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태백산.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 있는 산으로 태백산맥의 주봉인 곳. 그 아래서 난 오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씹으며 츤츤이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산에서 수련을 하는 게 제일 효율적이란 거지?”
[그래. 산의 맑은 정기를 받으며 수련하는 게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길이야. 내가 계획 다 짜왔으니까 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그럼 일 년 후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을 테니까.]
“근데 그게 일 년으로 가능해?”
[보통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넌 가능해.]
그 말에 지폐 한 장을 더 꺼내 씹던 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라서 가능하다고? 그건 또 뭔 말이야?”
[넌 상처도 안 나고 고통도 못 느끼잖아. 그걸 최대한 활용할 거야. 흐흐흐. 말하다보니 나도 기대가 되네. 일 년이 지난 후 니가 어떤 괴물이 되어 있을지 말이야.]
- 오만 원을 섭취했습니다. 민첩이 1만큼 오릅니다.
9천만 원을 모두 오만 원 권으로 바꿔서 태백산까지 오면서 꾸준히 씹어 먹었다. 처음엔 오만원에 능력치가 3씩 오르더니 어느 순간부터 점점 줄기 시작해서 지금은 십만 원을 먹어야 1이 올랐다.
아오! 쉬지도 않고 씹었더니 턱이 다 아프네.
난 턱을 어루만지며 태백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로는 사람들 눈에 잘 띄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택해 올랐다. 한겨울이라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었지만 내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다. 여기가 산의 정기가 가장 잘 모이는 곳이야.]
츤츤이가 멈춘 곳은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보이는 골짜기다. 츤츤이만 따라 올라온 난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옥 같은 수련을 시작했다. 츤츤이 말대로 그가 짠 계획은 일반인은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극한의 수련법이었다. 철저하게 나한테 맞춰진 수련법.
하루는 근력 훈련을 한다고 온 몸에 돌덩이를 매고 절벽을 오르다 중간쯤에서 바닥에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난 버럭 화를 내며 츤츤이에게 물었다.
“아니, 이딴 걸 지금 왜 하는 거야? 근력이야 먹어서 올리면 된다니까. 그러니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쯧쯧. 멍청한 놈. 그렇게 한 순간에 얻어지는 능력과 힘들게 얻어낸 힘이 과연 같을까? 전혀 다르지. 결과는 같더라도 그 과정이 다르니까. 넌 지금 과정을 학습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과정을 지금 왜 학습하냐고! 시간도 없는데!”
[니가 수련 과정 중에 느끼는 감각 하나하나가 나중에 무예를 배울 때 엄청난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 잔말 말고 다시 올라가기나 해.]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보통 인간은 할 수도 없는 일들을 쉬지도 않고 반복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날들이었지만 결국 시간은 흘렀다.
“헉… 헉…. 끝났다.”
어느덧 산에 들어온 지 반 년이 지났다. 오전 수련을 마치고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물대신 오만 원을 씹었다. 수련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돈을 씹으면 능력치도 오르지만 피로도도 약간 줄여줬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선 곧바로 전세금도 빼서 추가로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곤 지금처럼 훈련 중간 중간에 먹어줬다.
대자로 누워있으니 지난 반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반년 간 하루 종일 체력, 근력, 민첩, 유연성 등의 훈련을 했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이다. 자는 시간도 없었다. 잠 자는 시간엔 잠 대신 명상을 하며 호흡에 집중했다.
그러다보니 확실히 성과는 있었다. 먼저 몸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겉보기에도 군살 없이 탄탄한 몸이 됐지만 능력치도 상당히 올랐다. 또 이제 물속에서 15분은 거뜬히 버틸 수 있게 됐고,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데도 숨조차 차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 수련을 마치고 명상을 하며 쉬는데 눈앞에 못 보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 새로운 능력치 내공이 개방되었습니다. 현재 내공은 14입니다. 이제 돈이나 아이템을 섭취해서 내공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헐. 내공? 무협지에 나오는 그 내공?
그 사실을 츤츤이에게 말했더니 츤츤이는 코웃음을 쳤다.
[흥. 그게 내공이라고? 좁쌀보다 작은 기운이 생겼을 뿐인데? 뭐, 이제야 기초적인 체력 훈련 대신 제대로 무공을 배울 수 있겠네.]
씨발. 그게 기초적인 체력훈련 이라고?
속으로 츤츤이에게 쌍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드디어 무술을 배운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그때부터 반년 동안은 하루하루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체력 훈련을 하던 때가 오히려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얼마나 심하게 수련을 했는지 방어력 무한인 몸이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무술은 오로지 권법과 각법, 신법만 배웠다. 거기다 시간 나는 대로 진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오히려 진법은 이해하기 쉬웠다. 마치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아서 재밌었다.
능력치는 꾸준히 올랐고, 어느새 대격변 하루 전날이 됐다.
일 년 동안 내 몸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힘이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변한 건 나뿐이 아니었다.
츤츤이 역시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몸의 크기를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었고, 몸 전체에 강기를 두를 수 있을 정도로 기를 키웠다.
“자. 이제 내려가 볼까?”
난 오만 원을 씹으며 말했고, 츤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고생했어. 드디어 내일이네. 오늘은 내려가서 간만에 고기 좀 먹자.]
“그래. 일단 서울부터 가고. 그 다음 오랜만에 소고기 좀 구워보자.”
츤츤이는 내 말에 기분이 좋은지 몸을 내 다리에 비벼 댔다. 일 년 동안 자신이 개라는 걸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어서인지 가끔 진짜 개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난 그게 싫지 않았다.
