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39화 (13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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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창고 속 보물의 내용

책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재빨리 방으로 돌아간 필로우가 창문을 열었다.

“아. 돌아오셨나요?”

“임무는 완수했소이다.”

필로우가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방문이 찰칵 소리를 내며 완전히 닫혔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필로우가 아라디온에게 물었다.

“누군가 왔다 간 것이오?”

“아. 잠깐 하녀가 들렀다 갔어요. 둘러 대느라 힘들었네요. 하하…….”

아라디온이 태연한 표정으로 설명했지만, 평소와 다르게 말이 살짝 흐렸다.

필로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에 아라디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렇소이까? 다행이구려. 당신 말대로 누군가 남아 있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소이다.”

“아. 그게 용사의 무기…… 인가요?”

필로우가 가져온 책을 보고 아라디온이 물었다. 무기라고 하기에는 어딜 보나 평범한 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단단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것처럼 표지가 딱딱해보였고, 온통 검은색으로 칠한 것처럼 새까맣다는 것이었다.

“소인도 잘 모르겠소이다. 아씨가 돌아오시면 한 번 살펴봐야 겠소이다.”

그렇게 필로우의 말을 듣고 아라디온과 필로우가 핀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도중에도 아라디온은 뭔가 필로우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는지 입술을 달싹였지만, 필로우는 책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잠시 후, 창문이 열리고 핀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휴우. 이것도 나름 재미있네. 나중엔 뤼팽으로 해봐야겠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런 게 있어. 엄청난 대도(大盜)가. 그나저나 가져온 건 어디있어?”

“여기 있소이다.”

필로우가 가리킨 곳은 책상 위였다. 책상 위에는 책 한권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기에 핀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건을 찾았다.

“어디?”

“……이 책이올시다.”

“엥!?”

핀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책상으로 다가가 책을 집었다.

그제야 핀은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그리운 마력의 향기가 풍기고 있다는 사실을.

“이건…….”

멀리서 느꼈을 땐 알 수 없었지만, 직접 만지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용사의 무기가 아니었다.

……물론 겉보기에도 무기랑은 거리가 멀었지만.

“할아버지?”

책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세계수의 마력이 아닌, 광룡의 마력이었다.

핀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번뜩였다. 자신이 느꼈던 마력이, 위그드라실에게 익숙해져 있던 나머지 광룡의 마력을 세계수의 마력의 일부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용사의 무기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쓴 책이었구나.”

핀이 예전에 보았던 벨루스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벨루스가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가까운 도시로 날아가 자신이 직접 쓴 위대한 책을 전해줬었다는 기억이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나름 기대를 하며 구해온 물건이, 자신들이 찾던 물건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그녀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빠가 실망하시겠네.”

“확실히 주공께서 실망하실 지도 모르겠소이다.”

귀족에 대한 공부로 상당히 고생하고 있는 위그드라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녀들은 임무에 실패했다는 것에 조금 자책을 느꼈다.

핀이 아직 기간은 남아 있었기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운을 차렸다.

대신에 행복회를 작동하여 이번에 찾은 물건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빠가 좋아하실 거야. 갑옷을 얻지 못했다고 꽤나 실망하셨잖아. 이거라도 어디야.”

“그런데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 거죠?”

벨루스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아라디온이 물었다. 광룡이 위그드라실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엘퀴라즈 숲에서 위그드라실이 직접 말해줘서 알고 있었지만, 그 기억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으음. 내가 알기로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위대한…… 이야기를 적어두셨다고 들었는데.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가까운 나라의 왕에게 준 걸로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왜 여기에?”

“글쎄. 그 때 사람들의 반응으로 봐선, 아마 저주받은 아이템 취급을 한 게 아닐까? 본 사람들이 미쳐 버렸다고 했으니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책…….”

그 사실을 깨달은 핀과 다른 아이들이 책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희대의 광룡이자 지금의 핀을 마법의 대가로 만든 광룡의 물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저주를 걸어두었다고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아빠한테 보여줬다가 미치시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미 충분히 미쳐 가고 계셨소이다.”

마지막으로 위그드라실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보고 왔던 필로우가 말했다.

위그드라실은 잠꼬대로 ‘으으. 안 돼!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라니!’라며 이상한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가 먼저 살펴보는 편이 낫겠지?”

조용한 방 안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누가 삼킨 것인지는 몰라도, 안에 있는 셋은 아무 말 없이 책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들 말이 없네. 동의한 거다?”

“조, 조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소이다!”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겠지. 설마 할아버지가 만든 물건인데 우리까지 이상한 일이 생길라고.”

다른 두 사람이 걱정을 표했지만,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핀이 책을 펼쳤다. 책의 두꺼운 하드커버를 넘기자 바로 본론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몸이 세상에 태어났다. 태어나면서 이 몸이 울부짓자 다른 용들이 두려움에 떠렀다.』

“…….”

