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63화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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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엘프마을 도착! 그런데…….

정체불명의 남자가 떠나고 난 뒤, 나는 곰과 함께 동굴 앞에서 머물렀다.

산에서 조난당했을 때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일행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이다.

길도 잘 모르면서 괜히 돌아다녔다간 일행들이 오히려 더 찾기 힘들어지고, 조난은 조난대로 더 심각해져서 객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곰.”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

조용히 핀과 아라디온을 기다리려는데 곰이 끊임없이 말을 건다.

남자아이들은 활동적인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더니, 계속해서 직접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가자며 나를 보챘다.

“그러다가 아까처럼 엘프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곰! 곰!”

「내가 있다! 내가 다 쓰러트린다!」

“그러세요? 그래서 아까 그렇게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셨어요?”

“고, 곰!”

「그, 그건 주인님이 있어서!」

“지금도 내가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

이 숲의 엘프들은 인간들을 적대시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나 같은 어린아이를 보자마자 활부터 쏘아댄 게 아닐까. 틀림없다.

“우선 조용히 기다리자고. 혹시 모르니까 엘프들한테 들키지 않도록…….”

그 순간, 나는 한 쌍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메마른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나와 곰을 지켜보고 있는 금발머리의 소녀.

잠깐 핀으로 착각했지만 녹색의 눈동자는 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손에 쥐고 있는 활과 시위를 당기고 있는 손가락이…….

“으악! 쏘, 쏘지 마세요!”

내 필사의 외침을 들은 것일까. 금발의 엘프소녀는 들고 있던 활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대신에 입에 손가락을 넣고 산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익!

불안하다. 쏘지 않은 것은 기쁘지만, 보통 이렇게 휘파람을 부는 경우는…….

“찾았군.”

동료들을 부를 때뿐이다. 암. 그렇고말고.

주변에 녹색 옷을 입은 엘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개미처럼 바글바글한 숫자에 나는 기가 죽어 뒤로 천천히 물러나 곰의 품에 안겼다.

“곰. 곰. 곰곰?”

「민망하게스리. 주인님. 꼭 이럴 때 그래야겠나?」

“스킨십 아니거든? 그리고 언제 내가 너한테 스킨십한 적 있냐?”

“곰. 곰곰. 곰곰곰…….”

「없다. 나도 거부한다. 남자끼리 스킨십은 정말이지…….」

곰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냈다. 지금 너랑 만담이나 할 때가 아니거든?

엘프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며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들이 들고 있는 화살촉의 예리한 날이 눈에 들어왔다.

찔리면 많이 아프겠지? 근데 왜 안 쏘고 다가오는 거야? 설마 화살이 아니라 칼로…….

그래도 내겐 곰이 있다. 곰이 누구던가. 우리 가족의 자랑스러운 첫째 아들이 아니던가.

가라! 곰! 너로 정했다!

“…….”

하지만 곰은 멀뚱히 앉아서 다가오는 엘프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곰에게 밀착한 상태로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곰! 지켜준다며! 뭐하고 있어! 다가오잖아!’

“곰.”

「걱정하지 마라.」

곰이 다가오는 엘프들을 가리켰다. 엘프들은 우리를 둘러싼 채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곰.”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를 공격하려던 게 아닌가? 왜 갑자기 무릎을 꿇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한 엘프가 근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마치 기뻐하는 것 같았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어…… 응?”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엘프들은 더 이상 우리를 공격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세계수님.”

* * *

“살았네.”

우리는 지금 엘프들을 따라 그들의 마을로 가고 있었다.

덩치 큰 보디가드들에게 가드 받는 회장님의 기분이 이러할까.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엘프들은 나와 곰을 둘러싼 채 걷고 있었다.

“설마 세계수님이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희의 불찰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아.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지.”

처음 우리를 공격했던 엘프 무리와 지금의 엘프 무리는 같은 마을 출신이었다.

왜 우리를 공격했었는지 한 엘프가 변명처럼 말해주었다.

“숲이 메마르기 시작한 이후로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평소라면 무슨 일로 숲에 들어왔는지 확인이라도 해봤을 텐데, 인간이라는 사실에 그만…….”

엘프는 말을 하면서도 자책하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보인 나머지 나는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아아……! 세계수님…….”

감격에 마지못해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니, 이번엔 회장님이 아니라 한 교단의 교주가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어떤 심정인지는 알 것 같은데 손 한 번 잡아줬다고 다 큰 어른이 울지 말란 말아 줬으면 좋겠는데.

“세계수님의 종복들이 저희 마을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세계수님인 줄 꿈에도 모를 뻔했군요. 설마 세계수님이 정령체로 이곳에 오셨을 줄은…….”

“응? 레벤토가 연락 안 했었어?”

미리 연락을 한 게 아니었나? 한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족장님께 딱히 들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으음…….”

꼼꼼한 줄 알았더니 레벤토가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남의 집에 갈 땐 확실하게 연락을 해줘야지.

“그나저나 확실히 느껴지는 군요. 멀리서 있을 땐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까워지니 세계수님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슨 느낌인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게다가 손까지 잡아주시니,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그건 좀…… 내가 무슨 마약이냐.

