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85화 (1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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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가출한 고양이(1)

한차례의 소란이 숲을 떠들썩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곰도, 필로우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뒤 평소와 다름없는 평온한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아…… 구름이 되고 싶다…….”

정말 한가하다. 너무 잉여 같아서 잉여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 당장 누군가 와서 ‘너 계속 이렇게 살면 뭔 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라고 귀에 소리쳐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뭐, 인간도 아니고 실제 대사도 저게 아니지만. 원래는 대학이었던가? 근데 대학 나와도 잉여인간인 건 거의 마찬가지던데.

흠. 대학도 안 갔던 내가 할 말은 아니군. 아니지. 합격은 했었잖아? 가지를 않았을 뿐이지. 안 가길 잘했군. 어차피 인문대였으니까.

“흐음…….”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떠오른다. 모든 대학의 종착점은 결국 치킨집이라고. 공대든, 인문대든 마지막엔 치킨집 사장님이 되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다른 치킨집들에 밀려 폐업을 하게 된다고.

“크큭. 안 가길 잘했네.”

“아빠. 뭘 그렇게 혼자 웃고 계세요?”

“그냥.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한국은 어떨까? 치킨집이 교회보다 많을까? 아니면 조금 상황이 나아졌을까?

기회가 된다면, 갈 방법이 생긴다면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아니지. 거기 가면 나 같은 나무는 조명권 침해니, 그린벨트에 묶여서 땅값이 떨어지니 하면서 바로 베어버릴지도 모르겠네.

……이렇게 생각하니 한국에서의 삶은 참으로 빡빡하구나.

“너무 가만히 있지만 말고 우리 운동이라도 하는 게 어때요?”

“운동이라…… 지금도 하고 있는걸?”

“……무슨 운동하고 계신데요?”

“숨 쉬기 운동.”

농담 아니다. 숨 쉬는 것도 엄연히 운동이라고. 사람은 가만히만 있어도 칼로리가 소비되는데 그게 왜 소비되겠어? 다 숨을 쉬며 살아 있으니까 소비되는 거 아니겠어?

할 말을 잃은 핀이 옆에서 나를 지긋이 노려보고 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하늘을 열심히 살펴보며 뭔가 있는 척하기로 결심했다.

“앗! 저기!”

“……딴청 피우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가 보고 있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는 핀. 그 모습이 귀여워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어?”

핀이 진짜로 뭔가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저기 뭔가 날아오고 있는데요?”

“내 눈엔 안 보이는데.”

몽골 초원의 사냥꾼보다 시력이 좋은 핀이 아닌 이상, 핀이 보고 있는 것을 따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쉽게도 나는 일반인 수준이라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전혀 볼 수 없었다.

“저기요. 조금씩 가까워지는데요?”

“으음…… 조금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파란 하늘 너머로 뭔가 작은 점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비행체는 지구였다면 ‘혹시 U.F.O 아니야?’라며 스마트 폰을 꺼낼 정도로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정체불명의 비행체. 파리처럼 이리저리 곡선을 그리며 비행하기도 하고, 갑자기 뚝 떨어지며 추락할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시 하늘로 날아서는 모습이 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새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는 아니겠지. 새라면 이렇게 먼 거리에서 점으로 보이지 않을 테니까. 아니지. 란이 기르던 그 새도 엄청나게 거대했잖아? 저것도 어쩌면 새일지도.

그리고 마침내 육안으로 정체를 확인할 수 있을 때쯤, 나는 그 비행체가 거대한 새도, U.F.O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

하늘을 비틀거리며 날아온 정체불명의 비행체는 바로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도 아니고, 등 뒤에 박쥐같은 날개를 달고 있는 검은 머리의 소년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무언가 낯익은 모습에 내가 기억을 들추려는 찰나, 소년을 발견한 엘프들이 고함을 치며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모두 공격!”

……참으로 빠르구나. 벌써 내 머리 위까지 날아왔는데 이제야 발견하다니. 하긴, 저들이 좋아하는 식물이 가득한 이곳에서 한눈을 팔지 않고 경계에만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 방금 전까지도 꽃을 보며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라며 지구였으면 하얀 집에 실려갈 발언을 마음껏 하고 있었으니까.

너희들, 날 지킬 생각이 없는 거 아니니?

“응? 잠깐. 내가 방금 뭐라고 생각했지?”

방금 전에 분명 내 머리 위까지…… 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아빠. 뭘 멍하니 서 계세요!”

“흐엑!?”

핀이 갑자기 내 목덜미를 잡고서 휙! 하고 잡아 당겼다. 나는 괴상한 신음을 내며 새끼 강아지처럼 그 손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서 있던 자리로 검은 머리의 소년이 운석처럼 굉음을 내며 추락했다. 나를 잡아 당긴 핀이 몸으로 날 감싸며 파편을 막아주었기에 다행히 상처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고, 고마워 핀.”

“……아빠는 정신을 좀 똑바로 차리고 계셔야 돼요!”

“알았어…….”

끄응. 딸에게 꾸중을 받다니. 이런 치욕이……. 이게 다 갑자기 떨어진 녀석 때문이야!

운석처럼 구덩이를 만들어 추락한 소년. 방금 전의 원망하는 마음 반, 혹시나 크게 다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반으로 구덩이 속 소년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

“어라? 이 아이…… 분명 봤었는데?”

“앗! 이 녀석은!”

핀도 동시에 소리치듯 외쳤다. 검은 머리의 소년은 하늘을 날 때와 다르게 박쥐같은 날개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평범한 인간은 아닌 듯 머리 사이로 작은 뿔이 엿보였다.

