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비키라는 내 말에 반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반응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잠시라도 눈을 돌렸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이다.
“에휴. 됐다. 내가 가지 뭐.”
발에 힘을 주며 도약하자 단숨에 사람들을 뛰어 넘어 오우거 머리 위에 도착했다. 난 가볍게 주먹에 힘을 주곤 오우거 머리에 꿀밤을 날렸다.
빡.
찰진 소리와 함께 오우거는 비틀거렸다.
현실에서 첫 실전이라 그런가? 조금 설레는데.
난 오우거가 정신 차리기 전에 주먹에 기를 두른 채 오우거의 배에 찔러 넣었다.
푸욱.
손은 그대로 오우거의 배를 꿰뚫었다. 이걸로 오우거가 죽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바로 뒤에 남은 오우거를 향해 달려갔다.
“크워어어!”
뒤에 있던 오우거는 동료가 치명상을 입자 화가 났는지 나를 향해 포효하며 몽둥이를 매섭게 휘둘렀다.
후우웅. 퍽.
몽둥이는 무서운 파공음을 내며 내 몸을 향해 날아왔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기를 두른 주먹을 찔러 넣었다.
푸욱. 퍽.
내 주먹은 아까처럼 오우거의 배를 꿰뚫었지만 오우거의 몽둥이도 내 머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난 환하게 웃으며 오우거를 쳐다봤다.
“그래. 이 느낌이야. 오랜만에 맞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
난 그 상태에서 순식간에 오우거의 몸에 몇 개의 구멍을 더 내고는 숨이 끊어진 걸 확인 한 후에야 뒤를 돌아봤다. 뒤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치명상을 입은 오우거를 처리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며 한 번 웃어 주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지나갈 때 경찰로 보이는 여자만 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가 자릴 잡자 갑자기 사람들이 날 비난하기 시작했다.
“다…당신 그런 능력이 있으면 진작에 도와주지, 왜 이제야 나선 거요?”
“맞아. 당신 때문에 괜한 사람들만 다쳤잖아!”
“어떻게 그리 무책임할 수 있어요?”
그들의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역시 인간들은 고마움을 몰라요. 내가 왜 너희들을 도와야 되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같은 사람으로서….”
“같은 사람? 개소리 하지 말고. 니들은 먼저 나한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해야 맞는 거야. 그리고 나서 다음 전투에서도 도와달라고 부탁했어야지.”
그제야 사람들은 전투가 한 번 더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그 말은 다음 전투에서 안 도와주겠다는 말이요?”
“하하하. 내가 도와주고도 욕을 먹는데 뭐하러 도와주겠어?”
“당신, 이러고도 밖에 나가서 무사할 거 같아?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난 마지막에 말한 20대 초반의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가 누구신데?”
“우…우리 아버지가 삼선 의원이야. 삼촌은 유명한 검사고. 밖에 나가기만 하면 너 정도는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할 수 있어! 감당할 수 있겠어?”
처음엔 내 눈빛에 겁을 먹었는지 말을 더듬던 남자는 아버지와 삼촌 얘기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나중에는 버럭 소리까지 질렀다.
“하하하하! 내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그 남자는 내가 자신의 말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자 다시 위축된 표정으로 말했다.
“뭐…뭘?”
“니가 얘기한 그 모든 거, 밖에 나가면 이제 다 쓸모없게 될 거야. 세상이 변할 거거든. 하긴 그것도 밖에 나가야 확인할 수 있는 거니까 일단 여기서 살아남기부터 해봐.”
아닌게 아니라 대격변 이후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정부의 힘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나라 이름만 유지하는 정도의 역할 밖에 못하게 된다. 정부가 못하는 빈자리는 앞으로 생겨날 대형 길드들이 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나 경찰, 검사 등은 몇 년 안에 사라지게 된다.
국회의원들이 했던 역할은 길드들의 길드장들이 모여 대신하게 되고, 도시의 치안도 길드에서 지역을 나눠 맡게 된다.
