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19화 (11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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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일반인의 관점에서 본 천하제일무도대회

전생에, 나는 만화를 즐겨봤었다.

여러 장르의 만화를 모두 섭렵했지만, 그중에서 특히나 좋아했던 장르는 따로 있었다.

바로 격투물.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최강이 되는 꿈을 꾸지 않는가. 모든 지구 생명체들의 정점을 말이다.

다만 타고난 육체와 게으름으로 인해 그 꿈을 접고 평범하게 살아갈 뿐이다.

……뭐, 법의 심판이 두려운 이유도 있고. 잘못 때려서 이 하나만 부러져도 돈이 아주 그냥.

사설이 길었지만, 그 격투물에는 항상 나오는 클리셰가 있다.

격투물의 꽃이자, ‘누가 더 강하나’라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만족시켜 주는 궁금증 해결의 끝판왕.

바로 격투대회 되시겠다.

강한 적이 나오고, 그 적과 싸우는 패턴을 반복하던 도중에 나오는 격투대회라는 소재는 참으로 즐겁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어, 주인공과 같은 편이 되어 대회에 참가하는 그 모습은 언제 봐도 재미있었다.

특히나 서유기를 소재로 한 드래곤볼에서 나오는 천하제일 무도대회는 내 인생 최고의 격투대회로 손꼽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 그것을 봤으면서도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그 대회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굉장한 실력자. 총알도 맨손으로 잡는 자들이 즐비한 그 대회에서, 상대를 공격하려면 당연히 총알 이상의 속도로 공격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일반인들은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정말로 그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어서 그렇게 환호하는 것일까? 혹시 방청객 아르바이트처럼 고용된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을 품던 내게, 직접 무투대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 의문의 정답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위그드라실 님. 안 보이십니까?”

“전혀.”

네. 정답은 ‘못 본다’였습니다!

이미 예선경기를 통해, 실력 있는 선수들의 시합은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바둑판같은 대리석 시합장 위에서 희끗희끗 보이는 잔상만 뚫어지게 보고 있다.

“지금 상대 선수가 발차기를 했는데, 아인족이 뒤로 재주넘기하면서 그걸 피하면서 동시에 턱을 가격하려는 순간에 그걸 손으로 막은 다음에 거기에 명치를 팔꿈치로 찍으려는 순간에 허리를 돌리면서 팔꿈치를 피하고…….”

게다가 옆에서 아라디온이 열심히 설명해 주고 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선수들이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아웃사이더처럼 랩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다, 아라디온의 설명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지금 공격은 참으로 근사하군. 방금 전에 마력을 통한 육체강화로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한 뒤, 상대의 뒤로 돌아가 우위를 점하려 했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은지라, 그것을 눈치 채고 뒤쪽으로 발차기를 날려…….”

심지어 아라디온 한 명만 말하면 모를까, 옆에 있는 그 참견쟁이 녀석이 똑같이 해설을 시작해 버렸다.

양쪽에서 다른 목소리로 사운드가 이중으로 들리니, 집중은커녕 시끄러워서 짜증이 날 지경이다.

“하아. 그냥 핀이 싸우는 모습이나 얼른 봤으면 좋겠네. 우승까지 후딱 끝내 버렸으면 좋겠어.”

선수들을 보며 환호하는 관중들의 소리가 이제는 열정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시끄럽기만 하다.

문득, 관중들을 둘러보며 저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경기를 보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관중들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저들 눈에도 이 경기의 세세한 내용을 볼 능력은 없을 텐데 무엇을 보고 이렇게 열광적으로 흥분하는 걸까?

지금 싸우는 선수 중에 누군가가 대륙 최강의 위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에?

아니면, 사실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거고 이세계인들은 다들 눈이 엄청 좋아서 다 보이고 있는 건가?

“방금 시합장 부서진 거 봤어? 끝내주는데.”

“그러게. 게다가 보이진 않지만 바닥에 뿌려진 피로 봐선, 굉장한 상처를 입었을 것 같군.”

“캬. 이 맛에 시합 구경하는 거지.”

……제3의 이유가 있었구나.

지구든, 이세계든 사람 사는 곳은 역시 다 똑같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지구에서도 자극적인 프로그램일수록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그 정도가 심해져서 법으로 금지할 정도의 프로그램들도 하나둘씩 나오게 되었고, 그 자극의 법칙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 깊숙이 뿌리 내렸다.

여성 시청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일일드라마도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욱 자극적인 내용을 위해 불륜이 판을 치고, 시어머니는 항상 며느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아이를 낳았다 하면 언제나 내 자식이 아니다.

막장드라마라는 전문용어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자극의 법칙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자극적이긴 하네.”

선수들의 모습이 완전히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싸우다가 멈추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지치거나, 상대를 견제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였지만, 그 때마다 처음이랑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한 3초 전까지는 멀쩡했었는데 지금은 왜 저래.”

3초전까지만 해도, 인간선수는 당장 소개팅에 나가도 될 정도로 멋지고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인족 선수는 털이 이리저리 뭉개지며 까치집이 지어졌고,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피가 털에 엉겨 붙어 매우 위급한 상태였다.