핀이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첫 문장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자신의 눈이 믿기지 않는지, 다른 아이들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짠가?”

“……소인도 보고 있소이다.”

“맞는 것 같네요…….”

“좀 더 봐야겠네.”

핀이 다음 장으로 넘겼다. 책에 적힌 내용은 글자가 너무 커서 한 장에 몇 줄 되지 않았다.

『다른 용들은 이 몸을 시기했다. 이 몸의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면 무적권 그러면 안 됀다고 반대하는 자들 천지였다.』

“아…… 뭔가 가슴이 답답해…….”

“……이 기분을 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흐음.”

가슴 한편에 장지돌이라도 올려둔 것 마냥 먹먹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세 사람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충분히 이 몸을 시기할 만하지.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일치얼짱하는 이 몸의 힘을 보고 질투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마잃은 중촌공이라 했던가. 말을 꺼낸 김에 곧바로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크윽!”

핀이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쥐고 있는 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격렬하게 솟구쳤다.

“아, 아씨! 참으셔야 하오!”

“하, 하지만! 하지마아아아안!”

“조금 더 읽어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하아. 하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그녀가 다시 책장을 넘겼다.

어느새 그들은 책에 저주가 걸려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목적은 사라지고, 제발 맞춤법이 틀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 몸은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양육강식이지 않은가. 강한 늑대와 같은 이 몸이 양들과 같이 살 수는 없는 법. 이런 결정을 내린 이 몸이 데단하지 않은가.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이 몸은 홀로 살 수 있다. 외않되겠는가. 외안대겠느냐는 말이다!』

“왜 안 되기는! 이런 책을 쓴 것부터가 안 되는 짓이라고!”

핀이 화를 내며 책을 집어 던졌다. 필로우가 던져진 책을 받으려다가, 안에 쓰인 내용을 떠올리며 행동을 멈췄다.

유일하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아라디온이 책을 다시 주워와 핀 앞에 펼쳤다.

“더 볼 필요 없어! 이런 책은 세상에서 없애 버려야 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더 읽어보죠.”

“끄으으…….”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핀이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

앞부분은 벨루스가 막 글을 깨우쳐서 그런 것이라 스스로를 세뇌하며, 다음 장은 괜찮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다.

『이 몸이 마음이 널기는 하지만, 그래도 동족들의 매도는 참으로 어의가 없었다. 자신보다 강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 몸을 매도하다니. 참으로 마음에 양시미가 없지 않은가?』

“양심이 없는 건 당신이야!”

핀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이런 책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핀이 불꽃을 만들어 찢어진 종이들을 모두 소각했다. 타고 남은 재들이 붉은 카펫 위에 까맣게 흩어졌다.

“아씨!”

필로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핀의 행동을 보고 놀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타고 남은 재가 한데 뭉치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는 것을 보고 소리친 것이었다.

“원상복구 시키는 마법까지 걸어 두시다니…….”

핀이 절규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가 실성한 듯이 웃었다.

“저건 악마의 책이야. 악마의 책이라고! 히히!”

“…….”

“내가 이러려고 저걸 훔쳐왔나 자괴감이 들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아라디온이 씁쓸하게 중얼 거렸다.

“과연 저주가 걸려있긴 하군요. 위그드라실 님께는 도저히 못 보여드리겠네요.”

***

핀과 필로우가 다시 책을 원래 위치에 돌려놓기 위해 방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벨루스가 쓴 책이 창고 깊은 곳에 처박혀 있는 쪽이 세상에 도움이 된다며 분개했다.

이번에도 홀로 방에 남은 아라디온은 조용히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흐음.”

그는 방금 읽은 벨루스의 책을 잠깐 떠올렸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곧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대신에 그는 맨 처음 핀과 필로우가 떠난 직후, 방으로 들어와 자신을 찾은 인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 인물은 처음 응접실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인물이자 신을 모시는 신관인 우리엘이었다.

우리엘은 응접실에서 별다른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아라디온에게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분께서 파견하신 분이신지요?’

그는 매우 정중했다. 마치 상관을 모시는 것과 같은 태도로 아라디온을 대하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첫 마디였지만, 아라디온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고 이 신관이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말을 맞춰주기로 결심했었다.

‘예. 그분께서 제게 상황을 살펴보고 오라 하시더군요.’

‘그렇군요. 아직 이곳에 관심을 두고 계셨다니. 열심히 관찰한 보람이 있군요.’

아라디온이 다시 한 번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이후로는 자기가 이곳에 와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귀족들이 얼마나 썩어빠졌는지 신께서 정말 탁월한 안목을 지니고 계셨다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아 참. 혹시 금방 떠나시게 되신다면, 말씀 좀 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이야기는 그다음이었다.

‘딱히 손을 대지 않아도 알아서 파멸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엘이 한 마지막 이야기였고,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뒤 밖으로 나갔다.

“파멸이라…….”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라디온은 곧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을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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