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23화 (1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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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결투(1)

대회는 처음 내가 예상했던 대로 핀의 우승으로 끝났다.

결승전으로 가는 와중에 마족소년이라는 강적을 만났었지만, 그 외엔 전부 간단하게 이길 수 있었고 핀은 결승전 상대조차 한 방에 끝내 버렸다.

만약 현대에서 이걸 방송으로 내보냈었다면 반응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엄청나게 환호하거나, 아니면 시시하다고 욕을 하거나.

“제기랄. 결국 시상은 없는 거야?”

“쳇. 기대했더니만. 결말이 너무 흐지부지하잖아.”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처음엔 한두 사람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번 일에 대해 투덜거리며 각자 도시로 흩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전염병이 퍼지는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 죄송해요.”

황금색 트로피를 품에 안은 핀의 눈매가 살짝 축 쳐졌다. 우승 상품으로 받은 순금으로 만든 트로피였다.

“아냐. 괜찮아. 세상사 십중팔구는 내 뜻대로 안 된다는 말이 있잖아. 별수 없지 뭐.”

결승전이 끝나고 핀의 우승이 확실시되었을 때, 원래대로라면 지금 안고 있는 트로피와 함께 아버지의 비늘로 만든, 사람들에게 ‘광룡의 갑옷’이라 불리는 상품을 지급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원래 일정과 반대로, 광룡의 갑옷은 받지 못했다.

대회 개최자인 에반슈트 대공도, 투제도 나타나지 않은 채, 우리는 트로피만을 받고 시상식을 끝냈다.

“대체 무슨 일일까요? 혹시 광룡의 갑옷을 도둑맞은 걸까요?”

투덜거리는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서 아라디온이 말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라면 갑옷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주최자와 투제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하더라도, 광룡의 갑옷을 다른 이가 전달해 주면 그만인 것 아닌가.

갑옷이 없어지지 않은 이상에야 이렇게 끝낼 리가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광룡의 갑옷이 보물처럼 비싼 물건이니 주최자 없이는 꺼낼 수 없다거나.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아팠다.

어차피 이미 끝난 일이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골치만 아프니까.

“오. 여제다!”

“우승자다!”

숙소로 돌아가는 와중에 핀을 알아본 사람들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핀은 당황해하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내 쪽으로 계속 시선을 보냈다.

“그냥 적당히 상대해 줘.”

몰래 핀에게 귓속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해주었다.

너무 추상적인 조언이라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기에, 핀은 난감해하면서 사람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었다.

“악수해 주세요.”

“네…….”

“사인해주세요.”

“여기요.”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으음. 여자시니까 그럼…….”

“한 대 때려주세요! 챔피언의 주먹에 맞아보는 게 소원입니다!”

“네?”

중간에 엉뚱한 요구가 들어왔는데 핀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멀찌감치 날아가긴 했지만, 손을 추켜올려 엄지를 척! 하고 보여주는 걸 보면.

“으. 유명해진다는 것도 힘드네요.”

“그렇지 뭐. 유명해지는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니까.”

간신히 사람들에게서 빠져나온 핀은, 경기를 구경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입소문을 듣고 자신을 알아보기 시작하자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길가를 걷는 사람들도, 2층 창문 위에서 빨래를 너는 사람들도, 좌판을 열어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모두 핀을 알아보며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이 열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연예인들이 이런 기분일까요.”

“왜? 부담돼?”

“솔직히 조금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는 핀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이야기를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걸음걸이도 평소의 당당한 걸음이 아니었다.

성큼성큼 남자처럼 잘만 걸어 다니던 아이가 지금은 요조숙녀처럼 사뿐사뿐 걷고 있다.

거기에 시선조차 불안했다.

오른쪽을 살펴봤다가, 왼쪽을 살펴봤다가, 주변에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곳이면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듯이 그쪽으로 시선을 한 번씩 보냈다.

“으음. 생각했던 거랑 전혀 달라요. 솔직히 우승하면 유명해 질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런 기분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어떻게 생각했었는데?”

핀이 무슨 말을 할지는 예상이 되었다.

여자아이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씩은 유명해지는 것을 꿈꾸지 않는가?

“유명해지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동경하고, 존경하고, 그리고 좋아해 주는 모습을 상상했거든요.”

“핀 말대로 다들 좋아해 주고 있잖아?”

내 말을 듣더니 핀이 손가락으로 골목을 가리켰다.

살짝 그늘진 골목에는 어떤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곤 우리를 힐끗거리며 훔쳐보고 있었다.

“저 사람, 아까 처음에 저한테 사인해 달라고 했던 사람이에요. 근데 모자랑 옷을 갈아입고선 계속 쫓아오고 있어요.”

“…….”

핀. 저 사람 스토커야.

하루 만에 스토커가 생기다니.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핀의 인기가 대단한 것 같다.

“필로우.”

“부르셨소이까. 주공.”

“지금 핀이 말해준 사람, 경기장에서처럼 처리해 줄래? 입을 꿰매지는 말고, 그냥 못 쫓아오게 몸을 묶어버려.”

