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81화 (18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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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결혼은 미친 짓이다

“아이들이 참 건강하고 보기 좋네.”

아인족 마을. 그곳에서 벌어졌던 작은 소동을 해결한 뒤에도 우리는 숲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덕분에 활기차게 뛰어노는 작은 아인족들을 보며 눈호강을 하고 있다.

“하지 마! 이씨! 하지 말라고!”

“헤헤. 삼켜 버린다?”

“무, 무서우니까 진짜 하지 마!”

늑대 한 마리가 작은 쥐와 뛰어노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입으로 자꾸 쥐를 물고 뛰어다니는 늑대는, 어째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침을 질질 흘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거, 진짜로 아인들끼리는 안 잡아 먹는 거 맞아? 이러다가 실수로 꿀꺽하고 시치미 뚝 떼는 거 아니야?

“손이 부족하네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아이들을 돌보는 란. 그녀가 내게 부탁했고, 나는 혼쾌히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원래 애보는 것 만큼 재미난 일은 없거든.

“세계수님! 좀 더 빨리 달려주세요!”

“히힛! 재미있다.”

“끄응…….”

……물론 한 30분 정도만 즐겁다. 그 이후부턴 체력이 모자라 힘들어 죽을 맛이지.

아인족 아이들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인간처럼 다른 사람 등에 업히는 것을 좋아한다. 진짜 사람 아이처럼 등에 업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데, 솔직히 본인들이 달리는 게 훨씬 빠르건만 왜 좋아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헉. 헉. 힘들어…….”

“에이! 세계수님! 벌써 지치면 안 돼요!”

덕분에 땀에 흠뻑 젖은 채 벌써 지쳐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들이 나를 보챘지만, 내 알 바냐. 더 이상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다고.

“애들아. 나랑 놀자. 어때?”

“와! 힘 센 누나다!”

다행히 내 구세주가 등장했고, 나는 핀에게 아이들을 양도하며 다시 집 마루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래. 역시 구경이 제일 좋아. 직접 하는 건 싫다고.

“자, 간다!”

“얏호!”

핀이 아이들을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혹여나 놓치기라도 한다면 로드킬 당한 시체처럼 아이들의 모습이 처참하게 변할 것이다.

뭐, 핀이 그런 실수를 할 리 없겠지만.

“그런데 주공. 언제 떠나실 참이오?”

옆에서 핀이 아이들을 하늘 높이 집어 던졌다가 다시 받는 위험천만한 놀이를 나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필로우가 물었다. 필로우도 아이들과 놀아주려 했지만, 아이들은 몸집이 작은 필로우와 놀기엔 흥미가 떨어지는지 나와 핀에게만 놀아달라 요청했다.

“우선 결과가 나와 봐야겠지.”

“흐음. 주공은 가능하리라 생각하시오?”

나는 뒤편에 살짝 열린 문을 배꼼 쳐다봤다. 그 안에 있는, 우리가 이 마을에 머물게 된 원흉이 등을 긁으며 자고 있었다.

“아니…… 란이 포기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에잉!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

그리고 그 원흉이 우리가 떠드는 소리를 듣고 문밖으로 나왔다.

큼지막한 덩치. 어디서 사채업자로 활동할 것만 같은 떡대가 우두커니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배는 터질 듯이 부풀어 당장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 같았고, 몸 이곳저곳에 나있는 털은 남자답다기보단 어째 지저분해보이기만 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눈부셔.”

바로 머리였다. 소갈머리를 열심히 끌어 올려 빈 곳을 가리려 했지만, 터무니없이 모자란 병력으론 세상을 구할 수 없었고, 덕분에 반들반들한 대머리가 땀에 절어 빛을 마구 반사시켰다.

“시끄럽다!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다!”

심지어 어울리지 않는, 어디 놀이동산에서 받아온 것 같은 짤막한 동물귀 밴드를 한 것처럼 곰의 귀가 언밸런스하게 머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뚱뚱한 엉덩이 위에 사마귀처럼 곰 꼬리가 자라나 있어서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중년의 아저씨가 귀여운 척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이 남자의 이름은 곰.

란이 먹인 비약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된, 팔자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된 비운의 남성이다.

란이 먹인 비약은 원래 그 아인이 정상적으로 성장했을 때의 모습으로 바꿔준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 곰의 모습은, 아인으로서 곰이 인간형 모습을 했을 때의 모습인 것이다.

솔직히 조금 기대는 했다. 말투도 좀 그렇고, 성격도 좀 그렇지만 외모만 준수하다면 인정받을 수 있는 더러운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곰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잘생긴 미소년이 되는 것밖에 없었다.

“곰. 아저씨 같으니까 다시 들어가. 눈 배리잖아.”