하지만 3초가 지난 뒤 그들의 모습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아인족 선수는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아까와 다르게 멀쩡한 모습이었다.

당장에라도 애견대회에 나가서 입상할 수 있을 것 같은, 윤기가 흐르는 털과 여유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잠깐, 이거 인종차별인가? 아인족한테 이런 말하면 인종차별이야?

그리고 멀쩡했던 인간 선수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눈가는 찢어지고, 눈꺼풀 뒤에 찹쌀떡이라도 넣어둔 것처럼 부풀어 오르고, 얼굴은 파란색으로 분칠한 것처럼 여기저기 멍이 들어 있었다.

거의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 속 패배 컷씬 마냥 사람이 한 순간에 변해 있었다.

사람이 한순간에 망가지는 모습. 그리고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좋아! 더 힘껏 패버려! 다음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묵사발로 내버리라고!”

관중들은 기술이나 실력에는 관심 없었다. 그저 선수들이 어떻게 망가지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으음.”

“위그드라실 님?”

“아니야. 아무것도.”

갑자기 후회가 된다. 사람이 망가지는 것을 보며 흥분하는 관중들의 시선. 꼭 투견장에 온 것만 같았다.

그런 경기장을 가장한 철창 속에 핀을 던져 넣은 것은 것이다.

“핀은 괜찮을까.”

핀에게 무슨 일이 생길 리는 없었다.

나는 핀을 믿는다. 하지만, 핀이 다치고 상처받는 것을 원하는 관중들의 바람 속에 핀을 밀어 넣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가씨는 훌륭하게 해내실 겁니다.”

아라디온이 나의 안색을 살피며 친절하게 말을 걸어줬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돌이라도 얹어둔 것처럼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 승자는 아인족 선수였다.

그가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관객들이 그의 함성에 맞춰 발을 굴렀다.

그 모습이 진짜로 투견장에 온 것만 같아서, 나는 빨리 이 대회가 끝나기만을 기도했다.

“아아. 정말 최고의 시합이었어.”

“그러게. 아인족이 대체 뭔 짓을 했는진 몰라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됐네.”

“마법이라도 썼겠지 뭐.”

방금 끝난 시합에 대해 주변에 있는 관중들이 떠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조금 더 나아가서 앞으로 있을 다른 시합에 대해서도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성 선수가 많이 참가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그럼 싸우다가 옷도 찢어지겠지? 크. 강한 줄만 알았던 여성이 힘 앞에 굴복하여 쓰러지는 모습만큼 최고인 게 없지.”

조금 역겹다. 흥분이란 사람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리는 걸까. 아니면 속에 감춰뒀던 인간의 본성을 끌어내는 걸까.

「에. 다음 시합은 엘프족 미소녀 핀! 그리고 수수께끼의 마족 소년 베르제입니다!」

“오오!”

“여자!”

나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키 작은 내 모습은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설사 들어왔다 하더라도 시합장에 고정된 그들의 시선을 빼앗지는 못했을 것이다.

“부디 마족 꼬맹이가 에로한 녀석이었으면 좋겠군.”

“마법으로 옷을 그냥 홀라당 태워버리는 거야!”

가슴팍에서 필로우가 내 목을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내려보니, 필로우의 팔 사이에 마력의 끈이 실뜨기처럼 걸려있었다.

“지속시간 2시간. 상처 없음. 들키지 않게 처리 가능.”

“필로우.”

“주공. 처리할깝쇼?”

“입을 꿰매버려.”

* * *

선수 대기실에서 핀이 초조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녀는 대기실 안에 있는 수정 구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구슬은, 마법을 이용해서 빛을 공중에 띄우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시합장의 상황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하아.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긴장감이라곤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째선지 시합이 다가올수록 이상한 기분이 자꾸만 가슴을 짓눌렀다.

“핀 선수?”

“아. 네.”

“다음 시합이에요. 어서 나오세요.”

“네. 지금 나갈게요.”

살짝 긴장된 걸음으로 직원의 부름에 응답한 그녀가 밖으로 나갔다.

“와아아!!!”

예선 때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그녀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중압감이라는 것일까. 저들이 내게 거는 기대가 뭔지도 모르고, 저들 중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째서 이런 부담감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전 처음 느끼는 관중들의 열기를 뚫고 그녀가 시합장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다른 대기실에서 먼저 나온 마족 소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아빠다.’

상대선수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정면에 위치하고 있는 위그드라실이었다.

그녀가 손을 흔들었고, 위그드라실이 응답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뒤에 사람들은 왜 저러지?’

뒤 쪽에 있는 관중 두 명이 자신의 입을 긁어내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난동을 부리다가 부리나케 경기장 밖으로 달아났다.

‘볼일이라도 급한가?’

“이봐. 시합 시작했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시합이 개시되었다.

방심하는 사이에 하마터면 공격이라도 당할 뻔했지만, 다행이도 마족 소년은 핀의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그런데 마족 소년과 마주친 순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불안했던 마음이 초조함과 중압감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너…….”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고,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 핀에게 마족 소년이 물었다.

“대체 정체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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