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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잠입! 비밀창고!
처음 위그드라실이 머물렀었던 손님용 객실.
그 객실의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핀이 창가로 가서 문을 열었다.
난간에 매달려 있던 필로우가 안으로 들어왔고, 핀이 그녀를 받아주며 물었다.
“필로우. 아빠는 어때?”
“잘 지내고 계시긴 한데…… 교육이 엄한지라 상당히 피곤하신 것 같소이다. 소인이 오기 전에 벌써 잠이 드셨소.”
위그드라실이 다른 방으로 떠난 뒤로 그를 걱정한 필로우가 몰래 그를 미행했다.
작은 체구의 필로우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회초리에 맞는 위그드라실을 보며 나서고 싶은 마음을 얼마나 참았던가.
필로우는 그 때를 회상하고 말하려 했지만, 핀의 성격을 아는지라 괜한 소동이 일어날까봐 말을 끊었다.
“그리고?”
“아, 아무것도 아니외다. 그나저나 발견한 것 같소이다.”
필로우는 위그드라실만 보호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예절교육(이라 쓰고 고문이라 읽는다)으로 한창 바쁠 때, 저택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비밀스러운 물건이 감춰져 있을 법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리하여 발견한 곳이 바로 별관 옆에 있는 수상한 창고. 경비병까지 동원되어 주변을 순찰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귀중한 물건이 감춰져 있음이 분명했다.
이곳에서 귀중한 물건이라면 필시 용사의 무기일 터. 필로우는 자신이 발견한 곳에 대해 핀과 아라디온에게 말해주었다.
“그럼 날도 어두워졌으니 한 번 가볼까?”
“소인도 찬성이오. 주공께서 많이 힘들어 하시고 계셨으니, 최대한 빨리 찾아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방문으로 나서면 하녀들에게 걸릴 위험이 있기에, 세 사람은 창문을 통해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여기 남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라디온은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주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와서 저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남아서 제가 잘 둘러대겠습니다.”
“으응. 알았어. 그럼 잘 부탁해.”
그의 말이 맞기에 아라디온은 방에 남기기로 한 핀이 인사를 마치고 창문 아래로 뛰어 내렸다.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한 그녀는 주변을 살피며 누군가의 눈에 띄었는지 확인해보았다.
다행히도 밤이 깊어가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이쪽이외다.”
필로우의 뒤를 따라 목적지로 향하는 핀.
그 뒤를 따라가던 중에 핀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필로우에게 뭔가를 물었다.
“아 참. 필로우. 혹시 투신이라는 사람 못 봤어?”
“소인이 돌아다닌 곳에는 그 자가 없었소만. 왜 그러시오 아씨?”
“흐음. 아무것도 아니야.”
핀이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장갑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지도 않고 떠나다니. 말이 투신이지 쪼잔하기 그지 없는 남자였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물어봐야지. 근데 알려주려나.’
“이곳이외다.”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속도로 금세 도착한 목적지에는 여러 명의 병사들이 순찰을 돌며 지키고 있었다.
작은 집과 같은 사이즈의 창고. 철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는 그곳은 울타리 위에 뾰족한 가시까지 설치되어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울타리 문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확실히 뭔가 느껴지네.’
창고 내부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확실하게 세계수의 기운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애매한 기운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핀은 의심하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익숙한 기운이라고 해봐야 세계수의 기운 밖에 더 있겠는가?
다만, 창고는 들키지 않고 들어가기엔 경비가 삼엄해서 무리였다.
핀은 필로우와 함께 몰래 창고 주변을 돌며 들어갈 틈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필로우. 저기 봐.’
‘으음.’
울타리 너머 창고의 지붕에 작은 틈이 보였다.
내부의 공기를 환기시켜 주는 환기구였다.
‘저기라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환기구는 너무 작아 핀이 들어가기엔 무리였다. 작은 강아지 정도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기에 이곳을 지키는 자들도 설마 저곳으로 사람이 들어갈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딱히 자물쇠나 쇠사슬을 감아두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이 있소이다.’
대신에 환기구 앞 울타리에 병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순찰하는 병사들 외에도 고정된 위치에서 창고를 지키는 병사들이 따로 있던 것이다.
핀이 뭔가를 결심했는지 필로우에게 말했다.
‘내가 병사들의 시선을 끌어볼 테니까 필로우 네가 저 안으로 들어가는거야.’
‘정말 괜찮겠소? 아씨?’
‘걱정 마.’
‘하지만 아씨!’
필로우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핀은 이미 창고로 뛰쳐나간 뒤였다.
뛰쳐나간 핀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피부가 어두워지며 밤의 어둠 속으로 그녀의 모습이 서서히 감춰졌다.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 머물고 있는 엘프라는 생각을 못 할 정도의 변화였다.
‘이러면 정체는 들키지 않겠지?’
그녀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적당한 속력을 유지했기에 병사들이 그녀의 신형을 볼 수 있었다.
핀이 울타리를 넘어갈 듯이 뛰었다.
하지만 이대로 들어가면 필시 병사들이 안쪽으로 들어가 경계를 할 터. 그럼 저택을 수색할 거고,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로 곤란했다.
병사들이 자신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을 본 핀이 공중에서 방향을 틀었다. 울타리 옆에 착지한 핀을 보고 병사들이 소리 질렀다.
“앗! 침입자다!”
“비상!”
