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01화 (101/200)

=======================================

[101] 말하지 못한 비밀(2)

「그거 참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강에 떨어졌는데, 아무리 강물이 세다고 해도 바다까지 나간단 말이야? 그동안 숨도 제대로 못 쉬었을 텐데 익사도 안하고? 거기다 운 좋게 섬에 상륙해? 너무 작위적인 거 아니야?」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때 저는 기절해 있었는데요.”

「흠. 냄새가 나…… 사기꾼의 냄새가…….」

“사기 아닙니다. 진짜라고요!”

「알았어. 일단 계속해 봐.」

* * *

“여기가 대체 어디야…….”

사방을 둘러봤지만 온통 푸른 물뿐이다. 잔잔하게 몰아치는 파도소리만이 귓가를 맴돌았고, 그 파도는 모래사장에 부딪혀 새하얀 유리조각처럼 산산이 흩어졌다.

“바다라니…… 어쩌다 여기까지…….”

* * *

「잠깐 스톱. 어디서 약을 팔아.」

“약이라뇨?”

「내륙에서만 살던 네가 어떻게 바다를 알아?」

“그때야 몰랐죠. 근데 지금은 알고 있으니까 그냥 그렇게 설명한 거 아닙니까. 자꾸 이야기 중간에 끊으실래요? 저 갑니다?”

「알았어. 이제 안 끊을 테니까 계속해 봐.」

***

처음 섬에서 눈을 떴을 땐, 그는 누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섬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곳에서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라곤 오로지 아라디온 한 명뿐이었다.

네다섯 그루의 나무, 그리고 모래와 목에 걸고 있는 마력석 외에 아무것도 없는 섬.

“이건 뭐지?”

그렇게 섬을 조사하던 중, 아라디온은 기묘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섬 반대쪽을 조사하던 중 찾아낼 수 있었다.

섬의 반대쪽은,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게 대체…….”

심지어 색도 없었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무색의 투명한 무언가가 그곳에 있는 느낌이었다.

손을 뻗자, 벽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공간이 단절된 것처럼, 그것은 바다와 섬이 침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섬과 바다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동안 그것을 조사하던 아라디온이 내린 결론은…….

“설마 여기가 세계의 끝?”

* * *

「하아. 저기요, 저한테 알려주지 마시고 그냥 댁이 소설가 하시죠?」

“아, 또 왜요.”

「약을 팔 거면 좀 제대로 팔든가. 세상의 끝이라니. 댁은 ‘지구는 둥그니까’라는 노래도 모르쇼?」

“처음 듣는데요.”

「세상은 둥글다고. 보통 행성이 초창기 생성될 때, 회전을 하게 마련인데 그때의 회전력에 의해서 행성을 생성하던 물질이 밖으로…… 됐다. 설명하기도 귀찮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본 걸 어떻게 합니까?”

「됐고, 계속해 보쇼. 약장수 양반.」

* * *

“헤헤…….”

탈출구도 없는 자그마한 섬에서 아라디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있는 일뿐이었다.

탈출하고자 시도는 해보았다. 헤엄치고, 또 헤엄치고, 또 헤엄쳤다.

지치고 힘든 것을 넘어,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다에 가라앉을 때까지 헤엄쳐 봤지만, 대륙에는 닿지 못했고 눈을 뜨면 해류에 휩쓸려 다시 섬에 떠밀려 와 있었다.

“우히히…….”

음식은 문제없었다. 원래 물만 마셔도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라디온이었다.

다만, 해수는 마실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섬에 있는 나무들의 잎에 맺히는 이슬을 마셨고, 이슬은 너무 양이 적었기에 만성적인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배고픔도 시간이 흐를수록 적응되고 있었다.

“히히…….”

아라디온은 굶주림이 일, 이 개월 정도 지속되자 나중엔 배에서 나는 소리조차 즐겁게 느껴졌다.

대화 상대도 없고, 들리는 소리라곤 파도 소리뿐인 이곳에서 그는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마저 기쁘게 느껴진 것이다.

“배에서 소리가 난다……. 히히…….”

아니면 그냥 미쳤거나.

“꼬르륵…… 꼬르륵…….”

