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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숲으로의 귀향이 마치 명절의 기분이로구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레며 즐겁다.
명절 귀향길에 차 안에서 밖을 보면, 소똥이 섞인 밭이나 드문드문 보이는 산 어귀에 자리한 낡은 집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귀향길이라 그런지 그 때의 설렘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선물 못 샀는데 곰이 실망하려나.”
벌써부터 곰이 「곰!」거리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안 그래도 자기만 빠져서 상당히 실망한 모습이었는데 선물까지 못 사다니.
뭐, 그래도 그런 투덜거리는 모습조차 기쁘게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도착했네요.”
“드디어……!”
멀리서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핀에게 업혀서 가고 있던 나는 그대로 등에서 뛰어내린 뒤, 숲으로 달려갔다.
“스읍. 하아…… 그래. 바로 이거야.”
상쾌한 숲내음이 폐부를 가득 채우며 나를 한껏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도시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숲에서만 즐길 수 있는 전유물이다.
“으음…… 위그드라실 님이 그러시니까 뭔가 이상하군요.”
“왜?”
“그게, 위그드라실 님도 나무잖습니까. 나무가 나무 냄새를 그렇게 맡는다니…… 사람으로 따지자면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그 땀 냄새를 듬뿍…….”
“……더 이상 말하지 마. 분위기 깨지게.”
나무들의 땀 냄새……가 아니라 숲의 향기를 만끽한 뒤, 우리는 중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중심부는 꽤나 멀기 때문에 핀이 업어준다고 했지만, 나는 간만에 방문한 숲을 즐기기 위해 직접 걸어간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당연하지. 꼭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기분이야.”
“명절이 뭡니까?”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 특정한 날이 되면 고향으로 내려가는 풍습이야. 고향에 가서 평소에 보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나는 풍습이지.”
“좋은 풍습이군요. 만나지 못했던 친척들을 만나다니. 서로의 유대감을 다지기 딱 좋은 풍습 같습니다.”
아라디온의 반응을 보니 이세계에는 명절이란 풍습이 없나 보다.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 나는 명절 풍습에 대해 이것저것 아라디온에게 알려주었다.
“고향에 내려가면 우선 제사라는 걸 지내. 돌아가신 조상님들께 인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다 같이 모여 명절에만 먹는 특별한 음식들을 먹지. 어른들은 간만에 본 조카들에게 용돈도 주고.”
“그리고 또 뭘 하나요?”
“그리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아이들은 받은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
“그리고요?”
“끝이야. 원래 명절이란 건 어른들의 잔치거든. 아이들은 간만에 만나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덕담 몇 마디 듣고 용돈을 받는 게 대부분의 목적이지.”
아쉽게도 어른의 명절(?)에 대해서는 설명해 줄 수 없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 명절에 가본 적이 없으니,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다.
아이들의 명절은 방금 한 말이 진실이니까 딱히 수정할 게 없다.
아니, 설마 나만 그랬나? 명절은 원래 용돈 받으러 가는 날이잖아!?
아니야? 응? 아니라고? 나만 나쁜 놈이었나? 솔직하게 말해!
아이들의 명절에 대한 건 뭔가 창피하게 느껴졌으므로, 그나마 내가 곁에서 본 어른들의 명절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어른들은 그렇게 만나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몸은 괜찮은지, 요즘 잘 지내는지…… 그냥 사소한 이야기를 나눠. 그리고 어른들의 명절은 저녁에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저녁에 뭔가 다른 일을 하나요?”
“응. 어른의 명절은 저녁에 술판이 벌어지거든. 아주 그냥 술 냄새가 집안에 지독하게 퍼져서 코가 아플 지경이라니까.”
뭐, 이것도 집집마다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 집은 그랬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다리가 뻐근해졌다. 역시 이 몸으로 오래 걷는 건 무리라니까.
“핀. 업어주지 않을래? 다리가 아프네.”
“알았어요.”
나는 핀에게 부탁해 등에 업혔다. 걸어서 갔으면 중심부까지 며칠이나 걸렸을 테지만, 핀에게 업혀 가니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는 것이 금방 도착할 것 같다.
그런데 점점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빠. 이상한 냄새가 나요.”
“그러게.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어디선가 많이 맡아본 냄새였다.
냄새는 기억을 되살린다고 했던가. 정체불명의 냄새를 맡다보니 뭔가 예전 기억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그 기억은 확실하게 명확한 형태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단편적인 정보들이 떠오르며 윤곽을 나타내었다.
‘초록색…… 조그만 잔…… 역겨운 맛…… 병원 냄새…….’
“아니 잠깐. 설마!”
퍼즐조각이 하나씩 짜 맞춰지며 한 가지 연상되는 물건이 떠올랐다.
성인이 되면 ‘꼭 친구들이랑 먹어봐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방구석 폐인이 되면서 먹어보지 못했던 물건.
딱 한 번 혼자서 먹어본 적이 있지만 도저히 내 입맛엔 맞지 않았던 그 음식.
“핀! 빨리 가자! 무언가 일이 벌어진 것 같아!”
핀을 보채서 빠른 속도로 숲 중심부를 향했다.
“이게 대체…….”
“으으…….”
그리고 우리는 볼 수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엘프들을.
“다들 무슨 일이오!”
필로우가 재빨리 엘프들에게 달려가 물었지만, 하나같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이마를 잡으며 두통에 저항하고 있었다.
“이건 그거군요.”
“아라디온. 너도 알아?”
“예. 당연히 알다마다요. 제가 갔던 곳에서 자주 먹여서 잊고 싶어도 잊질 못하는걸요.”