“우…웃기지 마!”
“에휴. 그래 나도 이게 웃기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제야 사람들은 돌아가는 상황이 어떻다는 걸 알게 됐는지 전혀 달라진 태도로 나한테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집에 와이프랑 3살짜리 딸이 있어요. 전 여기서 꼭 나가야 돼요.”
“저도요. 집에 노부모님이 계세요. 저 없으면 제대로 식사도 못하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난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다. 그때 지켜보던 양아치가 버럭 소릴 질렀다.
“다들 닥치고 있어! 저딴 새끼한테 굽실댈 필요 없어. 우리끼리도 충분하니까. 아깐 전략을 잘 못 세웠을 뿐이지 다른 전략으로 상대했다면 우리끼리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어. 아마 다음 몬스터도 전략만 잘 세우면 막을 수 있을 거야.”
정확하다. 난 다시금 새삼스런 눈으로 양아치를 바라봤다.
호오. 거기까지 파악했다고? 저 놈은 생긴 거와 달리 볼수록 재밌단 말이야.
경찰로 보이는 여자도 합세해서 양아치의 말에 힘을 실었다.
“맞아요. 우리가 저 분에게 억지로 도와달라고 할 권리는 없어요. 우리끼리 힘을 합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그리곤 자기들끼리 전략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이 날 힐끔거리며 쳐다보긴 했지만 내게 도움을 청하는 건 일단 안하기로 한 모양이다.
난 그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몬스터들이 나타난 동굴 안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근데 저 안에는 뭐가 있는 거지?
갑자기 동굴 안쪽엔 뭐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한 번 가볼까?
어차피 지금 할 것도 없으니 즉시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몇몇이 또 쳐다보긴 했지만 날 제지하지는 않았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눈앞에 푸른빛의 포탈이 보였다.
“저기서 몬스터들이 나오는 거였구나.”
근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뒤로 이어진 길이 더 있었다.
“좀 더 가볼까.”
난 포탈을 피해 동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1-2분쯤 더 걸었을까. 드디어 막다른 길이 나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처음 보는 붉은빛의 포탈이 보였다.
“붉은 포탈? 저건 뭐지?”
내가 알기로 포탈은 푸른색, 노란색, 흰색 밖에 없다. 붉은색은 처음이다.
- ‘키라의 둥지’를 발견하셨습니다.
“키라?”
- 절대자 키라가 당신의 존재를 눈치 챘습니다. 키라의 눈이 당신을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 키라의 개입으로 인해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마지막 몬스터가 트윈헤드 오우거에서 힘이 제한된 발록으로 변경됩니다. 몬스터를 막으세요.(2/3)
“뭐? 발록?”
발록은 소설이 아니더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봤고 다른 양판소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물론 소설 [회귀자]에서도 한 번 등장한 적이 있다. 상급 던전의 보스로 말이다.
온 몸에 불꽃을 두르고 불타는 채찍을 휘두르는 강력한 몬스터로, A급 이상 각성자 5인으로 구성된 파티여야 공략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근데 힘이 제한된은 뭐야? 약하다는 소린가?
난 부리나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걱정되는 건 아니지만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걸 무시할 정도로 인성이 없진 않다. 아직까진 말이다. 거기다 발록의 채찍은 분명 희귀 등급 이상 아이템. 무조건 먹어야 된다.
최대한 속력을 내자 어느새 불타고 있는 발록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힘이 제한됐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원래 발록은 3미터가 넘는 키에 엄청난 덩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발록은 고작 2미터 정도로 작은 녀석이었다. 난 즉시 발록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다들 뒤로 도망가. 니들이 상대할 놈이 아니니까.”
하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미 대부분은 죽고 살아있는 사람은 7명 정도 밖에 안 됐으니까.
젠장. 이미 늦었구나.
발록은 갑자기 자신의 앞을 막은 날 보고는 비웃으며 말했다.
[인간. 내 앞을 막아선 용기가 대단하구나. 그 용기에 걸맞게 단숨에 불태워주마.]
