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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무투대회(2)
두뇌는 언제나 새로운 경험을 갈망한다.
언제나 반복되는 같은 일상 속에서, 매일 쉽게 지나치는 풍경들은 뇌에 아무런 자극도 되지 못한다.
비커 안의 개구리가 서서히 가열되는 물의 온도를 눈치채지 못하듯이, 뇌도 매일 반복되는 자극에는 쉽게 적응되어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그것뿐일까.
반복되는 자극에 익숙해진 자는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며, 언제까지고 같은 생활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하려 한다.
핀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위그드라실을 따라 숲 밖으로 나왔지만 그녀는 엘퀴라즈 숲에서의 생활이 최고이며 바깥세상은 전혀 즐겁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길거리를 걸으며 맡게 된 음식 냄새에 의해 점점 흔들렸고…….
“오. 엘프 아가씨로군. 주문하겠나?”
숙소 1층에 자리 잡은 식당을 지나치는 순간 산산이 깨져 버렸다.
그녀의 오감은 매우 뛰어났다.
남다른 신체능력을 가진 그녀는 청각, 후각, 시각, 촉각, 미각까지 일반인 이상이었다.
그런 오감 중에서, 도시에 오고 나서부터 끊임없이 자극되는 감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후각이었다.
“이런 곳에 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 뭘 시켜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주문을 권유하는 친절한 주방장의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지금까지 숲에서 경험한 것과 다른 색다른 환경이 그녀를 살짝 주눅 들게 했지만, 천성적으로 쾌활한 그녀는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오호. 그런가. 새로운 손님이군. 한 번 맛보면 우리 집 단골이 될 텐데 괜찮겠나?”
“네?”
주방장의 능숙한 농담에 어리둥절한 핀이었지만, 곧 씨익 웃으며 주방장이 건네준 접시 위의 음식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후후. 자. 한 번 맛보라고.”
“아직 주문을 안 했는데요.”
“처음이라고 했지? 서비스라 생각하라고.”
“아. 고마워요.”
식탁에 올라온 접시 위의 고기가 모락모락 김을 풍겨댔다.
갈색의 소스가 고기 위를 이불처럼 곤히 덮고 있었고, 흘러나온 육즙이 이불 아래로 삐져나온 발처럼 아래로 흘렀다.
군침이 도는 냄새가 핀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우우. 이봐! 단골인 우리들은 안주면서!”
“여자한테만 저런다니까. 그러니까 돈을 못 벌고 가게가 여전히 허름하지.”
“시끄럿! 남자 놈들이 쪼잔 하게 구시렁거리지 말라고.”
가만히 앉아서 음식만 바라보고 있는 핀.
주방장이 의아한 마음에 그녀에게 물었다.
“응? 무슨 문제 있나?”
“이건 어떻게 쓰는 거죠?”
접시 옆에 놓인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들고 핀이 물었다.
이런저런 지식을 애벌레에서 진화하며 위그드라실에게서 건네받은 그녀였지만, 어설프게도 그 지식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건 내가 설명해 주지.”
어디선가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핀은, 그리고 우리들은 이 사내를 알고 있다.
아니, 이 참견하기 좋아하는 오지랖을 알고 있다!
“슬로우 웨건 씨?”
바로 싱과 팔씨름을 기다리다 만난 슬로우 웨건이었다!
“반갑군. 우선 포크와 나이프의 사용법부터 알려주도록 하지. 포크는 왼손, 나이프는 오른손에 드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지. 그리고 포크로 고기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한 다음, 포크의 바로 옆에 나이프를 대고 위에서 누르듯이 썰면 된다네.”
“감사합니다.”
매우 상세한 설명과 함께 슬로우 웨건이 중절모 위로 손가락을 날렸다.
도구의 사용법을 알아낸 핀이 그의 말마 따마 고기를 자르려고 했다.
하지만 슬로우 웨건의 설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톱질을 하듯이 고기를 자르거나 너무 힘을 줘서 접시를 긁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네. 주의해야 할 점이지. 또한 고기는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자르되, 미리 잘라두는 것은 고기의 육즙이 모두 빠져나가고 고기가 식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될 행동이야.”
