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42화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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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위그드라실과 비밀의 방(2)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위로도, 옆으로도 넓어서 동굴이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본 적이 있으니,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응? 샤일록. 말이 없구나. 놀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광룡이 살던 미궁이라는 말에 겁먹은 게 아닐까요?”

“이런. 샤일록. 너무 무서워하지 마렴. 이 엄마가 있잖니?”

세렌과 도리스가 깔깔 웃으며 나를 놀렸다. 미궁에 들어온 후로 내가 말이 없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무서워서가 아니다.

아버지의 기억은, 아버지가 오래지내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한 일일수록 더욱 상세하게 내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미궁이라는 곳은 아버지가 처음 탈출한 뒤에 자리 잡은 집이라 그런지 기억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물려받은 나는, 지금 미궁을 들어가면서 기억과 지금 상태를 비교하며 미궁을 즐기고 있었다.

역시 천 년이라는 시간은 길었는지, 미궁은 아버지의 기억과 달라진 점이 많았다.

우선 지금 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을 맞이해주는 접객원들이 앉아 있는 석판이 그렇다.

돌로 된 네모난 석판에 식탁보를 펼치고 거기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해주는 그들은, 그 석판이 원래 무슨 용도로 사용됐는지 모르고 있었다.

‘끄아악! 이, 이게 뭐야!’

기억 속에서 미궁에 들어온 모험가들이 저 석판에서 튀어나온 이상한 촉수(?)에 붙잡혀, 석판 위에 강제로 눕혀진 그들은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었지.

그런 함정이 이제는 사람들을 위한 접객용 책상이 되다니.

응? 촉수인데 다른 짓은 안 했냐고?

……글쎄. 그건 상상에 맡기겠다.

“어서 오십시오.”

그리고 지금 연회장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해 준 접객원이 린셀의 코트를 받아 옆 방에 있는 우둘투둘한 가시에 걸어두었다.

그 방 역시 원래는 함정이었다. 미궁을 탐사하다 그 방에 들어가는 순간, 양 쪽 벽이 천천히 좁혀들면서 들어온 모험가를 끔살시키는, 아주 끔찍한 함정의 도구였다.

이 함정 역시 이제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작동을 중지하였고, 안에 달려 있던 가시들은 대부분 부서지고 노화돼, 남아 있는 가시들이 옷걸이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곳이 오늘 연회장이란다.”

린셀이 내게 연회장을 소개시켜 주었다.

안에는 미리 준비된 식탁과 의자들이 즐비해 있었고, 서서 즐길 수 있도록 뷔페식으로 음식이 진열되어 있었다.

바닥은 미궁 아래에 깔아둔 카펫이 있었기에 동굴이 아닌, 멋진 무도회장처럼 보였다.

“여기가 연회장…….”

하지만 내 눈엔 도저히 연회장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기억이 겹치면서, 과거에 이 방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지금 연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방은, 미궁에서 아버지가 머물던 방 다음으로 거대한 방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로 일어났던 일들은, 아버지가 모아 놓은 몬스터들이 모험가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나름 강자들만 만나주겠다는 아버지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있던 몬스터들은 그 수준이 장난 아니게 높았으며, 그 수준만큼 생긴 것도 매우 끔찍했다.

그리고 아주 난폭했다.

“으음…….”

“어머. 괜찮니?”

나도 모르게 현기증이 나서 비틀거렸다. 기억이 영상처럼 펼쳐지며, 모험가들의 사지가 찢겨지는 환상이 연회장에 겹쳐 보였다.

세렌이 비틀거리는 나를 붙잡고 접객원들을 불렀다. 연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런 모습이니, 충분히 쉬게 하고 싶었는지 휴식할 만한 장소를 물어보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쉴만한 장소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쉴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나보다.

……잠깐. 여기 미궁이잖아? 내 기억으론 딱히 쉴만한 장소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좋네요. 쉬기 편해 보여요.”

접객원이 데리고 간 장소는 작은 창고 같은 방이었다.

안 쪽을 잘 꾸며놓아 이곳 역시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의 좋은 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머. 근데 이건 뭐죠?”

“처음 미궁을 발견했을 때 이곳에 있던 석상들 중 일부입니다. 너무 많아서 대부분 폐기했지만, 몇 개는 아직 장식용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세렌은 에반슈트 가문의 사람이지만 미궁에 대해 잘 모르는지 접객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세렌 마님. 연회 준비에 대해 상담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 샤일록. 여기서 쉬고 있어.”

접객원이 세렌을 부르자 그녀가 내 이마를 쓰다듬어 준 뒤 밖으로 나갔다.

그녀와 함께 도리스도, 린셀도 함께 나갔기에 방 안에는 나만 남아 있었다.

‘정말 린셀은 꼭두각시인가?’

연회 준비라면, 당연히 에반슈트 가문의 가주인 린셀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근데 세렌에게 물어보다니. 역시 실권은 전부 세렌이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

복잡한 생각을 하기엔 아직 현기증이 가시지 않았으므로,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몸을 안정시켰다.

단순히 지독한 환영을 봐서 이런 꼴이 된 건 아니었다. 지난 삼 일 동안 에반슈트 가문에서 억지로 음식을 먹은 후유증도 겹친 것 같다.

눈치가 보여서 안 먹을 수는 없잖아. 지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땐, 맛없는 음식은 몰래 주머니에 넣어서 집에 가는 길에 버리기라도 했지만, 여기선 보는 눈이 많아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침대에 누워 쉬다보니 몸도 마음도 괜찮아졌다.

