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16화 (11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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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무투대회(5)

다음 날도 우리는 일찍 경기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핀. 이런 게 있으면 미리미리 전해줘야지.”

“아빠. 죄송해요.”

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사과하는 핀에게 받은 종이를 들여다보며, 나는 오후까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생각했다.

“시합이 끝나자마자 드렸어야 했는데.”

어제의 시합이 끝나고, 돌아가는 핀에게 대회 관계자가 한 장의 종이를 주었다.

거기에는 오늘 있을 자세한 시합 일정이 적혀 있었는데, 오전에는 경기장을 정비하고 오후부터 대회를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핀. 혹시 모르니까 몸조심하고. 모르는 사람이 따라 오라고 해도 따라가면 안 된다?”

“치. 아빠도 참. 전 어린아이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핀은 아쉽게도 잠시 동안 우리와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다.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들에겐 오전부터 시합과 관련해서 사전에 이런저런 교육이 있을 예정이라나.

아마 부상이라거나, 대회 우승 상품이라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럼 이따 봐.”

“네. 오후에 꼭 오셔야 돼요!”

아라디온과 필로우, 그리고 나는 핀에게 인사를 하고 거리로 나왔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대회가 시작 되서 그런지 전보다 사람들의 활기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그럼 아라디온. 안내를 부탁하지.”

“예. 위그드라실 님. 반드시 찾아내 보겠습니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라디온. 나는 그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다름 아닌…….

“맛없어.”

식당투어다.

나는 입 안에 들어온 이 기묘한 감촉의 고기를 씹다 말고 접시 위에 뱉었다.

주인이 본다면 큰 실례이니, 함께 나온 양배추 사이에 몰래 감춰두었다.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못 먹겠어. 물렁한 콘크리트 블록을 씹는 것 같아. 식도가 녹아내릴 것 같은 맛이야.”

“콘크리트요?”

“그런 게 있어.”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남은 음식들을 포크로 괜스레 쿡쿡 찔렀다. 겉모습은 먹음직스러운데 나의 몸은 이 음식을 먹지 못한다.

정령체인 몸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숲에 있을 땐 이런 식으로 식욕이 돋았던 적이 없었다. 음식이라고 해봤자 과일밖에 더 있는가.

싱그러운 과일 냄새를 맡을 때면, 식욕이 돋기보단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시원한 물 냄새, 그리고 따뜻한 햇볕만 있으면 아무런 배고픔도 느낄 수 없었다.

“냄새는 좋은데 전혀 넘어가질 않아.”

하지만 도시는 다르다. 온갖 음식 냄새가 공기 중을 떠다니고 있다.

나는 개 코가 아니다. 길거리를 걸으며 식당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를 일일이 맡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대회가 열리는 축제기간. 도심 곳곳에서 노점상이며, 대문을 활짝 열어둔 가게며, 음식 냄새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놈의 정령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음식 냄새만 맡으면 본능적으로 배가 고파진다. 마치 진짜 인간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먹을 수 없다.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배도 고프고, 음식을 보면 먹고 싶다는 욕구도 생기는데 먹을 수‘만’ 없다.

왜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없으면서 식욕을 느끼는 것일까. 인간이던 시절의 본능이 남아있는 걸까.

어쩌면 이것은 작은 지옥이 아닐까. 신이 전직 방구석폐인이었던 나에게 내리는 형벌이 아닐까?

‘이 자식. 기껏 태어나게 해줬더니 방 안에서만 살아? 넌 다음 생애엔 ‘셀프 굶주림’형벌이닷! 식욕도 느끼고 배고픔도 느끼지만 밥은 못 먹게 해주지!’

……그런 신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아무리 망상이라지만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군. 신이란 자고로 우주를 설계하는, 인간의 상상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여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말고.

“아라디온. 어머니는 아무런 음식도 안 드셨었어?”

“딱히 음식을 드셨던 기억은 없습니다만. 그분은 항상 꽃을 돌보는 걸 좋아하셨던 기억만 남네요.”

“하아. 그래. 다른 곳도 한 번 가보자.”