난 미리 준비해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산을 내려갔다. 서울 역에 내려 개와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숙소를 잡고 고기를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서울은 일 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짜증 섞인 얼굴들. 화려한 네온사인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나도 저런 모습이었겠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매일매일 수업에 치여 살던 모습 말이다.
그때 감상에 젖어 있는 나를 츤츤이가 잡아끌었다.
[야! 뭐해? 고기 먹으러 가야지.]
“그래. 가자.”
보통은 애완견과 함께 고깃집에 갈 수 없지만 가능한 곳이 몇 곳 있어서 그곳에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가격은 약간 비쌌지만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먹었다.
“아! 이 얼마만의 고기인가! 녹는구나. 녹아.”
[그러게. 쩝쩝. 맨날 야생동물만 잡아먹다 제대로 된 고기를 먹으니 정말 좋은데!]
아닌게 아니라 우린 산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몇 달을 살았다. 원래 계획은 음식은 산 밑에서 조달할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내려가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래서 수련도 할 겸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끼니를 해결했다.
나는 미친 듯이 고기를 흡입한 다음 근처 마트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과 물을 샀다. 내일 발생할 대격변 이후의 세상은 한동안 혼란스러울 텐데, 미리미리 대비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간단한 준비들을 마친 후 츤츤이와 함께 잠시 밤거리를 걸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불금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앞으로 한동안 이 모습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하니 모든 것이 새롭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도시의 밤을 만끽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날카로운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골목 안을 슬쩍 보니 웬 남자 세 명이 여자 한 명을 에워싸고 뭔가를 뺏고 있었다. 원래라면 내 일이 아니니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대격변 전 마지막 날을 깔끔하게 마무리 하고 싶었다.
난 망설임 없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야야! 시끄러우니까 그만해라.”
내 말에 남자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저거 미친 새끼 아냐? 야! 너 일로 와봐!”
내가 웃으면서 쳐다만 보고 있자 날 불렀던 남자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을 구기며 내게 걸어왔다. 그러다 옆에 있는 츤츤이를 보곤 멈칫했다.
“아이썅. 저 개새끼는 뭐야? 너 설마 저 개새끼 믿고 깝치는 거야?”
“뭔 양아치 새끼들이 이렇게 말이 많아? 우리 츤츤이가 무서우면 빨리 꺼지던가.”
“뭐? 이 미친 새끼가 뒤지려고 환장을 했나!”
양아치의 반응이 너무 재밌다. 그게 너무 재밌어서 더 도발하고 싶어졌다. 그때.
삐이익.
갑작스레 들려온 호루라기 소리에 날 때리려고 손을 들었던 남자는 멈칫했다. 누군가 시비가 붙은 줄 알고 경찰을 부른 모양이다.
“야야. 짭새다. 튀어!”
그리곤 서둘러 골목길을 빠져나가면서 진부한 대사를 내뱉었다.
“너 이 새끼. 다음에 만나면 뒤질 줄 알아!”
“네네. 어서 꺼지세요.”
내 말에 날 때리려던 남자는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며 날 노려보다 경찰이 오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마지못해 도망갔다.
나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 얼른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고맙다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 듯 했지만 무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시간은 10시 23분. 내일 오전 8시 20분에 운석이 떨어지고 대격변이 시작된다. 그 전에 푹 자서 체력을 비축해 두는 편이 좋다.
난 바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마치 수능 전날처럼 긴장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일 년 동안 미친 듯이 한 수련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보여줄 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드디어 아침이 됐다. 오전 7시 30분.
TV를 틀자 온통 운석에 관한 뉴스였다.
<밤 사이 대기권 밖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운석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운석들은 천천히 대기권으로 진입 중에 있고, 대략 50분 후 지면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정부는 운석이 지면에 닿기 전 미사일로 요격할 준비를 갖췄다고 말하며 국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임을 강조했습니다….>
“드디어 오는구나.”
[그러게.]
“언제 씻을지 모르니까 미리 샤워나 해야겠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는데 뉴스에서 속보가 흘러 나왔다.
<국민 여러분.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운석을 요격하기 위해 발사한 미사일들이 모두 원인 모를 오작동을 일으켜 요격에 실패했다는 소식입니다. 앞으로 23분 후 운석들이 지면에 떨어질 예정이니….>
그러면서 뉴스에서는 운석이 떨어질 예상 지점들을 알려줬다. 이미 새벽에 운석이 떨어질 예상 지역 주민들은 모두 대피했다는 소식도 함께 알려주면서 말이다.
난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도로는 이미 떨어지는 운석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잠시 후 떨어지는 운석이 보였다.
콰콰콰쾅
운석은 서울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떨어졌지만 충돌음이 여기까지 들렸다. 난 떨어지는 순간 발생하는 충격파에 대비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때 모두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 지금부터 각성자들을 선별합니다…. 선별이 완료 되었습니다.
“이게 뭐야? 눈앞에 무슨 글자가 나타났는데? 이거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나도 보여. 각성자를 선별한다고.”
영문을 몰라 웅성대는 사람들.
드디어 시작이구나!
그때 눈앞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 지금부터 각성자들을 강제로 소환합니다.
“응? 강제 소환?”
그런 말은 없었는데…. 아! 변화 된다는 부분이 이거였나?
자신의 개입으로 약간의 변화가 있을 거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 5초 후 강제 소환 장소로 이동합니다. 5…4…3…2…1….
순간 내 발밑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