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미쳤어?”
난 어이없음과 분노가 반반씩 섞인 눈으로 김지현을 바라봤다.
“우리 길드에 그딴 메일을 보내놓고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나?”
“그게 무슨…?”
이 새끼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흥! 당장에 쳐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라!”
그녀는 냉기를 풀풀 풍기며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메일을 보냈다고 했지?’
난 서둘러 스마트 폰을 꺼내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이… 이런 미친 새끼!’
메일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태진 길드에게>
전 제2 각성자 학교를 다니는 랭킹 1위 박태준입니다. 이번에 길드견학을 태진 길드로 갔으면 합니다. 근데 어떻게 그딴 개 같은 미르 길드에 밀릴 수 있는 겁니까? 내가 가서 확인 좀 해야겠습니다. 길드 시스템이 잘못된 건지, 길드원들이 병신 같은 건지 내가 가서 봐야겠습니다. 아님 간부들이 병신 같은 건가? 간부 중에 김지현이란 여자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여자가 혹시 구멍 아닙니까? …
메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르 길드에 밀리는 태진 길드를 욕하고 있었다.
‘바로 안 죽인 게 용하네.’
메일을 읽고 나자 김지현의 행동이 이해 됐다.
“이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지? 어디 메일에서 떠들던 그 잘난 실력 좀 보자!”
“?? 네?”
“특SSS 등급 각성자니 하급 던전 정도 클리어하는 건 껌처럼 쉬울 거야. 그치?”
“누나. 잠깐만요. 아무리 그래도 던전 경험이 전혀 없는 학생 혼자서 어떻게 들어가요?”
김한결이 깜짝 놀라 김지현을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한결이 넌 빠져있어!”
“아무리 그래도….”
“할게요!”
“응?”
내가 가볍게 하겠다고 말하자 김한결이 이젠 나를 말렸다.
“태준아. 네가 강하다 해도 던전은 변수가 많은 곳이야. 아무리 하급 던전이라도 길잡이 없이 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어!”
“괜찮아요.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안 된다니까 그러네! 진짜 죽는 다니까!”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준비 되면 저리로 들어가면 된다.”
김지현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자신 뒤에 있는 푸른 포탈을 가리켰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조건이라는 말에 김지현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내가 병신도 아니고 뭐하러 저 위험한 던전에 혼자 들어가겠어요?”
웃으며 말하는 날 보며 김지현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넌 자존심도 없는 게냐?”
“자존심?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어처구니없는 내 대답에 김지현은 질렸다는 얼굴로 물었다.
“조건이 뭐지? 일단 들어나 보자.”
“별거 아니에요. 제가 지금 좀 가난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저 혼자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다면 일 억 코인만 주세요.”
“뭐? 일 억 코인?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에이!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실까? 아무리 하급 던전이라도 클리어하고 나면 그 가치는 최소 십 억 코인 이상일 텐데요. 아닌가요?”
그녀는 내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무서운 눈으로 날 노려봤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이 내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잠시 후 김지현은 뭔가 결심한 듯 날 노려보며 말했다.
“좋다. 네 조건을 들어주지. 대신 나도 조건을 하나 걸지.”
내 조건을 들어준다는 말에 난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조건이 뭐죠?”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한다면 너도 마찬가지로 내게 일 억 코인을 갚는 거야. 만약 네 말대로 당장 돈이 없다면 다 갚을 때까지 내 밑에서 시중들면 돼. 일당은 잘 쳐줄 테니까. 호호호호. 어때?”
갑작스럽게 생각해낸 조건이라 그런가? 뭐 저런 유치한 조건을 걸고 그래. 오글거리게.
“좋아요. 그렇게 하죠.”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조건을 수락했다. 어차피 무조건 클리어 할 테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때 여윤주가 걱정스런 눈으로 날 바라봤다.
“진짜 갈 거야?”
“나 박태준이야! 걱정 말고 기다려!”
내가 김지현의 제안을 승낙한 이유는 다른 거 없다. 혹시라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해서다. 거기다 클리어하면 일 억 코인까지 얻을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녀의 제안이 묘하게 승부욕을 자극했다.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는 건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난 김지현 앞으로 가 말했다.
“약속 잊지 마세요. 일 억 코인입니다.”
“흥! 꼭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더욱 차가워진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우리 길드를 욕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톡톡히 져야 할 테니까!”
“하하하. 좋아요. 그렇게 하죠!”
대답을 마친 난 거침없이 던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가 들어가려는 찰나 김한결이 달려와 말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나와야 돼! 내가 누나는 잘 설득해볼 테니까. 알겠지?”
그래도 걱정해주는 김한결이 고마워 웃으면서 말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근데 별일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난 망설임 없이 포탈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스르륵.
내 몸은 순식간에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내가 사라진 직후, 포탈의 색이 점차 흑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김한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중 던전?”
“네? 이중 던전이라구요?”
김한결의 다급한 외침에 옆에 있던 여윤주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래. 하필이면 이 던전이 이중 던전이었다니. 이제는 박태준이 무사히 도망쳐 나오기만을 기도해야겠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건가요?”