혼자서 배를 쓰다듬으며 실실 웃고 있던 아라디온은, 갑자기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빼들더니 얼굴에 비비기 시작했다. 오랜 친구를 만나 포옹을 하는 것처럼 기쁘고 즐거운 표정이었다.

“오오. 미안해. 심심했지? 깜빡하고 있었구나.”

그가 마력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마력석에는, 그가 피를 흘려 만든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활짝 웃는 듯한 표정을 그렸기에 그는 마력석을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마력석을 대한다. 그는 심지어 마력석에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이미 미쳐가고 있던 것이다.

아라디온이 정겨운 목소리로 마력석의 이름을 불렀다.

“윌슨.”

* * *

「아, 이 양반이 진짜! 상도덕이 없네!」

“이번엔 또 뭐가 문젠데요.”

「이야기가 왜 이러나 했더니 완전 표절이잖아! 당신,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실망했어.」

“표절이라니 대체 무슨 소립니까! 허구라곤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온전한 제 경험담입니다!”

「경험담? 웃기고 자빠졌네. 바다에서 조난을 당했는데 무인도로 떠밀려 내려간 것까지는 내가 이해하겠어. 흔한 클리셰니까. 근데 물건에 피로 얼굴을 그려놓고 사람처럼 대하는 건, 완전 캐스트 어웨이잖아!」

“캐스트 어웨이가 뭡니까?”

「시치미 떼지 마. 그 명작영화를…… 잠깐. 너는 주인님의 지식과 정보를 받지 못했지?」

“네?”

「하아. 설마…… 아니다. 이런 우연이……. 그래. 이야기나 계속해 봐.」

* * *

“으으…….”

극도의 허기진 배를 부여잡으며 아라디온이 신음했다. 물만 마셔도 살 수 있었지만 이슬로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머, 먹을 게 필요해.”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숲에서 있었던 즐거웠던 추억들과, 여행을 하며 보고 느꼈던 것들이 아주 빠르게 눈앞에서 펼쳐졌다.

“아…… 위그드라실 님…….”

떠오르는 추억들에 몸을 맡기고,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날들을 생각하는 아라디온.

그런데 점점 가면 갈수록 추억들은 변형되더니, 그가 여행하며 보았던 음식들이 눈앞에 맴돌기 시작했다.

“잘 익은 사슴구이…… 오리 살 스프…… 비둘기 양념 통닭…….”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상의 음식들.

자리에 누워 그 환상들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환상은 환상일 뿐 그는 잡히지 않는 음식들을 보며 서서히 기력을 잃어갔다.

“다진 생선살 야채 무침…… 생선…… 생선?”

그때, 번뜩이는 한 줄기의 번개가 그의 머릿속에서 뇌리를 뒤흔들 만큼 크게 요동쳤다.

왜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이슬만 먹고살 수는 없잖아. 음식은 바로 눈앞에, 바닷속에 잔뜩 들어있는데.

“생서어어어언!”

그는 곧바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치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죽어가던 그의 마지막 힘이 용솟음치며 한꺼번에 폭발한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바다 속에서 다시 기어 나온 아라디온의 손에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펄떡거리고 있었다.

“이걸 먹는다……?”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음식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느꼈지만, 아라디온은 배에서 거대한 괴물이 우는 듯한 신호음에 곧 정신을 놓고 물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마, 맛있어!”

방금 전까지의 망설임은 사라지고 물고기의 맛을 음미하는 아라디온. 한 마리를 뼈만 남기고 모두 뜯어먹은 그는 허둥거리며 가슴팍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윌슨…….”

혹시나 물에 들어갔을 때 떨어뜨리진 않았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다행히 목걸이는 제자리에 있었다.

아라디온이 목걸이를 풀고 하늘 위로 치켜 들며 마력석을 소중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절대 놓치지 않아…….”

소중한, 아주 소중한 연인을 보듯이 마력석을 바라보는 아라디온. 그가 마력석을 아주 조심스럽게 얼굴에 가져대며 말했다.

“나의 보물…….”

* * *

「아, 진짜 이 양반아! 이젠 거기까지 표절하는 거요!」

“왜 자꾸 표절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그거 완전 반지의 제왕이잖아! 스미골이냐!」

“스미골은 또 뭔데요!”

