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08화 (10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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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루카스 왕국(2)

지구에 있을 때는 그다지 옷가게에 들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유야 뭐 뻔하다. 그냥 패션에 딱히 관심이 없었으니까. 옷이야 교복이 주 차림복이었고, 사복은 어머니가 사주시는 옷만 입었던 것 같다.

“아빠. 이거 어때요?”

그건 옷뿐만이 아니라 신발도 마찬가지. 그래서 지금 핀이 신고 내게 어울리냐고 묻는 신발에 대해서 감평하기가 매우 힘들다.

“으음. 예쁘네.”

“치. 아까부터 계속 그 말만 하셨잖아요.”

가게 안은 현대의 옷가게가 생각나는 스타일의 인테리어였다. 많은 수의 옷가지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벽면에는 옷과 함께 신발이 구비되어 있었다.

근데, 생각 외로 이곳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건 바로…….

“위그드라실 님. 마음에 드시는 게 없으십니까?”

“아라디온. 여기 왜 여자 옷밖에 없어?”

어딜 보나 여성에게 어울리는 옷과 신발들뿐이라는 거다. 아라디온에게 내 성별을 확실하게 확인(?)시켜 줬으니 헷갈릴 일은 없었을 테고. 대체 왜 여성용품밖에 팔지 않는 것인가.

“여자 옷가게니까 당연히 여자 옷밖에 없죠.”

제기랄! 여자 옷가게였냐!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아라디온. 너, 내 성별 알고 있지?”

“이미 확인시켜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무래도 다시 확인시켜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아라디온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눈빛은 무지(無智)한 자를 보는 연민의 눈빛이었다.

지금 한숨 쉬고 싶은 건 바로 나거든?

“위그드라실 님. 제가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뭔데.”

“그건 바로 진정한 미(美)는 성별을 초월한다는 것이죠.”

“그건 또 뭔 소리야.”

“위그드라실 님은 너무 성별에 얽매여 계십니다. 위그드라실 님. 객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세요.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우시지 않습니까?”

“아름답다기보단, 어린아이답게 귀여운데.”

크아악. 내가 말했지만 순간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오글거림이 전신을 덮쳤다. 내 입으로 내가 귀엽다고 하다니.

근데 사실인걸. 엣헴.

“아뇨. 귀여우시기도 하지만, 아름다우시기도 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자라날수록 더 빛을 발하겠죠. 옷이란 무엇입니까? 몸을 가리는 역할도 하지만 바로 육체를 꾸미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까?”

“그런가?”

“네. 진정한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성별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위그드라실 님에게 맞는 옷은, 남자 옷이 아닙니다. 그건 위그드라실 님을 살릴 수 없어요. 어울리지 않다는 뜻이죠. 위그드라실 님에게 어울리는 옷은 바로 여자 옷인 것입니다!”

“하아. 아라디온. 우리 신발이랑 필로우의 뿔을 가려줄 장신구 사러 온 거거든?”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여자 옷을 보면 뭔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내가 변태도 아니고 끓어오르긴 뭐가 끓어올라!”

아라디온이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지 ‘아직은 시기상조로군. 하지만, 곧 있으면 위그드라실 님도 눈을 뜨시겠지’라며 중얼거렸다.

눈을 뜨긴 뭘 눈을 떠. 이 사람아. 그럴 일은 영원히 없거든?

“핀, 이건 어때?”

나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핀이 신을 신발을 직접 골라주었다.

내가 고른 신발은, 불필요한 외형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한 타입의 신발이었다.

운동화처럼 편하고 활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평평한 바닥, 질긴 가죽으로 만들어진 신발 윗부분.

외형은, 그냥 운동화다. 그래.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운동화라고 하면 좋았을 것을.

“아빠가 골라주신 거라면 뭐든 좋아요!”

……양심이 욱신거린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신발이거늘, 핀은 내가 골라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변명거리가 있다고! 핀은 활동적이잖아!