“……감사합니다.”
설명이 좀 지나치긴 하지만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니 감사인사를 표현 핀.
그녀가 이제 다시 식사를 시작하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기는 오른쪽부터 썰어 먹는 것이 정석이며, 오른손잡이라 불편하다고 썰어둔 고기를 나이프로 찍어 먹는 짓은 절대 금물! 그럼 이만.”
“그만해, 이 양반아!”
“…….”
다른 손님들의 태클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끝낸 슬로우 웨건이 본인의 식사로 다시 돌아갔다.
드디어 처음으로 숲 바깥의 음식을 먹어보게 된 핀.
그녀는 슬로우 웨건의 설명대로 천천히 고기를 썰어서 입에 넣었다.
“……!”
이 맛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지금까지 먹어온 과일들은 모두 뭐란 말인가?
지난 세월동안 과연 나는 아빠의 나뭇잎 외에 뭘 먹고 자라온 것일까.
그녀의 뇌리를 처음 스치는 감정은 후회였다. 왜 나는 진즉에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일까.
그 뒤로 물밀듯이 덮쳐오는 환희의 파도.
씹을수록 터져 나오는 육즙이 그녀의 혀를 희롱했고, 어느 순간 넘어가는 부드러운 고기가 식도를 넘어 위장에 도착할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그 모든 감상을, 그녀는 단 한마디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맛있다.”
그것만으로도 주방장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음식을 열심히 먹어주는 것이 주방장이자 요리사의 목적이 아니던가.
물론 돈도 벌어야겠지만.
첫 조각을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어느새 접시는 깔끔하게 비어 있었다.
고기가 있었다는 자취는 접시에 묻은 기름기와 조금 남은 소스만이 증명해 주었다.
“후우.”
“맛있었나. 아가씨?”
“네. 엄청 맛있네요.”
행복하게 입가를 닦으며 웃는 핀을 보니 주방장도 절로 즐거웠다.
그리고 뒤이어 따라온 핀의 한마디.
“여기서 파는 음식. 다 주세요.”
* * *
“허어…….”
주방장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장사를 해오면서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은, 거의 모든 종족들을 모두 만날 수 있던 긴 시간이었고, 종족뿐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개성을 지닌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말로 다 먹다니.”
그중에서는 많이 먹기로 소문난 돼지 아인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지금 눈앞에서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을 나타내는 엘프 아가씨에 비하면 새 발의 피만도 못했다.
“배부르다!”
산처럼 쌓인 접시의 산이 식탁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했다.
서빙을 담당하는 종업원이 열심히 접시를 치웠지만, 벌써 세 번째 쌓인 접시의 산이었고 설거지를 담당하는 종업원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그녀를 원망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엘프가 아니라 아인 아니야?”
“아인이랑 엘프의 혼혈일지도.”
놀라운 눈으로 핀을 보고 있던 것은 주방장뿐만이 아니었다. 가게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식사를 멈추고 그녀를 보고 있었다.
겨우 많이 먹는 게 뭐가 대단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일정 경지에 이르면 타인의 경외심 어린 시선을 받는 법.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현대에서는 그것을 ‘푸드파이터’라고 부른다.
결론은, 이세계에서 최초로 푸드파이터를 선전한 것은 핀이 되시겠다.
“엘프 아가씨. 내 음식이 그렇게 맛있었나?”
“네. 이런 음식은 정말 처음 먹어봐요.”
경악의 눈빛을 지우고 주방장이 핀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주방장은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자자. 다들 들었지? 앞으로 내 음식가지고 불평하는 놈들은 가만 안 둬.”
“쳇. 기고만장하지 말라고!”
평소 불만을 쏟아내던 단골손님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리며 윽박지른 주방장은, 핀에게 서비스로 후식을 만들어주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다.
“제가 먹은 음식 중에 두 번째로 맛있었어요.”
주방장의 걸음이 멈췄다.
