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74화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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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아인족 마을

아인족 마을에 빠르게 갈 수 있는 수단을 알게 된 순간부터 우리는 이번엔 누가 갈지 멤버를 정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곰이 빠지고 필로우와 나, 핀 이렇게 셋이서 가려 했지만 곰이 결사반대하며 자신도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아쉽게도 그런 곰의 노력은 핀의 한마디로 좌절돼 버렸다.

“너 이번에 엘프 마을에 가서 한 게 뭐 있어?”

“고, 곰!”

「주, 주인님을 구했다!」

“아니, 마을에 도착한 이후에 말이야.”

곰의 행적을 따져보자면, 나를 구한 그 절벽 사건(?)을 제외하곤 빈둥거리며 마을에서 논 것 밖에 없었다. 물론 엘프들을 도와 숲을 가꾼 것도 있지만, 그건 모두가 한 일이고 그 외엔 집 안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으니 핀이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저 녀석도 오면 아이들이 좋아하겠네요. 요즘 출산률이 낮아져서 아이들이 부족하거든요.”

다행이랄까. 란이 곰의 편을 들며 곰도 함께 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넌지시 건넸다. 아무래도 같은 곰이라서 그런 것 같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쨌든 그렇게 해서 아인족 마을에 가게 된 멤버는 총 네 명. 나와 핀, 필로우, 그리고 곰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숲을 떠난 걸 후회하는 중이다.

하늘을 난다는 것. 그것은 인류가 언제나 꿈꿔왔던 큰 희망이자 소원이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기 전까지 인간은 하늘을 날기 위한 수많은 시도를 하였고, 무모한 시도로 인해 목숨을 잃은 자도 많다.

현대에 와서 편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그 은총을 깨달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적어도 나는 지금 비행기가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아빠. 괜찮아요?”

“추워…….”

춥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춥다. 비행기를 타본 적 없는 내게 있어서 새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설레는 일이었지만, 그 설렘조차 얼어붙어 산산 조각날 정도로 추웠다.

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던 비행기는, 편하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이동수단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에서나 그렇다. 단단한 외벽이 있고, 의자가 있으며 기내식이 나오는 편안한 이동수단.

그러나 새는 아니다. 외벽 따윈 없었다. 그렇다고 비행기보다 느린 것도 아니었다. 핀이 날 잡아주지 않았다면 출발하는 순간 땅으로 날아가 곤두박질 쳤을 것이다.

“어, 언제 도, 도착하는 거, 거야…….”

이곳에 와서 겨울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건만, 구름 위를 날면서 처음으로 겪고 있다. 그래. 추위란 이런 것이었지. 뼛속까지 시린 추위. 이런 날엔 이불 안에 틀어 박혀 귤이나 까먹는 게 최곤데.

아아. 벌써 후회된다. 내가 왜 따라간다고 했을까. 그냥 핀이랑 다른 아이들만 보낼걸.

“이제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참으세요.”

춥지도 않은지 새 위에 멀쩡히 서 있는 란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필로우를 꼭 끌어안은 채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겉보기랑 다르게 힘이 강한 것일까. 아니면 몸무게가 무거운가?

“……한 바퀴 회전시켜 드릴까요?”

“아, 아냐. 아무 생각도 안 했어!”

이놈의 얼굴. 무슨 거울도 아니고 생각하는 게 그대로 비추냐!

어쨌든 그렇게 추위에 떨며 구름 위에서 이틀을 보내자, 마침내 우리의 이동수단이 서서히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지상이 가까워질수록 다시 몸이 따뜻해져서 당장에라도 새 위에서 뛰어 내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라? 아빠. 저기 아래 좀 보세요.”

“응?”

핀이 말한 대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여러 동물들이 우리를 기다리듯 오순도순 모여 있었다. 이 숲의 동물들은 경계심이란 게 없는 것일까? 도망도 안가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동물들이 우리가 가까워질수록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고 있었다.

‘아인족이라더니 동물원이라도 차린 건가?’

뭔가 역설적이군. 마치 인어공주가 수족관이라도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생선이 생선을 기르다니. 내가 한 생각이지만 정말 웃기는군.

마침내 지상에 다다르자, 란이 제일 먼저 땅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녀가 땅에 닿는 순간,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동물들이 그녀를 덮쳤다.

“다들 진정해. 호들갑떨지 말고.”

쿨하군. 보통 소녀라면 동물들이 자신에게 안기면 좋아해야 하거늘. 이런 순간에도 쿨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멋지다.

“이 동물들은 다 뭐야?”

“동물이 아닙니다. 전부 아인족 아이들입니다.”

“으잉?”

아무리 봐도 동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여기 있는 동물들이 전부 아인족이라고?

“혹시 아인족들은 변신을 할 줄 아는 거야?”

“변신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저희 바보 족장이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어…… 응?”

“‘혹시 우리들은 변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렸을 땐 동물이잖아. 다 커서도 그 때를 회상하면 동물로 변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이것이 바보 족장이 했던 말입니다.”

뭔가 기분이 나쁘다. 바보와 비교당하다니. 흠.

아니, 직접 만난 것도 아닌데 란의 이야기만 들었더니 그 족장이란 양반이 정말 바보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언론의 무서움인가.

“아인족이랑 같이 살면서 아인족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이해해야죠.”

“대체 무슨 소리야?”

