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50화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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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술을 좋아하는 사나이(2)

전설의 세 모험가.

마제, 투제, 그리고 천검.

평생 살면서 한 번 볼까 말까 한 그런 연예인 같은 인물을, 벌써 두 명이나 만나게 될 줄이야.

세 명 중 두 명이니 66.66%의 모험가를 만난 것이지 않은가.

응? 잠깐. 두 명이 66.66%면 남은 한 사람을 더하면 99.99%잖아?

그럼 나머지 0.01%는 어디로 간 거지?

아무리 뒤로 늘려 봐도 한 사람당 33.33333…….

크윽.

문과라 죄송합니다.

어쨌든 그런 보기 힘든 자가 우리 숲에 찾아오다니. 그것도 핀을 만나기 위해!

그래도 전설적인 존재니까 나쁜 짓은 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생겨서 정체를 알기 전보단 마음이 편해졌다.

이것은 마치 연예인이 tv에서 보던 이미지만큼 욕도 안하고 생활도 바르게 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같다.

핀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투제란 자와 같은 등급의 강자잖아. 강자와 싸우고 싶어 하던 핀이라면 기뻐하지 않을까?

“흐응. 그 양반이랑 같은 그룹이라…….”

“잉?”

하지만 핀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방방 뛰며 ‘그래! 그럼 한 판 붙어 봅시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체를 알기 전에는 전투태세를 갖추더니, 이젠 심드렁한 표정으로 홀랜드를 깔보고 있었다.

“핀, 반응이 왜 그래.”

“투제라는 양반이랑 같은 그룹이라서요. 그 사람, 완전 치졸한 양반이었는데 그 양반이랑 비슷할 거라 생각하니 김이 빠지네요.”

“그놈을 아나?”

“알다마다요. 벌써 한바탕 싸워봤는걸요.”

“오오. 누가 이겼지?”

“…….”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졌나 보군? 이런. 그 녀석한테 지다니. 내 생각보다 약한걸?”

“지, 지다뇨! 진 건 아니에요! 비겼지만…….”

나는 핀과 투제의 싸움을 보지 못했지만, 비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한 거 아닌가? 그런데 핀은 그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꺼리는 모양이었다. 비겼으니 딱히 자랑할 거리가 아니란 뜻인가?

“후후. 미안하지만 그 정도론 나를 이기지 못해. 그 녀석은 세간에 알려진 우리 모험가 셋 중 최약체. 그놈은 팔다리만 달려 있어도 이길 수 있지. 완전 개 같은 녀석이거든.”

……저기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동료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쩐지! 싸우는 스타일이 너무 개 같더라니!”

“넌 또 뭘 맞장구 쳐주고 있어!”

“하지만 아빠, 아빠가 직접 보셨어야 돼요. 진짜 개처럼 싸운다니까요. 게다가 치사하게 마법까지 못 쓰게 이상한 사술까지 쓰고. 그것만 아니었어도 제가 이기는 거였는데…….”

“응? 그 녀석이 그것까지 썼단 말이야?”

홀랜드의 눈빛이 변했다. 한심하다는 눈빛에서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한순간 변하더니, 다시 검을 뽑고 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한 판 붙어 봐도 괜찮겠군. 그 녀석이 비장의 수까지 쓰다니. 그럼 적어도 육체 레벨은 그 녀석과 비슷하다는 뜻이잖아.”

“그게 대단한 일인가요?”

“당연하지. 나도 순수한 완력으론 그 녀석을 못 이기거든.”

핀이 바라보는 눈초리에 한층 더 한심하다는 마음이 담겼다. 눈빛이 말하길, ‘사천왕 최약체로 보이는 그 녀석보다 약하다는 거냐. 그럼 넌 한 번만 찔러도 죽겠군’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아빠, 이상한 상상하지 마세요.”

응? 들켰나?

“사천왕이 아니라 삼천왕이잖아요. 세 명이니까. 그런 세세한 부분에 디테일을 잡아줘야죠.”

그쪽이었냐!

그렇지. 사천왕이 아니라 삼천왕이지. 그래도 무슨 천왕이라고 하면 사천왕이 입에 잘 달라붙는단 말이야.

삼천왕은 멋이 없다고.

“뭐, 한 판 붙자고 한다면 거절하진 않을게요.”

“흐음, 그 눈빛. 마음에 안 드는군. 싸워보기 전엔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 못 하는 건가?”

“그 정돈 할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거구요.”

뭔가 천검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홀랜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도 한 번 홀랜드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핀이 그를 깔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홀랜드는 그냥 평범한 사람 정도의 마력만 가지고 있던 것이다.

보통 강한 자일수록 가진 바 마력의 양이 방대하거나, 그 질이 달랐다. 그것은 무투대회에서 선수들을 보며 더욱 확실해졌고, 투제라는 자는 가까이서 보지 못했기에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핀과 비긴 걸 보면 다르긴 달랐을 것이다.

“투제 양반이 치졸하긴 했지만 그 힘은 진짜였어요. 하지만 당신에겐 그런 특별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걸요.”

“설마 마력만으로 힘을 평가하고 있던 거냐? 흐음……. 생각보다 훨씬 초보였군.”

“그럼 아닌가요?”

내가 생각해도 핀의 말이 옳은 것 같다.

마력이란 절대적인 생명의 힘.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육체적으로 강해진다.

그래서 핀의 힘이 그렇게 강한 것이고, 빠르며, 다른 아이들 역시 보통의 동물들과 다르게 내구도(?)가 튼튼하지 않은가.

“하아, 싸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로군. 마력으로 모든 게 결정된다면 세계 최강은 무조건 마법사겠군.”

으음. 그의 말도 들어보니 옳은 것 같다.

