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선택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경쟁률이 엄청난 걸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에서 박태준도 중반이 지나서야 들어가게 되는 곳인데, 그걸 지금 바로 들어간다고? 뭣 때문에?
“그런 이유 때문에 절 들여보내 준다고요?”
“왜? 싫어?”
“아뇨! 당연히 좋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그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절 갑자기 들여보내 준다는 게.”
“그건 나중에 교장 선생님께 직접 물어봐. 안 그래도 너 오면 바로 교장실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으니까.”
“바로요?”
“그래.”
난 김춘삼을 따라 교장실로 이동했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안에서 호쾌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안으로 들어가자 책상에 놓인 ‘교장 백승훈’이란 명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명패에서 눈을 못 떼고 있는데 책상에 앉아 있던 교장이 일어나며 환한 미소로 반겼다.
“어서 와라, 태준아! 김 선생님은 그만 가보셔도 됩니다.”
김춘삼은 교장에게 공손이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내가 뻘쭘하게 서 있자 교장이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태준아, 어서 앉으렴.”
“네. 그럼.”
내가 자리에 앉자 교장은 환한 미소를 유지한 채 바로 본론을 말했다.
“김춘삼 선생님께 들었는지 모르지만 넌 오늘 선택의 방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얘기 들었습니다. 근데 왜 절 택하신 거에요? 거기 들어가려면 엄청 빡센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내 말에 그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학교 랭킹 1위인 박태준이 졸업 전에 아이템 하나 받지 못한다면 학교 명예가 어떻게 되겠나! 그래서 내가 특별히 널 추천했지.”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었다.
“정말 그 이유가 다에요? 그것만으로 절 거기에 들여보냈다는 건 납득하기가 좀 어려운데요.”
그 정도로 선택의 방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내가 계속 의심을 품으며 질문을 하자 잠시 고민하던 교장은 웃음을 거두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어젯밤 신탁이 내려왔다.”
“신탁이요?”
신탁도 있어? 잠깐! 신탁이면 신이 내리는 건데, 애초에 이 소설엔 신이 없지 않았나?
내가 기억하기로 소설 속에서 신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근데 난데없이 신탁이라니?
“그래. 사실 나도 관리자를 맡은 후 처음 있는 일이라 난감하긴 한데, 예전에 한 번 신탁이 내려온 적이 있다고 하더구나.”
“그럼 그 신탁에서 절 선택의 방에 들여보내라고 한 건가요?”
“그래. 오늘 새벽 선택의 방 관리자들이 모여서 긴급 회의를 한 결과 신탁을 따르기로 했지.”
“근데 신탁이면 신이 내리는 건데 신이 있긴 한 거에요?”
그는 내 말에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네 믿음에 달렸지. 그보다, 장비 수여식이 오후 2시니까 기왕이면 그 전에 선택의 방에 들어갔다 오는 게 좋겠지?”
질문에 애매모호하게 답한 그는 급히 주제를 돌렸다. 나도 더 이상 캐묻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빠를수록 좋죠. 그럼 바로 가는 건가요?”
“그래. 자, 이리 오거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에 있는 화장실 문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화장실 문에 있는 열쇠구멍에 넣고는 돌렸다.
난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문이 열린 반대편은 화장실이 아니라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이… 이건 뭐죠?”
“여기가 바로 선택의 방이다.”
“여기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 열쇠 때문인가요?”
“그래. 이 열쇠로 문을 열면 어디서 열든 선택의 방과 연결이 되지. 물론 모든 관리자의 동의가 있어야지만 활성화가 되기 때문에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난 아무 말 없이 새삼스런 눈으로 문에 꽂힌 열쇠를 보다가 교장에게 말했다.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여기로 오는 건가요?”
“그렇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난 망설임 없이 문 안에 보이는 사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문이 닫히며 사라졌다.
소설 대로면 이제 시련이 주어지겠지?
소설 속에서 박태준에게는 일 대 백이라는 시련이 주어졌다. 제한 시간 안에 백 명을 쓰러트리는 거였는데 깔끔하게 클리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선택의 방에 들어온 너에게 시련을 내리겠다.]
들려온 목소리는 카랑카랑한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드디어 시련인가?
[……]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다리기 지루해진 난 허공에다 대고 소리쳤다.
“저기 시련 안 주시나요?”
[잠깐만 기다려라.]
뭐지?
그때 서서히 사막이 사라지더니 어느새 난 거대한 방 한 켠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방 중앙에 제단이 보였는데 그 위에 붉은 검신을 가진 거대한 도가 반쯤 꽂혀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저게 시련인건가?
그때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응? 오류? 이게 뭐지?]
아까 사막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방안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두리번거리던 난 드디어 목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목소리는 바로 제단에 꽂혀있는 도에서 나오고 있었다.
뭐지? 에고소드, 뭐 그런 건가? 그럼 이게 시련인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제단 위로 올라갔는데 그때까지 붉은 검신의 도는 혼자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기! 이게 제 시련인 건가요?”
