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손바닥을 조금 물어뜯어 먹었을 뿐이다. 단지 그 뿐이다.
그런데 노인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더니 무척이나 당황해했다.
“헉… 헉…. 이제야 살겠네.”
근데 왜 저래?
난 숨을 돌리며 의아한 눈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그때 당황하던 노인의 몸이 서서히 검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검으로? 왜?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저 검을 먹는 거다. 난 쏜살 같이 달려가 검을 물어뜯었다.
콰득. 쩝쩝.
[끄아아악! 야, 이 미친 새끼야! 그만 뜯어 먹어!]
“어? 아직도 말할 수 있구나? 좀만 기다려. 금방 먹어줄게.”
뭔가 의식이 있는 걸 먹는다는 게 꺼림칙하지만. 살려면 먹어야지 어쩌겠어.
콰득. 콰드득.
[끄으악, 잠깐 잠깐만! 네가 원하는 아이템을 줄 테니까 제발 멈춰!]
“응?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준다고?”
[그… 그래. 니가 원하는 아이템을 줄게. 몇 개를 원해? 10개? 100개? 원하는 만큼 줄게. 여긴 선택의 방. 내가 여기선 주인이라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그러니 제발 먹는 걸 멈춰!]
아까 노인이었을 때의 여유는 사라지고 다시 도로 변한 그는 살기 위해 다급히 외쳐댔다. 말투도 완전히 달라졌다.
흠! 이 제안은 구미가 당기는데. 아이템을 한 천개만 달라고 해볼까?
[어때? 내 제안 죽이지?]
“어?”
그때 잠시 고민하는 내 눈에 특이한 모습이 보였다. 내가 베어 물었던 부분이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다.
[왜….왜 그래?]
“아까 내가 먹은 부분이 복구 되고 있는데?”
[하하하. 그… 그래?]
저거, 설마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시간 끌고 있는 거 아니야?
“너 설마 복구될 때 기다리냐?”
[어? 아니야. 그나저나 어떤 아이템 고를지 결정했어?]
맞네. 저 놈, 복구 되자마자 날 죽이려 들 거야.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괜한 모험을 할 필욘 없지.
“어. 결정했어.”
[그래? 어떤 걸로 줄까?]
“너.”
[응? 나?]
“그래, 너.”
그리곤 바로 도의 남은 부위를 먹어 치웠다.
까드득. 까득.
[끄아악. 이… 이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으아아악!]
- ‘영혼이 봉인된 에고소드’를 섭취했습니다. 민첩과 체력이 40씩 오릅니다.
“에게? 고작 저거 밖에 안 올라? 저럴 줄 알았으면 다른 아이템을 여러 개 받을 걸.”
근데 뭔가 이상했다.
“아까 조금 먹었을 때는 그냥 에고소드였는데 지금은 영혼이 봉인 된 에고소드네. 뭐가 다른 거지?”
그때.
[에휴! 멍청한 놈. 내가 저런 놈한테 먹히다니.]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분명 아까 그 검에서 나온 목소리 같았는데….”
[쯧쯧. 검과 도도 구분 못하는 멍청한 놈이라니.]
“뭐… 뭐야? 어디야?”
[여기다.]
대답과 동시에 내 눈앞에 아까 봤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난 깜짝 놀라며 즉시 경계 자세를 취했다.
“어… 어떻게? 죽은 거 아니었어?”
[나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도가 네놈한테 먹히면서 내 영혼까지 귀속된 것 같다.]
“영혼이 나한테 귀속됐다고? 그게 뭔 개소리야?”
[한 마디로 네놈과 난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거지.]
아니, 저게 무슨 소리야? 내 영혼에 저 놈 영혼이 귀속됐다고?
“근데 영혼이면 날 공격할 수도 없는 거야?”
[할 수 없지. 만약 할 수 있었다면 진작 네놈 머리통을 부숴놨을 거다.]
“잠깐. 그럼 선택의 방 시련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질문에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시련? 시련 같은 소리하고 있네. 선택의 방에서 시련을 내리던 게 나야. 근데 내가 사라졌으니 선택의 방 자체가 사라지겠지.]
“그럼 내 아이템은?”
그 말에 노인은 버럭 하고 소릴 질렀다.
[그러니까 날 먹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흥! 웃기고 있네. 만약 내가 안 먹었으면 넌 회복되는 즉시 날 죽였을 거 아냐? 맞지?”
[뭐, 그건 그렇지.]
“그건 그렇지? 이 뻔뻔한 새끼 봐라! 그리고 널 이기는 게 시련이라며? 그래서 이겼는데 왜 아무 것도 안 주는데? 대체 이 방 만든 새끼는 누구야?”
젠장. 말 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졌어. 그나저나 진짜 이 방을 만든 사람은 누구지? 진짜로 신인가?
[선택의 방을 만든 사람은 나도 몰라. 나도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 있었으니까.]
그리곤 자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계속 붙어있어야 하니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한다나 뭐라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도 안에 갇힌 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수많은 기억들이 뒤죽박죽되어 있어서 자신이 누군지도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지금 저 노인의 모습도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이의 기억을 형상화한 거라고. 어쨌든 그 상태로 수천 년의 시간을 갇혀 있었다고 했다.
“근데 아까는 시련이라면서 왜 날 진짜로 죽이려고 한 거지?”
[아! 그건 선택의 방에 들어왔을 때 내 진짜 모습을 보는 사람을 죽이면 이곳을 나갈 수 있다고 했거든.]
“누가 그랬는데?”
[나도 몰라. 그냥 목소리만 들렸으니까.]
에휴. 결국 중요한건 하나도 아는 게 없구만.