여기 있는 신발 대부분은 핀을 버티지 못해! 운동화라고 해서 과연 얼마나 버틸지, 그것조차 예상 못하겠는데 다른 신발은 얼마나 버티겠어!

핀이 내가 골라준 신발을 신었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신발을 보는 핀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최대한 빠르게 신발을 골라준 이유는 또 한 가지 있었다.

“핀. 어서 가봐.”

“네?”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고 있었잖아. 저 사람.”

핀은 신발을 고르면서도, 힐끗힐끗 쇼윈도 밖을 내다보며 아까의 팔씨름 좌판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신경 쓰였던 걸까. 흠. 우리를 보며 웃기까지 했으니, 그게 도발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 웃음이 핀의 도전 욕구에 불을 지핀 걸까?

“으음. 저 그게…….”

“나는 괜찮아. 어차피 바로 앞이잖아. 가깝기도 하고, 필로우도 있고 아라디온도 있는걸.”

“헤헤. 아빠는 못 속이겠네요.”

속이고 자시고 너무 티가 났는데. 못 알아채고 싶어도 못 알아챌 수가 없었다.

핀이 잠시 고민하더니, 필로우를 내게 맡기고 가게 문을 열며 내게 인사했다.

“그럼 아빠. 빨리 다녀올게요!”

“그래. 천천히 와도 돼.”

핀이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필로우를 꽉 끌어안은 채, 필로우에게 어울릴 법한 장신구를 찾아보았다.

필로우는 내가 알기론 혼래빗이라는 희귀종. 이 뿔이 그 증거로서 제대로 가리지 않는다면 큰 소란이 있을지도 몰랐다.

‘애완동물용 작은 모자 같은 거 없으려나. 잠깐, 여기는 여자 옷가게잖아. 그런 게 있을 리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구석에 있는 ‘애완용품’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운동화도 팔고, 애완용품도 팔고. 여자 옷가게가 아니라 만물상점이냐!

“주, 주공…….”

필로우가 내 품안에서 꿈틀거렸다. 어디 불편한 걸까?

“너, 너무 꽉 끌어안으시는 게 아닌지…….”

“응? 아, 미안. 아팠어?”

“그건 아니오만…… 흐에에…….”

필로우의 몸이 뜨겁다. 토끼는 원래 이렇게 체온이 높았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애완용품 코너로 가서, 필로우에게 어울릴 법한 장신구를 찾아보았다.

“이거 괜찮아 보이네.”

내게 들어온 물건은, 작은 실크햇으로 필로우에게 딱 맞는 크기로 제작된 물건이었다.

모자를 꺼내 필로우에게 직접 씌워주었다. 끈이 달려 있어 필로우의 턱 아래로 끈을 당겨 묶어주었으니, 움직여도 모자가 벗겨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필로우. 너 심장소리가 너무 큰 거 아니야? 흐음. 혹시 어디 아픈가?

“어때 필로우? 마음에 들어?”

“에? 예? 아, 주, 주공이 주신 선물이라면 모두 좋소이다!”

진짜로 몸이 안 좋은가. 항상 빠릿빠릿하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필로우건만, 오늘 따라 이상하다.

나는 필로우의 이마에 내 이마를 가져다 댔다. 이 방법이 열을 체크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필로우의 이마가 뜨겁다. 이마를 가져다 대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계속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다.

“필로우. 감기 걸린 것 같은데. 괜찮아?”

“하아아아…….”

“필로우? 필로우!”

내 품에 안긴 채 필로우가 기절했다. 끈이 풀린 인형처럼 몸에 아무런 힘도 들어가 있지 않아 마치 토끼 인형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재빨리 내가 가진 세계수의 마력으로 필로우를 치료해 주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필로우는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다.

“아라디온! 필로우가…….”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내게서 필로우를 받아 든 아라디온은, 필로우를 데리고 손님용 소파로 가서 앉았다.

‘어휴. 이 무자각’이라며 중얼거린 아라디온. 무슨 소리야 그게.