“크윽! 말 안 해도 들어갈 거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없었다. 사람의 성격은 외모를 따라간다고 했던가. 아니면 그 반대로 외모가 성격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곰은 아저씨 같은 본인의 성격과 똑같은 외모의 아저씨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서방님. 더 쉬시지 왜 나오셨어요.”

“응? 끄응…… 시끄러운데 내가 어떻게 자냐. 애들 좀 빨리 조용히 시켜봐라.”

“알았어요.”

아인족은 과거 조선시대 같은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던가. 곰의 말에 란은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그대로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아. 란은 언제쯤 포기하려나.”

우리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란과 곰의 결혼 때문이었다.

“결혼은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일단 함께 살면서 한 번 시도는 해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말해줘. 당분간 여기 머물 테니까.”

너무 쉽게 곰과 결혼하겠다는 그녀를 말리기 위해 우리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선 실제로 결혼한 것처럼 함께 살아보는 것. 말하자면 동거를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이곳에 우리도 함께 남아 있고, 그녀가 곰과의 결혼이 별로라고 한다면 곰을 데리고 다시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바로 포기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사랑이란 게 느낌으로 갑자기 찾아오는 거라곤 하지만, 보통 외모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사랑이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곰의 외모는…… 사랑을 불러오기엔 턱 없이 부족하고 불가능한 외모였다.

“정말로 결혼할 셈인가.”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표정도 전보다 험악해지고, 입술을 꽉 깨물곤 있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일념 하나로 자신을 희생하려는 것 같았다.

“근데 아빠는 왜 맨날 방에만 있고 밖에 안 나올까?”

“같이 놀아주면 좋을 텐데…….”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아이들에게 곰이라는 아빠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곰은 어째선지 밖에 나와 아이들과 한 번도 놀아준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란을 도와주지도 않았다.

게으르고 이상한 녀석이긴 하지만 이런 일에까지 매정한 녀석은 아니었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마음이 싱숭생숭한 걸까?

“그나저나 주공. 진짜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무뢰한을 이곳에 두고 가실 생각이시옵니까?”

“뭐, 내 의견보다는 곰의 마음이 더 중요하겠지?”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애타봐야 일이 진행되지 않겠지. 그래서 란도 계속 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고.

과연 란은 곰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없다.

“과연…….”

* * *

“서방님. 벌써 주무시나요?”

“그렇다. 먼저 잔다. 시끄럽게 굴지 마라.”

“알겠습니다.”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곰. 그는 같은 방에서 잠을 청하려는 란의 뒷모습을 보며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움켜잡았다.

얇은 옷 한 장만 걸치고 옆에 함께 누운 그녀의 향기가 계속해서 심장의 달리기를 부추겼고, 곰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반대로 돌리며 그녀를 등진 채 누웠다.

‘안 된다! 미인계에 넘어가면 안 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절대로 결혼 안 할 거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위인들이 결혼 한 번 잘못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던가. 구체적인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곰의 상식선에선 결혼이란 그런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게다가 애들도 많다! 그 애들 다 먹여 살리려면 죽어라 일해야 한다!’

그런 건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희생시켜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니. 곰은 지금까지의 삶이 좋았고 그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란의 태도가 자꾸만 마음에 거슬렸다. 일부러 더 백수처럼 놀고, 인간으로 변한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한 번도 씻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서 코도 파고, 그걸 먹기까지 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남편으로 대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한테 아빠가 필요한 거냐.”

“예?”

“네 인생을 허비하면서, 나 같은 놈한테 잘 보이려 애쓰면서까지 아이들이 중요하냐고 물었다.”

“…….”

자신이라면 결코 선택할 수 없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삶을 어째서 란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는 걸까. 그것이 곰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오늘에서야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았다.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귀뚜라미가 울었다. 두 사람은 가까웠지만, 그 사이로 귀뚜라미 소리가 파고들며 둘을 떼어놓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란이 대답했다.

“이 마을 아이들은 부모라는 걸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알지 못했지만, 곰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른들만 걸리는 역병이 퍼졌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저는 그나마 부모님 곁에서 오랫동안 자라오면서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만, 다른 아이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던 란. 그녀가 옆으로 굴러 손으로 곰의 등을 만졌다.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곰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움찔거렸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꼭 알려주고 싶습니다. 다들 부모님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그 행복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래서 나 같은 놈이라도 붙잡아 남편으로 삼고 싶다는 거냐?”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제 오늘 겪어봐서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꾸며낸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차차 바꿔나가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곰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불쌍해서,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자신도 모르게 꽉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자신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못났으니까. 그런 남자와 결혼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아빠가 생긴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곰이 말했다. 그는 첫인상과 다르게, 이 여자가 너무나도 연약하고 부드러운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보다 굳센 심지를 가진 여인이라는 것도.

“죽어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는 다르게.

“…….”

그 대답을 듣고 란이 침묵했다.

그리고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 역시 떨리는 목소리를 움켜잡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결혼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던 곰. 하지만 등을 붙잡은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에게까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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