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51화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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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지. 테크닉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잘치고, 누군가는 운동을 잘하며 누군가는 암기력이 뛰어나다.

한때는 노력만 하면 모두 가능하다며 소위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노력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것은 타고난 재능이며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깊은 골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뭐, 그 이후로 노력이라는 말보다 재능충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노력이라는 말 한마디로 상대를 나태한 놈이라며 깔보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홀랜드가 너무 자만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핀이 투제와 맞붙어서 비겼다는 건, 적어도 홀랜드와 싸워도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아닌가?

핀이 아슬아슬하게 이기거나, 투제처럼 비기거나, 아슬아슬하게 지거나.

그런데 자신의 주무기인 검을 두고서 맨손으로 싸우겠다니.

그렇다면 패배가 확정된 전투이지 않은가?

“자. 덤벼보라고.”

나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그는 지금 상태로 싸우겠다는 의지가 충만했고, 핀은 무시당했다고 느꼈는지 고운 미간에 힘을 주며 차가운 눈빛으로 홀랜드를 노려봤다.

“그럼, 후회하지 말기를.”

번쩍! 하며 번개가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핀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홀랜드가 팔을 뻗으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상대하려는 듯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이 꼭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곰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서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으음.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질 못하니 이거 참 불편하네. 숲에 돌아온 김에 그냥 나무로 돌아가 버릴까. 그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잠깐. 우리한텐 그 녀석이 있잖아?

충실한 설명충!

“아라디온?”

“흠, 아가씨가 아까부터 계속 공격을 하는데 전혀 때리지 못하고 있네요. 홀랜드 쪽이 계속해서 공격을 흘려내고 있어요.”

다행이다. 역시 아라디온 눈에는 보이고 있었구나.

저런 무시무시한 싸움까지 전부 쫓아갈 정도라니. 이 녀석도 생각보다 강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까랑 다르게 충격파 같은 건 없는데?”

“아마 그게 기술의 차이일겁니다. 곰이랑 다르게 완전히 숙련된 기술이 충격파조차 남기지 않고 모든 힘을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는 걸로 보이네요.”

역시 설명충. 완벽하군. 보이진 않지만 꼭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설명이야.

몇 번이고 같은 시도를 해봤지만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완전히 검은 피부로 변해 버린 핀이 홀랜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마력!”

이건 나도 볼 수 있었다. 핀에게서 시작된 마력의 실이 홀랜드를 덮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홀랜드 주변에서 불꽃이 피어나며 그를 덮쳤다.

물리적인 공격은 막아낼 수 있다고 해도, 과연 마법까지 막을 수 있을까?

“하여간 마법사들이란…….”

그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평범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있다간 핀의 공격에 홀랜드는 절명(絶命)하고 말 것이다.

“어, 핀!”

이러다가 그대로 죽어버리는 거 아니야?

“곰.”

「걱정하지 마라. 형님은 엘프들의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곰이 말했다.

곰의 품에 뭔가 이상한 물건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아까 아라디온이 선물이랍시고 주운 돌이 있었다.

……너 그거 진짜로 키울 셈이냐.

“그러고 보니…… 엘프들도 이기지 못했다고?”

그 많은 엘프가 동시에 마법을 쓴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피할 구석이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나의 궁금증은 핀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곧바로 풀렸다.

“어떻게!?”

핀의 공격은 하나도 적중하지 못했다. 마치 닿아선 안 되는 신성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핀의 공격은 모두 홀랜드를 피해 근처로 떨어졌다.

홀랜드를 감싸고 있던 불꽃 역시 그가 다가가자 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한순간에 꺼졌다가, 그가 지나간 뒤에야 다시 불타올랐다.

“역시 마법도 그저 그렇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이익! 그럴 리가 없어!”

핀이 마구잡이로 마법을 쏟아냈다. 하늘에서 얼음이 떨어지고, 바람이 칼날처럼 변했으며 땅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홀랜드 주변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비껴나갈 뿐이었다.

“마법은 인위적인 힘. 자연스러운 흐름을 극대화 한다면 그 무엇도 닿지 못할 뿐이다.”

핀의 앞까지 다가간 홀랜드가 손가락을 세웠다.

그리고 핀이 피하기도 전에, 이마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체크메이트.”

그건 공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핀의 전의를 꺾기엔 충분했던 것 같다.

힘이 빠진 듯 변신이 풀리며 핀이 주저앉았다. 지금 일어난 상황을 믿기 힘든지 중얼거리며 그것을 부정했다.

“이럴 수가…… 내가 어떻게…….”

“너무 마법과 근력에만 의존한 탓이지.”

핀을 손가락 하나로 제압한 그의 모습에 나는 다윗과 골리앗의 일화가 떠올랐다.

거대한 키와 힘으로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거인 골리앗.

하지만 단순한 돌팔매질이라는 기술로 그런 거인을 쓰러트렸던 다윗은 모두가 평범하다고 여겼던 소년에 불과했다.

홀랜드 역시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거인처럼 강한 핀을 기술로서 쓰러트린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핀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일까. 홀랜드가 자리로 돌아가 술잔을 들으며 말했다.

“방금도 말했듯이, 너무 힘에만 의존했으니까. 강함이란 힘에만 의존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물론 내가 대단한 탓도 있지만.”

“하지만…….”

