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웹소설 [회귀자]에서 강함의 기준은 두 가지다. 각성자 등급과 보유 능력치.
각성자 등급의 경우, 잠재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한 번 판정을 받고 나면 재측정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보유 능력치는 다르다. 본인의 노력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측정을 했고, 그 자료가 각성자들의 이력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지금 방어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1이 된 난, 병신이 됐다는 소리다.
“하아아아!”
기본적으로 각성을 하게 되면 모든 능력치가 평균 300은 넘었다. 근데 1이라니.
난 팔다리를 움직여 봤다. 무겁다. 마치 무거운 쇳덩이가 팔 다리에 붙어 있는 것 같다.
“하아. 일단 스킬 확인부터 하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한숨을 쉬며 스킬을 확인했다. 희한하게 이 소설에선 상태창은 없지만 스킬은 확인이 가능했다.
<스킬목록>
*방어력 무한(신급) - 방어력은 무한, 그 외 모든 능력치는 1로 재조정 된다. 능력치는 코인이나 아이템을 섭취하면 올릴 수 있다. 증가하는 능력치는 최초 랜덤으로 설정돼있지만 변경이 가능하다.(단, 신급 스킬 보유로 다른 스킬은 습득이 불가능하다.)
스킬을 확인하자 절망감은 더 심해졌다.
저 말대로면 코인이나 아이템을 먹어서 능력치를 올리라는 말인데, 내가 알기로 박태준은 지금 땡전 한 푼 없는 거지였다.
한 동안 말 같지도 않은 상황에 절망하며 욕을 퍼부어댔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하랴!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방어력은 무한이니 최소한 죽지는 않겠지!”
드르르르. 드르르르.
그때 책상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요란한 소릴 내며 진동했다.
“누구지?”
스마트폰을 확인하자 발신자 이름이 보였다.
“여윤주?”
여윤주면 박태준 소꿉친구였다가 초반에 죽는 애였던 거 같은데….
초반에 잠깐 나왔던 캐릭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어디야??]
“집인데.”
[뭐? 집? 너 미쳤어??]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오늘 우리 팀 길드탐방 가는 날이잖아!! 너 땜에 다 기다리고 있으니까 빨랑 학교로 튀어와!!]
길드탐방? 그런 것도 있나?
소설 시작이 회귀한 날부터니 하루 전날인 오늘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다.
주섬주섬 옷을 입은 나는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아니, 애초에 뛰어갈 수가 없다. 왜? 힘드니까!
걸어가는 것도 조금만 빨리 걸으면 숨이 찬다.
“헉. 헉. 이 더러운 몸뚱아리. 어디 떨어진 코인 없나?”
난 걸어가며 혹시라도 땅에 떨어진 코인이 없을까하고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가다보니 드디어 <제2 각성자 학교>라고 적힌 정문이 보였다.
23년 전 출처를 알 수 없는 작은 운석들이 지구에 떨어진 이후부터 세계 각지에서 포탈과 함께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에 맞춰 신비한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도 생겨나며 세계는 균형을 찾아갔다.
각성자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타났으며, 그들에 대한 통제가 필요했기 때문에 미성년자일 때 각성을 하면 각성자 학교로, 성인일 때 각성을 했다면 각성자 센터로 보내져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여기가 제2 각성자 학교구나!”
언뜻 봐도 일반 고등학교의 수십 배는 돼 보이는 거대한 크기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야! 박태준!!!!”
점이었던 사람은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주먹이 어찌나 강한지 맞은 내 몸은 바닥을 몇 바퀴나 나뒹굴었다. 하지만 방어력이 무한이라 그런지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휘두른 상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 씨발! 너 뭐야?”
하지만 상대는 나보다 더 당황한 듯 보였다.
“야! 난 니가 당연히 피할 줄 알았지! 괜찮아?”
그제야 날 때린 상대를 자세히 봤다. 160이 조금 넘는 키에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여고생이다. 목소리로 봐서 아까 전화했던 여윤주인 것 같다.
“아 몰라! 그보다 너 혹시 가진 돈 좀 있냐?”
“돈? 코인 말하는 거야?”
“어. 있어?”
갑작스런 질문에 윤주는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있는데…. 왜?”
“있으면 좀 줘봐.”
“얼마나?”
“전부 다.”
“…… 양아치냐?”
“그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린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린 아니지 않냐?”
그녀는 내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한 개 꺼냈다. 그걸 본 난 그녀 손에 들린 코인을 잽싸게 낚아챘다.
5만 코인이네. 먹어 볼까?
코인은 소설 속에서의 화폐 단위다. 백, 천, 오천, 만, 오만, 십만 코인으로 나눠져 있는데 모두 동전으로 지폐는 없다. 설정 상 전세계에서 공용으로 사용되는 화폐이며, 가치는 한국의 원화와 동일했다.
난 잠시 망설이다 손에 든 5만 코인을 입으로 가져가 씹었다.
콰득.
응? 괜찮은데?
약간 부드러운 사탕을 씹는 것 같은 식감이다. 거기다 맛도 괜찮았다.
콰득 콰드득. 꿀꺽.
- 5만 코인을 섭취했습니다. 체력이 5만큼 올랐습니다.
오오! 진짜로 올랐네.
난 속으로 환호했고, 여윤주는 그런 내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야. 너 괜찮아?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어떻게 코인을….”
“아, 됐고. 날 때린 이유나 말해.”
“때린 이유?”
그제야 그녀의 얼굴은 다시 굳어졌다.
“야! 니가 기획했으면서 제일 늦게 오면 어떻게 해!!”
“뭘 기획해?”
내 말에 그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길드탐방이지!! 니가 직접 기획하고 연락까지 넣었잖아. 그것도 국내 2위인 태산에다!!”