아라디온이 이를 갈며 쓰러진 엘프들을 보았다.
역시 세상 경험이 많다보니 이런 것도 알고 있구나.
멀쩡한 사람도 개로 만드는 신비의 물약.
건강하던 사람도 순식간에 쓰러트리는 무적의 물약.
먹고 나면 몸이 고통스럽지만, 자꾸 찾게 되는 중독성 있는 물약.
“으. 술 냄새.”
바로 술이었다.
얼마나 독한 술을 마신 걸까. 지독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찌나 독하던지 냄새만으로 나까지 취할 것만 같았다.
나는 쓰러져 있던 엘프들의 면면을 확인하던 도중, 기억에 남는 엘프를 발견했다.
“레벤토?”
세기말 폭주족처럼 행동하는 엘프들 중에 가장 정상적이고 일반인처럼 보였던 레벤토가, 입가에 토사물을 묻힌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엘프의 토사물은 고기만 먹어서 그런지 짙은 갈색에 무척이나 지독한 냄새가…….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숙취에 통하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레벤토를 내 마력으로 치료해 보았다.
다행히 숙취도 병의 일종인 것일까. 아니면 알코올 해독능력을 늘려준 것일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레벤토의 흙빛 얼굴이 점차 혈색을 띠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으…… 위, 위그드라실 님?”
“정신이 좀 들어?”
정신을 차린 레벤토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두통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는지, 연신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회복에 전념했다.
“아…… 역시 다들 쓰러져 있군요.”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게…….”
레벤토가 우리가 떠난 뒤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처음 며칠간은 숲은 평화로웠다.
딱히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었고, 찾아온다 하더라도 엘프인 그들이 먼저 나서서 숲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모험가들을 쫓아내었다고 했다.
“잠깐. 모험가들이 찾아왔어?”
지금까지 모험가라곤 딱 한 번밖에 찾아온 적이 없었기에, 나는 말을 끊고 물었다.
레벤토는 두통이 거의 가셨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이 숲을 찾아올 때부터 이미 숲이 정화되었단 소문은 퍼지고 있었으니까요. 광룡, 핀 아가씨가 있다는 걸 알지만, 원래 모험가들이란 위험한 장소일수록 돈이 되는 물건이 있다고 믿는 족속들이라 몇 번 찾아왔었습니다.”
“흠.”
딱히 돈 될 만한 물건은 없는데.
이게 게임도 아니고. 보스가 강하면 강할수록 비싸고 좋은 아이템을 떨구는 것도 아니잖아.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쉽게 쫓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아이들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지내고 있던 며칠 전.
한 남자가 갑작스럽게 숲에 쳐들어왔다.
“그는 강했습니다. 저희 모두가 덤벼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였죠.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저희 모두 죽은 목숨이었겠지만, 다행히도 그는 저희를 죽일 생각은 없던 것 같습니다.”
“으음…….”
꽤나 고생했구나.
근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점이 있었다.
“그거랑 너희가 술을 먹고 뻗은 거랑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데?”
“아쉽게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 자가 여기 눌러 앉았거든요.”
레벤토가 그자의 얼굴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치가 떨리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레벤토가 이토록 두려워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이곳에 살면서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역시 그를 감시는 하되, 서로 부딪히는 일 없이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죠.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건 알지만, 그것이 저희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어젯밤. 일이 터진 겁니다. 그는 심심하다며 주머니에서 술을 꺼냈습니다. 마법물품이었는지 술병이 끝없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그걸 저희에게 먹였습니다.”
“……그게 끝이야?”
아니, 술 좀 먹었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엘프들은 전부 술이 약한가?
“어쩐지 모두 뻗어있더라니. 엘프용 술이 아니었던 거군요.”
“엘프용 술? 그런 것도 있어?”
“예. 엘프용으로 만들어진, 순수한 물과 마법만으로 만들어진 술이 따로 팔고 있습니다. 아마 다들 평범한 술을 마셔서 이 지경이 된 것 같네요.”
“아!”
아라디온의 말뜻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술의 주원료를 우리는 알코올이라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술을 발효시키며 나온 부산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발효시켜 술을 만드는가.
“크윽! 아직도 입 안에서 감도는 것 같습니다…… 술의…… 곡식의 향기가…….”
바로 쌀이나 수수, 보리 같은 곡물이다.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쌀로 술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 또는 과일로 술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술은 결국 곡식, 그러니까 식물로 만들어지고 여기 있는 엘프들은 극단적 육식주의자들이니까…….
“우웩!”
레벤토가 헛구역질을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몸은 멀쩡했지만 어젯밤을 떠올리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어쩐지 숙취 따위로 뻗을 엘프들이 아닌데. 죄다 숙취가 아닌 정신공격에 당한 것인가.
“다들 고생이네.”
침입자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호적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이거, 상당히 위험했잖아. 여행나간 상태로 본체가 썽둥 잘려서 비명횡사할 뻔했네.
“그런데 곰은 어디 있지?”
곰이라면 술을 마셔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레벤토가 말한 침입자 역시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혹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코호홈!”
「술이 술술 넘어간다!」
그때였다. 먼 발치에서 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개그. 내가 분명 저번에 루카스 왕국에서 생각했던 개그 같은데.
제기랄. 나랑 곰이랑 수준이 똑같단 말이야?
핀과 함께 나는 곰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으하하! 뭐라 하는진 모르겠지만 왠지 웃기는군. 이렇게 술을 잘 마시는 곰이 있다니!”
그리고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곰…… 뭐하냐?”
곰과 함께 술을 마시는 남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