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데스나이트. 죽음의 기사로도 불리는 언데드 최강의 기사. 강력한 저주와 무시무시한 검술로 S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다.
하지만 내 눈엔 그 무시무시한 모습보다는 데스나이트의 손에 들린 검에 더 눈이 갔다.
데스나이트의 검이면 최소 레어 이상이겠지? 그보다 저 해골마도 아이템 아닐까?
[야.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어? 저 놈 같은데 안가?]
“가야지. 눈앞에 진수성찬이 펼쳐져있는데 망설이면 안 되지.”
[잘 갔다와라. 난 여기서 니가 어떻게 싸우는지 봐줄 테니까.]
“오케이. 잘 봐두라고. 자랑스러운 제자의 모습을 말이야!”
난 망설임 없이 데스나이트를 향해 최대한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단번에 거기까지 가기엔 아직 힘이 부족했다.
쿵.
“꾸엑!”
난 데스나이트로부터 100여미터 떨어진 지점에 착지했다. 착지하며 충격을 줄이기 위해 트롤 위로 떨어졌더니 그 트롤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죽어버렸다.
난 죽은 트롤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보고 아이템인가 싶어 한 번 씹어봤다.
까각.
“퉷. 퉤. 에이씨. 그냥 나무잖아!”
내 갑작스런 난입에 상황 파악을 못하던 몬스터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됐다.
“취르륵. 인간이다. 취륵.”
“크르륵. 인간의 뼈를 크륵. 바르자!”
흥분한 몬스터들을 보자 나도 괜시리 흥분이 됐다. 난 들고 있던 몽둥이를 정면에 있던 트롤에게 집어 던지곤 곧바로 무리 사이로 뛰어들며 권강을 날렸다.
콰쾅.
폭자결을 운용한 권강이라 내 앞에 있는 트롤 대여섯 마리가 한 번에 터져 나갔다. 난 주머니에서 오만 원짜리를 한 장 꺼내 씹으면서 말했다.
“좋아. 좋아. 신나게 한 번 놀아보자!”
난 상대를 빨아들이는 흡자결과 권강을 폭발시키는 폭자결을 번갈아 쓰며 앞으로 전진했다. 뒤에서 몬스터들이 내 등을 난도질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공격을 계속 이어 나갔다.
퍼펑.
“꾸에엑!”
“취륵!!!”
어느새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나는 점점 흥분이 고조되는 걸 느꼈다.
몬스터들의 고함 소리. 진한 피 냄새. 터져나가는 살점.
처음엔 잔혹한 광경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이제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간이 더 지속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도 점점 미쳐 가나 보네. 여기에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말야.
그리고 그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 갈 때쯤 드디어 데스나이트 앞에 도착했다. 오면서 쉼 없이 권강을 날려서 조금 지치긴 했지만 견딜만 했다.
난 오만 원을 한 장 더 꺼내 씹으며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그가 내뿜는 기운이 어찌나 강렬한지 미친 듯 달려들던 몬스터들도 더 이상 접근을 못했다.
“휘유! 니가 저놈들 대장이냐?”
[보기 드물게 강한 인간이구나. 나와 대결을 원하나?]
“그렇지.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거든. 어때? 할 맘 있어?”
[난 가능성 없는 일에 부하들을 무책임하게 희생시키지 않는다. 너와의 대결을 받아들이겠다.]
그리곤 해골마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키는 180센티미터쯤 되려나. 투구에서 검은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며 데스나이트는 허리에 찬 검을 천천히 뽑았다.
스르릉.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뽑힌 롱소드도 마찬가지로 검은 기운에 뒤덮여 있었다.
[난 기사 기드온.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 난 박태준인데.”
[박태준. 그대와 이곳에서 생사를 건 대결을 시작하겠다.]
그리곤 검을 들어 올리며 공격자세를 취했다.
저건 몬스터 주제에 왜 저리 예의 바른 거야? 괜히 죽이기 미안해지잖아.
난 속마음과 달리 마찬가지로 공격자세를 취하며 기드온을 노려봤다. 아직 공격은 시작도 안했지만 그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기운과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계속 바라만 볼 순 없는 일. 난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를 좁히며 폭자결을 운용한 권강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검을 내리 그었다.
콰쾅.
검과 주먹이 충돌했을 뿐인데 엄청난 폭음이 발생했다. 그걸 시작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다. 내 공격은 번번이 그의 검에 막혔고, 그의 공격 역시 내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30분 정도 공방을 지속하던 우린 이대론 답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잠시 공격을 멈추고 서로를 노려봤다.
역시 데스나이트. 길게 끌면 불리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끝내야겠어.
“후우웁!”
난 숨을 길게 들이마신 다음 몸 안의 기를 폭발시켰다. 그리곤 츤츤이에게 배운 유일한 보법인 환영보를 시전하며 그의 말을 떠올렸다.
[환영보는 최강의 보법이야. 환영보를 대성하게 되면 말 그대로 상대는 내 환영 밖에 보지 못할 거야. 하지만 이게 보법 주제에 시전할 때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단 말이지. 그래서 지금 네가가 환영보를 장시간 쓰긴 어려워. 그러니 꼭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도록 해.]
순간 내 몸이 촛불이 꺼지듯 훅하고 사라졌다.
쾅.
폭음과 함께 기드온은 가슴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나는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콰쾅. 쾅. 쾅.
기드온은 방어하려고 계속 자세를 취했지만 환영보를 시전한 후부터는 언제나 내가 한발 빨랐다. 그리고 계속되는 공격에 견고하던 그의 갑옷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쾅. 콰쾅.
