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원래 소설 속에선 상태창은 없었다. 대신 스킬 목록만 볼 수 있었는데, 갑자기 상태창이라니?
“갑자기 상태창이라고? 뭐 있으면 나름 유용할 것 같긴 한데…. 어디 한 번 볼까! 상태창.”
상태창이라고 외치자마자 눈앞에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상세 정보>
이름: 박태준
나이: 30
상태: 소화불량
*능력치
힘: 315
민첩: 323
마력: 181
내공: 422
물리 방어력: ∞
내성: 화염 60%/얼음 50%/전기 50%/독 30%
역시 예상대로 물리 방어력은 무한이지만 다른 것들은 아니구나. 특히 독 내성이 낮네. 저것도 올릴 방법을 찾아서 올려야겠어. 그나저나 소화불량은 뭐지?
상태 메시지는 붉은 글씨로 소화불량이라고 써져 있었다. 난 조심스레 소화불량이라고 써진 부분을 터치했다. 그러자 그 밑으로 소화불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타났다.
상태: 소화불량
아이템이나 돈을 급하게 먹었을 때 일정 확률로 발생한다. 원래 소화엔 2주의 시간이 걸리나 끊임없이 아이템과 돈을 섭취해 아직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아이템이나 돈을 섭취하게 되면 높은 확률로 능력치 상승이 제한된다. 완전 소화를 위해선 당분간 금식해야 하며, 완전 소화시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다.(완전 소화까지 남은 시간: 183일)
“이게 뭐야? 2주라며? 근데 왜 시간이 저렇게 늘어난 건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난 방금 읽은 메시지를 그대로 읽어줬다. 내 말을 다 들은 츤츤이는 오히려 잘 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잘 됐네. 비록 여섯 달이지만 수련하기 딱이겠어. 이제 완전히 소화 될 때까지 돈이든 아이템이든 먹는 건 금지야. 이제부턴 실전을 통해서 극한의 수련을 해보자구.]
그 말에 난 크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하루하루가 아쉬운 때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지.”
아닌게 아니라 작가 말대로라면 히든 보스가 어제 현실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것도 힘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이다.
소설 속에서야 힘이 없는 상태로 대격변부터 시작해 세계를 멸망시키는 데까지 23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완성된 힘을 가지고 세상에 왔으니 세상 멸망까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23년 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이 남았다는 점이다.
[좋은 자세야. 그럼 길게 끌 것 없이 바로 가자.]
난 고개를 끄덕인 다음 정찬호 무리를 한 번 더 바라본 후 던전을 찾아 떠났다.
* * * * *
대격변이 일어난 지 여섯 달.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격변이 끝난 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던전과 게이트가 생겨나며 몬스터들이 계속 나타났다. 그래서 초기에 각성자들은 정부의 의뢰로 팀을 꾸려 자경단 역할을 했다. 이상하게도 몬스터들은 현대 무기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각성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부의 힘이 약해지자 자경단 역할을 했던 각성자들은 자연스레 독자적으로 세력을 키워 길드를 조직했다. 그리곤 보호비 명목으로 각 지역에 돈을 요구하는 세력들도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했던 길드들과 정부의 편에서 정의를 표방하는 길드들이 자연스레 충돌하게 된다. 이익을 추구했던 길드들은 스스로를 ‘라시나’라 불렀고, 정의를 표방하는 길드들은 스스로를 ‘길드연합’이라 불렀다.
라시나와 길드연합의 전투는 한 달간 계속 됐지만 결국 어려운 싸움 끝에 길드연합이 승리했다.
그 전투 후 라시나는 음지로 숨어들고 대한민국의 치안은 길드연합에서 맡게 된다. 이런 양상은 전세계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나라건 똑같았다.
이 모든 일들이 대격변이 일어난 지 4개월 만에 일어났다. 그 후 길드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 이제는 정치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형 길드들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 길드연합 길드장들의 정규 모임인 스타더스트.
8인의 대형 길드 길드장들이 원형 테이블에 앉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그딴 새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모여야 되는 겁니까?”
지금 소리친 사람은 머리를 붉은 색으로 염색한 20대 중반의 잘생긴 남자로, 그의 이름은 최민혁.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화룡 길드의 길드장이다.
“그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이미 하급 던전 4개, 중급 던전 3개, 상급 던전 1개를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구요.”
스타 길드의 이지아 길드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뭐가 만만한 일이 아니란 겁니까? 그냥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면 안 됩니까?”
그의 말에 맞은편에 있던 태산 길드의 최태산 길드장이 버럭 소릴 질렀다.
“그게 뭔 개소리야?! 아무도 모르게 처리하자고? 그럼 우리가 라시나랑 다를 게 뭔데? 어?”
그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던 미르 길드의 김신우 길드장이 나섰다.
“두 길드장 모두 맞는 말이야. 우리가 나서서 그를 처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놔둘 수도 없는 상황이지.”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세요?”
이지아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김신우에게 물었다.
“방법이라…. 뭐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
“그게 뭐죠?”
“그를 영입하는 거야.”
“네? 그 방법은 이미 써봤잖아요. 근데 또 시도한다구요?”
이지아가 실망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김신우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지 이미 실패했지. 하지만 이번엔 그가 거절 못할 제안을 하려고 하네.”
“거절 못할 제안이라면?”
이번엔 최태산이 궁금한지 슬쩍 끼어들며 질문을 했다.