그나저나 역시 이 모습으론 세계수로서의 내 힘이 약해지는 게 확실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활을 쏘아대던 그 거리에서도 나를 지금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다른 엘프들도 그런 사용 후기……가 아니라 나와 손을 잡은 감상을 듣더니 눈을 반짝이며 내 손을 바라보았다.

저기, 나중에 전부 악수해 줄 테니까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줄래? 조금 무섭거든?

“저기입니다. 세계수님.”

엘프 마을은 멀지 않았다. 엘퀴라즈 숲처럼 미칠 듯이 거대한 수해(樹海)는 아니었는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나무들이 전부 앙상하게 말라 있으니 시야가 훤히 트여서 멀리서도 확실히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입구에서부터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아빠!”

“으억!”

갑자기 핀이 달려들어 나를 끌어안았다. 이런.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대체 어디 가셨던 거예요.”

“그, 그건 내가 할 말이야…… 그것보다 좀 놔주지 않을래? 숨 막히거든?”

“앗. 죄송해요.”

핀에게 풀려나며 신선한 공기의 고마움을 만끽하고 있던 그 때, 레벤토 옆에 있던 엘프가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훤칠한 키와 긴 금발이 잘 어울리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엘프였다.

그런데 엘프도 나이를 먹는 것일까? 얼굴에 조금이지만 주름살이 있었다. 그것이 미관상 보기 나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나타나 있어 지혜롭고 현명할 것 같았다.

“세계수님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제 이름은 파테르라고 합니다. 작지만 이 숲에 사는 엘프들의 족장을 맡고 있습니다.”

“안녕…… 하세요. 나, 아니,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위그드라실이라고 합니다.”

빈 말이 아니다. 정말로 영광스러웠다.

우리 숲에 찾아온 그 엘프들은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었는가. 거의 광신도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외모로 보자면 이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 성향이 내가 알고 있는 엘프와 천지차이였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알던 엘프 그 자체야!’

그러니 내가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꿈에도 그리던 진짜 엘프들을 만났는데.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저희는 세계수님께 존대를 받을 위치가 아닙니다.”

“아. 그래. 알았어.”

“그리고…… 미리 마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연락은 받았으나 몇 몇 엘프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바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조금 놀라긴 했지만 몸 건강히 도착했으니 다 잘된 거지 뭐.”

내가 말실수라도 했던 것일까? 파테르가 이마를 찡그렸다. 주름살이 보이는 그의 얼굴에 더더욱 주름살이 번식하듯 생겨났다.

“조금 놀라셨다니 그게 무슨…….”

“저, 족장님.”

나와 손을 잡고 걸었던 엘프가 파테르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속삭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미간에 접혀있던 주름살은 더더욱 늘어났다.

“오필리아!”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우리를 데리고 왔던 엘프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처음 나와 곰을 발견했던 그 소녀 엘프였다.

“…….”

소녀가 앞으로 나서자, 파테르가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혹시 그녀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던 것일까?

하지만 저렇게 어린 소녀를 질책하는 모습은 보기 싫은데.

찰싹!

……라고 생각하자마자 내 예상보다 더 심각한 벌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파테르가 소녀의 뺨을 세게 때린 것이다.

“어째서 네 마음대로 정찰을 한 것이냐! 하마터면 세계수님이 다치실 뻔하지 않았느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엘프 소녀도 지지 않으려는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나섰기에 세계수님을 빨리 발견할 수…….”

“시끄럽다! 그게 중요하더냐? 중요한 것은 네가 세계수님을 다치게 할 뻔했다는 거다! 왜 네 멋대로 행동해서 큰 피해를 주려고 하느냐? 오전에 내가 중히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무엇인지 아느냐? 세계수님이 오신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네 녀석은 새벽부터 일어나 다른 이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다니. 네 녀석 때문에 하마터면 큰 일이 일어날 뻔하지 않았느냐!”

“……죄송합니다.”

“이 상황에서 대체 정찰이 무슨 필요가 있더냐? 생각이…… 후우. 더는 듣고 싶지 않다. 당장 네 방으로 가거라. 그리고 밖으로 나오지 말거라. 앞으로 일주일간 자택에서 근신하거라!”

무언가 말하고 싶은지 소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던 것일까. 그 손은 금세 풀려 버렸다.

“……알겠습니다.”

다른 엘프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어디론가 향하는 엘프 소녀. 그 뒤에 대고 족장인 파테르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이렇게 철이 없어서야…….”

그 말을 들은 것일까. 엘프 소녀가 우두커니 멈춰서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달려가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깨를 떨고 있던데. 설마 울고 있었던 걸까?

“위그드라실 님. 죄송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다들 신경이 날카롭습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내게 레벤토가 다가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저 친구가 원래 가족교육에는 엄격한지라…….”

흐음.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 남들에겐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가족들에겐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응? 뭐라고?”

내가 잘못들은 것일까? 방금 뭐라고 했지?

가족?

“방금 그 여자애랑 족장…… 파테르가 가족이야?”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가 더욱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파테르 족장의 딸이 방금 그 여자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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