여윤주의 걱정 어린 질문에 김한결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중 던전은 일반 던전과 달리 밖에선 들어갈 수 없어. 안에 있는 사람이 나와야지만 해제가 되거든. 그나저나 지현이 누나. 이제 어떻게 하지?”
김한결은 걱정스런 얼굴로 김지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잘 됐어. 혹시나 진짜로 클리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호호호호.”
* * * * *
한편 던전 안으로 들어온 난, 밖의 이런 상황은 전혀 모른 채 처음 보는 던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던전 내부는 거대한 꽃밭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고, 그 향기가 코를 찔렀다.
난 황홀한 광경에 한동안 넋을 놓고 꽃밭을 바라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가자.”
천천히 걸어가던 난 던전의 크기에 다시금 깜짝 놀랐다.
대체 얼마나 큰 거야? 끝이 안 보이는데?
꽃밭은 어찌나 큰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10분 쯤 걸었을까? 여전히 몬스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꽃밭만이 펼쳐져 있었다.
“이상한 데? 던전 크기는 던전 난이도와 비례하는 걸로 아는데 하급 던전이 이정도로 클 리가 없는데….”
그때 섬뜩한 느낌과 함께 온 몸에 털이 곤두섰다.
“뭐… 뭐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괴상한 느낌에 잔뜩 긴장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 놈이 내 정원에서 뭐하는 거지?”
소리가 난 곳은 머리 위였다. 황급히 고개를 들자 허공에 누군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언제 나타난 거지? 아깐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누구냐?”
난 긴장을 늦추지 않고 허공에 떠 있는 몬스터를 향해 소리쳤다.
“역시 인간은 시끄럽단 말이야! 벌레 같은 놈! 죽어라!”
순간 그의 몸에서 붉은 빛의 에너지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내 몸을 휘감고는 조여 왔다.
하지만 난 전혀 당황하지 않고 신기한 눈으로 조여 오는 붉은 빛을 구경했다.
“호오! 넌 뭐지? 인간 주제에 왜 안 죽는 거지?”
어느새 허공에 있던 몬스터는 에너지를 거두고 땅에 내려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난 그 몬스터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생김새는 인간과 똑같았지만, 피부가 칠흑같이 검고 꼬리가 나 있었다. 10대 초반 정도의 귀여운 외모에 키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저건 무슨 몬스터지? 저런 것도 책에 나왔나?
책에선 몬스터에 대해 친절하게 묘사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표적인 몬스터가 아닌 이상 한 번 보고 어떤 몬스터인지 맞히는 건 상당히 힘들다.
“넌 누구지?”
“크하하하하. 나? 내가 누구냐고?”
그는 미친 듯이 웃어 재꼈다.
“버러지 같은 인간 주제에 건방지게!”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에게서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나다 주저앉았다. 두려움에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이 왜 이러지?
머리는 몸에게 떨림을 멈추라고 말하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때문인지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 모습이 기분 좋은지 그는 다시 어린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릴 내며 말했다.
“크하하하! 그게 바로 인간이, 나 탄과 마주했을 때의 기본자세지! 크하하하하!”
잠깐! 탄? 방금 탄이라고 한 거야?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그의 입에서 튀어 나왔다.
확인을 위해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물었다.
“네 이름이 진짜 탄이야? 남쪽 섬의 주인인 그 탄?”
“호오! 인간 세상에도 내 명성이 이미 알려진 건가?”
탄은 기분이 좋은지 기세를 약간 거뒀다.
미친! 진짜 인간도살자 탄이라고?
탄은 소설 후반부에 서울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다. 단 몇 시간 만에 혼자서 수십 명 이상의 각성자를 도륙했고, 일반인들까지 휘말리며 그의 손에 죽은 사상자만 수백을 헤아렸다. 그때 붙여진 별명이 인간도살자다.
한껏 우쭐해하며 기분 좋아하던 탄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상하군. 난 아직 인간 세상에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에 대해 알고 있지?”
순간 할 말이 없어진 난 탄을 향해 버럭 소릴 질렀다.
“야! 너 그렇게 말 많은 캐릭터였어? 나 인간인데 어서 죽여야지.”
콰쾅!
순간 머리 위에서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며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뭐에 맞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놀라는 그를 향해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뭘 놀라고만 서 있어! 안 들어 올 거야?”
“호오. 이 공격에도 안 죽는다고? 그럼 이건 어떨까?”
그 후로 탄의 공격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가 공격할 때마다 충격에 내 몸은 이리저리 날아다녔지만 데미지는 전혀 없었다. 단지 넘어졌다 일어나는 게 힘들 뿐.
그때 무형의 기운이 이번엔 박태준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빠악!
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지만 곧 다시 일어나며 짜증을 냈다.
“왜 뒤통수를 때리고 지랄이야!!”
탄은 계속 일어나는 인간을 보며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위협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크하하하! 내 공격을 견디는 인간이라니! 재밌구나, 재밌어!”
“야! 이런 거 말고 좀 더 강한 거 없어? 예를 들어 무기라던가.”
내 말에 탄은 더욱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좋아 좋아! 근데 이건 좀 아플 거야.”
말을 하는 그의 오른손엔 어느새 흑빛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난 속으로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저거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