순간, 환풍기 주변을 지키던 병사들이 핀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필로우가 재빠르게 환풍기로 달려갔다.
환풍기의 뚜껑은 다행히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뚜껑을 연 필로우가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핀이 ‘작전 성공’이라며 조그맣게 외쳤다.
“침입자를 공격해!”
“결코 안으로 들여보내선 안 된다!”
병사들은 핀을 잡으려는 것이 아닌, 죽이려고 작정했는지 공격을 시도했다.
미꾸라지처럼 병사들의 공격을 피한 핀은 좀 더 경비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그들을 툭툭 건드렸다.
“끄악!”
“조심해라!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그녀의 입장에서 툭툭 건드린 공격은 병사들을 뒤로 나가떨어지게 만들었고, 그녀의 바람대로 대부분의 병사들이 그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이제 필로우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저택 밖으로 사라지면 되겠군.’
침입자로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내부자의 소행으로 판단한 병사들이 저택을 수색할 테니, 그녀는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정체를 감추기 위해 밖으로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저택으로 다시 들어오는 일은 그녀에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필로우. 빨리 끝내줘.’
* * *
“아씨도 참. 그냥 잠깐만 주의를 끌면 되는 것을.”
좁은 환풍기 안을 기어가며 필로우가 투덜거렸다.
들어갈 때 한 번 경비들의 주의를 끌면 자신이 들어오면 되는 것이고, 나올 때 다시 한 번 경비들의 주의를 끌고 재빨리 빠져나오면 되는 일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필로우의 속도면 경비들은 그저 바람이 부는 줄 알 것이다.
혹시 모르니 아주 잠깐만 주의를 끌면 되는 것을, 그녀는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듯이 너무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하아. 어째 가면 갈수록 아씨가 점잖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외다.”
필로우는 그녀가 좀 더 여자답게 조신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스스로를 무사라 생각해서 그런지 매우 보수적인 마인드를 가진 필로우였다.
‘이곳이오?’
필로우가 환풍기 아래로 보이는 방을 보며 생각했다.
그 곳엔 다른 것은 없고 한 권의 책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검은색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하드커버의 책은, 오늘 위그드라실이 예절 공부할 때 받은 책만큼이나 두꺼웠다.
‘무기가 아니라 책?’
용사의 무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늘, 이곳에는 책 한 권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책에서 확실히 위그드라실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주공의 기운보다 좀 더 어두운 것 같긴 하지만…… 우선 이것 밖에 없으니 가져가 봐야겠군.’
필로우가 환풍기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리고 아래로 뛰어 내렸다.
‘위험!’
하지만 그 순간, 필로우의 무사로서의 촉이 경고를 보냈다.
그녀는 재빠르게 마력의 실을 뽑아 환풍기에 연결해 공중에 매달렸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에 주변에 쳐진 함정을 확인했다.
‘후우. 위험했소이다.’
안에는 마력의 빛이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쳐져 있었다. 그것을 건드리는 순간 필시 경보가 울리든, 함정이 작동하든 무언가 일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바로 코앞에 지나가고 있는 마력의 빛을 피해 고개를 비튼 필로우가 천천히 실을 내렸다.
함정은 촘촘하게 짜여 있었기에 필로우 정도 되는 크기가 아니라면 통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물론 필로우라고 그걸 통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갖가지 체위로 몸을 변경하며 고생하며 내려가고 있었다.
‘닿으면 절대로 안 되오!’
실을 늘어트리면서 간신히 아래로 내려가는 필로우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땀방울은, 바로 아래에 함정이 있어서 떨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허사가 될 터였다.
‘크윽. 어쩔 수 없소이다.’
그녀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되도록 정숙한 모습만 보여주려고 했거늘, 설사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더라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했지만 긴급 상황이었다.
필로우가 혀를 길게 뻗었다. 그리고 콧잔등을 이리저리 핥으며 땀방울을 먹어치웠다.
‘으으. 소인이 이런 추태를 부리다니.’
……그녀 입장에선 참으로 엄청난 추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아래로 내려간 필로우가 책을 손으로 꼭 쥐고 다시 환풍기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단 10분!
필로우가 방금 전의 추태를 잊기 위해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성공인가?’
병사들과 반쯤 장난식으로 싸우며 환풍기를 주시하던 핀이 필로우가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필로우는 환풍기에서 나와 병사들의 눈을 피해 재빠르게 사라졌다.
‘그럼 이제 끝이군.’
이제 저택 밖으로 사라지기만 하면 모든 계획은 완성이었다.
하지만 핀은 살짝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제 이렇게 도둑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가 저택 밖으로 나가는 담벼락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으하하하! 나는 정의로운 도둑이자 천사소녀다. 주님께서 도둑질을 하는 걸 허락해 주셨노라!”
그리고 그대로 담벼락 아래로 뛰어 내린 핀이 저택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저, 정의로운 도둑?”
“도둑이 정의롭다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도둑이면 도둑이지!”
“위선자 같으니라고!”
경비들이 뭐라 떠들던 간에 핀은 달리는 와중에 자신이 친 멘트에 흡족해했다.
그녀가 무언가 깨달았는지 손바닥을 탁 때리며 말했다.
“풍선을 타고 도망쳤어야 했는데…… 게다가 고슴도치도 없잖아. 실수다!”
그렇게 한동안 루카스 왕국에 정의를 사칭하고 다니는 도둑에 대한 소문이 떠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