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던전에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보스를 잡으면 던전이 클리어 되고, 보스는 아이템을 떨구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보스조차 없는 하급 던전의 경우는 클리어하더라도 특별한 아이템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클리어 보상 아이템이 나왔다? 왜지?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아이템은 챙기고 봐야지.
난 허공에 떠 있는 붉은 색 장갑을 잡았다.
- ‘갈탄의 장갑’을 획득했습니다. 착용 시 착용자의 힘을 50퍼센트 올려 줍니다.
“오호. 이건 귀속 템도 아닌데 능력치가 좋네.”
아이템은 일반 아이템과 귀속 아이템으로 구분된다. 일반 아이템의 경우 타인에게 양도나 판매가 가능하지만 귀속 아이템은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아이템을 소유하는 순간, 영혼에 귀속이 된다. 대신 언제든 소환이나 해제가 가능하며, 일반 템에 비해 좋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 부위별로 중복된 귀속 아이템은 가질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장갑을 착용하자 착용감도 너무 좋았다. 마치 맨손처럼 편안했다.
“근데 이건 먹으면 능력치가 얼마나 오르려나?”
궁금했지만 비상식량으로 남겨두기로 하고 장갑을 낀 후 던전을 나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내가 나오자 노심초사 기다리고 있던 여윤주와 김한결이 달려왔다.
“박태준. 너 괜찮아?”
“야! 괜찮은 거지?”
“전혀 문제없어요. 근데 내가 던전에서 얼마나 있었던 거죠?”
내 질문에 여윤주는 시계를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지금이 7시니까, 5시간 정도 있었네!”
“흠! 5시간이라….”
그 정도면 생각보다 많이 걸리진 않았네. 내 느낌엔 10시간은 족히 더 걸린 줄 알았는데.
그때 다른 곳에서 쉬고 있던 김지현이 우릴 향해 걸어왔다.
“흥! 용케도 던전을 클리어 했구나.”
“하하하. 저 정도는 껌이죠. 이제 약속을 지키셔야죠?”
“좋다. 계좌는 여기 비서한테 알려주도록 해라. 오늘 안에 보내지.”
김지현은 생각보다 쿨했다.
여장부 스타일이라고 하더니 역시 쿨하구나. 이쯤 되면 나도 예의를 갖춰야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난 번 메일은 죄송했습니다.”
난 바로 고개를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본 김지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를 떠났다.
난 떠나는 김지현을 보며 김한결에게 물었다.
“그래서 용서해 준 거에요, 만 거에요?”
내 질문에 김한결은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누나가 저런 행동을 한다는 건 널 용서했다는 거야. 뿐만 아니라 네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는 행동이기도 하고.”
“네? 저게요?”
“하하하. 그래. 그럼 우린 마무리를 해볼까!”
내가 무사히 나와서 그런지 김한결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정리했다. 난 그동안 김지현의 비서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나오는데 그 사이 정리가 대충 끝났는지 김한결이 다가와 말했다.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네. 다들 오늘 고생했다.”
우린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그들이 마련해준 버스를 탔다. 돌아오는 길에 이중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여윤주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지만 쉬고 싶다고 말한 후 조용히 눈을 감고 오늘 일어난 일들을 정리했다.
인간도살자 탄, 말살자, 그리고 던전 클리어 아이템. 소설에서 쓰여 있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일단 이것들부터 알아보고, 그리고 일년 후에 있을 테러에도 대비해야지.
소설에서 박태준이 회귀한 지 정확히 일 년 후 학교에서 테러가 발생한다. 그 테러로 제 2 각성자 학교 교사와 학생의 절반이 넘는 수가 죽게 된다. 그 당시는 테러의 배후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
눈을 감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사이 어느새 버스는 집에 도착했다. 다들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져 있기에 조용히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여윤주의 외침이 들렸다.
“야, 박태준! 내일 학교 오면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얘기해야 돼!!”
난 못들은 체 하며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집이다!”
오늘 처음 본 곳이지만 집이라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간단히 씻고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통 달랑 두 개와 생수통 하나. 그게 끝이다.
“하아! 너도 참 힘들게 살았구나!”
박태준은 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개털이었다. 돌봐줄 가족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랄 맞은 성격 탓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잠재력이 뛰어나거나 교내 랭킹이 높은 학생은 여러 길드에서 장학금을 줘가면서 영입하기 위해 애썼다. 당연히 랭킹 1위인 박태준은 최우선 스카웃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떤 길드가 와도, 얼마를 지원해준다고 해도 절대로 장학금을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난 나보다 약한 새끼들 밑에는 안 들어가! 그러니 꺼져!”
그나마 지금까지 먹고 살 수 있는 건 교내 랭킹 1위에게 주어지는 작은 장학금 때문이다.
소설 속에선 짧은 분량이지만 그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잘 묘사했다. 가끔은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를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았다.
소설을 읽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그걸 내가 직접 체험하려니 첫 날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고통스럽다.
뭔가 먹으려고 통장 잔고를 살펴봤지만 잔고는 0원. 지갑에도 땡전 한 푼 없다.