가볍게 사뿐하게 걷던 그의 발걸음은, 납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것처럼 무겁게 바닥에 달라붙었다.
“두…… 번째?”
방금 전까지 행복하게 웃던, 그리고 자신의 음식을 최고라고 칭찬해 주던 소녀의 그 말이 비수가 되어 주방장의 가슴에 꽂혔다.
행복의 구름 위에서 살짝 등을 떠밀려 지상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이러할까.
처음의 행복감은 어디가고 이제는 자존심이 상한 주방장이었다.
“그럼 아가씨가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는 음식은 뭐였나?”
“으음.”
핀이 잠시 고민했다.
그녀가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역시나 위그드라실의 나뭇잎.
그중에서도 나뭇잎을 한데 모아서 엑기스를 짜낸 음식이 가장 맛있었다.
‘엑기스니까 나뭇잎은 아니지. 그건 아빠의 마력이니까. 그럼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니 근데 이걸 음식이라고 해도 되나?’
잠시 고민하던 핀이 입을 열었다.
“저희 아빠가 주신 농밀한 마력 엑기스가 제일 맛있었어요.”
그리고 곧바로 위그드라실에게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남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특히나 대화의 당사자인 주방장은 ‘마력? 마력엑기스? 그게 대체 무슨 음식이지?’라며 그가 알고 있는 요리 지식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모두 궁금한가 보군.”
그렇게 손님들도 주방장도 그 음식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그때, 느긋하게 식사를 끝마친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슬로우 웨건…….”
그렇다. 우리가 아는 그 남자.
슬로우 웨건이었다.
그는 입가에 묻은 음식을 냅킨으로 여유롭게 닦았다.
사람들은 미지의 음식에 대해 그가 설명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모든 상황을 조합해 봤을 때, 그건 음식이 아니야.”
“그럼 뭔데?”
“지금부터 설명해주지. 우선 그녀는 결혼을 한 몸이다.”
“뭐! 결혼을 했다고?”
“다들 모르고 있었나보군. 이곳에서 나는 그녀가 들어올 때, 다른 남자 엘프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오는 모습을 보았지. 그것으로 봤을 때, 그녀는 애가 딸린 유부녀다.”
몇몇 손님들이 고개를 떨구며 좌절했다.
슬로우 웨건은 그들을 개의치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그리고 부부관계에서 사람들은 때론 상황극을 하지. 그녀가 말한 아빠란 아마 자신의 남편을 가리킨 것이겠지.”
“그건 너무 비약적인 설명이 아닌가. 왜 굳이 아빠라고 한 건데?”
“당연히 부끄럽기 때문이지. 그녀가 말한 농밀한 마력 엑기스의 정체가 부끄럽기 때문이야.”
“마력 엑기스의 정체……?”
사람들의 의아함은 점차 커져갔다.
하지만 몇 몇 인물들은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곤, 망연자실한 표정과 놀라움에 사레가 걸려 기침을 연신 해댔다.
“마력 엑기스란 은어지. 자. 그럼 맞춰보게나. 엘프 부부. 상황극. 은어. 아직도 모르겠나?”
이젠 대다수의 인물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채곤 여러 가지 반응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응의 대부분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였다.
“잘 모르겠는데.”
주방장이 말했다. 그는 아직도 음식에만 국한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 힌트. 그것은 사실 그렇게 맛있지는 않지. 그것을 맛있다고 한 이유는, 오로지 사랑이 조미료로 들어갔기 때문일세.”
“흠. 그게 뭐지?”
“……하는 수 없군.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지.”
드디어 그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 온 손님들이 아이들의 귀를 막았다.
“그건 바로…….”
* * *
“에취!”
방 안에서 홀로 침대 위에 쭈그려 누운 아라디온이 코를 훌쩍였다.
“감기라도 걸렸다. 에, 에취!”
그는 모르고 있었다.
지금 1층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욕하고 있는 지를.
“으으. 위그드라실 님…….”
그저 조용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불을 꼭 끌어안는 아라디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