「물고기 뜯어먹고! 반지가 아니라 목걸이로 바꾼 점만 빼면 완전 표절이구먼!」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말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잖아요!”

「그럼 표절을 하지 말든가! 하아. 그래. 진짜로, 진짜 정말로 더는 뭐라 안 할 테니까 계속해 보쇼.」

* * *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아라디온은 서서히 섬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섬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그러할까. 유리가 깨지는 듯하면서도 지진이 난 것처럼 모든 것이 떨려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예전에 발견한 세상의 끝으로 향했다.

“세상에……!”

세상의 끝이 파괴되고 있었다. 거미줄처럼 균열이 일어난 세상의 끝은, 그 조각이 떨어지며 검은 구멍이 생겨나고 있던 것이다.

“우, 우선 피하자.”

아라디온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때, 균열이 생긴 세상의 끝이 부서지더니 곧 엄청난 압력이 일어나 그를 포함한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으아아아악!!!”

* * *

「그만.」

“아니, 여기서부터가 재미있는데요. 완전 당신이 원하던 이야기일 텐데.”

「내가 원하던 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지,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야.」

“이게 어딜 봐서 허무맹랑하다는 겁니까.”

「내가 맞춰보지. 그 세계의 끝에 빨려 들어갔더니, 다른 차원이었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래서, 그 세계는 어떤 세계였는데.」

“으음. 마법 대신에 사람들이 무공이라는 것을 사용하고, 여기랑은 이래저래 문화가 많이 다른데다가, 이종족은 없고 인간만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하고 있던 세계였죠. 아마?”

「……그쪽 사람들은 자기 세계를 뭐라고 부르던?」

“으음 그러니까…… 중원?”

「에라이, 이 약팔이 장사꾼아! 요즘 애들도 그런 이야기는 안 쓰겠다!」

“진짠데…….”

「됐고, 이제 더는 안 들을란다. 후우. 괜히 시간만 버렸네.」

“저기요. 토마스 씨?”

더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토마스는 아라디온의 말을 무시했다. 아라디온은 조금 더 그의 옆에서 기다리다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숲을 배회했다.

‘아쉽네.’

그의 말엔 거짓이 없었다. 모두 실제로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들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원래 세계로 돌아와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특히나, 아직 어린 위그드라실에겐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이야기 끝에서 고백할 참이었다.

‘그분께는…… 아직 이르다.’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 문화도, 인종도, 세상도 전혀 다른 이세계였지만 그곳에서 아라디온은 이곳과 연관된 거대한 비밀을 발견하였다.

다른 이도 아닌, 세계수와 연관된 거대한 비밀을.

이 세상의 비밀을.

‘뭐, 언젠간…… 많이 성장하시면 저절로 깨달으실지도…….’

아라디온이 추억에 잠겨 떠다니는 구름을 보았다. 누군가가 떠오르는, 하얀 순백의 구름이었다.

‘그분처럼…….’

과거의 인연을 추억하며, 그는 토마스에게 했던 이야기 중 유일한 거짓말을, 그리고 그 당시의 진실을 떠올렸다.

* * *

“저는 곧 죽을 거예요.”

“예?”

“아마 머지않아…… 이곳에서 죽겠죠.”

위그드라실이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운명을 말하면서도 차분한 표정이었다.

“어째서…… 위그드라실 님이…….”

“피할 수 없어요. 아니, 피해선 안되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막지 않는다면…… 세상이 멸망할 거예요.”

그녀는 때때로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하였다.

아라디온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이야기가 미래를 예언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하지만 이번 예언만큼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왜 위그드라실 님이 죽으셔야 한단 말입니까!”

“제가 아니면 아무도 막을 수 없으니까요.”

그녀는 담담했다.

아라디온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왜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제가…… 반드시 그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녀가 웃었다. 순간, 아라디온은 그녀가 자신의 이런 행동마저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은, 자신이 떠난다 해도 그녀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을 깨닫자 아라디온은 쓰러지듯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떠나주세요. 아라디온. 저를 위해.”

그녀가 아라디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은 가녀렸지만 그를 일으켜 세우며 미래를 향해 손짓했다.

“먼 훗날, 제 아이와 세상을 위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