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55화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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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스승과 제자와 제자의 제자(2)

홀랜드가 검을 들고 나와 대치하고 있다.

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 검은 빼지 않고 검 집에 넣은 채 들고 있었지만 외관상 안전해보일 뿐 실제로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저걸 보니 역날검이 생각나네.’

전생에 분명 그런 만화가 있었다. 사람을 베지 않기 위해 날이 반대로 달려 있는 ‘역날검’을 사용하는 검객이.

얼핏 들으면 논리적이긴 하다. 상대를 베지 않고 타격만으로 쓰러트리는 소리로 들리니까.

하지만 그 논리는 현실에서 절대로 적용될 수 없었다. 아주 조금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야구방망이가 날이 없다고 해서 맞아도 죽지 않는가? 목검이 날이 없다고 해서 머리통을 맞아도 사람이 멀쩡한가?

심지어 검객, 전문적으로 날붙이를 휘두르는 사람이 최소 5㎏은 될 법한 날 없는 쇠몽둥이를 휘두르는데 과연 사람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물론 만화니까, 과장된 표현을 허용해준다 해도 문제될 건 없다. 만화는 흥미 위주고, 안 그러면 스토리가 진행되지 않을 테니까.

“흐익!”

“스승! 뭐해! 마법 안 쓰고!”

근데 이건 현실이잖아! 그런 거 휘두르지 말라고!

머리 바로 위로 검이 지나가며 내 머리카락 몇 가닥을 함께 길동무로 끌고 갔다. 하늘거리며 아래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나는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안 때린다며!”

“그래도 조금 현실적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그 편이 더 절박하게 싸울 거 아니야.”

“필요 없거든! 그냥 마법만 써 줄 테니까 몸으로 받아 내보라고. 애초에 약속했던 건 그런 거였잖아.”

나는 결국 홀랜드를 제자로 받아주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싫다고 해봐야 ‘받아주겠노라’라고 말하기 전까지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녀석이니까.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받아주는 것 외엔 없었다.

물론 쫓아내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다. 쫓아내려면 충분히 쫓아낼 수 있다. 내가 직접 나서서 녀석을 기절 시키고 숲 밖에 내던져도 충분하겠지. 다시는 오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분지르면 회복될 때까지 숲으로 오지 못할 테니까.

그것도 아니면…… 으음.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하지만 아라디온의 중재로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대신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받아내자.

“크윽. 역시 하루 만에 터득하기란 무린가.”

“드디어…… 끝났나?”

다행히 몸은 멀쩡하다. 몇 번이고 나를 공격하는 홀랜드를 상대로 버틴 내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확실히 홀랜드의 말대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니 더욱 적극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홀랜드 녀석은 지금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팔다리가 얼어붙고, 여기 저기 검게 그을리고, 화상까지 입었지만 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아. 스, 스승. 나 좀 치료해 줘.”

“끄응. 나도 피곤한데…….”

그래도 이대로 뒀다간 죽거나 불구가 될 것 같으니 치료해주자. 그런 건 별로 원하는 일이 아니니까.

홀랜드도 이제 내가 타인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행히 세계수라서 그런 게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하긴, 주문조차 외우지 않고 자신이 그토록 노력했던 마법파훼법을 파훼하는 마법까지 쓰는데 이미 평범한 아이로는 보이지 않겠지.

아니, 애초에 평범한 아이는 엘프들이랑 같이 숲에서 살지 않는다고.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

“그럼 조금 쉬다가 핀이랑 상대해 줘.”

“알았다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대신 얻기로 한 대가.

“언제 시작하나요?”

그것은 바로 홀랜드가 핀을 제자로 들이는 일이었다.

내가 보기엔 핀은 충분히 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랜드에게 패배했다.

나는 그 이유가 ‘기술’의 차이라고 느꼈다.

핀이 강하긴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의 가르침 없이 독자적으로 성장해왔기에, 기술을 단련할 시간이 없었다.

마법이나 결이라는 기술을 쓰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그것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지 않았는가. 그러니 홀랜드에게 기술을 배운다면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하는 심정이다.

“조금만 더 쉬고. 방금 대련에서의 경험을 좀 곱씹을 시간을 줘.”

“그냥 시작하면 안 되나요?”

옆에서 나와 홀랜드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핀이 보채듯이 말했다.

핀은 혹시나 내가 다칠까봐 대련 도중에도 계속해서 흠칫거리며 끼어들려고 했지만, 아라디온의 만류에 안절부절못하며 홀랜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 그럼 시작할까.”

“으으…… 빨리 끝내줘.”

비록 어제 제안을 받아주긴 했지만 핀은 홀랜드에게 가르침을 받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긴, 나 같아도 어제 싸운 친구가 시험공부를 알려준다고 하면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응? 스승에 대한 예의가 없군. 존댓말!”

딱!

홀랜드가 축지법을 쓰듯이 핀에게 빠르게 접근하더니 검집으로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정수리를 감싸며 핀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으악! 갑자기 왜 때려요! 신호는 주고 시작해야죠!”

“또! 스승에겐 존댓말!”

딱!

핀이 반말을 할 때마다 홀랜드의 검집은 사정없이 정수리를 때렸고, 이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결국 포기한 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존댓말을 사용했다.

“자.아.알. 부.탁.드.립.니.다.”

“그래. 이제 좀 제자로서 모습이 갖춰졌군.”

