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방어력 무한-10화 (10/196)

10화

“여긴 어디지?”

소환 된 곳은 동굴이었는데, 벽면에 있는 돌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어서 불빛 없이도 충분히 잘 보였다. 주변을 돌아보자 나 말고도 소환된 사람들이 스무 명 정도 돼 보였다.

- 각자 각성된 능력을 발현하세요. 과반수 이상 발현 시 다음으로 넘어갑니다.(현재 0/20)

“이…이게 다 뭐야?”

“이거 꿈 아니지? 각성자는 또 뭐고?”

“여기 뭐 아는 사람 있어요?”

난 조용히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굳이 나서서 관심 끌 필요는 없으니까.

“저기, 아까 능력을 확인해 보라고 했으니까 한 번 시도해보는 건 어때요?”

“그건 뭔 개소리야? 그리고 어디서 여편네가 끼어들고 지랄이야?”

“여편네? 어따 대고 여편네야?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아직도 그딴 소릴 하고 있어? 어?”

그때 누군가 그들 사이로 걸어오더니 아줌마와 싸우던 아저씨 뺨을 냅다 후려쳤다.

짝.

뺨을 맞은 아저씨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남자를 쳐다봤다.

“시끄러! 정신 사납잖아.”

“도…도와줘서 고마워요.”

아줌마의 말에 이번엔 그녀의 뺨이 돌아갔다.

짝.

“씨발. 니 년도 마찬가지야.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인상을 팍 쓰고 돌아서는 그를 보고 난 반가움에 하마터면 손을 들 뻔 했다. 촌스런 금발에 야구점퍼. 그는 어제 골목길에서 날 때리려던 양아치였다. 그때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꺄악! 이…이게 뭐야!!”

소리 친 사람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였는데 그녀의 손이 길게 앞으로 늘어나 있었다.

흠! 저 여자는 형태 변형 각성자구나.

각성자들의 능력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 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게 형태 변형 능력이다. 몸 일부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그 강도나 모양의 디테일한 정도는 개인마다 달랐다.

“야! 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양아치가 득달같이 달려가 그녀를 다그쳤다.

“그…그게….”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향해 양아치는 욕까지 하며 더욱 다그쳤다.

“야이 썅년아. 어떻게 한 거냐고!”

“그…그냥 손이 몽둥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이렇게….”

“뭐? 그게 다야?”

“네….”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시도해보던 양아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시 화를 냈다.

“안 되잖아, 이 새끼야!!”

그때 다른 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어? 나도 된다. 나도 돼!”

이번에 소리친 사람은 아까 뺨을 맞은 아저씨다. 그의 오른손은 날카로운 식칼로 변해있었다.

“아이씨. 저 병신 같은 새끼도 되는데 난 왜 안 되는 거야?”

그 말에 뺨을 맞았던 아저씨의 눈빛이 변했다.

“뭐? 병신? 이 새끼야, 다시 말해봐!”

아저씨는 식칼로 변한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며 양아치를 향해 다가왔다.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은 그들 주위에서 물러나 사태를 관망했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하하. 야! 너 지금 칼 하나 들었다고 정신이 나간거야?”

그 말에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하나? 하나 아닌데.”

말하는 사이 아저씨의 왼팔 전체가 긴 검으로 변했다. 그제야 양아치도 안색이 변했다.

“그래서 뭐? 씨발 죽이기라도 할 거야?”

“안 될 거 없지.”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걸어와 식칼로 변한 오른 손을 양아치 다리에 찔러 넣었다. 죽이기는 그러니 다리를 찔러 못 움직이게 하려는 계획인 것 같았다. 그걸 본 양아치는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깡.

“깡?”

그런데 칼에 찔린 양아치 다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깡이라니.

호오. 저 놈은 육체 강화 능력이구만.

육체 강화 능력은 몸의 일부나 전체를 매우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던전을 공략할 때 탱커 역할을 많이 맡았다.

양아치는 자신의 몸이 칼에 맞아도 이상 없을 정도로 단단해졌다는 걸 알고는 잔인하게 웃으며 아저씨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가! 어딜 찔러. 어? 또 찔러봐!”

“아악! 죄…죄송해요. 악!”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난 양아치의 행동이 눈에 거슬려 나서려는데 내 옆에서 조용히 있던 여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야! 적당히 좀 하지.”

나이는 20대 후반쯤 되려나. 160 중반 정도의 키에 적당한 외모를 가진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양아치를 노려봤다.

“하! 이건 또 뭐야? 이젠 개나 소나 다 기어오르네. 야! 죽고 싶어?”

그리곤 아저씨 때리던 걸 멈추고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 여자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꼼짝 마! 더 이상 다가오면 쏠 테니까.”

그녀가 꺼낸 건 총이었다. 순간 양아치는 깜짝 놀라며 멈칫했다가 이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경찰이라도 되나봐? 근데 이를 어쩌나. 난 총 따위론 죽지 않을 것 같은데.”

사실 맞는 말이다. 육체 강화 능력을 지닌 각성자의 경우, 총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듣고도 침착하게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당장 그만둬! 안 그럼 진짜 쏜다!”

“씨발. 쏴 보라고!!”

그때 그녀의 총이 서서히 붉은 색으로 뒤덮이는 게 보였다. 처음엔 옅은 색이었지만 점차 그 색이 진해졌다.

어? 원소 감응? 색을 보니 불꽃 계열이네.