흠. 말하는 걸 보니 내가 길드탐방을 기획해서 2위 길드인 태산에 가기로 한 것 같다. 근데 왜 하필 2위지? 기왕이면 1위로 하지.
“아! 그랬나? 그럼 늦은 것 같으니 빨리 가자!”
궁금한 건 많았지만 지금 질문하면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 참았다. 궁금한 건 차차 알아가면 되니까!
태연히 말하는 내가 얄미웠는지 그녀는 눈을 흘겼지만 아까 때린 게 미안해서인지 더는 따지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는 팀원으로 보이는 학생 한 명이 이미 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약간 통통한 체형의 그는 내가 다가오자 반가운 미소를 띄우고는 말했다.
“헤헤. 태준아. 무슨 일 있었나봐? 좀 늦었네.”
“그냥 그렇게 됐네. 근데 너 이름이 뭐였지?”
“나? 박재형이잖아! 헤헤헤.”
“박재형? 아!! 니가 박재형이구나!”
박재형이면 나중에 박태준 뒤통수를 치는 놈이다. 물론 박태준은 주인공 버프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생각보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던 놈으로 기억한다.
난 잠시 박재형을 바라보다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타고 태산 길드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멈춰 섰다. 밖에는 이미 누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가 제2 각성자 학교에서 온 학생들이니?”
“네. 사정이 있어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여윤주가 나서서 사과를 했다.
“학생 때는 다 그런 거지! 신경 쓰지 마!”
마중 나온 사람은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외모는 준수했으나 키가 많이 작았다.
“난 오늘 하루 너흴 인솔할 김한결이야. 만나서 반갑다.”
그리곤 나를 보고 말했다.
“니가 박태준이지?”
응? 날 아나?
“네. 절 아세요?”
“소문은 많이 들었지. 희대의 천재라고!”
“하하하. 그런가요?”
난 괜히 쑥스러워서 머릴 긁적였고, 그는 그런 내 모습을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흠! 생각했던 거랑 반응이 많이 다른데?”
“네? 그게 무슨…?”
“내가 듣기로 박태준은 희대의 천재지만 안하무인에 잘난 체 하길 좋아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라고 들었거든.”
“네?”
아니, 이 새끼는 평소에 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저런 평을 받을 수 있지? 근데 나도 나지만 면전에다 대놓고 말하는 저 사람도 어떤 의미론 대단하네.
“먼저 오늘 일정부터 간단히 알려줄게. 일단 간단히 길드 건물을 돌아 볼 거야. 그리고 오늘은 특별한 손님도 왔으니 하급 던전을 같이 돌아볼까해!”
그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던전이요? 저흰 아직 학생이라 못 가는 거 아닌가요?”
여윤주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도 왔고 해서, 미리 던전관리부에서 허가를 받아 놨으니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던전은 좀….”
“안전은 걱정 안 해도 돼. 우리 길드 주력 멤버들이 같이 갈 거니까!”
그제야 여윤주는 표정을 풀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주력 멤버라면 혹시 김지현 님도 오시나요?”
돌변한 그녀의 모습에 김한결은 약간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오시기로 했으니 걱정마. 지현이 누나 팬인가 보네?”
“네. 제 롤 모델이세요.”
그 후로 그녀는 신이 나서 김지현에 대해 계속 떠들어댔다. 그 모습에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지현이면 태산 길드 창립멤버인 던전 마스터일텐데, 그런 거물이 온다고? 왜?”
던전 마스터는 혼자서 상급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였다. 상급 던전의 보스는 보통 S급 몬스터가 나오기 때문에 던전 마스터라고 하면 S급 몬스터를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용됐다.
소설에서 국내에 존재하는 던전 마스터는 20명이 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고등학생들 견학에 얼굴을 내비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아마 나 때문이겠지?’
날 미리 스카웃하기 위해서 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특SSS 등급 각성자는 흔치 않으니까.
‘뭐가 됐든 잠시 후면 알게 되겠지.’
우린 김한결의 안내에 따라 길드 건물 곳곳을 구경했다. 훈련장과 여러 시설들은 책에도 상세히 설명 되어 있어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잠시 본 각성자들 간의 대련은 상당히 볼만했다. 확실히 글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건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도 이 빌어먹을 스킬만 아니었으면 저렇게 날아다닐 수 있었겠지?’
길드원들의 대련을 감탄하며 보다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길드 시설을 대충 다 둘러본 후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역시 대형 길드라 그런지 음식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자 김한결이 말했다.
“이제 아까 말했던 대로 던전 체험을 갈 거야! 던전은 방송을 통해 많이 봐서 익숙하겠지만 실제로 체험하는 건 느낌이 많이 달라! 우리 길드 엘리트들이 같이 가니 위험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돼! 알겠지?”
그는 팀원들을 둘러보다 마지막엔 나를 보며 물었다.
얌전히 있으란 소리다.
난 고갤 끄덕였고, 우린 던전이 있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가는 길에도 김한결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 가는 던전은 얼마 전에 새로 발견된 하급 던전이야. 위험 등급은 낮지만 던전은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돼!”
이후로도 김한결은 계속 주의 사항을 얘기했다. 그 얘기가 지겨워질 때쯤,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 다 왔다!”
던전 앞에는 태산 길드원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세 사람이었는데 가운데 냉기를 풀풀 풍기며 서있는 중년 여인이 김지현인 듯 보였다.
그녀는 우리가 도착하자 큰 소리로 말했다.
“난 태산 길드의 던전 마스터 김지현이다.”
그리곤 성큼성큼 우릴 향해 걸어왔다. 그리곤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박태준인가?”
“네. 그런데요.”
짝.
눈앞이 번쩍이며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 공격에 맞았습니다.
에?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