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70화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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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괴물의 정체(3)

신성력이 사라진다면, 그 따뜻한 기운이 한 방울도 몸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궁금해했던 게 어제 같았거늘, 나무는 지금 바싹 말라 죽어가는 어린 새싹처럼 조그맣게 자라 있는 옆자리의 나무를 보았다.

분명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절반 정도 되는 높이까지 자라났던 나무였다. 하지만 신성력이 뽑히면 뽑힐수록 점차 작아지더니 이제는 화분에 심어져 사람들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나무는 화분에 심어진 그 친구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여섯 번이나 같은 광경을 보아왔으니까.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일이 반복되며 나무의 뇌리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이번이 마지막 추출이겠군요.”

‘제발…… 하지 말아줘…….’

신성력을 투여 받을 때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나무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신성력을 추출당한 다른 나무들의 감정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둠.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곳으로 향한다는 두려움과 공포. 벌써 여섯 번이나 느낀 그 감각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하지가 않았다.

하지면 여전히 사람들은 나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나무의 희망과 다르게 거침없이 주사기를 죽어가는 다른 나무에게 박아 넣었다.

「아아!」

이것 역시 몇 번이나 들었던 마지막 단발마. 그리고 마지막 신성력을 추출당한 나무는 그대로 시들더니 완전히 쪼그라들며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정말…… 끔찍하군.”

‘그럼 안 하면 되잖아! 왜! 왜 자꾸 그러는 거야!’

얼굴을 찌푸리며 먼지처럼 날리는 가루를 손으로 휘젓는 사람들. 그들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였을까?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고 남은 먼지들을 자루에 담은 사람들은 죽은 나무가 있던 화분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부디. 이걸로 완전히 자아가 생겨나기를. 정령체까지만 만들어 진다면…… 실험은 성공이다.”

‘주지 마! 그런 거 필요 없어! 저리 가!’

나무가 남아 있던 마지막 친구의 신성력을 받으며 소리 질렀다. 그러나 그 외침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역시…… 실패인가?”

조금 더 자라난 나무. 그동안 함께 지냈던 일곱 그루의 어린 세계수들에게 받은 신성력 덕분에 한 그루의 멋진 나무가 되었지만, 그것은 나무도, 사람들도 바랐던 결과가 아니었다.

“이제 끝이군.”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어쩌면!”

“내일 그분께서 직접 오신다더군.”

“그분께서 말씀이십니까? 아직 연구가 완성되지 않았거늘!”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으신 거겠지. 어느 쪽이 됐건 내일 이 녀석의 운명이 결정된다.”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거늘, 나무는 처음으로 손을 떨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부디 그분께서 만족해 주시길 기대하는 수밖에.”

* * *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누구를 맞이하려는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청소를 시작했다. 나무는 사람들이 새롭게 집을 단장하는 모습을 보며 어제 말한 ‘그 분’을 맞이하려는 것을 어렴풋하게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와 그분이 만났다.

그가 오는 순간부터 나무는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나무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고 자신도 가지고 있는 신성력을 지닌 인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가 가진 신성력은 너무나도 약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그 힘은, 마치 최후의 추출만을 기다린 채 죽어가던 다른 나무들의 마지막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느낌에 나무는 그에게 자신의 신성력을 나눠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 실험체인가?”

마침내 자신 앞에 나타난 ‘그분’을 본 나무는 그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쭈글쭈글한 피부. 세월이 지나면 사람은 늙어간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사람보다 주름이 많았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노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처럼 가루가 되어 부서질 것 같아 옆에서 부축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이곳에 살면서 사람들을 관찰해 온 나무는 노인의 눈동자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는 생기가 넘치며,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힘을 낼 때는 눈빛이 불타올랐고, 슬퍼할 때면 눈빛이 무거워졌다. 아무 생각도 안하며 멍 때리는 사람의 눈조차 나름 생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노인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대체 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지팡이를 짚고 나무에게 다가간 노인이 손바닥을 밀착시킨 채 눈을 감았다. 나무는 처음으로 몸이 간질거린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노인은 말이 없었다. 그가 침묵할수록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마침내 나무에게서 손을 뗀 노인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볼테르.”

“예.”

“자네가 내게 제안했던 날이 떠오르는군. 세계수를 되살리겠다고 했었지 아마?”

“그렇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노인의 손이 사람의 목을 졸랐다. 주변에서 말리려고 달려들었지만, 썩은 갈대처럼 앙상한 노인의 손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저게 세계수란 말이냐!? 고작 저런 게!? 대체 내게서 받아간 신성력으로 뭔 짓을 저지른 것이냐!”

“케엑…… 제, 제발 고정하시길…….”

“역시 네놈들을 믿는 게 아니었다. 세계수를 되살릴 수 있다고? 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믿어달라고? 웃기는 소리로군. 저건 세계수가 아니다! 저건 그냥 신성력이 들어간 나무에 불과해!”