“필로우는 제가 돌보고 있을 테니, 위그드라실 님은 신발이나 어서 골라보시죠.”

“치료받아야 하지 않아?”

“이건 세계수의 마력으로 어찌 될 병이 아닙니다. 이건 그냥 쉬면 낫습니다.”

아라디온은 ‘위그드라실 님한테서 떨어져서요’라며 또 한마디 덧붙였다.

흠. 그래. 아라디온이 경험이 많으니 믿어보자.

그나저나 세계수의 마력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 있는 건가?

“흠. 뭘 신어야 하지?”

여러 가지 신발들이 즐비해 있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내겐 선택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난관이었다.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지. 소비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곤란해서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지금 내 상황이 그렇다. 이거 많아도 너무 많잖아!

나는 신발 고르기를 포기하고, 잠시 쉴 겸 가게로 눈을 돌렸다.

가게에 있는 옷들은 모두 성인 여성을 위한 옷들뿐이었다. 아라디온은 내게 이 옷들을 입어보라며 이 가게로 들어온 것이겠지만, 처음부터 내가 입기엔 무리인 것이다.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글씨. 천장에 매달려 운명처럼 나의 눈에 쏙 들어온 작은 코너 간판.

「아동복」

“으음.”

이건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야. 어쩔 수 없이, 그냥 조금 궁금해서 가는 것뿐이야. 세상에 나왔는데 이런 옷들도 조금은 구경해봐야 하지 않겠어?

아동복이 전시된 곳으로 들어가자, 내 크기에 알맞은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이곳에 있는 옷들도 모두 여자아이를 위한 옷으로서, 남자아이를 위한 옷은 하나도 없었다.

“으으! 이걸 입으라니.”

프릴로 도배를 한 한 벌의 드레스가 보였다. 전형적인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스타일의 옷이다.

객관적으로, 내 외관은 여자아이니까…… 말하자면 인형에게 옷을 입히는 것처럼 그냥 내게 어울릴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드레스를 들고 전신거울 앞으로 가서 내 몸에 대어 보았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역시 입을 용기는 없다. 나는 변태가 아니라고!

“어머! 꼬마야, 혼자 왔니?”

“귀여워라!”

한 여성 대군(?)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여인들은 성숙하고 단정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귀족부인들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아뇨. 아빠랑 같이 왔는데요.”

황급히 드레스를 뒤로 숨기고, 아라디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라디온. 어서 나 좀 구해줘. 난 여자랑 말하는 거 쥐약이라고!

하지만 나의 유일한 구원줄. 아라디온은 조용히 손을 흔들며 방긋 웃고만 있었다.

“아빠랑 같이 왔구나. 근데 왜 혼자서 옷을 고르고 있니?”

“제가 남자라 그런지 여자아이들 옷은 고르기 힘들더군요. 부인.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아이의 옷을 골라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 물론이죠.”

“이 배신자!”

하지만 나의 단발마는 부인들의 손길에 막혀 버렸다. 부인들은 나를 꼭 끌어안고선 아동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위그드라실 님. 그럼 즐거운 쇼핑되시길.”

“너! 너! 기억해 두겠어!”

“예쁜 옷이 많이 있단다. 뭐부터 입어 볼까?”

부인들의 손이 나의 옷을 벗긴다. 이미 뭘 입히고 싶은지 모두 결정한 것 같다.

잠깐, 나 남자인데. 속옷도 안 입었는데! 이러면 내 소중한 것(?)이 만천하에 들어나 버렷!

“어머? 이 아이…….”

아, 안 돼! 들켜 버렸다. 변태라고 매도당하고 싶지 않아!

“남자아이잖아!”

“남자아인데 이렇게 귀엽다니!”

“꺅! 너무 귀여워!”

하지만 부인들은 오히려 여자아이인 줄 알았을 때보다 더 아우성이었고, 나는 부인들의 손에 인형처럼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아. 나의 남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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