“그가 왜 길드에 들어오는 걸 거절했지? 그 이유가 뭐였나?”
“그야 어디 얽매이기 싫다고. 그리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 밑으론 안 들어간다는 거였죠.”
“그렇지. 바로 그거야. 그럼 그 조건만 충족시켜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안 그런가?”
“그야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어렵다라…. 여기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 있나?”
그 말에 최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지금 저희를 무시하는 겁니까? 여기 그딴 새끼 못 이기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맞아요. 지금 발언은 저흴 너무 무시하는 발언이셨어요.”
이곳저곳에서 항의가 빗발치자 김신우가 웃으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하하하. 미안하네.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자네들 말처럼 여기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를 제압하는 건 문제없을 거야. 하지만 우린 지위가 있어서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지. 그래서 그걸 대신해줄 사람을 보낼 생각이네.”
“대체 그게 누구죠?”
이지아의 질문에 김신우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광권(狂拳) 이철진.”
그의 말에 거기 있던 모두는 깜짝 놀랐다.
“정말 이철진이 움직여 준답니까?”
“그 미친놈이 우리 계획대로 움직여 줄까요?”
광권 이철진.
권법에 미친 사내. 원래부터도 권법에 미쳐있었지만 대격변 후 벽을 깨고 난 다음에는 권법과 관련된 거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권법에 미쳤다고 해서 광권(狂拳)이다.
“듣자하니 그 남자도 권법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 같은데 그 사실만 말해줘도 이철진은 알아서 움직일 걸세.”
“호호호. 이철진이라면 안심이죠. 실력은 각성자들 중 최상위에 속하니까. 근데 그렇게 해서 이긴다고 그가 순순히 우리 요구를 들어줄까요?”
이지아의 말에 김신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난 그에게 길드에 속해있지만 자유를 줄 생각이네. 구체적인 조건이야 맞춰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그가 요구한 조건은 모두 충족하는 것 같은데 안 그런가?”
그제야 모인 이들의 얼굴이 밝아졌고, 김신우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그럼 다 동의한 걸로 알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 * * * *
“흐흐흐. 이제 한 시간도 채 안 남았네.”
난 상태창에 나와 있는 시간을 보며 미친놈처럼 웃었다.
상태창에는 완전 소화까지 남은 시간이 58분이라고 적혀 있었고, 지금도 시간은 점점 줄고 있다.
대격변이 끝난 후 6개월. 그 동안 난 미친놈처럼 던전을 찾아 돌아다니며 클리어했다. 웹소설 [회귀자]에서 나오는 내용은 대격변이 일어나고 23년 후의 이야기지만 대격변 당시의 상황은 생각보다 자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초기 던전들이 대충 어디서 생기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 실력으론 당장 중급 던전을 깨기도 버거웠다.
그런 날 보고 츤츤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던전 깨는 건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 깰 때까지 들이대면 되니까.]
그때부터 이동을 할 때는 오로지 환영보만 사용했다. 처음엔 5분을 달리고 탈진해서 명상을 통해 기를 보충했지만, 점차 달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공이 높아진 것도 있겠지만 계속 사용하다보니 기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게 컸다.
권강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공격은 오로지 권강만 사용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기를 다룰 수 있게 됐다.
그런 훈련은 모든 면에서 도움이 됐다. 기감은 더욱 날카로워져 상대의 움직임이나 접근을 무의식중에도 알 수 있을 정도가 됐고, 명상을 통해 기를 회복하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정확히는 명상에 들어 집중하는 정도가 달라졌다는 게 옳을 것이다.
수련은 던전 안에서도 계속됐다. 한 발짝을 움직여도 환영보여야 했고, 한 번을 공격해도 권강을 사용해야 했다.
이것 때문에 처음 발견한 중급 던전을 깨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며 다음 중급 던전을 깨는데는 2주, 마지막 중급 던전의 경우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상급 던전의 경우는 달랐다. 보스 앞까지 도달하는데만 두 달 반. 보스를 없애는데 한 달이 걸렸다.
이건 상급 던전이라 크기가 크고 보스가 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길잡이 없이 던전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든 던전에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길잡이는 던전의 내부를 미리 파악해 적절한 공략법을 제시하는 사람을 말한다. 왜냐하면 던전은 종류에 따라 강력한 몬스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로와 함정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급 던전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그러다보니 방어력이 무한임에도 위험한 순간들이 많았다. 더욱 날카로워진 기감, 적절한 임기응변 거기다 운이 없었다면 지금쯤 난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급 던전을 나오자마자 든 생각은 단 하나.
‘길잡이부터 찾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길잡이를 찾기 시작한 게 바로 3일 전이다. 하지만 전혀 소득이 없다. 길잡이 자체가 워낙 희귀한데다, 아직 각성자 구인구직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갖추기 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별 소득 없이 돌아왔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완전소화까지 이제 50분 정도만 남았으니까.
난 보금자리인 상급 던전으로 돌아와 명상을 하며 완전소화가 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난 얼마 전부터 상급 던전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번에 상급 던전을 클리어하고 안 사실인데 상급 던전은 클리어 한 사람이 승인하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콰콰쾅.
- 상급 던전 기드온의 입구가 강제로 열립니다.
“박태준이 누구야? 한판 붙으러 왔다. 크하하하하!”
던전 소유자보다 강한 힘을 가진 자라면 입구를 닫아도 강제로 열고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 난입한 저 미친놈이 나보다 강하다는 말이고.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