여유가 생기니 나는 이곳이 어떤 방인지 떠올려 보았다.

‘잠깐. 석상이라고?’

고개를 돌리자, 세렌이 말한 석상이 한 눈에 보였다. 사람을 정교하게 조각해 둔 석상이었는데, 진짜 사람처럼 생겨서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난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이 방이…….”

미궁에 있는 몬스터 중에, 사람을 석화시키는 몬스터가 있었지 아마?

잠깐. 아까 석상 몇 개만 남기고 폐기했다고 하던데…….

“아. 현기증…….”

나는 다시 침대에 쓰러져 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미궁에서 나는 인류가 아버지를 광룡이라 부른 이유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 *

“샤일록. 준비는 끝났니?”

충분히 쉴 만큼 쉬었다. 나는 밖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에 침대에서 일어난 지 오래였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누워 있을 만큼 나는 담이 큰 녀석이 아니다.

“네. 전부 끝났어요.”

준비라고 해봐야 사람들 앞에서 ‘이번 연회에 참석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멘트 하나 읊는 게 전부였다.

그 외엔 연회에 참석해 다른 귀족들과 안면을 나누는 게 이번 연회의 목적이었다.

『저희 에반슈트 가문의 연회에 참석해 주신 귀족 여러분들.』

밖에선 벌써 린셀이 연회 개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의 인사가 끝나면, 내가 나가 방금 말했던 멘트를 날려주면 이번 연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자. 그럼 이리 오렴. 이제 곧 아빠의 인사가 끝날 거야. 그럼 이제 네 차례란다.”

세렌을 따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수많은 귀족들이 보였다.

나는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강당이나 운동장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던 그 때가 말이다.

그때는 내가 그 학생들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교장선생님이 되어 그 많은 학생들 앞에 선 기분이다.

“많네요.”

목소리가 떨린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내 안의 쭈구리 속성이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다.

내게 관심이라도 없다면 모를까, 벌써부터 귀족들의 시선은 린셀이 아닌 내게 쏠려 있었다.

『자. 그럼 오늘, 우리 가문의 새로운 후계자를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린셀이 나를 힐끗 보더니, 자신의 인사를 끝내고 마이크처럼 생긴 도구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사람들 앞에 섰다. 손이 떨려서 당장 이 마이크 같은 걸 집어 던지고 싶었다.

‘참자. 그냥 한마디만 하면 돼. 긴 것도 아니잖아.’

『이뻔…….』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혀 짧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귀족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지금 한 행동을 귀엽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후계자라는 녀석이 바보 같은 짓을 해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시 목을 가다듬고, 주먹이 힘을 꽉 쥐며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샤일록 에반슈트라고 합니다. 이번 연회에 참석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숙이며 마이크를 다시 린셀에게 넘겨주었다. 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게 끝이야?’라고 속닥거렸다.

그러게. 너무 짧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세렌이 그렇게 하라는 데 어쩌겠어.

으. 쪽팔려.

인사가 끝나고 뒤로 물러나자, 린셀이 연회 축사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봄으로서 그 시선을 무마했다.

솔직히, 그 이후로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든 것처럼 창피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의 의식은 귀족들의 박수소리가 시작되면서 간신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끝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없다. 고작 이 순간을 위해서 3일 동안 고생한 것이란 말인가.

어차피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고, 친한 사람도 없으니 이대로 끝났으면 좋겠다.

“그럼 이제 사람들을 만나봐야지?”

까먹고 있었다. 귀족들과 인사할 시간이구나.

세렌이 내 손을 잡고 귀족들의 바다로 들어갔다. 나는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면서 익사할 것만 같았다.

부디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 * *

“헉, 헉. 너무 힘들어.”

지독한 시간이었다. 나는 석상이 있는 방에 들어와 그곳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였다.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만나도 끝이 없었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오늘 한 자기소개만 하더라도 앞으로 평생 할 자기소개를 몰아서 했을 거다.

“하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온몸이 지친다. 영혼까지 잠들고 싶은 게 지금 내 심정이다.

저택이 아니라, 내 고향 숲으로 돌아가고 싶다.

곰이 해주던 개그조차 그리울 정도다.

“자고 싶다…….”

졸립다. 근데 몸이 너무 피곤하니 잠도 안 온다.

이럴 때 술이라도 마신다면 잠이 잘 오지 않을까?

‘술이 술술 넘어간다.’

……곰을 떠올렸더니 나도 모르게 이상한 개그를 해버렸다.

이대로 쉬면서 연회가 끝나기를 기다리자.

“으으. 물이나 한 잔 마시고 쉬어야지.”

하도 똑같은 말을 계속했더니 입이 바짝 말라 갈라지는 것 같아서, 나는 물을 마시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그 순간, 현기증이 몰아닥쳐 나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기울었다.

간신히 벽을 손으로 짚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드르륵.

“응?”

근데 내가 짚은 벽이, 내 손바닥 크기만큼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마력이 내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뭐, 뭐야!?”

동시에 주변이 어두워지며, 나는 갑작스레 바뀐 변화에 당황하며 뒤로 넘어져 버렸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처음 보면서도 낯설지 않은 장소에 와 있었다.

“여긴……!?”

나는 처음 보는 장소.

하지만 아버지가 준 기억 속에서 지겹도록 보아왔던 장소.

“아버지가 있던 방?”

바로 미궁의 최하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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