원소 감응 능력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원소와 감응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원소와 감응할 수 있는 건 아니며, 불과 물 계열이 가장 일반적이다.

양아치도 저 총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눈치 챘는지 긴장하며 주시하고 있는데 모두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 과반수 이상의 능력 발현이 끝났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갑니다.(현재 10/20)

그 사이 몇 사람이 더 능력 발현에 성공했는지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 세 번에 걸쳐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으세요.(0/3)

“몬스터? 게임에 나오는 그 몬스터?”

“그럼 괴물이란 말이에요?”

드드드드드.

그때 동굴 깊은 곳에서부터 기분 나쁜 울림이 느껴졌다. 나를 제외한 모두는 잔뜩 긴장한 채 앞을 주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기분 나쁜 울림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소리는 고블린 무리가 달려오는 소리였다.

“꺄아아악! 저…저게 뭐야? 징그러!”

다들 비명을 지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침착한 건 경찰로 추정되는 여자와 의외로 양아치였다.

“다들 닥쳐! 자세히 보면 별거 아닌 놈들이니까 호들갑 떨지 마.”

“맞아요.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최대한 무기가 될 만한 걸 만드세요. 아직 능력이 없으신 분들은 뒤에서 최대한 빨리 능력을 찾으시구요. 어서요.”

하지만 사람들은 달려오는 고블린들이 무서워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답답했는지 양아치는 사람들을 향해 욕을 내뱉었다.

“병신 같은 새끼들! 그냥 다 뒤져.”

그리곤 고블린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깡 하나는 죽이네. 처음 보는 몬스터한테 달려드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난 양아치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경찰로 추정되는 여자를 선두로 몇 몇 신체 변형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신체를 칼이나 야구방망이 같은 무기로 바꾸고는 고블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능력이 발현된 다른 이들도 마지못해 고블린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직 능력 발현을 못한 사람들은 눈치도 보이고 이 상황이 무서운지 능력을 찾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하나 둘씩 능력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달려들던 고블린들은 하나 둘 정리가 되고 있었다. 전략은 단순했다. 양아치가 몸으로 막고 있으면 뒤에서 다른 이들이 마구잡이로 찌르고 베는 게 다였다. 처음엔 어설펐지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점점 체계가 잡혀 갔다. 그리고 고블린이 별거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좀 더 과감한 공격을 하기 시작했고, 금세 상황은 정리 됐다.

“하아. 하아. 씨발, 별 것도 아닌 새끼들이 깝치고 있어어어어!”

양아치가 소리치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동굴이 떠나가라 소릴 질러댔다.

그나저나 세 번의 공격이라고 했으니까 앞으로 두 번 남았네. 계속 고블린 같은 놈들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때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요. 당신은 왜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거 안 보여요?”

이건 또 뭐야?

내게 따지듯이 말하는 사람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남자였다. 아마 다들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는데 구경만 하는 내가 아니꼬웠던 모양이다.

“잘 보여. 근데 왜?”

“뭐? 이 사람이 어따 대고 반말이야?”

“나이도 비슷한 거 같은데 너도 반말해.”

그때 양아치가 다가오며 말했다.

“또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가 다가오자 남자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날 가리켰다.

“아니 저 사람이 아무 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하고 있잖아요. 다들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그 말에 양아치는 인상을 팍 쓰며 날 바라봤다. 그러다 잠시 후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날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너 어제 골목에서 본 새끼구나. 너 맞지?”

“하하하. 그걸 이제 알아본 거야?”

“너 잘 만났다. 안 그래도 만나면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그때 다음 몬스터들의 공격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 몬스터들을 막으세요.(1/3)

쿵. 쿵. 쿵.

동굴 멀리서 아까와는 전혀 다른 진동이 느껴졌다.

“이 새끼. 좀 있다 보자.”

들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아보였는지 양아치는 있다 보자는 말만 하고 급히 동굴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땅을 울리며 걸어오는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우거?”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동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오우거였다. 그것도 두 마리나.

2미터를 훌쩍 넘는 키에 거대한 몽둥이를 손에 든 오우거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난이도가 갑자기 너무 상승한 거 아니야? 고블린에서 갑자기 오우거라니. 오우거 한 마리만 해도 아까의 고블린들은 가볍게 씹어 먹을 텐데.

그 사이 사람들은 양아치를 선두로 아까와 같은 대형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우거의 방망이질 한 번에 순식간에 대형은 깨져버렸다. 다행이라면 동굴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아 오우거 두 마리가 동시에 우릴 공격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오우거는 한 마리라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몸빵을 위해 양아치가 달려들었지만 번번이 나가떨어졌고 그 사이 누군가는 다쳤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죽는 사람도 나올 것 같았다.

괜히 신경 쓰이네.

사실 산을 내려오면서 결심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득이 되는 일만 하자, 다른 하나는 남들 눈에 너무 띄게 움직이지 말자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눈에 띄게 움직이게 되면 인지도가 올라갈 테고, 그러면 견제를 받게 된다. 가뜩이나 나와 히든 보스는 엄청난 실력차가 날 텐데 견제까지 받게 되면 상황을 뒤집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상황은 내게 이득도 안 되는데다 내가 나서면 주목만 받을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려 했다. 하지만 막을 수 있음에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지켜만 보는 게 불편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사람 죽는 건 비일비재하게 볼 테고 내 손으로 직접 살인을 하는 날도 올 테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니 조금 실력을 보여줘도 상관없겠지.

난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말했다.

“야! 거기서 다 비켜.”

나 혼자 방어력 무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