난 제단에 꽂혀 있는 도를 향해 질문을 했다. 그러자 도에서 들리던 중얼거림이 갑자기 사라졌다.
[……]
“저기요?”
[… 내가 보여?]
“당연하죠. 제가 장님도 아니고.”
[하하하하. 진짜로 내가 보인다고? 내가 보인단 말이지?]
이 상황은 뭐지?
“그럼요. 근데 혹시 에고소드 뭐 그런 건가요? 이게 시련이에요?”
[시련? 그렇지. 이건 시련이지. 아주 큰 시련. 그나저나 이제야 알겠어. 넌 이 세상의 영혼이 아니구나! 그런 거였어. 하하하하.]
미친 거야? 기분 나쁘게 왜 혼자 웃고 지랄이야?
그때 미친 듯이 웃고 있던 붉은 검신의 도가 웃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내가 잠시 흥분했군. 이제부터 시련을 주지.]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나와 싸워 이겨라. 그게 시련이다.]
“예? 싸워서 이기라구요? 검이랑 어떻게 싸워요?”
그 말에 화가 나기라도 한 듯 제단에 꽂혀 있던 도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누군가 들어올리기라도 하듯 서서히 뽑히더니 급기야 허공에 떠올랐다.
난 깜짝 놀라 급히 제단에서 몇 걸음 떨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허공에서 요상한 소리를 내며 떠있던 도가, 그 형태가 점점 변하더니 어느새 나이가 지긋한 노인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아! 이게 얼마만의 해방인가!]
노인은 감동한 눈으로 자신의 몸 곳곳을 바라봤다.
“…저기, 싸움 시작은 안하나요?”
내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버릇없는 놈. 감히 노부를 방해하다니. 겁대가리가 없는 놈이구나.]
그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까딱거렸다. 단지 그뿐이었다.
콰쾅
상상도 못할 정도의 풍압에 어느새 내 몸은 반대편 벽에 박혀 있었다.
오! 좀 쎈데.
난 갈탄의 장갑을 끼고는 박혔던 벽에서 빠져나오며 소리쳤다.
“예고라도 하고 시작하지! 갑자기 이게 뭡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내 말에 노인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멀쩡해? 너무 오랜만에 힘을 써서 그런가? 어디?]
노인은 이번엔 날 향해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퍼퍽.
마찬가지로 내 몸은 엄청난 속도로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이번엔 위력이 더 강했는지 아까보다 깊게 박혀서 빠져나오는데 약간 힘들었지만 상처나 고통은 전혀 없었다.
[하하하. 네놈이 노부를 즐겁게 해주는 구나. 간만의 유흥거리 정도는 되겠어.]
그 후로 한동안 노인은 자신의 몸상태를 테스트라도 하듯 이런 저런 기술들을 사용해 날 공격했다. 하지만 난 그때마다 멀쩡하게 일어났고 그 모습이 결국 노인을 분노케 만들었다.
[이놈! 감히 노부를 기만하는 게냐? 네놈은 왜 아무 공격도 안 하는 것이냐?]
“뭐 굳이 공격할 필요가 있나요. 맞아도 아프지도 않은데. 그보다 벌써 끝난 건 아니죠?”
사실 내 계획은 단순했다. 노인이 지칠 때까지 맞는다. 그리고 노인이 지쳤을 때, 내 주먹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을 때 죽을 때까지 팬다. 그게 내 작전이었다. 사실 그 작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정확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격하던 노인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몇 번 더 공격해 보더니 공격을 멈추고는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이제 알겠다. 네놈은 공격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어. 무공을 전혀 배워본 적이 없는 게야. 하하하하.]
젠장, 어떻게 알아챈 거지?
난 무공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사실 웬만한 고수들은 상대의 움직임만 봐도 그 사람의 무공 수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노인의 경우 아무리 때려도 멀쩡한 날 엄청난 고수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떤 기연을 얻은 건지 몰라도 그저 몸만 딴딴한 놈이구나. 그런 놈들은 상대하기 까다롭긴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예를 들어 이렇게 말이다.]
순식간에 노인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바닥으로 내 코와 입을 막았다.
“읍, 읍.”
[하하하하. 무공을 배우지 않은 놈들은 피부로 호흡을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입과 코만 막아도 쉽게 죽일 수 있지.]
생각지도 못한 노인의 공격에 난 당황하며 손을 치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갈탄의 장갑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숨을 못 쉬자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어!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지.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해.
오랜 시간 수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늘 했던 말이 문제를 풀 수 있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라는 말이었고, 나 스스로도 언제나 문제에 부딪히면 그런 자세로 해결해 왔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차라리 아까처럼 검이었다면 먹으면 그만인데…. 아! 그렇지! 어차피 이놈도 검이 변한거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미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잠시 후면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입이 벌려진 상태라서 그대로 노인의 손바닥을 물었다.
콰득.
- 에고소드의 일부를 섭취했습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