음. 그래. 제자라면 마땅히 예의를 갖춰야지.

근데 댁도 나한테 반말하지 않수? 본인이 먼저 시범을 보여야 하지 않나?

두 사람의 대련은 나와 비슷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핀은 나처럼 홀랜드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머리가 비어!”

“이번엔 허리!”

“다리가 놀고 있잖아!”

핀은 열심히 마법도 쓰고 몸도 놀렸지만 홀랜드에게 유효타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약올리듯이 계속 핀의 몸 여기저기를 검집으로 때렸다.

딱!

“으아아아! 그만 좀 때려!”

“또 반말!”

딱!

두 사람이 대련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홀랜드가 나와 대련할 때 일부러 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랑 대련할 땐 움직이는 게 아주 잘 보였는데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애라고 방심하지 않았다면 마법도 쓰지 못하고 바로 당했었을 것이다.

‘근데 왜 때리기만 해?’

스승이니까 이것저것 알려줘야 정상 아닌가? 근데 이건 대련을 빙자한 구타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나와 같은 생각인지 맞고 있던 핀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 잠깐! 뭔가 가르쳐 주는 거 아니었어요? 이건 그냥 구타잖아요!”

“원래 깨달음이란 자신이 직접 얻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너에 대해 아직 내가 잘 모르니 좀 더 알아볼 필요도 있고.”

“그럼 말로 해도 되잖아요! 직접 물어보라고요!”

“말보다 행동으로 보는 편이 훨씬 편하지. 그 사람의 힘이란 위기의 순간 나오는 법. 아직 입을 놀릴 기운이 있는 걸 보니 위기가 아니로구나!”

그렇게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말씨름을 벌였다. 계속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비록 크게 다치지 않을 거란 걸 알지만…… 맞고 있는 핀의 모습을 어찌 멀쩡히 지켜본단 말인가.

크윽. 그래도 참아야 한다. 핀이 원하는 것은 강해지는 것. 이것 역시 그걸 위한 시련이니까.

그래도 도저히 볼 수 가 없어서 나는 인사를 하며 두 사람 곁을 떠나기로 했다.

“그럼 핀. 홀랜드. 나는 먼저 들어갈게. 열심히 해.”

“그래. 들어가라 스승.”

“아, 아빠!”

두 사람을 남겨두고 내 본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딱히 홀랜드와 연관되고 싶지 않은지 엘프들은 두 사람의 대련을 구경하지 않았다. 오히려 홀랜드가 숲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대부분의 엘프들이 정찰을 하러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레벤토와 아라디온, 곰과 필로우만 내 본체 곁을 지키고 있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가씨는…….”

“아직 수련 중.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네.”

두 사람이 대련하고 있던 곳에서 큰 외침이 들렸다. 핀의 목소리였는데 뭐라 하는 진 몰라도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하하…… 확실히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네요.”

“아마 둘 중 누구 한 사람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하지 않을까?”

“저는 조금 믿을 수 없군요. 인간이기도 하고…….”

레벤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핀도 이기는 홀랜드니 그의 걱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위그드라실 님께서 이길 수 있다곤 하지만 언제 허를 찔러 수상한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아, 그거. 으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나 역시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래서 어제 홀랜드와 거래를 하면서 그 이야기를 꺼냈었다.

‘혹시 여기서 수상한 짓이라도 벌였다간…….’

‘수상한 짓?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짓 따위 벌이지 않아. 그리고…… 뒤에 그 녀석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 그리 태산이야?’

그 녀석. 분명 그때 홀랜드는 아라디온을 힐끗 보면서 그 말을 했었다.

어머니의 첫 번째 하이엘프이자 천 년이라는 시간을 어머니를 위해 여행으로 보낸 엘프.

아라디온에게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아라디온은 지금 멍하니 나무인 내 몸에 기대어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고개를 돌리며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신가요?”

“아무것도 아니야.”

언젠가 물어봐야겠다. 그 천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 * *

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무에 몸을 기댔다.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 길고 좁은 푸른 멍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흐음…….”

어깨에 검집을 올려둔 채 그녀를 내려다보는 홀랜드. 벌써 이곳에 온지 며칠이 지났건만, 핀과의 대련은 변함없이 지금과 같았다.

무자비한 구타와 같은 대련. 지금까지 핀은 여전히 홀랜드에게 공격 한 번 성공시키지 못했다.

“하아. 하아. 이, 이건 수련도 아니야…….”

처음 위그드라실에게 수련제의를 받았을 때 그녀는 마음이 흔들렸지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원수의 제자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작정이었으나, 막상 제자가 되고 나니 강해지기는커녕 매일 같이 고통스러운 대련뿐이었다.

그래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입니까?”

존댓말로 예의바르게 대답하는 핀. 그러나 억양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아니. 소용 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무언가 느낌이 오는지 홀랜드가 눈을 감고 지금까지 있었던 핀과의 대련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대련 속에서 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았다.

“그래. 그거였군. 네 문제점.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어.”

손뼉을 치며 홀랜드가 말했다. 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까지 아무 이유 없이 구타했던 게 아니었단 말인가?

“제 문제점이 뭔가요?”

그가 대답해 주길 기다리는 핀. 홀랜드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리고 홀랜드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머리가 텅 비는 것을 느꼈다.

그의 대답은 너무 황당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넌 너무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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