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92화 (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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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아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씨. 아씨는 부끄럽지 않으셨소이까?”

필로우가 자신이 모시는 주공의 딸, 핀에게 물었다. 필로우는 어제 있었던 일이, 자신의 가치관으론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뭐가?”

“그, 그 알몸을 주공에게 보여드리지 않았소이까.”

어제 다 함께 목욕을 하며 필로우가 쳐둔 커튼은, 핀의 주먹에 의해 구멍이 뚫린 이후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서로의 몸을 모두 보이고야 말았다.

필로우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핀이 주공을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살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가족애를 넘어선 사랑이라는 것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알몸을 보여준다는 것은, 필로우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부끄러워?”

“부끄럽지 않으셨소이까?”

“으음. 아빠는 항상 벌거벗고 있는걸. 그리고 필로우랑 곰도 그렇고. 할아버지가 직접 주신 옷만 아니었으면 나도 벗고 다녔을 건데.”

이 여자, 위험하다!

필로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순수함을 넘어서 무지(無知)의 영역에 발을 디디고 있다.

지금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먼 훗날 큰일을 당하거나 벌일지도 모른다.

“그건 다르오. 나나 무뢰한은 가죽이지 않소. 이것 자체가 우리들의 옷이란 말이외다.”

“그럼 왜 어제 목욕할 때 부끄러워 한 건데?”

“그, 그게 상황이 다르지 않소이까. 아씨도 주공께 받은 지식이 있지 않소. 그 인간들이 가는 해수욕장이라는 곳 말이오.”

“응. 알고는 있어.”

“그곳에 간 여인들은 위와 아래만 간신히 가린 속곳을 입고 있소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있는 곳이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오. 그러나 평소에도 그런 차림으로 밖을 돌아다니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것이오. 소인도 같소이다. 평소라면 부끄럽지 않았겠지만, 목욕이라는 상황이 소인을 부끄럽게 했소이다.”

“으응. 그렇구나.”

간신히 한고비 넘겼다고 생각한 필로우. 하지만 애초에 목적은 자신이 부끄러워한 이유를 납득시키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오. 본디 여성이란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해야 하지 않소. 그러므로 함부로 몸을 보여주는 것은 큰 문제가 되오. 그것이 설사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간단하게 보여줘서는 아니 되오이다.”

“왜?”

“왜냐고 물으신다면…….”

왜. 모든 질문의 최종보스.

왜냐고 묻는다면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필로우는 가진 바 지능과 지혜를 한계까지 짜내며 이 순진무구한 소녀의 앞날을 변태들로부터 구출(?)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아! 그래! 아씨. 맨몸을 보여도 좋은 사람은 말이오. 나중에 결혼하고 함께 아이를 만들 낭군뿐이라오. 그것도 결혼을 하고 난 뒤에나 보여줘도 되는 것이외다.”

“왜?”

“그야 몸의 은밀한 부위는 남에게 함부로 보여줘선 안 되기 때문이오. 설사 결혼을 약속했다 하더라도, 결혼을 하고 난 뒤에 보여주는 것이 좋소.”

“그럼 왜 나중에 결혼한 다음에는 보여줘도 되는데?”

“그야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갑자기 필로우의 말문이 막혔다.

그다음에는?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첫날밤에 치루는 ‘그것’을 이 소녀에게 무어라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을 떠올리자, 필로우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가 알고 있는 유일한 남성이자, 사모하는 주공의 모습이 상상 속에서 펼쳐졌다.

상상 속의 주공은 어제 목욕했을 때 봤던 벌거벗은 모습으로, 이불을 들추고 필로우를 유혹하고 있었다.

‘이리와. 필로우.’

‘주, 주공. 소인은 보초를 서야 하옵니다만…….’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내 품 안에서 너를.’

‘아아. 주공…….’

“필로우?”

“히익!!! 아, 아씨?”

주공의 품에 막 안기려는 순간, 핀 덕분에 망상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필로우는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짐짓 헛기침을 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그러니까 ‘그것’이 뭐냐 하면…….”

“뭐냐 하면?”

뭐, 그런다고 해서 ‘그것’을 설명한 배짱이 생겨난 것은 아니었지만.

‘어서 떠올리시오. 어서! 좋은 방법을! 아아. 소인이 그 무뢰한처럼 낯짝이 두꺼웠다면! 잠깐, 무뢰한!’

