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41화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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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위그드라실과 비밀의 방(1)

땅거미가 스멀스멀 기어올라 땅을 적시고 있는 늦은 오후.

나는 마차를 타고 연회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제가 지나고 마침내 연회가 시작되는 날을 맞이하고만 것이다.

출발은 비록 초저녁이지만, 바쁜 하루를 보냈기에 나는 벌써부터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나를 깨운 하녀와 하인들은 내 몸을 씻겨주기 위해 발 벗고 노력했다. 나는 마치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그들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저항?

저항은 무의미했다. 내가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보다, 나를 씻기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가 더욱 강했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몸치장하는데 보내자 나는 내가 생각해도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완벽해!”

메르엔이 나타나 나의 모습을 보고는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태어날 때부터 ‘나는 귀족이다.’라는 소리를 외치며 태어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오후 시간이라고 내가 쉴 틈은 없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메르엔이 그간의 교육 성과를 재차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거기에 더해 오늘 연회에 참석할 귀족들의 이름을 제대로 외웠는지도 확인했다.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달달 외우려니 참으로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초저녁이 다가왔다. 핀과 아라디온, 필로우를 잠시 만나러 간 나는, 아이들이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은 에반슈트 가문에서 비밀로 해두고 싶은 모양이다.

“걱정 마세요. 아빠. 아빠가 다녀오시기 전에 꼭 찾아낼 테니까.”

다행히 아이들은 풀죽어 있지 않았다. 대신에 내일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이번에야 말로 용사의 무기를 찾아내겠다고 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아쉽게도 기대는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물건을 오늘이라고 찾을 수 있을까.

이러다가 찾지도 못하고 그냥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연회장으로 향하는 마차에 린셀, 세렌과 함께 동승하고 있었다.

“끄응.”

전생에선 본 적도, 이곳에 와서도 아직 입어보지 못한 세련된 옷을 입고 마차에 앉아 있으니,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매끄러운 옷 때문에 엉덩이가 자꾸 미끄러져 상당히 불편했다.

“어디 불편한 곳 있니?”

“아뇨. 괜찮아요.”

그렇다고 그걸 말할 용기는 없었기에,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연회장에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만을 빌었다.

“…….”

자리는 상당히 어색했다. 린셀과 세렌은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을 뿐이었고,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세렌과 린셀은 정말 부부가 맞는 것인지, 내 맞은편에 다정하게 앉아있었다.

하지만 정말 사이가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거의 없었다. 나는 사이가 좋아서 서로 손을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 생각했지만, 세렌은 딱히 린셀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도리스. 이 옷 어때?”

“어울리십니다. 마님. 반지도 예쁘시네요.”

“그렇지? 아. 기대된다.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까?”

“못해도 백 명은 모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함께 동승한 도리스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린셀은 공허한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만 보고 있었고, 나는 린셀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게 처음 분수대에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던 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꼭 로베르토가 말한 대로 꼭두각시 같은 모습이잖아.

“그렇지? 아. 기대된다.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네.”

세렌도 딱히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토록 내 자식이라며 챙기던 모습은 어디가고, 이제는 하녀장인 도리스와 이야기 나누기 바빴다.

‘불여우.’

또다시 로베르토가 한 말이 떠올랐다. 같은 가문 출신에, 막냇동생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세렌에 대해 불여우라는 악평을 남겼었다.

보통 늦둥이는 나이 차이가 심해서 자기 딸처럼 소중하게 보살펴 주지 않던가? 아니면 그 정마저 끊어버릴 정도로 세렌이 불여우인 걸까?

그러고 보니 어젯밤 세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고 있는 내방에 들어와 나를 보고 웃고 있던 그녀의 모습은, 일을 끝마치고 성취감에 도취되어 기뻐하는 노동자처럼 보였다.

연회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 지금 도리스와 떠들며 반지와 목걸이를 자랑하는 그녀를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허영심에 가득 찬 여자 같기는 한데…… 씀씀이가 헤픈 걸까? 불여우라 불릴 만큼 사치가 심한가?

덜컹이는 마차 안에서 두 여인의 수다만이 들려왔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용사의 무기에 생각이 뻗쳐, 분위기도 전환할 겸 린셀에게 말을 걸었다.

뭐라 불러야 할까? 역시 아버지라 불러야겠지?

“저기…… 아버지?”

린셀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두 여인은 잠시 내 쪽을 바라봤지만, 이내 옷 이야기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고, 린셀이 나를 보며 방그레 웃어주었다.

“왜 그러니?”

“우리 가문이 용사의 가문이라는데 진짜인가요?”

“오. 공부를 많이 했구나. 그래. 우리 에반슈트 가문은 용사의 후손이란다.”

조금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 하는 린셀. 나는 이제 좀 그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리 가문의 선조께서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셨지. 그리고 정말로 세계를 구하셨고, 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욕심이 없으셨기에 지금의 가문에 만족하셨단다.”

“그렇군요.”

다른 용사의 후손인 비루스 국왕은 왕이 된 걸보면, 아마 그 쪽 용사는 세계를 구하고 나라를 세운 거겠지.

충분히 이해된다. 세계를 구한 용사니까 모두 그의 아래로 모일테고, 그렇게 세력이 부풀어 나라를 세운다.

혼자 살고 있던 벨룸이나, 에반슈트 가문이 특이한 케이스이려나.

“그리고…….”