“알겠소이다.”

벌레는 빨리 퇴치할수록 좋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번식한다고.

스토커의 경우, 번식은 하지 않겠지만 점점 더 정도가 심해지겠지.

핀이 버린 쓰레기를 수집한다거나, 몰래 방문 앞에서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다거나.

한밤중에 몰래 침입했다가 핀에게 맞아 죽을지도.

“처리하고 왔소이다.”

골목을 보니 스토커 녀석이 필로우가 마력으로 만든 실에 꽁꽁 묶여서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너, 나한테 고마워해라. 목숨 빚 진거야.

“방금 전 그 사람도 그렇고, 사람들이 너무 저만 보는 것 같아요.”

“인기란 게 원래 그런 거잖아. 사람들이 관심 가져주고, 행동 하나하나에 기뻐하는 것. 그게 바로 인기지.”

그래서 연예인들은 항상 거리에 나갈 때면 선글라스에 후드를 푹 눌러쓰고 다니곤 했었지.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피곤하니까.

“그건 그렇지만, 너무 저만 보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괜히 이상한 짓이라도 했다간 실망시킬 것 같아서 무섭고, 또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여러 가지 생각으로 걱정이 많았는지 핀의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나는 핀의 마음을 한껏 이해할 수 있었기에, 붙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다는 것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나 역시도, 한때 수능생이었던 지라 부모님의 기대를 한껏 받은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 부모님도 똑같은 소리를 하며 친구들에게 나라는 녀석을 자랑하고 다녔다.

‘우리 아들이 머리가 좋은데 공부를 안 해.’

‘우리 아들은 배우는 게 빨라서 조금만 노력하면 돼.’

‘우리 아들이 글쎄 5살 때 한글을 다 깨우쳤다니까.’

우리아들이 최고다. 우리 자식이 제일 똑똑해. 우리 아이는 천재일지도 몰라.

한국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내가 똑똑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착각은 오래지 않아서 깨지고 말았다.

학교에 들어가고, 성적이라는 기준으로 서열이 정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이라는 현실과 마주친 것이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지고 나와 내 가족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지내는 초등학생 때는 그런 현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는 뭐, 세상이 모두 내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으니까.

초등학생에게 ‘나중에 너 대학교 어디갈래?’라고 묻는다면, 언제나 나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다.

1. 서울대.

2. 고려대.

3. 연세대.

……정말 자신감 충만한 어린 시절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나는 하버드 갈 거야.’라고 외국 대학을 말하는 아이들도 주변에 한두 명씩 있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을 지나서 중학생이 되고, 더 나아가서 고등학생이 되며 그런 자신감은 철 지난 꽃처럼 시들어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되는 순간,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특별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만이 남는다.

그런 상태에서도 부모님의 기대는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내 자식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니까.

부모님들은 자기 자식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자라면서 대부분 깨닫는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들은 기대한다. 기대하면 열심히 할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우리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혹시라도 만족시켜드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엄청 실망하실 텐데.

그렇게 수험생이라는 존재들은 자신의 미래가 아닌,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노예가 되어 버린다.

아마 핀이 느끼고 있는 부담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혹시 사람들이 내 행동에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다들 나를 이렇게 좋아해주는데 내가 실수라도 하는 거 아닐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것이 기대를 받는 자가, 선망과 동경, 사랑을 받는 대신에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너무 부담가지지 마. 핀은 핀이잖아. 그냥 지금까지 행동했던 대로 하면 돼.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워?”

내 손을 붙잡은 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놓치고 싶지 않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으니까.

“그것보다는…… 아빠를 욕할까 봐요.”

“으잉?”

갑자기 무슨 말일까. 여기서 왜 내가 나오는 거지?

“저를 욕하는 건 딱히 상관없는데,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누가 버릇없게 굴면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디?’라고 하는 사람이요.”

“아주 가끔 있기는 하지.”

“그래서, 괜히 제가 잘못했다가 ‘너희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냐!’라고 아빠를 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더니, 자꾸 조심스러워져요.”

가슴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이것은…… 예전에 자주 느꼈었던 그리운 감정이다.

금방이라도 그 느낌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으으.”

“아빠?”

“핀! 이리와!”

나는 핀의 가슴에 파고들며, 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핀이 내가 하려는 행동을 눈치 챘는지, 고개를 숙여 머리를 들이밀었다.

“후후. 역시 우리 딸이 최고야!”

“헤헤.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쓰다듬어 주시는 거요.”

“앞으론 더 많이 쓰다듬어줄게!”

다정하게 스킨십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핀을 따라온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이런. 그러고 보니 유부녀였잖아.”

“으음. 유부녀는 좀…….”

그리고 모였을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흩어져버렸다.

과연. 아이돌의 수명은 연애하기 전까지라더니.

이 자식들. 핀이 강해서가 아니라 외모만 보고 온 거였냐!

“유부녀라…… 좋군…….”

……이상한 놈이 하나 끼어 있다.

나는 필로우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가 숙소로 돌아갔을 때, 대로 한복판에 한 마리의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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