“하지만이 아니지. 아니, 하다못해 네 마법이 마제 녀석처럼 확실히 뛰어났으면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군. 하지만 마력만 강할 뿐, 제대로 된 마법이라 보기 어렵더군.”

그런가. 아버지의 마력을 이어받았지만, 마법은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핀이었다.

아버지의 마력 덕분에 마법의 위력이 강하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화력만 강할 뿐 그 운용 능력에 있어선 초보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었나.

“곰! 곰!”

「형님! 축하드립니다!」

“뭐라 하는진 모르겠지만 고맙다!”

언제 이동했는지 곰이 홀랜드 옆으로 돌아가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이 박쥐같은 녀석. 대체 언제 간 거냐.

“무엇보다 네 힘은 너무 인위적이야. 진정한 힘은 부드러움에서 나오는 법. 자연과 하나가 돼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갔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지.”

뭔가 무협지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말하는 홀랜드였지만, 결과를 방금 전에 확인했으니 뭐라 따질 수도 없었다.

“뭐, 나도 깨달은 지 얼마 안 됐지만. 숲에서 혼자 수련하면서 이 힘이 진짜로 통할지는 몰랐는데 말이지. 덕분에 확인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마제 녀석이랑 싸우면 항상 졌었는데, 그 녀석과 비슷한 화력의 마법을 쓰는 놈이랑 싸워 이기니 기분이 좋군. 다음에 만나면 이 방법을 한 번 써 봐야겠어.”

본인도 확신하지 못한 힘을, 죽을지도 모르면서 사용했단 말인가?

자연스러움이라. 내 뜻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게 곧 자연스러움 아니던가?

대체 핀의 무엇이 부족했다는 걸까.

“아무래도 자연과 동화된 것 같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봤던 사람 중에 저자와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던 사람이 있었죠. 검이든 창이든 활이든 모든 공격을 자연스럽게 흘려내며 회피하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대로 흘러가 상대를 제압하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엥? 진짜로? 대체 누군데?”

아라디온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신선이 되어 승천하셨어요. 더는 인간이 아니고, 다시는 볼 수 없으니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랄까요.”

“…….”

“응?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고?”

아라디온의 말을 듣고 홀랜드가 흥미를 보였다. 그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와 아라디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기야 저 엘프보다 당신이 더 강할 것 같은데. 어때? 나와 한판 붙어보는 게.”

“전 싸움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하하…….”

“흐음. 그래도 싸워보고 싶은데…….”

“곰.”

「형님. 더 드시죠.」

“됐다. 이렇게 좋은 곰도 만났고. 기분도 좋으니 오늘 하루는 술로 보내야겠다.”

곰에게 받은 술잔을 연신 비우며 호탕하게 웃는 홀랜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뭔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뭔가, 꼴 보기 싫다. 그가 천검이니 뭐니 해도 결국 이곳에선 외부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데 남의 집에 온 주제에 진창 술이나 퍼마시고 있고, 거기다가 핀을 저렇게 좌절하게 만들다니.

이 기분은 뭘까. 으으. 굉장히 불쾌한데?

……그렇군. 그런 기분이었어.

“위그드라실 님? 괜찮으신가요?”

“기분이 몹시 불쾌해.”

“으음. 역시 그렇죠.”

“꼭 친하지도 않은 친구가 와서 괜히 친한 척하면서 ‘너희 집에서 오늘 하룻밤 자고 가도 되냐?’라고 말하고선 승낙도 안했는데 마음대로 쳐들어와 놓곤 집에 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죄다 처먹고 이리저리 집을 뒤지고 다녀서 난장판으로 만들고, 잠은 내 침대에서 자는 바람에 나는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그놈만 쳐다보는 기분이야.”

“……굉장히 구체적이시군요.”

심기가 불편하니 나도 모르게 홀랜드를 노려보았다. 그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을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잠깐. 할 수 있잖아? 마법도 아닌, 초능력도 아닌 나만의 힘.

본체가 가까워서 그런 것일까. 얼마 전부터 이 상태로도 물건을 옮기거나 조종할 수 있던 그 힘이 점점 더 증폭되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크하하!”

“고호홈!”

그리고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곰 녀석의 히쭉거리는 얼굴에 주먹을 한 방 날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해도 문제없잖아?

“코호…… 콤!”

헤벌쭉 벌리며 술을 마시려던 곰의 턱주가리를 강제로 다물게 해버렸다.

예전과 달랐다. 확실히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힘이 더욱 강해져 있었다.

“고…… 고…….”

“곰, 넌 너무 까불었어.”

그대로 곰을 들어 저 멀리 숲으로 던져 버렸다. 날아가는 곰의 입이 풀리며 외마디 비명을 외쳤다.

“고오오옴!”

물론 아무 뜻도 없는 비명 그 자체니 해석할 필요도 없다.

“으잉? 꼬마야. 방금 그게 네가 한 거니?”

홀랜드는 기가 막히게 내가 한 짓이라는 걸 단숨에 눈치챘다. 멍하니 좌절에 빠져 있던 핀이 내 앞으로 쏜살같이 다가와 그를 가로 막았다.

“안 돼!”

“괜찮아. 핀.”

나는 핀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이 기분은 뭘까. 어쩐지 질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실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고.

“호오.”

홀랜드가 일어났다. 검은 들고 있었지만, 뽑지는 않았다.

그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재미있는 힘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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