그 후로 이야기하는 린셀의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이 벌써 알고 있는 역대 가주들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힘썼는지에 대한 자랑이었고, 이 이야기는 나도 그런 훌륭한 가주가 되어야 한다는 덕담으로 끝났다.

“저기, 용사들은 세계수님에게 무기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나는 시작된 이야기가 다시 차갑게 식기 전에 린셀에게 용사의 무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린셀의 눈동자가 처음 내가 말을 걸었을 때만큼이나 커졌다.

“그건 어디서 들었니?”

“책에서 봤어요.”

“흐음.”

사실은 그냥 알고 있는 거지만.

잠시 신음하던 린셀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아주 익숙한 물건이었다.

내가 맨 처음 가지고 있었던 그 물건. 나를 이곳으로 흘러들게 만든 열쇠.

“이건……!?”

“그래. 네가 가져왔던 그 단검이란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다시금 단검을 손에 쥐었다.

이걸 지금 내게 보여줬다는 것은, 대화의 흐름상 파악해 보자면…….

“그 단검은 우리 가문의 유일한 가보란다. 아주 소중한 물건이지. 어떠니? 아, 원래 가지고 다녔던 물건이니 별 감흥이 없겠구나.”

“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단검에선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마력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 마력은 평범한 마력으로서 에반슈트 가문의 핏줄을 검사하는 유전자 측정 마법(?)일 뿐이었고, 어머니의, 세계수의 마력은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용사의 무기인가요?”

린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가 내게 장난을 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지만, 그의 성격상 이런 일로 내게 장난을 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용사의 무기는 세계수님이 만들어줬다고 들었는데. 이건 나무가 아니라 철이잖아요.”

“원래는 나무 손잡이로 만들어져 있었지. 나중에 손잡이가 썩을까봐 그 위에 철을 덧씌운 거란다.”

아니, 세계수가 썩을 리 없잖아!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딱히 싸울 일이 없는 세상이 그 뒤로 펼쳐졌으니, 무기를 쓴 적도 없을 테고 그럼 이 무기의 특성을 잊을 수도 있겠지.

에반슈트 가문의 역사를 읽어본 나는 이들이 거의 정치적인 활동만 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무기를 쓸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나는 몇 번이나 단검을 확인해 봤지만, 확인하면 할수록 세계수의 마력이 단검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만 확실해졌다.

확인이 끝난 나는 여러 가지 의문을 안은 채, 단검을 다시 린셀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마력 한 톨 남아 있지 않아 내가 이곳에 얌전히 잠입한 이유가 사라져 버렸기에, 전신에 힘이 쭉 빠졌다.

린셀은 내가 내민 단검을 받지 않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잠시 후, 린셀이 내 손에 자기 손을 겹치며 단검과 함께 꼭 쥐었다.

따뜻한 그의 손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 단검은 이제 네가 가지고 있으렴.”

“네? 하지만 가보라고 하셨잖아요.”

“언제고 너도 가주가 될 테니, 미리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은이보다는 미래의 새싹이 가지고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단다.”

죽는다니. 죽음을 쉽게 입에 담는 린셀의 모습이 불안해서 그의 제안을 거부하려 했지만, 나는 마차가 멈추며 문이 열리는 바람에 그 행동을 실행할 수 없었다.

“자. 도착했구나.”

“여기가 어디죠?”

린셀의 손을 잡으며 마차에서 내린 나는 주변 경치를 살펴보았다.

주변은 온통 산이었지만, 대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고 한 동굴로 보이는 입구가 눈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동굴은 야생에 버려진 그런 동굴이 아니었다. 근처에 가로등처럼 생긴 불빛을 내는 도구들이 심어져 입구를 밝히고 있었으며, 안쪽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휘황찬란한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문이 열러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시 그 단검에 새겨진 문양, 기억나니?”

“네.”

물론 기억하고 있다마다. 용이 그려진 문양이 상당히 인상적이어서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손가락으로 문양이 있는 부분을 문지르며 그 감촉을 느끼고 있다.

“그 용이 바로 광룡이란다. 예전에 마왕이 나타나기 전부터 세상을 괴롭혔던 악독한 괴물이지.”

“아하하하…….”

동조하지 말자. 동조하면 패드립이잖아. 아버지가 한 짓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로서 마지막 예의는 지키자고.

“그 광룡을 무찌른 게 바로 초대 선조님이시지. 그래서 광룡을 그 검에 새겨 넣었단다.”

“아, 그런가…… 요?!”

그런 내용은 역사서에서 본 적이 없는데?

너무 두꺼워서 대충 읽은 나머지 못 본건가?

“후후. 놀라는구나. 딱히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아니란다. 소문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올 뿐이지. 하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알고 있으니 진실이라 해도 되겠지.”

그런 거였나.

천 년이라는 세월이, 그리고 용사의 후손이라는 명성이, 이 땅에 살고 계셨던 아버지의 실종이 겹치고 겹쳐서 그런 소문을 만들어 낸 건가?

나는 그럼 아버지를 살해한 가문의 후손으로 들어간 패륜아가 되는 것인가!?

마음이 복잡해진 그때, 린셀이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가 입을 열기 직전, 갑자기 번개처럼 루카스 왕국에 왔던 또 하나의 목적이 생각났다.

위치를 물은 내게 아버지, 광룡의 이야기를 꺼낸 린셀.

그리고 내가 루카스 왕국에 온 또 하나의 목적.

두 가지가 합쳐지면…….

“여기가 바로 광룡이 살던 미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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