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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루카스 왕국으로 가는 길
“후아. 더워!”
내리쬐는 강렬한 햇빛이 나의 피부를 금방이라도 태울 듯이 물어뜯는다. 숲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자연의 고통이다.
“아빠. 제가 식혀드릴게요!”
내 주변으로 작은 얼음결정들이 돌아다니며 공기를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문제는, 얼음은 투명하기 때문에 햇볕이 그대로 그걸 뚫고 내 살을 여전히 태우고 있다는 거다.
시원하다고 해서 살이 안 타는 건 아니지. 이럴 때 선크림이라도 있었으면 참 좋을 텐데.
이전 생애에서도 와본 적 없는 사막은, 나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 위아래에서 덮쳐오는 뜨거운 열기. 찜통 안에 들어간 만두의 심정이 이러할까.
그나마 내 발로 안 걷고 핀에게 안겨서 가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겠다.
“으, 더워.”
이런 말하기 뭐하지만…… 핀, 너 너무 뜨거워.
“저기 아라디온. 언제 도착해?”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위그드라실 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아아. 벌써부터 밖에 나온 것이 후회된다. 그토록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거늘.
할 수만 있다면 어제로, 엘프들에게 인사하며 출발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어제 아침의 일이 생생하게 눈앞에 신기루처럼 펼쳐진다.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십시오. 위그드라실 님. 숲은 저희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믿음이 가는 목소리로 레벤토가 인사했다. 그의 뒤로 엘프들이 눈물을 훌쩍이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부디 빨리 돌아와 주세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저희도 가고 싶어요!”
“레벤토. 부탁해.”
뒤에 있는 엘프들을 보며 말하자, 레벤토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그라면 내 몸을 확실하게 지켜줄 것이다.
“곰은?”
“같이 마중을 나가자고 말해봤는데,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것 같더군요.”
곰은 삐져서 나오지도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서 훌쩍이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하는 짓이랑 다르게 의외로 섬세한 면이 있는 녀석이니까.
미안 곰. 다음엔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해서 같이 가도록 하자.
다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엘프들과 인사를 끝마치고, 나와 핀, 필로우, 아라디온 네 사람(?)은 손을 흔들며 여행길에 올랐다.
“아라디온. 아직 멀었어?”
그런데 왜 사막을 헤매고 있냐고?
루카스 왕국으로 가는 길에 사막이 있어서지 뭐긴 뭐겠어!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얼마 안 남았습니다.”
“대체 그 얼마가 얼마야? 물어볼 때마다 얼마 안 남았다고만 하잖아.”
루카스 왕국은 엘퀴라즈 숲의 오른편, 동쪽에 위치한 왕국이다. 그렇게만 들었을 땐 정말 딱 붙어서 가까운 왕국인 줄로만 알았다.
“뭐, 하루 이틀 내로 도착하겠죠.”
“으으. 너 이 자식.”
“너무 거리에 신경 쓰시면 오히려 더 힘듭니다. 경험자의 조언이에요. 그리고 분명 힘들 거라고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쉽게도, 루카스 왕국은 딱 붙어 있는 국가가 아니었다. 엘퀴라즈 숲과 루카스 왕국 사이에는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사막이라는 것이 샌드위치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루카스 왕국에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이 사막을 일직선으로 다이렉트하게 통과하는 것이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지…….”
아라디온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확실히 내게 이야기했었다. 사막을 건너는 것은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그러니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돌아서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여기서 나의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발동했다.
남자들이 오래 못 사는 이유를 아는가?
바로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 사막을 피해 돌아가자고? 남자가 돼서 사막쯤은 강행 돌파해야 하지 않겠어!?
……라는 생각을 했던 어제의 나의 명치를 세게 한 대 후려치고 싶어지는 게 지금 내 심정이다.
크흑. 그냥 돌아갈걸.
“도착하는 건 하루 이틀 내외고, 사막은 이제 곧 끝날 테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흐. 알았어.”