그 모습에 난 더욱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갑옷은 내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며 터져나갔다. 그제야 난 공격을 멈추고 모습을 드러냈다.
“헉…. 헉….”
더럽게 힘드네.
5분도 채 움직이지 않았는데 몸 안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던 기가 바닥난 게 느껴졌다.
난 숨을 몰아쉬며 갑옷이 부서진 기드온을 바라봤다.
저게 뭐야?
갑옷 안에는 해골 같은 언데드나 사람이 들어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저 검은 연기만 가득 차 있었다.
저걸 어떻게 죽이지? 죽기는 하는 거야?
형체도 없는 연기를 어떻게 죽일지 고민하는데 기드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이번 대결은 그대의 승리로군. 마지막에 했던 공격은 매우 훌륭했다.]
“뭐? 그럼 끝인 거야? 넌 이대로 죽는 거고?”
[하하하. 죽음의 기사인 내게 죽음이라…. 나도 언젠가 안식을 찾을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닌 것 같군.]
말이 끝나자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검은 연기는 서서히 흩어지면서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군의 언젠가 깃발 아래서 대결할 날이 오길 기다리도록 하지.]
- 제1 군단장 기사 기드온을 퇴각시켰습니다.
“후아! 드디어 끝났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은 기사 기드온이 사라지자마자 슬금슬금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놈들은 또 어떻게 처리하지? 이쯤에서 츤츤이를 부를까?
그때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 최초로 몬스터 지휘관을 처치했기 때문에 ‘대격변의 영웅’ 칭호를 획득합니다. 칭호 효과는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대격변의 영웅? 이건 또 뭐야? 응?
그때 내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서서히 다가오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저것들은 또 왜 저래? 설마 칭호 효과 때문인가?”
난 서둘러 ‘대격변의 영웅’ 칭호의 상세정보를 확인했다.
‘대격변의 영웅’
효과: 영웅 칭호로 인해 모든 몬스터들의 위협에 대해 면역을 가진다. 또한 모든 몬스터들이 영웅 칭호로 인해 두려움을 느껴 공격받을 확률이 줄어든다. 하위 몬스터일수록 그 효과가 크다. 단, 공격에 맞은 몬스터는 칭호 효과가 사라진다.
“하하하하. 이거 대박이잖아. 그럼 이제 잡몹들은 상대 안 해도 된다는 거네.”
한동안 기쁨의 댄스를 추던 내 눈에 기드온이 떨구고 간 검이 보였다.
“맞다. 검부터 확인 해야지!”
난 바닥에 떨어진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검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바로 경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 저주 받은 기사 기드온의 검을 획득했습니다. 강력한 저주에 걸려 있는 검입니다. 착용 시 풀 수 없는 저주에 걸립니다. 저주를 해제한 후 사용하세요.
“저주? 이거 먹어도 되려나? 괜히 탈나는 거 아냐?”
찝찝하다. 내 촉이 먹으면 탈이 날 거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먹고는 싶지만 좀만 참자. 저주부터 풀고, 그리고 먹는 거야. 흐흐흐.”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해골마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딴 생각하는 사이 어딘가로 도망간 모양이다.
“쩝. 아쉽네. 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나저나 지휘관도 없앴으니 돌아가볼까!”
난 여유 있는 걸음으로 몬스터들을 지나쳐 츤츤이가 기다리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츤츤이는 날 보자 반색을 하며 말했다.
[끝난 거야?]
“끝났지. 근데 내 전투 어땠어?”
전문가로서 내 첫 전투를 어떻게 봤을지가 궁금했다.
[나쁘진 않았지만 내공 낭비가 좀 심했어. 환영보의 경우도 계속 연속으로 쓰기보단 상황마다 적절히 섞어서 사용하는 게 효율적일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츤츤이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 완전히 방전 됐으니까 명상 좀 할게. 그 동안 호법 좀 서줘.”
츤츤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자리에 앉아 명상에 들어갔다. 그리곤 명상을 통해 떨어진 기를 보충하면서 아까 기드온과의 대결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 츤츤이 말대로 환영보를 공격할 때마다 조금씩 섞어서 사용했다면 이렇게까지 기를 소모하진 않았을 거야. 다음부턴 그렇게 사용해야겠어.
한 시간 정도 명상 후 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호법을 서고 있던 츤츤이는 내가 일어나자 말했다.
[근데 저 검은 뭐냐? 지독한 저주에 걸려 있던데. 저대론 제대로 쓰지도 못하겠는걸.]
“그니까. 아까 데스나이트가 가지고 있던 검인데 저주를 푼 다음 사용하라네. 그대로 사용하면 저주에 걸린다고. 그래서 일단 가지고 다니면서 저주 풀 곳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럼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야?]
“아까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지휘관 잡는 것도 알려주고. 가자!”
난 츤츤이와 함께 왔던 대로 옥상을 통해 돌아갔다. 잠시 후 처음 올라갔던 건물 옥상에 도착한 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정찬호 무리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호오. 생각보다 잘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을 잘 활용하고 있네. 서로의 합도 잘 맞는 것 같고.]
“그러게. 저 정도면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그 외에 다른 곳을 둘러보니 곳곳에서 각성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몬스터들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정찬호 무리처럼 체계적이진 않았다. 아마 긴 시간 전투로 인해 자연스레 대형이 흐트러진 듯 했다.
“잘하고 있네. 그럼 슬슬 내려가볼까!”
내려가서 대충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지휘관을 먼저 잡아야 된다는 걸 알려주려고 했다. 그때 내 시야에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들을 돌파하며 들어오는 한 무리의 각성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ㅅ자 형태로 대형을 갖추고 마치 창처럼 몬스터들을 꿰뚫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