하긴, 마력으로 모든 게 결정되면 세계 최강은 바로 나잖아?

“……아빠, 대체 누구 편이신 거예요.”

이런. 이놈의 팔랑귀.

하지만 너무 논리적이었는걸.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엘프나 아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마력의 양으로 그 강함이 결정되는 면이 없잖아 있으니까. 아무리 약해도 인간은 가뿐히 뛰어넘는 그 강함의 원천이 마력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어.”

“그럼 마력 외에 뭐가 필요한 거죠?”

“뭐긴 뭐야. 기술이지. 인간은 너희들처럼 마력이 미칠 듯이 많은 놈이 거의 드물거든.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런 놈들은 너희처럼 자만에 빠져 자기 단련에 소홀히 하게 마련이지.”

기술이라. 기술이라면 핀도 하나 배운 것이 있다.

바로 벨룸이 사용하던 결(缺)이라는 기술을 알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홀랜드는 그런 단순한 기술 한 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 좀 더 거시적인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가 기술이란 걸 보여주려고 검을 든 채 핀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누구도 그를 막으려 들지 않았다.

불어오는 바람을 그 누가 막으려 할까?

“바로 이렇게…….”

“곰!”

「잠깐!」

하지만 그 순간, 곰이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사이에 끼어든 곰이 팔을 뻗어 이제 막 시작되려던 사건을 강제로 중지시켰다.

“곰. 곰곰!”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 없다. 대장은 내가 상대해 주겠다!」

“……네가?”

“고홈홈홈. 곰. 곰.”

「형님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도 기술이란 걸 들었다. 대충 어떻게 쓰는진 이제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상대해 주겠다.」

“그 기술이란 거, 듣기만 해도 깨우칠 수 있는 거였냐…….”

“곰. 곰…….”

「보통은 불가능. 하지만…….」

곰이 자세를 잡았다. 평소에 보던 이상한 태극권의 자세였지만, 뭔가 전보다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곰. 곰.”

「나는 배웠다. 천재니까.」

……너 아직 사춘기 안 끝났었냐?

남자는 어른이 돼서도 동심을 마음 한구석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나.

“곰, 비켜.”

“곰!”

「형님께 가고 싶다면 나를 꺾고 가라!」

“그럼…….”

핀이 덤벼드는 곰의 머리를 옆으로 밀쳤다.

나는 그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다.

곰이 평범한 야생 곰보다야 강하다곤 하지만 핀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원하는 대로.”

핀의 힘에 의해서 옆으로 밀려나는 곰.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곰은 그 손아귀의 힘을 흘려내고 다시 핀 앞에 서 있었다.

“응? 너무 봐줬나?”

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곰의 명치를 강하게 후려쳤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이젠 핀에게 상대가 되지 않기에 태극권으로도 그 힘을 흘려낼 수 없으리라.

“곰. 곰!”

「안 통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술이다!」

단단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핀의 주먹이 멈췄다. 곰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는지 멀쩡하게 서 있었다.

곰의 등 뒤로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것이 핀의 주먹에 담겨 있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실력이 조금 늘어난 것뿐이잖아.”

번쩍하고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눈동자를 깜빡이는 순간, 서로 다른 시간대에 찍힌 사진처럼 핀의 모습이 말도 안 되는 위치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빠른 속도로 곰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노려서 공격을 하셨네요. 그 방법이라면 힘을 흘려보내고 싶어도 불가능하죠.”

“그런 거구나.”

빠르게 점멸하는 모습은 보여도 때리는 모습은 안보였는데, 뒤늦게 후폭풍이 불어 닥쳤다.

흙먼지를 실은 돌풍이 몰아쳐 곰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지 못한 채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곰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곰은 쓰러지지 않았다.

“뭐, 뭐야. 너 어떻게 한 거야?”

“코홈!”

「이것이 기술이다!」

곰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오히려 곰을 공격했던 핀의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가 나 있었고, 핀은 뒤로 쭉 밀려나며 바닥에 스크래치를 만들었다.

“으음. 제가 보기엔 아가씨가 한 공격을 모두 한데 모았다가 그대로 돌려주신 것 같네요. 그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일부분을 흘려낸 것이 폭풍이 되어 몰아친 거고, 아가씨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은 곰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으셨어요.”

……설명충이냐.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설명충이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이렇게 전부 알려주었으니.

“제가 갔던 곳에서 이런 걸 ‘자연체’라고 부르기도 했었죠. 인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몸을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고 상대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단계. 무공보다 더 윗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경지 중 하나였죠.”

“……너, 무협세계라도 다녀온 것처럼 말한다.”

“하하. 그냥 어쩌다 보니 들은 것뿐입니다.”

아라디온의 설명을 듣던 도중에 나는 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단순한 육체파 공격이 아닌, 마법을 사용할 거라는 신호였다.

곰 역시 예전처럼 핀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맞서 싸우기 위해 팔을 벌렸다.

팔을 벌리니까 영락없이 평범한 야생 곰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호오. 전투력이 올라가는군요.”

아까 한 말 취소.

아라디온 너, 무협세계가 아니라 지구에 다녀온 거지?

어떻게 그 대사를 알고 있냐.

“잠깐. 뒤로 물러서라.”

하지만 곰과 핀이 부딪히려는 순간, 홀랜드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곰과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마음은 통하는 것일까. 곰이 지금 벌이고 있는 짓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눈치였다.

“겨우 설명만으로 깨달은 건 대견하지만, 아직 마법까지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고옴…….”

「그래도…….」

“아서라, 그러다 다친다.”

그는 곰 대신 싸워주려는 걸까.

하지만 대신 싸우겠다는 사람이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가 도발하듯이 핀을 보며 말했다.

“뭐, 이 정도 실력이면 검 없이 맨손으로도 충분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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