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86화 (18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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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가출한 고양이(2)

“으음.”

고양이를 관찰하는 일은 참으로 즐겁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애완동물들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색다른 맛이 있다.

강아지 같은 경우는 가만히 지켜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유대감을 형성하며 무리를 짓고 사는 동물이라 그런지, 주인이 보이기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꼬리를 흔들며 혓바닥으로 이곳저곳 핥아대기 바쁘다.

조류는 관찰하기 좋지만, 새장 안에 갇혀 그냥 지켜보기만 해야 하므로 재미가 없다. 거의 관상용 식물을 기르는 느낌이랄까. 하늘을 자유롭게 날게 해주면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럼 도망쳐 사라질 위험이 높다.

어류는 말 할 것도 없지. 먹이를 주는 시간 외엔 그냥 수조 안에서 헤엄치는 게 끝이니까. 설치류는 조금 다르려나.

“움직이나?”

어쨌든 내 생각이지만 관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재미있는 동물은 고양이다. 적당히 친근감을 유지하고, 적당히 애교를 부리며, 적당히 틱틱대는 게 꼭 츤데레 같은 모습이거든.

뭐든지 애정이 과해도 좋지 않다. 일방적인 줄다리기는 재미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 밀고 당길 줄 아는 고양이가 사람이 된다면, 어쩌면 상대를 마음껏 농락하는 연애고수가 되지 않을까?

“조금 가까이 다가가…….”

“캬학!”

“윽!”

베르제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그가 고양이처럼 나를 보며 하악 소리를 내며 짖었다. 한 번 머리라도 쓰다듬어 보고 싶었건만, 아무래도 당분간 혼자 있게 놔둬야겠다.

그가 우리 숲에 온지 벌써 나흘이 흘렀다. 아직 몸에 힘이 없는지 자꾸만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려는 베르제는 계속해서 탈진해 쓰러졌고, 그를 다시 데려와 보살펴주는 게 거의 일상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끄응. 역시 밥 주는 시간 외엔 다가갈 수 없는가…….”

베르제는 우리들을 경계했다. 진짜로 들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체력적으로 무리가 된다는 걸 아는지 그 역시 어제부턴 그냥 가만히 앉아 체력을 보충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깨어 있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야생 고양이를 길들이려면 역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친밀감을 쌓아야겠지. 좋아. 오늘부터 내가 식사담당이다. 베르제의 먹이는 내가 주겠어!”

“……위그드라실 님. 저 소년은 고양이가 아닙니다만?”

때마침 식사시간이 되어 고기를 가져온 아라디온이 내게 태클을 걸었다. 그래. 나도 알아. 근데 하는 짓이 완전 고양이잖아.

무투 대회에서 봤을 때는 뚱한 표정의 마족 소년인줄로만 알았는데,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고양이처럼 변한 걸까?

혹시 조상님 중에 아인이라도 있던 걸까? 고양이 족 아인의 피가 섞여 있어서, 이제야 그 피가 발현된 건…….

“위그드라실 님. 망상을 하시는 건 좋지만, 어서 고기를 가져다 줘야 할 것 같은데요.”

아라디온이 가져온 고기를 손에 든 나를 바라보는 베르제. 아까처럼 하악거리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내 손에 들린 고기를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이대로 몇 분만 더 뜸을 들인다면 습격하는 게 아닐까.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로 변할지도.

“자. 미안. 여기 있어. 많이 먹고 힘내.”

“…….”

그나마 밥을 줄 땐 가까이 다가가도 먹는 것 외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가만히 살펴보면 마족이라는 존재는 내가 알고 있는 악마와 비슷한 것 같다. 바지 뒤로 악마처럼 가늘고 뾰족한 꼬리가 있었고, 날개는 감추고 있었지만 첫날에 박쥐같은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투 대회를 생각해 보면, 날개 없이도 마음껏 하늘을 날 수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날개는 왜 있는 걸까? 마법 없이 날개로만도 날 수 있는 걸까? 더 친해지면 확인해 보고 싶은 사항 중 하나다.

머리에는 검고 뾰족한 뿔이 양쪽에 하나씩 달려 있다. 머리카락 사이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뿔은, 베르제가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크기가 송아지의 뿔처럼 작았다.

“자. 많이 먹어.”

“그르르…….”

뭐, 다가오는 건 용납한다 쳐도 저 그르릉은 어쩔 수 없지만.

접시에 담긴 고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베르제가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참으로 훌륭한 육식성이다.

지금이라면 빈틈을 보이고 있으니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저 비단 같은 머릿결을 쓰다듬으면 그 사이에 있는 뿔이 오돌토돌하게 내 손바닥을 자극해 줄 것 같다.

……흐음. 이상한 쪽으로 눈을 뜬 건가. 아니야. 이건 정상이라고.

“아빠. 설마 또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건 아니시겠죠?”

“아, 아니야! 그냥 구경만 하고 있어.”

한 번 시도해 보려다 경고하는 핀의 목소리에 나는 흠칫하며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전에도 한 번 머리를 쓰다듬으려 시도했다가 난폭한 고양이에게 공격당하듯 베르제에게 물린 적이 있어서 핀이 구해준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다행히 그렇고 그런 몸이라 상처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하여간 아빠도 참. 그런 은혜도 모르는 녀석을 왜 자꾸 도와주려는 거예요?”

핀은 그 날 일로 인해 베르제가 마음에 안 드는지 그를 돌보려는 나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 지금도 혹시나 베르제가 공격하지 않을까 함께 오긴 했지만 베르제 근처로는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한 거예요. 은혜를 받았으면 그에 마땅한 행동을 해야지. 어휴 참.”