‘앞으로 하루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고통스러웠지만 괜히 열내봐야 안 그래도 더운데 짜증만 날 뿐이니 그냥 핀에게 몸을 맡기고 쉬자.
“흐에에…….”
필로우가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눈에 초점이 없는 것이, 더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괜찮아?”
“주, 주공. 아니되오…….”
잠결에 자꾸 중얼거리는 필로우. 역시 모피 때문에 추위에 강할지언정 더위에는 약한 모양이다.
필로우는 사막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쓰러졌다. 처음엔 아라디온이 안고 갔지만, 자꾸 잠꼬대로 ‘주공, 주공’거리는 바람에 지금은 나와 핀 사이에 끼어서 가고 있다.
“아라디온에게 맡기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사이에 끼어 있으면 더 더울 텐데.”
더울 것이다. 아까부터 핀의 가슴골 사이에 파묻힌 데다 나까지 겹쳐있으니 당연히 더 덥겠지.
참고로 여성의 가슴은 지방덩어리로서, 지방은 보온효과가 매우 뛰어난 물질이며, 생명체의 체온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최고의…….
나 지금 무슨 설명을 하는 거야. 더위를 먹었더니 머릿속의 회로가 폭주하는 거냐!
“시, 싫소이다! 그, 그냥 이대로 있겠소!”
갑자기 정신을 차린 필로우가 품 안에서 난리를 피웠다. 안 그래도 더운데 필로우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가 온열기처럼 확하고 나를 덮친다.
“후우. 필로우. 가만히 좀 있어. 덥단 말이야.”
“죄, 죄송하옵니다! 소인의 목숨으로 사과를…….”
“그냥 가만히만 있어줘.”
개인적으로 사막을 도전한다고 했을 때, 모험심 외에도 나는 믿고 있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내가 나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숲에서 정령으로든 나무로든 덥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햇볕이란 게 나의 영양분 중 하나라서 그런지 쬐면 쬘수록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사막을 횡단한다고 했을 때도 ‘엥? 사막? 그거 완전 내 밥 아니냐?’라는 마음이 있었다. 강렬한 햇빛쯤이야 내게 양분이나 마찬가지니까.
근데 아니었다. 그냥 숲이 살기 좋은 거였어.
제기랄. 조금만 더 생각해 볼걸. 식물한테 사막이 살기 좋은 곳일 리가 없잖아.
특히나 바닥에서 올라오는 복사열(輻射熱)이 가장 무섭다. 우리 중에서 핀과 아라디온만 멀쩡하고, 나와 필로우는 그 복사열이라는 놈에게 KO패 당하고 말았다.
어찌됐건…….
“아라디온.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빨리 좀 끝나기를.
* * *
“아, 저기 보이네요.”
“뭐!? 어디?”
기쁜 마음에 핀의 품 안에서 뛰어 내려 버렸다.
바닥의 뜨거운 모래가 나의 발바닥을 생선처럼 구워버리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탭댄스를 추듯이 발을 열심히 놀렸다.
“으악!”
“아빠도 참.”
다행히 핀이 나를 다시 들어 올려주었다.
마을에 가게 된다면 내 기필코 신발 먼저 사리라.
“드디어…….”
저 멀리, 지평선을 물들인 초록색의 대지가 나의 마음을 적셨다. 평범한 땅이 이렇게도 기쁘게 느껴질 줄이야.
“아아. 바로 이거야.”
녹색의 대지에 발을 디디자, 시원한 풀이 나의 발가락을 간지럽혔다. 나는 바닥에 누워, 땅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아, 시원해.”
사막은 끝났다. 나의 첫 모험치고는 난이도가 높은 굉장한 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겼다. 후후. 뿌듯한 성취감이 나의 전신을 감싼다. 지금이라면 하늘을 날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그럼. 좋다마다. 이제 다시는 사막 쪽으론 발도 디디지 않겠어. 돌아올 땐 오래 걸리더라도 꼭 우회해서 오자고.”