“‘그것’에 대해선 무뢰한이 설명해줄 것이오! 그럼 소인은 이만! 수련이 바빠서!”

멀찌감치 숲으로 사라지는 필로우의 뒷모습을 보며, 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것’이 대체 뭐야?”

* * *

“곰. 곰!”

“곰! 곰. 곰? 곰?”

「안 돼! 까먹었다. 뭐냐? 대장?」

평소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바위에 누워 앞으로 던질 개그를 구상하고 있던 곰은,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에 바위에서 일어나 앉아 자세를 잡았다.

“뭐야.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아 보여.”

“곰. 곰!”

「떠오를 듯 말듯하던 환상의 개그가 사라져 버렸다. 대장 때문에!」

“아. 미안.”

사실은 반쯤 졸고 있었지만, 위그드라실을 닮아 백수로 노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곰의 거짓말에 핀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곰. 곰.”

「흥. 됐다. 무슨 일이냐.」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그것’이 뭐야?”

“……곰.”

「……힌트라도 줘라.」

“으음. ‘그것’은 말이지. 결혼한 남자랑 여자한테 일어나는 일이야.”

“곰.”

「부족하다. 더.」

“그리고 첫날밤에 치르는 일이고.”

“……곰.”

「……그리고?」

“발가벗고 하는 일이래.”

“…….”

곰은 어이가 없어서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거, 성희롱하는 것인가. 알면서 일부러 놀리려고 물어보는 게 아니란 말인가?

하지만 순수한 핀의 눈빛을 보고 곰은 깨닫고 말았다.

대장은 바보다.

두 번째로 위그드라실에게 이름을 부여받은 곰은 그 특유의 눈치로 알고 있었다.

저마다 위그드라실에게 이름을 부여받고 그의 지식을 건네받았지만, 그 지식은 동일하지 않았다. 겹치는 부분도 있고, 다른 이름을 부여받은 이에게 없는 지식도 있었고, 위그드라실만 알고 있는, 건네받지 못한 지식도 있었다.

그러나 설마 ‘그것’을 물어볼 줄이야.

‘그것’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곰으로선 ‘그것’도 모르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어제 맞은 명치가 욱신거리며 하지 말라고 본능적으로 경고하고 있었다.

곰이 아무리 뻔뻔하다고 해도 차마 가족에게, 그것도 여자형제에게 ‘그것’에 관한 농담과 진실을 말할 만큼 얼굴 가죽이 두껍지는 않았다.

그래서 곰은 돌려 말하기로 결심했다.

“곰……. 곰.”

「‘그것’은…… 아이를 만드는 방법이다.」

“응? 흐응.”

핀이 눈을 가늘게 뜨며 곰을 째려봤다. 곰은 뜨끔하며 핀의 시선을 외면했다.

“거짓말.”

“고, 곰!”

「거, 거짓말 아니다!」

“아이를 만드는데 왜 옷을 벗어야 하는데?”

아뿔싸. 대체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위그드라실이 준 지식에 들어 있던 ‘비디오’라거나, ‘인터넷’이라도 있었다면 시청각 자료를 틀어놓고 도망이라도 칠 수 있었을 텐데.

지난번에 생각했던, 도시에서 태어났어야 했다는 한탄이 다시금 곰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렇잖아. 아이는 마력을 합쳐서 만드는 건데. 굳이 옷을 벗을 필요는 없잖아.”

“곰?”

이 소녀가 대체 뭐라고 하는 것인가. 마력과 마력을 합쳐서 아이를 만든다고?

그렇게 쉽게 아이가 만들어졌다면 남자들이 그걸(?) 달고 다닐 필요가 없잖아!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그렇게 만들던데.”

“곰!”

「하!」

곰은 이제야 핀의 성지식이 잘못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최초의 세계수와 용이 아이를 만든 방식은 곰도 그 당시에 이름을 부여받고 함께 볼 수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매우, 매우매우 특수한 상황과 종족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차마 실제로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그들도 평범한 인간과 같은 방식(?)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곰은 생각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그걸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것이다.

“곰…… 곰.”

「그러니까…… 아이는 다른 방식으로도 만들 수 있다.」

“정말? 마력을 합치는 게 아니라 옷을 벗고도 만들 수 있다고? 어떻게?”

“곰…… 곰…….”

「어…… 그러니까…….」

곰에게 ‘그것’에 대한 지식은 많다. 핀과 필로우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일.