“아니야! 나도 교육 받았다고!”

그 순간, 고기를 뜯어 먹고 있던 베르제가 항변하듯 소리쳤다. 교육이라는 말에 무언가 자극을 받았는지 입에 고기를 문 채 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럼 왜 그렇게 사납게 구는데. 적어도 평범하게 있을 순 없는 거야?”

“누가 돌봐달라고 했어? 아니잖아. 마음대로 돌봐줘 놓고.”

으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속담이 이런 경우인가. 방금 전 말은 나도 조금 상처 받았는걸.

하지만 자신도 말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는지 베르제는 먹던 고기를 팽개치고선 숲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 체력이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날아서 도망쳤을 테니까.

“핀. 쫓아가자.”

“으윽. 아빠도 참. 이대로 그냥 가게 내버려둬요. 이참에 집으로 다시 가버리라고 하죠.”

“그래도. 아직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가뜩이나 몸도 약한데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빠. 진짜로 저 녀석 고양이인 줄 아시는 거 아니에요?”

할 말이 없다. 진짜 고양이처럼 대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저 녀석, 정감이 간다.

무투 대회 때는 거리가 멀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가까이서 직접 만나니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뛰는 느낌이랄까.

“핀. 부탁할게.”

“하아. 알았어요.”

한숨을 쉬면서도 내 부탁을 들어준 핀은 나를 업고 베르제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는지 베르제는 금방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베르제! 어디가. 아직 다 낫지도 않았잖아.”

체력 자체는 내 마력으로 어떻게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게 아니라 잘 먹고 잘 쉬어야 낫는 것이기에 어떻게든 더 이곳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베르제의 눈동자는 흠뻑 젖어 있었다.

“으으…… 나한테 잘해주지 마…….”

“왜 그래. 갑자기 왜 우는 거야?”

“나는…… 은혜도 모르는 쓰레기라고…… 싸움 밖에 모르는 바보란 말이야…….”

“응? 갑자기 왜 그래?”

혹시 핀이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고 해서 상처라도 받은 걸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심하게 슬퍼하고 있는데?

“끄윽…… 혼났단 말이야…… 내가 마음대로 행동해서…… 다 내가 잘못한 거야…….”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은 베르제. 그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흑!”

한 번 울기 시작하자, 첫 인상의 그 쿨했던 모습도, 야생 고양이 같은 모습도 모두 사라진 채 순수한 어린아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였다.

잘못을 한 어린아이가 혼나며 흘리는 그런 눈물.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아빠. 가까이 다가가시면…….”

“괜찮아. 핀. 울고 있잖아.”

핀이 나를 걱정했지만, 나는 베르제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경계하며 우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빠!”

베르제가 내 팔을 붙잡았다. 마력이 흘러 나오는 것이 느껴졌고, 바로 코 앞에서 내게 마법을 쓰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의 머리에 올린 손을 부드럽게 흔들며 머리를 쓰다듬으며 껴안아 주었다.

“괜찮아. 누가 혼내기라도 한 거야? 울지 마.”

“으흑…….”

마력이 점차 사라진다. 대신에 두 눈에 눈물이 더욱 많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혼났구나.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었지만, 베르제는 누군가에게 혼난 채 쫓겨나듯 도망친 게 분명했다.

“굳이…… 엄마가 원하시지도 않는데……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해서 화를 내셨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싸움밖에 모르냐고…….”

“아니야.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거야. 너도 알잖아. 엄마가 널 사랑하신다는 걸.”

“하지만…… 하지만…….”

“이제 그만 울어야지? 엄마가 우는 아이는 어떻게 한다고 했었니?”

“울면 결혼 못한다고…… 여자는 우는 남자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고…….”

으음. 베르제 어머님.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하려고 뭔가 말씀하셨으리라 예상하고 달랜 거건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까. 남자도 자주 웁니다만……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한참이나 내게 붙어 울던 베르제가 울음을 그쳤다. 벌게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베르제는 곧 지쳤는지 그대로 품에 안겨 잠이 들어버렸다.

“이 녀석, 정말 저랑 싸웠던 그 녀석 맞을까요? 혹시 생긴 것만 같은 게…….”

“맞겠지. 원래 사람이란 단면만 보곤 모르니까. 이게 본모습일지도.”

그렇게 울다 지친 베르제를 데리고 우리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혹시나 베르제가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일어나는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베르제? 일어났니?”

“……윽.”

그는 나를 보자마자 부끄러운지 고개를 획 하고 돌려버렸다. 아무래도 낮에 있었던 일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한 결과였나 보다.

“어디가게?”

“……잠깐 밖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숲으로 향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혼자서 가려는지 자꾸만 나를 떼어놓으려 투덜거렸다.

“오지 마. 나 혼자 갈 거야. 도와준 건 고맙지만…….”

“길도 모르잖아. 괜히 헤매지 말고 같이 가자. 혹시 숲에 온 목적이라도 있는 거야?”

“…….”

우물쭈물하는 베르제. 그러다가 힐끗 나를 바라보더니 이제는 나를 믿을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왕님이 돌아가신 곳에 가보고 싶어. 그래서 여기 온 거였어.”

“음. 그렇구나. 마왕님이 돌아가신 곳…….”

기분이 뿌듯하다. 누군가의 신뢰를 얻는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나저나 역시 그냥 헤매다가 숲에 온 게 아니었구나. 목적이 있어서 온 거였군. 마왕님이 돌아가신 곳이라…….

“응? 잠깐? 뭐라고?”

뭔가…… 내가 잘못들은 거 아니지?

“마왕님이 돌아가신 곳. 엄마가 엘퀴라즈 숲이라고 하셨어.”

진짜로…….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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