“하하. 알겠습니다.”
“흐에에에…….”
바닥에 내려온 필로우가 나처럼 바닥에 배를 깔았다.
뜨거운 열기를 단숨에 배출하듯 신음을 내 뱉은 필로우를 보고 있자니,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한 것 같아 미안해져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주, 주공? 흐에엑!?”
아직 열기가 덜 빠진 탓일까? 필로우의 얼굴이 빨갛다.
뭐, 조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아라디온. 여기서 조금만 쉬고 가자.”
“예.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내일 중으로 루카스 왕국에 도착할 겁니다.”
“핀. 고마워. 네가 없었으면 중간에 발바닥이 익은 고기가 됐을 거야.”
“뭘요. 헤헤.”
필로우만 쓰다듬어 줄 순 없지. 일어나서 핀의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핀은 기쁜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나저나 의외로군요.”
“뭐가?”
“핀 아가씨께서 마법을 사용하실 줄 아시다니.”
“아, 그거? 모르고 있었어?”
“예. 저번에 서로간의 오해로 싸웠을 땐, 육탄전만 하셨었거든요.”
아라디온과 내가 동시에 핀을 바라보았다. 핀은 필로우에게 부채질을 해주다가 우리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아무것도.”
다시 필로우에게 열심히 부채질을 해주는 핀. 아라디온과 나는 핀의 마법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이엘프는 다 쓸 수 있지 않아?”
“아뇨. 엘프들이 마법에 능통하긴 하지만, 핀 아가씨처럼 주문도 외지 않고 쓰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다른 엘프들이 쓰는 걸 보고 따라하면서 익히죠.”
“흠. 핀은 딱히 알려준 적이 없는데. 역시 아버지 때문인가.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마력을 핀이 물려받았거든.”
“아버지라면 용…… 그러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네요. 용족만이 주문 없이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요.”
“용들만 주문 없이 그냥 마법을 쓴다고?”
“예. 예전에 용들이 사는 계곡에서 머물렀을 때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쓰는 마법은 의지로 발동하기 때문에, 복잡한 주문이나 계산이 필요 없다더군요.”
그것 참 판타지스럽다. 흔히 나오는 판타지 세계의 용들은 용언(龍言)마법이라면서 그냥 말 한 마디로 신처럼 많은 것들을 창조하거나 파괴했었지.
“그런데 아가씨께서 용언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면…… 날아서 왔으면 편했을 텐데요.”
“그렇지. 날아서 왔으면…… 뭐!?”
정수리에 번개가 내리친 것만 같은 충격과 함께,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왜 나는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 핀이 날아서 왔으면 편했잖아? 전에 보니까 변신하면 날개도 생기던데!
“저기…… 핀?”
“네. 아빠.”
“너 혹시…… 날 수 있지 않니?”
“네. 날 수 있는데요?”
밀려오는 배신감에 몸이 떨린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날 수 있잖아?
머리가 뜨거워진다. 전에도 날았던 적이 있던가? 봤던 것 같기도 하고 못 봤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근데 왜…… 날아서 오자고 하지 않은 거야?”
“아빠가 도전…… 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시길래요.”
“도, 도전?”
“네. 아빠의 생각이 조금씩 흘러들어왔었는데 도전정신이라느니, 개척정신이라느니 하는 생각이 들리던데요? 게다가 남자라면 사막쯤은 강행 돌파해야 하지 않냐고 하셨잖아요.”
“아아…….”
“아빠!?”
정신이 희미해진다. 결국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아래 달린 걸 떼버리고 싶다. 남자는 무슨. 어차피 여자 같이 생긴 외모인데, 이참에 아예 여자가 돼 버리고 싶다.
“위그드라실 님! 정신 차리세요!”
모두 나를 내버려 둬. 이대로 죽고 싶은 마음이니까.
다시는 남자답다느니 도전정신이라느니 하는 생각은 하지 않겠어.
다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