꼬르르륵.
“배고프다. 이래선 잠이 오려나 몰라!”
하지만 걱정과 달리 잠시 후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그 만큼 오늘 하루가 고됐다는 뜻이리라.
* * * * *
어느덧 소설 속에 들어온 지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아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능력을 올리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경험하는 학교 생활은 상당히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드르르르르. 드르르르르.
“으으음! 누구지?”
요란하게 진동하는 스마트 폰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스마트 폰 액정에 김춘삼이라고 적혀 있다.
“담임쌤이 웬일이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너 지금 어디야?]
“집인데요.”
[하하하하. 집이구나. 지금 10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집이구나.]
난 얼른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7분.
“근데 쌤, 오늘 일요일 아닌가요?”
[그렇지! 오늘은 일요일이지. ‘장비 수여의 날’이 있는 일요일이란 게 좀 다르지만 말이지]
아! 오늘이 ‘장비 수여의 날’이었지.
그제야 난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깨달았다.
“하하하. 선생님. 제가 늦잠을 좀 자버렸네요. 금방 가겠습니다.”
[늦잠? 야 이 미친놈아. 얼른 안 튀어와!!]
“지금 옷 다 입었고, 현관문 나서고 있습니다.”
[오자마자 교무실로 와!]
뚝.
난 서둘러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금세 학교에 도착한 난 교무실로 가서 힘차게 문을 열었다.
드르륵.
교무실은 현실의 교무실과 완전히 똑같았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자 몇몇 선생님들이 나를 쳐다봤다.
근데 담임 쌤 자리가 어디지?
두리번거리다 나를 도깨비 같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아! 저기구나.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김춘삼이 급한지 먼저 내게 달려오며 소릴 질렀다.
“야! 박태준! 너, 이 새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몰라?”
“헤헤헤. 알죠.”
“그걸 아는 놈이 이렇게 늦어? 3학년 중에 너 혼자만 지각이야!”
‘장비 수여의 날’은 각성자 학교들에서 졸업생들에게 귀속 아이템을 하나씩 선물하는 날이다. 정확하게는 졸업생의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졸업 선물로 아이템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승은 학교의 선생과는 다른 개념이다. 각성자 학교에 들어오게 되면 모두 자신의 특성에 맞는 기술들을 배우게 되는데, 그 특성에 맞춰서 스승들이 정해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스승과 만나 다양한 기술들을 전수 받는다. 그렇게 짧으면 3년, 길면 5년의 시간 동안 함께한 스승은 제자들이 학교를 졸업할 때 그들의 특성에 맞는 귀속 아이템을 하나씩 선물하는 게 각성자 학교의 전통이다.
귀속 아이템의 경우 비용이 어마어마하지만 스승들이 구매하는 아이템의 비용은 모두 학교에서 지불하기 때문에 스승들은 부담 없이 자신의 제자에게 맞는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기로 박태준은 스승이 없었다.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대부분의 스승들이 한 번 수업 후 모두 거절한 걸로 되어 있었다.
“근데 전 스승님이 없지 않나요?”
“없지.”
“그럼 전 못 받으니 안 왔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김춘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하아! 원래는 못 받아야 되는 건데 교장선생님께서 특별한 기회를 허락하셨다.”
“특별한 기회요?”
“그래. 학교의 랭킹 1위가 장비도 받지 못하고 졸업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하시면서 기회라도 줘보자고 하시더라. 그러니 교장선생님께 감사드려. 나라면 국물도 없어.”
잠깐! 뭔가 내가 알고 있는 소설과는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가는데?
소설 속에서 박태준은 혼자만 아이템을 받지 못해서 ‘장비 수여의 날’에 행사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거기다 그를 말리려는 스승까지 패는 바람에 몇 명은 병원 신세까지 지고 말이다.
근데 아이템 받을 기회를 준다고?
그렇게 되면 ‘장비 수여의 날’에서 박태준은 깽판을 못 치게 된다.
소설 속과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난 서둘러 김춘삼에게 물었다.
“네. 감사드려야죠. 근데 그 기회라는 게 뭐죠?”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선택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선택의 방이요? 진짜요?”
선택의 방이라고? 모든 아이템을 구현할 수 있다는 그 전설의 방?
선택의 방
모든 이들이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특별한 방이다. 어떻게, 누구에 의해 생겨난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선택의 방 관리자에 의해 선택받은 이만이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갔다 온 사람들 말마다 방 내부의 생김새가 다른 걸로 봐서 사람에 따라 방의 모습이 변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한 번 들어간 사람은 다신 들어갈 수 없으며, 특별한 시련을 통과하면 들어온 사람에게 꼭 맞는 아이템이 주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련이 만만한 게 아니라서 들어갔다가 포기하고 나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만큼 어렵지만 시련을 통과만하면 인생이 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아이템을 얻어오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모든 이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
그리고 그 선택의 방 관리자 중 한 명이 바로, 제 2 각성자 학교 교장인 백승훈이다.
그런 곳에 날 들여보내 준다고? 왜?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