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사실 츤츤이는 처음 이철진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가 가진 재능을 알아봤다. 바로 노력하는 재능.
어떻게 아는지는 잘 모른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수많은 기억들 때문인지 그만의 특화된 재능인지! 하지만 분명한 건 그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철진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수인 그의 눈에는 그가 하는 공격 하나하나가 ‘난 정말 노력했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대충 배운 기술을 저만한 경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빤히 보였다. 그리고 아직도 저리 필사적인 모습에 가슴 한켠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곧았다. 한 번쯤은 처참히 부러져봐야 한다. 그래서 끼어들 기회를 보고 있는데 마침 때가 왔다. 박태준이 갑자기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걸 공격하려는 이철진을 츤츤이는 막아섰다. 환골탈태 중 공격을 받게 되면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무대가 갖춰진 셈이다.
일단 따끔하게 혼 좀 내볼까!
츤츤이는 엉덩이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당황한 이철진을 바라봤다.
“컹컹!!”
이철진은 자신을 향해 짖어대는 츤츤이를 처음엔 황당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서당개 삼년이면 뭐라더라…. 하여간 주인이 고수니 키우는 개마저 엄청나구나. 크하하하하!”
그 말에 츤츤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 좋은데 너무 멍청해. 그리고 멍청한 놈에겐 매가 약이지.
그때부터 츤츤이의 참교육이 시작됐다. 이철진은 복날에 개 맞듯 맞았다.
이철진의 스타일은 상대의 공격은 신경 쓰지 않는 저돌적인 탱커와 같다. 그만큼 자신의 몸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각성자들과 만났을 때의 이야기. 상대가 츤츤이와 같은 초고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츤츤이는 몸은 개지만 사실 누구보다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태준을 가르치면서 자신도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미 가는 길을 알고 있는 츤츤이에게 일 년이란 시간은 충분한 시간이다. 박태준에게 말은 안했지만 이미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렇게 츤츤이가 이철진을 참교육하는 사이 재구성이 끝난 박태준의 몸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이게 내 몸이라고?
완전히 다르다. 그냥 강해졌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구나!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정상
*능력치
힘: 387
민첩: 423
마력: 201
내공: 1527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60.3%/얼음 50%/전기 50%/독 30%
대박! 내공이 1500을 넘었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츤츤이와 함께 내공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몇 가지 실험을 해본 결과 상태창 수치에서 내공 10이 1년치 내공에 해당한다는 걸 알았다. 즉, 내공이 1500이란 소리는 150년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정도면 누구한테도 질 것 같지 않아. 근데 이래도 천의권을 쓸 수가 없다고?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다. 잠시 기를 운용해 천의권의 일 초식을 펼쳐보려 했지만 발현조차 되지 않았다.
젠장. 안되네. 일단 단기 목표를 내공 1800으로 잡아야겠다.
대충 내 몸에 대한 상황 파악이 끝나자 그제야 츤츤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곤 깨달았다.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리고 츤츤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헐. 저기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아! 저런 식으로 기를 활용하면 더 효율적이겠네!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가 됐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고 있을 순 없다. 히든 보스를 잡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아니,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츤츤아, 잠깐 나와봐!”
그제야 츤츤이는 이철진을 때리던 걸 멈추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찬찬히 내 몸을 살피고는 말했다.
[오. 제법 성장했는데. 이제 조금만 더하면 천의권도 사용할 수 있겠어.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난 그보다 니가 더 놀랍다. 어떻게 그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어? 아니지. 내가 몰라본 거 겠구나.”
[이젠 보는 눈도 좀 늘었고. 여러모로 발전했네.]
그때 피투성이의 이철진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야! 너 미쳤어? 내 몫은 남겨 놔야지!”
내가 버럭 화를 내자 츤츤이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마라. 그냥 살짝씩 긁어준 거 뿐이니까. 치명상은 하나도 없어.]
“크하하하하. 너도 나처럼 미친 거냐? 개새끼랑 뭔 얘길 그리 하는 거야?”
“아! 미안. 금방 끝내줄게.”
저벅저벅.
난 이철진 바로 앞까지 걸어가 섰다. 그리고 가볍게 주먹을 날렸다.
콰쾅.
폭음과 함께 이철진은 꼴사납게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쿨럭. 쿨럭. 역시…. 너 진짜 맞잖아!! 크하하…쿨럭….”
“하하하. 그래. 난 진짜지. 그러니까 한 대만 더 맞자. 죽이진 않을게.”
그리곤 주먹에 강기를 둘렀다. 그리곤 깨달았다. 이전까지 내가 사용했던 게 권강이 아니란 걸 말이다. 그냥 강기를 흉내냈을 뿐 진짜는 아니었던 거다.
이게 진짜 권강이구나!
난 감격스런 눈으로 은은한 노란빛이 도는 주먹을 잠시 바라보다 일어나 비틀거리는 이철진의 배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퍽. 풀썩.
그걸로 끝이었다. 잔뜩 긴장하며 생전 처음 방어에 온 힘을 다한 이철진이었지만 그 한 방으로 정신을 잃었다.
난 바닥에 쓰러진 이철진을 잠시 바라보다 츤츤이를 돌아봤다.
“이 새끼 어떻게 할까? 죽일까?”
지금까지 육 개월 간 던전을 돌며 살인도 몇 번 저질렀다. 모두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살인은 살인.