한 조각 썰어 먹은 아까운 스테이크를 남겨둔 채 우리는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음식을 한입 먹고 나오니 미식가 행세를 하는 기분이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절대로 먹지 않는, 고급스러운 신의 혀를 가진 미식가.

“욕이라도 하면 그때부턴 미식가가 아니라 고든 렘지가 되겠군.”

“그건 또 누굽니까?”

“있어. 그 사람이었다면 방금 먹은 요리를 ‘역겨워요. 도저히 입으로 넘길 수가 없군요. 고기는 바짝 말랐고. 벽돌을 구운 뒤에 거기다가 소스라도 칠한 건가요?’라고 했을걸. 어쩌면 더 심했을지도.”

“독설가로군요.”

“실력이 있으니까. 미각 면에서 견줄 자가 없지.”

“그럼 위그드라실 님도 미각이 너무 뛰어나셔서?”

“……나는 그냥 생리적으로 입에 안 맞는 것뿐이야.”

그 뒤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식당을 전전했다.

식당뿐일까. 길거리에 있는 노점들도 냄새에 이끌려 하나씩 맛보며 지나갔다.

“이건 너무 물렁해. 기름지잖아. 내 위장을 녹일 것만 같아.”

“세상에. 이런 음식이 다 있다니. 너무 맛없어서 혓바닥이 반란이라도 일으킬 것 같잖아.”

“제길. 이 소고기는 너무 덜 익어서 당장에라도 살아나 빨간색을 찾아 헤맬 것 같아.”

“위그드라실 님. 혹평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분이 빙의해 버렸어.”

물론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식물인 내가 육식이나 채식을 한다는 것부터가 무리인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선 식충식물들도 있었으니 나무인 나도 육식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은 찾을 수 없으니 슬슬 지쳐간다.

응? 내가 못 먹은 음식들은 어쨌냐고? 설마 아깝게 다 버리고 온 거 아니냐고?

“주공…… 이제 더 들어갈 자리도 없소이다.”

“저도 좀 더부룩하네요.”

“……진짜 미안. 여기 음식만 맛보고 끝내자.”

필로우랑 아라디온이 전부 먹고 있었다.

혼래빗인 필로우는 채식만 할 줄 알았는데 육식도 곧 잘 먹는데다, 아라디온은 다른 엘프들과 다르게 가리는 것 없이 육식 채식 전부 먹을 수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음식을 기다렸지만, 이미 너무 지치고 희망을 잃어서 기대는 되지 않았다.

“나왔군.”

악의 조직 총수인 것처럼 턱을 괴고 테이블 위에 올라온 음식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냄새는 좋다. 치즈 냄새인가? 잘 구워진 빵 냄새도 함께 올라오며 그 쫀득한 식감이 입 안에서 벌써 느껴졌다.

전체적인 느낌은, 피자와 비슷했다. 빵 위에 올라간 치즈와 여러 가지 야채들이 혼합되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라디온이 음식을 잘게 썰어 접시 위에 담아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포크로 음식을 찍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마워.”

자. 그럼. 과연 이것은 어떠할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막상 음식이 나온 걸 보니 또 식욕이 돋는다. 그럼 어디 한 번 먹어볼까?

“으윽…….”

역시 무리였다.

고소해야 할 치즈는 진흙반죽을 입에 넣은 것 같고,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 좋은 냄새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합성 진흙에서 나는 특유의 합성약품의 향기로 변해 버렸다.

토핑으로 올라간 야채는 더욱 최악이다. 씹는 순간 거기서 나온 즙이 혀를 고문하는 쓴 맛을 내뱉었고, 토마토로 보이는 야채는 고무를 녹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빵이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빵은 젖은 휴지를 뭉쳐 놓은 것 같은 식감으로 변해 버렸고, 씹을수록 입 안에 있는 이들이 ‘차라리 충치를 줘!’라며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우웩.”

결국 참지 못하고 뱉어낸 음식을 아라디온이 냅킨으로 잘 싸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니…… 이젠 더는 못 견디겠어.”

식도와 위가 경련하며 외친다. 이 이상으로 먹으면 더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나는 독재자가 아니라 소심한 시민이기에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물이라도 한 잔 드시죠.”