이제 기억났다. 이 녀석은 분명…….

“베…… 베 뭐더라?”

“베르제!”

그래. 그 이름이었지. 핀의 외침을 들으니 이제야 확실히 기억났다.

도시에 갔을 때, 무투 대회에 나가 준결승전에서 핀과 싸웠던 마족 소년. 핀과 막상막하로 싸웠지만 경기를 포기하고 사라졌던 소년이 아니던가?

“흠흠. 그래. 이름이 분명 베르제였지 아마?”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줘서 확실히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이름이야 뭐…… 조금 오래 전 일이니까 가물가물할 수도 있지.

소년은 기절했는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조그맣게 입으로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싸움밖에 모르는 놈입니다…….”

“상태가 좀 안 좋네.”

“세계수님. 침입자를 어떻게 할까요?”

뒤늦게 달려온 엘프들이 소년, 베르제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내게 물었다.

우선 아는 얼굴이니까…… 그리고 핀이 한 번 이긴 적도 있으니까 우선 보살펴 주는 쪽이 좋겠지?

“일단 치료해 줘야겠네.”

***

“죄송합니다…… 끄응…….”

“아직도 이 소리네.”

마족, 베르제가 우리 숲에 추락(?)한지도 벌써 반나절이 흘렀다. 베르제는 기절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했고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지 자꾸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구제불능…… 민폐 덩어리…….”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딱히 몸이 다친 곳은 없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긴, 핀이랑 싸워서 호각을 이룰 정도였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걸까?

내 마력을 이용해서 치료해 주고 싶지만 다친 곳이 없으니 스스로 일어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몸이 조금 마른 것이 원래부터 그런 건지, 아니면 밥을 잘 먹지 못해서 그런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너무 호리호리하네. 삐쩍 말랐어. 뭐라도 좀 먹여주고 싶은데.”

이런 말을 하니까 뭔가 할머니가 된 기분이네.

어유, 우리 손주 왔어? 지금 바로 밥 차려줄게. 밥 다 먹었니? 그럼 과일 먹으렴. 과일 다 먹었어? 그럼 과자 먹으렴. 과자 다 먹었니? 그럼 밥 차려 줄게…….

할머니가 보고 싶군. 덕분에 살이 엄청 쪘었는데…….

“밖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으. 배고파.”

옆에서 함께 간호라는 명목으로 붙어 있던 핀이 중얼 거렸다. 밖에서 엘프들이 식사를 준비하느라 고기를 굽고 있었기에 그 냄새가 여기까지 퍼지고 있었다.

이제야 말하는 건데, 엘프 녀석들이랑 사는 것도 참 고역이다. 맨날 고기를 구워대니 냄새가 퍼지고, 나는 먹지도 못하는데 인간일 적 습성 때문에 저절로 침이 고이니 고문이 따로 없다.

“어디 냄새 제거 마법이라도 없나…….”

“앗! 아빠!”

그 순간, 누워 있던 베르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깨어나는 것인가!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주듯이 그의 눈동자가 대문처럼 팍! 하고 한 순간 크게 떠졌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하지만 대답은 베르제의 입이 아닌, 배에서 들려왔다.

꼬르륵.

“……배고파.”

“역시 마른 체질이 아니라 굶은 거였냐…….”

‘식사라도 가져다줄까?’라고 내가 말하기도 전에 베르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엘프들이 굽고 있는 고기를 향해 고양이처럼 네 발로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멋지게 점프하며 고기를 입으로 덥석 낚아채 버렸다.

“아앗! 침입자가 약탈까지!”

“네 이놈! 감히 신성한 고기를 훔치려 드느냐!”

……야. 너희들 나한테도 신성한 세계수님이라고 하지 않았냐? 나랑 고기랑 동급이었어?

엘프들이 뭐라 떠들든 간에 베르제는 고기를 돌려줄 생각이 없는지 그 자리에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워 버렸다.

물론 엘프들도 고기를 되찾기 위해 덤벼들었지만, 무슨 마법을 썼는지 엘프들은 그에게 접근조차 못하며 투명한 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세, 세계수님! 침입자가 저희의 고기를…….”

“고기 좀 줄었다고 굶어 죽는 건 아니잖아! 아직도 많이 있으면서! 그리고 그런 건 좀 너희들이 알아서 해!”

징징거리는 엘프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베르제를 향해 다가갔다. 몸이 작아서 훔쳐 온 고기 하나로 배가 찼는지 그는 혀로 입가를 핥으며 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저기, 괜찮아?”

“캬학!”

내가 다가서니 네 발로 땅을 딛고 등을 곧추세운 베르제가 내 쪽을 향해 짐승처럼 경계하며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이 꼭 고양이 같아서 이 이상으로 다가가면 할퀼 것 같아서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아니 근데 너 마족 아니였냐? 어째 하는 짓이 고양이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주변에 모인 엘프들과 나를 경계하던 베르제. 하지만 아직 피로가 완전히 풀린 게 아닌 건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그런 건지 그는 곧 눈을 끔뻑거리더니 쓰러지듯 바닥에 몸을 웅크리며 누웠다.

“가까이…… 오지 마…….”

그리고 우리를 경계하다가 잠에 이기지 못했는지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

심지어 도롱도롱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다.

“일단 더 자게 내버려 둬야겠네.”

갑자기 찾아온 외부인. 우리는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그와 하룻밤을 숲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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