곰은 곧 생각하기를 포기한 채, 숲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야! 어디가! 알려줘!”

“고오오오옴!!!”

「말할 수 없다아아아!!!」

* * *

“아빠. 물드세요.”

“응? 갑자기 웬 물?”

오늘도 정령으로 변해 마력을 다루는 힘을 단련하고 있는 나에게, 핀이 물을 한 잔 건네주었다.

“으음. 고마워. 핀.”

시원하게 땀을 흘린 내게 있어서 물은 상큼한 과일즙보다 더 달콤하게 다가왔다.

유리잔에 가득 찬 시원한 물이 순식간에 내 뱃속으로 사라지며 나의 목을 축였다.

숲에 무슨 유리잔이냐고? 숲이라 유리잔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이지!

예전에 필로우가 보여준 잡동사니에는 유리잔도 있었다고! 마법까지 걸려 있어서 돌에 던져도 깨지지 않을 만큼 보호되고 있는 유리잔이! 어떤 모험가인지는 몰라도 참 호화로운 모험을 원했나보군.

……제길. 어제 곰의 개그를 들었더니 나도 모르게 이상한 드립을 쳐버렸군. 경기도 오산이라니. 지구에서 했다간 비난과 멸시의 눈초리를 받았을 법한 개그였어.

“아빠.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뭐니?”

“아이는 어떻게 만들어요?”

“푸핫!”

마셨던 물이 순식간에 식도를 역류하여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사레에 걸려 자꾸만 기침이 나왔고, 핀이 등을 두드려 주어 곧 진정할 수 있었다.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하니?”

“으음. 저는 아이란 마력을 합쳐서 만드는 건 줄 알았거든요. 할아버지랑 할머니처럼.”

“그, 그래! 맞아.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마력을 합쳐서 만드는 거야.”

“근데 필로우가 첫날밤에 옷을 벗어야 한다고 하고, 곰도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만드는 방법이라던데요?”

……필로우. 곰. 이 녀석들이 대체 순진한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

부모로서 가장 난감한 때는 언제일까.

아이가 떼를 부릴 때? 아니.

아이가 밥투정을 할 때? 아니야.

아이가 사춘기라 자아도취에 빠졌을 때? 틀렸어.

……바로 성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부모에게 물어볼 때다.

부모로서, 특히나 성적인 영역에서 매우 내성적인 한국인으로서 아이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자녀의 질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모는 매우 드물다.

뭐,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그 추세가 바뀌고는 있지만, 적어도 아직 나는 아니라고!

“으음. 그러니까 그게…….”

“그게?”

생각하자. 생각해. 인생의 위기다! 어서 생각하라고 나의 두뇌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오랜만에 착한 거짓말이다.

“아이는 말이야. 결혼한 첫 날밤에 황새가 물어다주는 거야.”

“근데 왜 벌거벗고 있어야 되요?”

“왜냐하면 예전에 말이지.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줬는데 무기로 황새를 공격한 사람들이 있었거든. 그래서 황새가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돼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벌거벗고 황새를 맞이하게 됐단다.”

“흐음.”

의문이 풀리지 않는지 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왜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줘요?”

“왜냐하면 황새는 자원 봉사하는 걸 좋아하는 아주 착한 녀석이거든. 그래서 하늘에서 만들어 준 아이를 황새가 배달해 주는 거란다.”

“으응…….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알았어요! 아빠! 아이는 그렇게도 만들 수 있는 거군요!”

“하하…… 뭐, 그렇지.”

간신히 나의 거짓말을 납득해 준 핀.

나는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하며 그날 하루를 보람차게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나의 생각을 어렴풋하게나마 핀이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감정이 격해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를 만드는 법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서 그런지, 그날 밤에 그렇고 그런 꿈을 꿔버렸다.

나무라서 그런 건지, 아이라서 성욕이 없는 건지 야한 꿈을 꿔도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고, 그냥 구경하는 역할에다가 흥미가 없어서 그저 그랬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혹시나 핀이 내 꿈을 봤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핀에게 과연 내 꿈을 봤을지 못 봤을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부끄러워서 물어볼 수 없었다.

핀은 과연 아이 만드는 법에 대한 진실을, 내 꿈을 통해서 보았을까.

아니면 끝까지 순수하게 황새가 물어다 준다는 나의 거짓말을 믿고 있을까.

그것은, 핀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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