그리곤 채찍을 휘둘렀다. 불타는 채찍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와 날 휘감았다.
화르륵.
난 내 몸을 감고 있는 채찍을 먹음직스럽게 바라봤다. 일 년 만의 아이템이다. 그 동안 주구장창 지폐만 씹었더니 미쳐버릴 것 같았는데 드디어 다른 먹거리가 등장한 것이다.
“따뜻한 게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네.”
난 휘감고 있는 채찍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서걱. 쩝쩝. 서걱. 쩝쩝.
[뭐 저런 미친 놈이….]
발록은 내가 채찍을 씹어 먹자 깜짝 놀라며 채찍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난 채찍을 두 손으로 꽉 잡으며 계속 씹었다. ‘갈탄의 장갑’까지 소환해 버티며 계속 씹어 먹었다. 하지만 아직 힘으로 발록을 이기긴 힘든지 채찍을 잡은 내 몸은 계속 발록을 향해 끌려갔다.
좀 더 빨리 씹자.
의식적으로 좀 더 빨리 씹자 발록이 채찍을 당기는 속도보다 내가 먹어 들어가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결국 발록 앞에 도착했을 때는 채찍 손잡이만 남아있었다.
- 발록의 채찍을 섭취했습니다. 내공이 21만큼 오릅니다. 추가로 화염에 대한 내성이 10퍼센트 증가합니다.
나이스. 화염 내성도 올랐네.
사실 난 방어력이 무한이라고 해서 어떤 공격을 당해도 멀쩡한 줄 알았다. 하지만 수련을 하면서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무한의 방어력은 물리적인 공격에만 적용 되며 정신 공격이나 독과 같은 공격엔 취약했다. 화염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겪어 본 바로는 상당한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그래서 이 단점들도 차근차근 보완해 나갈 생각이다.
“불향이 살아있네. 맛있어. 더 있으면 좀 꺼내봐.”
[이…이 버러지 같은 인간이. 죽어라!]
발록은 손잡이만 남은 채찍은 던져버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난 지긋이 날아오는 주먹을 보다가 주먹에 강기를 두르고 마주 뻗었다.
콰쾅.
폭음과 함께 발록의 팔이 터져 나갔다.
지금 내 권의 경지는 기를 넘어 강기를 두를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강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츤츤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말했다.
[보통 주먹에 강기를 두르는 권강의 경우 보통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경지야. 무예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수십 년은 수련해야 올라설 수 있는 경지거든. 넌 그걸 1년 만에 해낸 거니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돼. 물론 다 내 덕이긴 하지만. 거기다 앞으로 내공이 더 오르게 되면 강기를 방출할 수도 있게 될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서야 내가 알려준 무공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겠지.]
그 말을 들은 후론 능력치 상승을 내공만 오르게 설정해 놨다.
“어때 화끈하지?”
[끄아아악!]
발록은 고통스러운지 팔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강기를 두른 주먹을 계속 내질렀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발록의 다른 팔다리도 터져 나가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난 팔다리를 잃은 발록 가슴에 올라가 고통스러워하는 발록에게 물었다.
“죽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키라가 누구야?”
고통스러워하던 놈은 키라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통마저 잊었는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니가 어떻게 그 분을 알고 있는 거지?]
“그건 알 필요 없고. 키라가 누군지나 말해.”
[너 같은 버러지는 그 분의 이름을 말할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고귀하신 분이시지.]
“아 진짜! 그러니까 그 새끼가 뭐하는 새끼냐고?”
하지만 발록은 이미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 거렸다.
[고귀한 날갯짓으로 세상을 파멸로 이끄….실….]
발록의 전신에 타오르던 불꽃이 완전히 꺼졌다.
- 모든 몬스터를 막으셨습니다. 살아남으신 분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잠시 후 현실로 돌아갑니다. 그 전에 최상급 난이도 미션을 클리어 하셨기 때문에 특별 보상이 지급됩니다.
특별 보상? 보상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