“근데 너 그 모습 말고 다른 모습은 안 돼? 그런 모습으로 친구처럼 말하니까 이상하잖아!”
영혼에 귀속된 후부터 노인의 모습으로 친구처럼 말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싫어. 이 모습이 제일 마음에 들거든. 어쩌면 이게 내가 인간이었을 때의 모습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강해보이잖아.]
“에휴. 니 맘대로 해라. 근데 앞으로 한동안 같이 있을 것 같은데 뭐라고 불러 줄까?”
[이현성.]
“이현성? 좋아. 그나저나 아이템도 못 얻을 거 같으니 나가야겠다. 어떻게 나가면 돼?”
[몰라.]
“뭐?”
[모른다고! 시련을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동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문이 나왔단 말이야.]
“그럼 여기 갇힌 거야?”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 앞에 포탈이 나타났다.
“어? 갑자기? 이거 누가 듣고 있는 거 아냐?”
이거 너무 수상한데?
수상하긴 했지만 고민은 밖에 나가서 해도 된다.
[듣든 말든 어서 나가자. 나 이 방에서만 수천 년을 갇혀 있었다고!]
“시끄러워! 말 안 해도 나갈 거니까.”
난 포탈이 닫힐 새라 얼른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매캐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켁… 켁…. 이게 무슨 냄새지?”
나온 곳은 분명 교장실이다. 근데 사방이 연기로 꽉 차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연기가 복도에서 들어오길래 얼른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쿵.
교장실은 3층이지만 내겐 전혀 문제가 안 됐다. 밖으로 나온 후 건물을 올려다 본 후에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학교 건물 전체가 불에 타고 있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고, 사방에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왜 학교가 불타고 있는 거야? 저 몬스터들은 또 뭐고?”
그때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거 혹시… 육 개월 후에 있을 테러 아니야?”
육 개월 후 학교에서 벌어지는 테러. 그 일로 인해 학생과 교사들 중 절반이 죽었다. 소설에서는 테러 때 학교 곳곳에서 폭발과 함께 엄청난 크기의 불이 났고, 게이트가 열리면서 수많은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게이트는 던전과 다르다.
던전의 몬스터는 밖으로 나올 수 없지만, 게이트는 그 안의 몬스터가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던전이 입구라면 게이트는 출구쯤 된다는 소리다.
지금 눈앞의 상황이 소설 속에서 묘사한 테러 때 모습과 너무 흡사했다.
하지만 테러는 육개월 후에 있는 일이잖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때 건물 밖을 배회하던 사람만한 크기의 늑대처럼 생긴 몬스터가 날 발견하곤 기이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쾅.
순식간에 내 몸은 불타는 학교 건물에 처박혔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나 장갑을 착용했다.
- ‘갈탄의 장갑’을 착용했습니다. 힘이 50퍼센트 상승합니다.
“깜짝 놀랐잖아. 덤벼, 이 새끼야!”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늑대처럼 생긴 몬스터는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다행히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까스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한 다음 배로 보이는 부분에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날렸다.
퍽.
“깨깽.”
내 공격이 효과가 있었는지 몬스터는 바닥을 뒹굴었다. 난 그때를 놓치지 않고 몬스터 위에 올라타서는 미친 듯이 주먹질을 해댔다. 잠시 후 움직임이 없어진 몬스터를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여기 아직 도망 안 간 사람이 있어!”
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붉은색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누구세요?”
내가 묻는 사이 두 사람이 더 합류했다. 한 사람은 노란색 두루마기를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초록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제서야 난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저놈들이 오행귀구나.
소설 속에서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 바로 오행귀였다. 그들은 입은 색에 따라 홍귀, 황귀, 청귀, 흑귀, 백귀로 불렸는데, 엄청난 능력을 지닌 각성자로 나온다.
“홀홀홀. 안 그래도 다 죽거나 도망 가버려서 심심했는데, 니가 우리랑 좀 놀아줘야겠다.”
노란 두루마기를 입은 황귀가 요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난 아무 말 없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던 이현성이 한 마디 했다.
[야! 좀 도와줄까?]
“뭐? 니가 어떻게 도와?”
[싫어? 그럼 말지 뭐.]
사실 저들이 소설에 써 있는 대로의 실력자라면 지금으로선 내가 저들을 상대할 방법은 전무했다. 그 정도로 저들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건 아니고. 진짜 도와줄 수 있어?”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흥. 지금 니 실력으론 저 정도 실력자는 죽어도 못 이겨. 하지만 여기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진짜?”
[내가 말하는 대로만 움직여! 그럼 되니까.]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홍귀가 다른 오행귀들에게 말했다.
“저 놈, 저거 미친 거 같은데?”
그의 말에 청귀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미친놈은 처음 죽여 보는데 재밌을 것 같아. 빨리 죽이자!”
저 미친 새끼들. 완전히 미쳤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이제부터 어떤 공격이 오더라도 내 말대로만 움직여야 돼.]
“근데 진짜 효과 있는 거 맞지? 괜히 나 죽어보라고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야! 니가 죽으면 나도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내가 미쳤냐? 잔말 말고 내 말대로만 움직여. 먼저 좌로 일보. 앞으로 삼보.]
그때부터 난 그의 말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행귀들의 공격도 시작됐지만, 맞아서 넘어지더라도 그 자리에서 노인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쓰러지고 움직이고를 반복하는 내가 이상했는지 내 움직임을 유심히 보던 홍귀가 다급히 소리쳤다.
“저 새끼 진을 만들고 있어. 어서 못 움직이게 막아!”
하지만 난 그들을 보고 씨익하고 웃으며 들었던 왼발을 앞으로 찍었다.
“늦었어. 병신들아!”
그와 동시에 오행귀가 있던 발밑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