“저희 아인족은 태어날 땐 동물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점차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죠. 완전히 어른이 되면 꼬리와 귀를 제외하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 됩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 다시 한 번 동물들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아까와 다르게 몇몇 동물들이 평범하지 않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란. 란. 어디 갔다 온 거야. 빨리 돌아온다며!”

“안아줘, 란. 히잉.”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냥 동물이었다. 고양이, 여우, 사슴 등등. 정말 지구에서도 볼 수 있는 극히 평범한 동물들.

하지만 방금 말했듯이 몇몇 동물들은 달랐다. 꼭 만화영화에서나 볼 법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있지만, 털이 북슬북슬하고 사람처럼 말하는 동물들. 동화나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의인화한 동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저 상태에서 좀 더 자라면 털이 빠지고 꼬리와 귀만 남긴 채 사람의 모습이 된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루카스 왕국에서 본 아인들도 전부 꼬리랑 귀만 남아 있던데. 그 아인들도 다 성인이었구나.

아니, 잠깐. 란도 그럼 성인이라는 거야? 아무리 봐도 소녀로밖에 안 보이는데. 아인족은 성인이 돼도 소녀 같은 모습이란 말인가!?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어른은 없는 거야?”

그것은 란을 제외하곤 전부 어린아이들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을 풀어 놓고(?) 어른들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단 말인가?

“…….”

그녀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조용히 다른 아이들을 껴안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모두 받아준 그녀가 우리를 마을로 안내해 주었다.

“여기가 저희 마을입니다.”

아인족의 마을은 꼭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초가집처럼 지붕은 풀로 만들어져 있었고, 흙과 돌을 깎아서 만든 벽으로 지어져 있었다. 몇 몇 집에서 아인족 아이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님으로 찾아온 우리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아인족 어른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쪽에 있는 집들은 전부 빈 집이니까 이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집주인은?”

“…….”

역시나 이번에도 란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무언가 감추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일까? 그녀가 말하지 않은데 묻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인간을 동굴에 가둬뒀다고? 그게 가능해?”

핀이 우리가 머물 집 안을 둘러보다가 말을 꺼냈다. 집 안은 딱히 특별한 점이 없었다. 조금 희한한 점이 있다면 이불 대신에 지푸라기가 바닥에 깔려 있어 마구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인도 갇혀 있길 원하고 있으니까요. 미쳐도 단단히 미쳤죠.”

정말로 이중인격이란 말인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다른 인격을 원래 인격이 제어하는 중인가?

빨리 만나서 상태를 보고 싶은지 핀이 그녀를 보챘다.

“어디에 있는데? 한 번 보고 싶네.”

“이쪽으로 오시죠.”

“란! 어디가! 설마 또 우리만 두고 가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여기 남아서 마을이나 잘 지키고 있어.”

“응…… 알았어.”

아이들을 달래준 란은 곧바로 마을을 벗어나 좁은 산길로 향했다. 우리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일이 있는 것일까. 아이들의 반응 또한 뭔가 이상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부모님을 더 그리워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마치 란이 부모라도 된 것마냥 아이들은 란과 함께 있고 싶어 했다.

“……다 죽었습니다.”

“응?”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녀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큰 역병이 돌았습니다. 걸리는 순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리는 무서운 병이었죠.”

“아…….”

“신기하게도 어른들만 걸리고 아이들은 아무도 걸리지 않는 이상한 병이었지만…… 그 덕분에 저와 아이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죠.”

병이라니. 그래서 어른들이 아무도 없었던 것인가?

어른들만 걸리는 병 따윈 태어나서 들어본 적도 없는데. 대체 무슨 병이었지?

“그리고 바보 족장은 또 밖을 나돌아 다니는 바람에 걸리지 않았고요. 뭐, 그때는 족장이 아니었으니까 별 상관은 없었지만.”

아마 아이들 앞에서 대답하지 못한 것은, 아이들에게 그때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되살리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가족을 잃는 슬픔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테니까.

특히나 그 상대가 아이들이라면…….

“선대 족장까지 그 병 때문에 죽어버리고 마을에 돌아온 그가 유일한 어른이었기에 스스로 족장을 자처했습니다. 그가 못미더워서 항상 붙어 다녔는데…… 근데 족장이 되고 나서도 정신 못 차리고 밖을 쏘다니다가 미쳐 버리다니…….”

길을 따라 올라가던 란이 길가에 있던 바위를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그녀의 몸만큼이나 커다란 바위가 반으로 쪼개지며 수박처럼 갈라졌다.

“흠. 죄송합니다. 또 바보를 생각했더니 화가 나서…….”

“아, 아니야. 괜찮아.”

이젠 족장이라는 칭호도 붙이지 않는 거냐. 하긴, 나 같아도 직위에 맞지 않게 날뛰는 사람을 상관으로 두고 있으면 화가 쌓일 것 같다.

그렇게 바위 하나를 쪼개고 난 뒤, 그녀가 조금 더 길을 따라 올라가더니 어느 커다란 바위를 가리켰다. 아까 부순 바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가 있었고, 그 뒤로 암벽이 세워져 있었다.

동굴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바위가 너무 커서 동굴의 동자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저곳입니다.”

“음. 핀. 저 바위 좀 치워줘.”

“맡겨만 주세요.”

우선 족장을 만나려면 저 바위를 치워야겠지?

핀이 소매도 없는데 팔을 걷어붙이며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우지직.

“어라?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그 순간, 바위에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쾅!

“으아앗!”

그리고 금이 간 바위가 부서지더니 그 파편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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