪쳤다.
콰콰콱.
권강과 권강이 맞부딪히며 엄청난 강기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는 그대로 키라를 덮쳤다.
그때 드라고니아들이 키라의 명령을 들은 건지 나와 키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권강의 소용돌이는 키라를 덮치고 있었다.
쿠쿠쿠쿠.
무언가 갈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키라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어느새 그녀를 감싸고 있던 반투명한 막은 사라졌고 그녀 역시 곳곳에 상처가 났는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또 그녀와 나 사이로 끼어들었던 드라고니아들 역시 몸 곳곳이 찢겨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더 당황한 건 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긴 했지만 한 방에 S등급 몬스터를 보내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두 마리나 말이다.
이 정도면 사기 아니야? 고작 이권 짼데 이 정도면 마지막 천의 팔권은 위력이 대체 어느 정도란 거야?
그때 내 상념을 깨우는 키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를 내거나 흥분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얼마만의 상처인가! 비록 온전치 못한 몸이긴 하나 내게 상처를 입히다니. 즐겁구나. 정말 즐거워!]
그리곤 매혹적인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내게 이런 즐거움을 줬으니 상을 내려야겠지. 너만은 특별히 살려주도록 하마.]
“흥! 지금 그 꼴로 그런 얘길 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
내 말에 그녀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더니 그녀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건 10미터 정도 크기의 레드 드래곤이었다.
뭐야! 키라가 드래곤이었어?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