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77화 (17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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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타인의 기억 속에서(2)

사람의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첫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상대를 만났을 때 그의 인상이 후일에 있을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첫인상이 좋다면, 그가 악행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혹시 실수가 아닐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라며 상대를 비호한다. 반대로 첫인상이 나쁘다면 설사 그가 선행을 했더라도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몰라’라며 상대를 깎아내린다.

“죠수아라……. 내 이름은 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앞에 등장한 죠수아라 불린 용사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인상 좋은, 착하고 순박할 것 같으면서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용사와 같은 모습이건만, 그가 저지른 일들을 모두 알고 있는 내게 있어서 그는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위선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기, 쿤. 저 녀석이 너희를 이끌었던 용사야?”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내 목소리와 행동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용사, 죠수아 역시도 내가 보이지 않는지 쿤과 이야기 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쿤과 단둘만 남아 있는 게 아니면 모두 그의 기억에 따라 행동하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곳을 지나갈 줄이야. 지독한 전쟁이라 아무도 뒷수습을 하고 있지 않은데…… 용기 있는 녀석이네.”

“그러는 너야말로 인간이면서 내게 말을 걸다니. 내가 공격할 거라 생각하지 않은 건가?”

“그냥. 왠지 모르게 네가 친근하게 느껴진달까?”

“……특이한 인간이군. 서로 다른 종족이 물어뜯고 배신하는 게 일상인데 처음 보는 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그냥. 운명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이상하게 네가 마음에 드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가지 않겠어?”

느낌적인 느낌이라니. 무서운 남자로다. 여자한테 헌팅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식으로 멘트를 던질 줄이야.

내가 알고 있던 용사들의 대장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사실 등장하는 순간부터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리 봐도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사람의 표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속아선 안 된다. 어디 나쁜 사람이 얼굴에 ‘나 나쁜 사람이요’라고 써 붙이고 다니던가? 아니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보이는 사람이 속으론 끔찍한 생각을 품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럼…… 당분간만 함께 가도록 하지.”

“쿤? 진심이야?”

용사의 어설프지만 순수한 멘트에 홀딱 넘어가버린 것일까. 쿤은 죠수아를 따라 함께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저 멀리 석양을 향해 걸어간다. ‘마치……’라는 단어가 갑자기 연상되며 두 사람의 브로맨스가…….

아니, 이게 아니지. 두 사람의 우정을 쌓는 여정이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으윽!”

내 목소리도, 모습도 보이지 않는지 쿤과 죠수아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어둠이 나를 덮치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둠이 물러갔을 땐, 나는 축제와 같은 분위기의 작은 마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여기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 보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의 기억 속 세상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꼬리와 귀를 가진 아인족이, 키가 작고 다부진 드워프가, 귀가 길고 호리호리한 몸매의 엘프가,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마족이, 그리고…….

“만세!”

평범한 인간들까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죠수아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천 년 전 마왕을 쓰러트리기 전에는 모든 종족이 분열되어 있었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죠수아는 이들을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인파를 헤치며 나아갔다. 그곳엔 일곱 명의 인원이 저마다 손에 술잔을 거머쥔 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엘프. 인간. 마족. 아인, 드워프.

다섯의 종족이 한데 모여 있는 일곱의 건장한 청년들.

사람들의 축복을 받고 있는 그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벨룸…… 쿤…… 죠수아……!”

남은 네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적어도 세 사람의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

비록 내가 알던 모습과 다르게 어리고, 젊고, 나이든 모습이었지만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서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인물은 역시나 죠수아였다.

대체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거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모두가 서로를 증오하고 있는 시대니까. 그런 시대라 할지라도 언제나 소수파는 존재해 왔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증오의 고리에 지치고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무라 봐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평범한 인간의 무엇이, 어떤 점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만든 것일까?

“여러분. 환호는 그만. 이 모든 위엄은 제가 달성한 게 아닙니다.”

죠수아가 잔을 순식간에 비우더니 연설을 시작했다. 역시나 그의 대사는 평범했고, 뒷말이 예상되는 말이었다.

‘우리가 이룬 업적은 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이룬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겠지. 공이란 자신의 것으로 돌리기보단 모두에게 뿌리는 편이 안전하니까. 그리고 모두에게 동기도 부여할 수 있고, 더더욱 유대를 공고히 할 수 있겠지.