“고마워.”

유일하게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물. 아라디온이 재빠르게 한 잔 따라 내게 건네주었다.

“후아……?”

나는 내 입을 의심했다. 잔에 든 물을 다시 한 번 보았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물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물을 마셨다.

“맛있어?”

아라디온에게 건네받은 물이 너무나도 맛있게 느껴졌다.

시원한 청량감이 내 몸에 퍼지면서 나의 고집에 고통 받은 혀부터 시작해서 식도와 위장에게 안식을 주었다.

그냥 물이 아니다. 다른 식당에서 마신 물은 이렇지 않았다. 심지어 숲에서 마셨던 물조차 이런 행복감을 주진 못했다.

“아라디온. 이 물이야. 이게 바로 내가 찾던 맛이야!”

너무 기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들고 외쳤다.

다른 손님들이 나를 보며 키득거렸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느껴지는 행복한 기분이 부끄러움을 상쇄했다.

“저기. 이 물은 어디서 가져오나요?”

나는 당장에 주방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물었다.

주방장이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랐지만, 어린 손님이라는 것을 알고 이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꼬마 아가씨. 물이 맛있니?”

“네.”

“후후. 언젠간 알아주는 손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작은 손님일 줄이야.”

자신의 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주방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이 물은 말이야, 다른 가게들이랑 다르게 강에서 떠온 물을 끓여서 식힌 게 아니란다. 그런 물은 마실 순 있겠지만 아무런 맛도 없지.”

“이 친구야. 물에 맛이 어디 있어?”

주방에 있던 다른 요리사가 톡 쏘아 붙이듯이 말했지만, 주방장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맛있는 물을 찾으러 이곳저것 돌아다녔단다. 그 결과, 이 도시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맛있는 물을 발견했지.”

“그게 어딘가요?”

주방장은 큰 비밀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귀에 속삭였다.

“바로 뒷산이야.”

“뒷산…… 이요?”

뒷산이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연못이나 호수에서 떠온 물이라는 뜻인가?

“뒷산에 가보면, 바위 무더기가 있는데 거기서 물이 졸졸 흘러나오거든. 그 물을 받은 거란다.”

……그러니까 결론은 약수라는 거잖아!

“꼬마 아가씨. 이건 우리들만의 비밀이야?”

“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저 약수라니.

근데 듣고 나니 어느 정도 일리가 간다.

약수가 뭔가? 빗물이 산에 흘러들어가 틈을 통해서 빠져나오는 것이 약수가 아니던가.

그리고 나무는 산에서 토양에 뿌리 내려 그 영양분을 흡수한다.

결론은 약수에 나무가 필요한 영양소가 녹아 있던 것이 아닐까?

“이제 슬슬 오후네요.”

“그래. 나중에 또 이 식당으로 오자. 핀도 데리고 와야지.”

우리는 식당을 뒤로 한채, 경기장으로 향했다.

* * *

그들이 떠난 후, 식당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드레스를 입은, 귀족 티가 나는 아가씨였다.

식당으로 들어온 아가씨는 주방장에게 종이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위그드라실과 똑같이 생긴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혹시 여기에 이렇게 생긴 아이가 오지 않았나요?”

“으음. 기억나네요.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아. 늦었구나……. 감사합니다.”

바쁘게 식당으로 들어왔던 아가씨는 왔을 때처럼 바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앗.”

바쁘게 달리던 나머지 하이힐이 꺾이며 아가씨가 넘어지려는 찰나, 그녀를 뒤쫓아 온 남자들이 재빠르게 그녀를 부축했다.

“아가씨. 저희가 찾겠습니다. 들어가서 쉬고 계시지요.”

“안 돼요. 그럴 수 없어요.”

그녀의 눈가로 짙은 다크서클이 번져 있었다. 그녀는 부어오르는 발목의 통증을 참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제가 찾겠어요.”

결의에 찬 눈동자가 빛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향한 방향은 경기장이 아닌 반대 방향이었고, 그녀는 하루 종일 찾아 다녔지만 위그드라실 일행과는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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