처음엔 엄청난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횟수가 반복되자 점점 무뎌졌다.
[그냥 둬. 그놈 내가 좀 키워보려고.]
“뭐? 키운다고?”
[그래. 좀 맘에 드는 구석이 있어서.]
난 의외라는 표정으로 츤츤이를 바라보다 고갤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저 놈은 니 맘대로 해. 어차피 이 던전을 지킬 문지기도 필요했으니까 저 놈한테 시키면 되겠다. 여기서 수련도 하고 말이야. 어때?”
[여기라….]
츤츤이는 내 말에 던전 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좋아. 그러지 뭐. 또 산에 들어가려니 귀찮기도 하고.]
“흐흐흐. 여기 안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 많을 거야. 몬스터들도 아직 남아있을 거고.”
사실 츤츤이는 초반까진 던전을 같이 돌다가 어느 순간부터 나 혼자만 던전을 돌게 했다. 그래서 츤츤이도 이 상급 던전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고 있다.
내 말에 츤츤이는 고개를 끄덕이곤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난 그런 츤츤이를 잠시 바라보다 몸을 돌려 던전 구석으로 걸어갔다.
거기엔 지난 육 개월 간 던전을 돌며 모은 아이템들이 모여 있었다.
“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가 왔네. 맛있게 한 번 먹어볼까!”
그때부터 미친 듯이 아이템을 먹어치웠다. 하급과 중급에서 나온 아이템들은 영양가가 별로 없었다. 내공을 17 올려준 아이템이 가장 좋은 거였다.
하급과 중급에서 나온 아이템을 다 먹고 나자 드디어 이곳 상급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만 남았다.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딱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아이템들이다.
난 망설임 없이 하나씩 들고 씹었다.
까득. 까드득.
- ‘약간의 마나가 서린 장검’을 섭취했습니다. 내공이 15 오릅니다.
콰득. 쩝쩝.
- ‘불을 뿜는 반지’를 섭취했습니다. 내공이 19 오릅니다.
그렇게 하나씩 먹다보니 어느새 남은 아이템이 한 개밖에 안 남았다. 지금 내공은 1749. 육 개월 간 모은 아이템을 한 개 빼고 모두 먹었지만 오른 수치는 고작 200남짓.
마지막 남은 아이템은 이곳 보스를 잡고 나온 아이템이다. 난 붉은 빛이 감도는 팔각형의 보석을 손에 들었다.
- ‘심연의 화염을 품은 보석’을 얻으셨습니다. 제련 후 장비에 부착 시 특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뭔가 좋아 보이는 설명. 난 잠시 망설였다.
이거 먹지 말고 팔까?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님, 내가 쓸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돼. 일단 지금 내 목표는 무조건 내공을 1800 이상으로 만드는 거야. 눈 딱 감고 먹자!
그리곤 바로 보석을 입에 가져가 물었다.
서걱. 쩝쩝.
딱딱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부드럽게 잘렸다.
- ‘심연의 화염을 품은 보석’을 섭취했습니다. 내공이 68만큼 오릅니다. 화염 내성이 5퍼센트 올라갑니다.
오오오! 드디어 넘었다. 거기다 화염 내성까지.
난 바로 상태창을 열어 정보를 확인했다.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정상
*능력치
힘: 387
민첩: 423
마력: 201
내공: 1817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65.3%/얼음 50%/전기 50%/독 30%
상태창을 확인한 난 기쁨에 몸을 떨었다. 그리곤 잊기 전에 능력치 상승 옵션을 내공에서 랜덤으로 변경했다.
사실 내공이 높으면 민첩이나 힘은 쉽게 커버가 됐다. 하지만 기본 능력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내공과의 시너지는 엄청났다. 그래서 내공이 1800만 넘으면 모든 능력치를 골고루 올리기로 맘먹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날 향해 다가왔다. 뒤를 돌아보니 이철진이다. 그는 내 앞으로 거침없이 걸어오더니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
“야. 너 왜 그래? 살려달라는 거야? 그거라면 안 죽일 거니까 걱정하지마.”
“날 제자로 받아다오.”
그의 뜬금없는 말에 난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제자? 방금 전까지 피 터지게 싸웠는데 갑자기 제자로 받아달라고?”
“그건 세상에 워낙 짝퉁이 많아서 진짠지 확인해 본 거고. 어쨌든 제자로 받아다오.”
이 놈 진짜 답 없는 또라이네.
난 무릎을 꿇고 반짝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이철진을 외면하고 츤츤이를 쳐다봤다. 츤츤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난 이철진에게 말했다.
“좋아. 제자로 받아줄게.”
그 말에 이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손을 덥썩 잡았다.
“진짜? 진짜 날 받아주는 거야?”
“그렇다니까. 대신 니 스승은 내가 아니야.”
“응? 니가 내 스승이 아니라고? 그럼 누가 날 제자로 받아준다는 거야?”
“바로 내 스승.”
내 스승의 제자가 된다는 말에 이철진은 더욱 좋아하며 어린 아이처럼 주변을 방방 뛰어다녔다. 그러다 겨우 진정이 됐는지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럼 스승은 어딨어?”
“내 스승? 저깄네.”
그는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그리곤 험상궂게 굳은 얼굴로 다시 날 바라봤다.
“지금 날 놀리는 거야? 저긴 개새끼 밖에 없잖아?”
“그래. 저 개새끼가 내 스승이고 앞으로 니 스승이 될 개새끼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