“우리는 신의 뜻을 따라 이렇게 모이고, 그분의 인도를 따라 무사히 이곳에 안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죠수아! 죠수아!”

‘신이라고!?’

내 예상과 다른 대답에 나는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어리둥절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신의 공이 아니라 신의 뜻으로 돌리다니. 그는 신을 믿는 충실한 신도였던 것인가?

“신은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도, 모습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 그분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런 어두운 시대에 우리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이제 믿는다! 신이란 분은 확실히 계셔!”

“그래! 믿어! 죠수아! 네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인도해 줘!”

무섭다. 아직은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광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러나 종교란 믿음은 그 믿음이, 자신들의 소망을 위해 언제든지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다른 모든 것을 태울 준비가 된 불쏘시개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을, 서로 다른 종족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바로 종교였던 것이다.

“대체 무슨 신을 믿는 거지?”

죠수아는 특별히 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신의 용모도, 그 격언도,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자신의 믿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으윽!?”

또다시 세상이 어두워졌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떠들고 이야기하던 사람들도, 그들에게 둘러싸여 존경받고 있던 용사들도 어둠에 뒤덮여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쿤의 인상적인 기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세상이 돌아왔을 때, 나는 두 번째로 보았던 기억처럼 끔찍한 전쟁터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본능이, 지금 이 폐허를 감싼 이상한 기운에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이 기운은…….”

이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다. 방금 전가지 사람들이 환호하던 그 마을이 아니던가?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기억이기에 사람들의 얼굴은 낯익지 않았지만, 많은 종족의 사람들이 바닥에 시체가 되어 나뒹굴고 있었다.

『으어어어.』

그리고 그 시체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더니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기(魔氣)!?”

이미 죽은 자들을 조종하는 기운. 그것은 틀림없이 마기였다.

나는 그제야 벨룸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든 종족이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 나라는 마을에 불과한 작은 곳이었지만, 결국 마왕의 진격에 의해 바스러졌다고 했었다.

이들이 바로 아까 전에 환호하던 마을 사람들이라는 것인가? 하지만 감성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대로 신성력을 사용해 그들의 마기를 정화시켰다. 좀비처럼 내게 다가오던 사람들은 마기가 사라지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정화된 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기가 정화되었는데…… 어째서 신성력으로 변하는 거지?”

과거가 아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몇 번이나 마기를 정화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아직 어린 나무이던 시절, 숲에 있던 검은 짐승들을 퇴치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마기를 정화한다고 해서 무언가가 나온 적이 없거늘, 이곳은 마기를 정화하자 신성력으로 변해 허공에 기화하고 있었다.

“어떻게 마기가 신성력으로 변한 거지?”

난롯불 위에 피어오른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가는 신성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직접 만져보고 나서야 그것이 신성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신성력과, 세계수의 마력과 지극히 비슷하지만 다르다. 마치 가까운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비슷했지만 신성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체 이건…….”

멀리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죠수아라는 용사와 다른 용사들이 함께 마을을 둘러보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순간, 또다시 어둠이 밀려오며 환경이 바뀌어 버렸다.

“여긴!”

이번엔 내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바로 엘퀴라즈 숲이었으니까.

숲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엘프들 사이에 나는 위치하고 있었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나를 스쳐 지나가는 그 누구도 내 존재를 의심하거나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다들 내가 보이지 않는 건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 만져볼까?’라고 생각해 봤지만 위험한 도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대로 엘프들을 살펴보며 숲을 거닐고 있을 때, 나는 거대한 벽이라 생각했던 물체가 벽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벽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갈색이다. 그리고 나무껍질처럼 우둘투둘했고, 그 꼭대기엔 나를 가리는 그늘의 정체가 무수히 많이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

최초의 세계수. 아직 마왕과 싸우기 전, 살아 있는 엘퀴라즈 숲을 지키는 수호신.

그 모습에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들어본 목소리. 청아한 옥구슬과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그곳에서 용사들을 위해 무기를 건네주는 그녀의 모습을.

“여러분을 위한 것이에요.”

‘역시 이곳은…… 아니, 이 시점은…….’

마왕과 싸우기 직전, 용사들에게 무기를 주는 어머니의 모습.

심장이 두근거린다. 곧 있을 미래를 알고 있기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있는 이곳이 정말로 과거인지, 쿤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미치는 것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왕과 싸우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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