“아닙니다! 저건 세계수가 맞습니다! 세계수의 잔재에서 추출한 완벽한 세계수의 복제입니다!”

그 소리에 노인이 목을 조르던 손을 풀었다. 그는 나무에게 다가가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세계수가 맞기는 하지. 하지만 이 녀석이 자아를 가지고 있더냐? 내게 말이라도 걸고 있느냐?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세계수는 그저 신성력을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단 말이다!”

“조,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언젠간 성체가…….”

“대체 언제까지!? 지금 이 몸조차 죽어가고 있거늘. 이 나무에 담긴 신성력이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신성력이란 말이다!”

화를 내던 노인은 갑자기 나무에 손을 맞붙였다.

그리고…….

“내가 주었던 신성력. 전부 회수하겠노라.”

‘아아!’

손바닥이 닿는 순간부터 나무는 자신의 몸속에 들어있던 신성력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급격하게 사라지는 신성력의 소멸로 인해 나무는 점차 이성이 마비되며 생각이 둔해졌다.

‘하…… 지…… 마…….’

“이것으로 조금 더 살 수는 있겠지만…… 나도 이제 끝인가…….”

나도 다른 나무들처럼 죽는 것일까? 바짝 마른 나무가 되어 가루로 변해 사라지는 것일까?

그 생각을 끝으로 나무는 어둠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 * *

“미안하구나.”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나무는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자아가, 귓가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인해 어렴풋하게 정신을 붙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멋진 세계수로 자라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나무는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처음 자아가 생겨났을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목소리였으니까. 이름 모를 노인에게 목이 졸리던 그 사람이 아니던가.

“이런 식으로 널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거늘. 설마 널 무기로 사용하게 될 줄이야…….”

“연구소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엘프들에게 발각되기 전에 어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네게 마기를 주입해서 미안하구나. 마기를 정화하는 세계수에게 마기를 투여하다니. 세계수라서 그런 것이냐? 마물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마기에 먹혀 사라지지도 않다니. 좀 더 연구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마기? 그게 대체 뭐지?

나무는 자신의 몸속을 느껴보았다. 신성력이 있던 곳에 검고 이상한 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 이제 가세나. 결과는 언젠간 나오겠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점이 아쉽군.”

그렇게 처음 나무에게 말을 걸어줬던 사람이 떠나갔다.

홀로 남은 나무는 외롭고 무서웠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검은 기운이 점차 자신을 좀 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안에서 나무는 홀로 긴 시간을 보내며 점차 무너져갔다.

‘추워.’

따뜻한 온기가 그리웠다. 예전에 그토록 좋아했던 햇볕도 나무를 따뜻하게 해줄 수 없었다.

‘신성력…….’

신성력이 있다면 다시 따뜻해질 수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맑은 하늘과 포근한 땅을 볼 수 있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나무는 오랫동안 홀로 어둠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싸워왔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어둠이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게 될 무렵, 또 다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세상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 피어있는 작은 불꽃들. 마치 신성력처럼 밝게 타오르는 신기한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불꽃들을 향해 손을 뻗고 싶다고 생각하자, 정말로 손이 생겨나며 그것들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과 다른 점은 그 손이 수백, 수천 개나 만들어졌다는 것 뿐.

‘나한테 조금만 나눠주지 않을래?’

그 불꽃들을 모두 가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예전의 다른 나무들처럼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무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가져오기로 결심했다.

아쉽게도 그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불꽃에 손을 대는 순간 처음으로 탐욕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안 돼! 다 가져오면 안 된단 말이야!’

조금만 가져오려 했거늘, 조금만 남기고 다 가져와 버렸다.

하지만 나무는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까.

* * *

“…….”

그런가. 이 괴물은…… 괴물이 아니었구나.

나는 뿌리에 휘감긴 채 괴물처럼 변해버린 세계수를 위해 눈을 감고 어둠을 느껴보았다. 손조차 닿지 않는 아주 깊은 곳에 동그랗게 뭉쳐있는 마기가 느껴졌다.

그것을 향해 신성력을 내뿜었다. 작은 어둠은 점점 옅어지더니 금세 사라져버렸다.

마기를 잃어버린 세계수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나를 휘감던 뿌리도, 거인처럼 큰 몸집을 유지하고 있던 모습도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먼지 하나하나에 나무에게서 빨아들인 생명력이 숨 쉬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거늘, 그 먼지들은 각자 원래의 주인을 향해 날아갔다.

“이제 괜찮아.”

잃어버린 신성력 대신에 나무들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있던 것일까.

그래서 너를 본 순간 친근한 감정이 들었던 것일까.

먼지들이 사라진 휑한 공간 아래, 작은 나무 한 그루가 홀로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기도, 생명력도, 신성력도 모두 잃은 나무는 자아조차 유지하지 못한 채 그저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

그 여린 잎사귀를, 생기를 잃어 말라붙은 가지를 만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형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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